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13편

장국태(張國太)에게 드리는 글

示張國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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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2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8 「양주거사방온(襄州居士龐蘊)」 — 거사문마조(居士問馬祖) '불여만법위려자시심마인(不與萬法爲侶者是甚麼人)', 조왈(祖曰) '대여일구흡진서강수(待汝一口吸盡西江水), 즉향여도(卽向汝道)'. 본편이 인용한 화두의 등록(燈錄) 원 출처이다.
景德傳燈錄《景德傳燈錄》卷8 「襄州居士龐蘊」 — 居士問馬祖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麼人', 祖曰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본편이 인용한 화두의 燈錄 원 출처이다.
13.1
한문此段大因緣,乃佛乃祖特行獨唱,接上乘人。
번역이 한 대목의 큰 인연은, 부처와 조사(祖師)께서 남달리 홀로 행하시고 홀로 외치시어, 상승(上乘)의 사람을 맞아 이끄시는 일입니다.
利根明敏之士,要超情離見,覺機關活卓卓地透漏,未舉先諳,未言先領,纔有朕兆,一剪剪斷,直下不明他事,終不向意根下尋思,
근기가 날카롭고 밝고 재빠른 이라면, 감정의 헤아림을 넘어서고 알음알이의 견해를 떠나야 합니다. 기틀(機關)이 살아 우뚝하게 환히 뚫려 드러남을 깨달아야 합니다. 들어 보이기 전에 먼저 알고,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들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조짐이 있으면 단칼에 잘라 버려야 합니다. 곧바로 다른 일은 따지지 않고, 끝내 생각의 뿌리(意根) 밑에서 이리저리 헤아리지 않아야 합니다.
要須打辦精神,當陽承當擔負,如太虗日輪,無幽不燭。
모름지기 정신을 가다듬어, 바로 이 자리에서 떠맡아 짊어져야 합니다. 큰 허공의 해가 어떤 그윽한 곳도 비추지 않는 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所以從上古德到單提處,不容毫髮編撥將去,使淨倮倮、赤灑灑,不與萬法爲侶,不與千聖同𫑮,獨脫超昇,自由自在去。
그러므로 예로부터 옛 큰스님들은 한 가지만 곧바로 들어 보이는(單提) 자리에 이르면,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 두루 쓸어 내 버렸습니다. 깨끗이 벌거벗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게 했습니다.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고, 일천 성인과도 나란히 서지 않게 했습니다. 홀로 벗어나 높이 올라, 자유자재하게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쉽게 읽기이 대목의 큰 인연이란, 부처님과 조사께서 남달리 홀로 행하시고 홀로 앞장서 이끄시어, 가장 높은 자리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을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근기가 날카롭고 밝고 재빠른 이라야 합니다. 그런 이는 감정과 분별을 넘어서고, 알음알이의 견해를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기틀이 활발하게 우뚝 드러남을 깨칩니다. 아직 들추기도 전에 먼저 알아차립니다. 아직 말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듣습니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단칼에 끊어 버립니다. 곧장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끝내 생각의 뿌리 밑에서 이리저리 따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정신을 가다듬어,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일을 제 몸으로 짊어져야 합니다. 큰 허공의 해가 아무리 그윽한 곳도 남김없이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옛 큰스님들은 한 소식만 곧바로 들어 보이는 자리에 이르면, 터럭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다 쓸어 없앴습니다. 깨끗이 벌거벗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만법과 짝하지 않고, 일천 성인과도 한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홀로 벗어나 초연히 올라, 걸림 없이 자유롭게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13.2
한문是故德山、臨濟,棒喝交馳,出沒縱擒,不在窠臼。
번역이런 까닭에 덕산(德山)과 임제(臨濟)는 방망이와 할(喝)을 번갈아 휘둘렀습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놓아주었다 붙잡았다 하되,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至於言語機用,一時坐斷,聖凡路絕,得失情遣,到大休歇場,更喚什麼作生死?
말과 기틀의 쓰임에 이르러서도 한꺼번에 끊어 버립니다. 성인과 범부의 길이 끊어지고, 얻고 잃는 생각이 떨어져 나갑니다. 크게 쉬어 버린 자리(大休歇)에 이르면, 다시 무엇을 생사라 부르겠습니까?
胷次等閑,照亦不立,遇緣卽宗,拈得出來,蓋天蓋地,
가슴속이 한가하여 비춤조차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연을 만나면 그대로 종지(宗旨)여서, 집어 내놓는 것마다 하늘을 덮고 땅을 덮습니다.
據慈悲方便,落草商量,正要令利根人撥去妄緣惡覺知見,
자비의 방편에 기대어 풀숲에 내려와(落草) 이러쿵저러쿵 따져 논하는 것은, 바로 근기 날카로운 사람이 허망한 인연과 그릇된 알음알이의 견해를 떨쳐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徹空空處,空空亦不存心,如太虗森羅萬象,無不包含印定,頭頭處處得大解脫,乃名了事底人,亦尚未當得向上行履。
텅 비고 또 텅 빈 자리에 사무치되, 그 텅 빔조차 마음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큰 허공이 삼라만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감싸 안아 도장 찍듯 정해 두는 것과 같습니다. 낱낱 곳곳에서 큰 해탈을 얻으니, 이를 일 마친 사람(了事底人)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직 향상(向上)의 살림살이(行履)를 감당한 것은 아닙니다.
쉽게 읽기이런 까닭에 덕산과 임제는 방망이와 고함을 번갈아 내리쳤습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놓아주기도 하고 붙잡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말과 그 쓰임새마저 단번에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성인의 길과 범부의 길이 함께 끊어졌습니다. 얻고 잃음을 따지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크게 쉬어 버린 자리에 이르면, 다시 무엇을 일러 나고 죽음이라 하겠습니까. 가슴속이 한가로워 비추는 작용조차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연을 만나면 곧 종지가 드러납니다. 집어 내오는 것마다 하늘을 덮고 땅을 덮습니다. 자비의 방편으로 풀숲에 내려와 이러니저러니 헤아려 논하기도 합니다. 이는 근기 날카로운 사람이 헛된 인연과 그릇된 알음알이를 떨쳐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텅 비고 또 텅 빈 자리에 사무치되, 텅 비었다는 그 생각마저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큰 허공이 삼라만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감싸 안아 도장 찍듯 매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낱낱의 자리마다 큰 해탈을 얻습니다. 이런 이를 일을 마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위로 향해 나아가는 살림살이를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13.3
한문若論向上行履,千聖密傳處,豈止壁立萬仞,隔千里萬里,
번역향상의 살림살이를 말한다면, 일천 성인이 은밀히 전하신 자리가 어찌 만 길 절벽처럼 우뚝 서서 천 리 만 리 떨어져 있을 뿐이겠습니까?
盡大地拈來,未有一塵許,謂之大用現前,三十二十年長養純熟,便乃契證也。
온 대지를 다 집어 와도 한 티끌만큼도 없습니다. 이를 큰 작용이 눈앞에 드러남(大用現前)이라 합니다. 삼십 년, 이십 년을 오래 길러 무르익어야, 비로소 맞아떨어져 증득하게 됩니다.
卽心卽佛,已是八字打開;非心非佛,重向當陽點破。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 한 것은 이미 여덟 팔(八) 자로 활짝 열어젖힌 것입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 한 것은 다시 바로 그 자리에서 콕 짚어 깨뜨려 주신 것입니다.
不尋其言,一直便透,方見古人赤心片片。若也踟蹰,當面蹉過也。
그 말을 좇지 않고 곧장 꿰뚫어야, 비로소 옛사람의 붉은 마음(赤心)이 조각조각 드러남을 봅니다. 머뭇거리면 바로 눈앞에서 어긋나 지나쳐 버립니다.
쉽게 읽기위로 향해 나아가는 살림살이를 말한다면, 일천 성인이 은밀히 전하신 그 자리가 어찌 그저 만 길 절벽처럼 우뚝 솟아 천 리 만 리로 막혀 있기만 하겠습니까. 온 대지를 다 집어 온다 해도 한 티끌만큼도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이를 큰 작용이 눈앞에 드러남이라 합니다. 이것은 이삼십 년을 오래 길러 푹 익어야 비로소 계합하여 증득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한 말씀은 이미 여덟 팔 자처럼 활짝 열어젖힌 것입니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 한 말씀은 다시 그 자리에서 못박아 깨뜨려 보이신 것입니다. 그 말에 끌려가지 말고 곧장 꿰뚫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옛사람의 붉은 마음이 조각조각 드러남을 봅니다. 머뭇거리면 바로 눈앞에서 어긋나 지나쳐 버리고 맙니다.
풀이 1
當陽 당양〔병렬〕 '卽心卽佛,已是八字打開;非心非佛,重向當陽點破'는 『圜悟語錄』 권15에도 같은 글로 실려 있다.
13.4
한문不與萬法爲侶底是什麼人?待你一口吸盡西江水,卽向你道多少徑截省要,
번역“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들이마시면, 그때 그대에게 말해 주겠다.” 이 얼마나 곧장 질러가는 요긴한 말입니까.
何不便與麼承當?更入它語言中,則永不透脫。
어찌하여 바로 그렇게 떠맡지 못하고, 다시 그 말 속으로 들어갑니까? 그러면 영영 꿰뚫어 벗어나지 못합니다.
多見學者只麼卜度下語,要求合頭,此豈是透生死見解?
배우는 이들이 그저 이렇게 어림짐작하여 한마디 말을 붙이고, 아귀가 맞기(合頭)를 바라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것이 어찌 생사를 꿰뚫는 견해이겠습니까?
要透生死,除非心地開通。此箇公案,乃是開心地鑰匙子也。
생사를 꿰뚫으려면 마음 땅(心地)이 열려 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공안(公案)이 바로 마음 땅을 여는 열쇠입니다.
只要明了,言外領旨,始到無疑之地。
다만 분명히 깨달아 말 밖에서 종지를 알아차려야, 비로소 의심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쉽게 읽기‘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옛사람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들이마시고 나면 그때 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곧장 질러가는 지름길이며 요긴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감당하지 못합니까. 도리어 다시 그 말 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러면 영영 꿰뚫어 벗어나지 못합니다. 배우는 이들이 그저 이리저리 어림잡아 한마디 말을 붙여, 아귀가 맞기만 바라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것이 어찌 나고 죽음을 꿰뚫는 견해이겠습니까. 나고 죽음을 꿰뚫으려면 오직 마음자리가 열려 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 공안이 바로 그 마음자리를 여는 열쇠입니다. 다만 분명히 깨달아, 말 밖에서 종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의심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풀이 3
公案 공안'此箇公案'은 바로 앞에 든 龐居士의 '不與萬法爲侶底是什麼人'과 馬祖의 '待你一口吸盡西江水' 문답을 가리킨다. 원오는 이를 '開心地鑰匙子'라 부른다.
一口吸盡西江水 일구흡진서강수《벽암록(碧巖錄)》제42칙(방거사호설편편(龐居士好雪片片)) 평창(評唱) —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를 참문한 인연을 서술하며 '불여만법위려자시십마인(不與萬法爲侶者是什麼人) … 일구흡진서강수(一口吸盡西江水)' 문답을 거론한다. 원오 자신의 저작 내 병렬용례이다.
13.5
한문昔修山主要見地藏,自陳此番來見和尚,經涉許多山川,極是辛苦。
번역옛날에 수산주(修山主)가 지장(地藏)을 뵈러 가서 스스로 아뢰었습니다. “이번에 화상을 뵈러 오느라 수많은 산천을 거쳐 왔습니다. 참으로 고생스러웠습니다.”
地藏指云:許多山川與汝也不惡,渠便桶底子脫去。
지장이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 수많은 산천이 그대에게 나쁘지 않았구나.” 그러자 그는 곧 통 밑바닥이 쑥 빠져 버렸습니다(桶底子脫).
似此豈假多言,道途之間,也須保任始得。
이러하니 어찌 많은 말을 빌리겠습니까? 길을 가는 사이에도 모름지기 잘 지켜 길러(保任) 가야 비로소 됩니다.
쉽게 읽기옛날에 수산주가 지장계침 스님을 뵈러 와서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이번에 화상을 뵈러 오느라 수많은 산천을 거쳐 왔으니 참으로 고생스러웠습니다.’ 그러자 지장이 이르기를 ‘그 수많은 산천이 그대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에 그는 곧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활연히 깨쳤습니다. 이러하니 어찌 많은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다만 길을 걷는 사이에도 늘 보임해 가야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풀이 2
地藏桂琛 지장계침修山主 = 撫州 龍濟山主 紹修. 『景德傳燈錄』 권24: 법안과 함께 참학한 뒤 다시 돌아와 '豈憚跋涉山川'이라 하자 地藏이 '汝跋涉許多山川也還不惡'이라 했다. 心要는 뒤 문답을 줄이고 깨침으로 이었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0
  1. 大因緣 대인연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중생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나온 큰 까닭을 이른다. 선에서는 스스로 깨쳐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큰일을 가리킨다.

  2. 上乘人 상승인

    최상승(最上乘)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예리하고 밝은 근기(根機)를 지닌 수행자이다.

  3. 利根 이근

    예리한 근기(tīkṣṇendriya)이다. 둔근(鈍根)의 반대이다.

  4. 不與萬法爲侶 불여만법위려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은 문답이다. 마조는 '그대가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일러 주겠다'고 답했고, 방거사는 그 말끝에 깨쳤다고 한다. 원오는 이 말을 온갖 것에 매이지 않는 본래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쓴다.

  5. 不與千聖同𫑮 불여천성동

    일천 성인과 자취(또는 무리)를 같이하지 않음. 𫑮은 전(躔)(궤도·자취) 혹은 주(儔)(짝·무리)의 이체·속자로 본다. (교감 참조)

  6. 窠臼 과구

    새 둥지와 절구의 우묵한 자리라는 뜻으로, 굳어 버린 틀이나 판에 박힌 격식을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틀에 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틀에 갇히지 않음을 '무과구(無窠臼)'라 한다.

  7. 大休歇場 대휴헐장

    대휴헐장. 크게 쉬어 버려 더 구할 것이 없는 경지(대휴헐(大休歇), 대휴헐)이다.

  8. 落草 낙초

    '풀숲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배우는 이의 눈높이로 말과 방편을 써서 일러 주는 일을 이른다. 말에 떨어져 본분을 잃었다고 낮추어 이를 때에도 쓴다.

  9. 大用現前 대용현전

    대용현전. 큰 작용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남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대기대용(大機大用)과 짝한다.

  10.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11. 非心非佛 비심비불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는 마조(馬祖)의 말이다. 마조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가르치다가, 그 말에 매이는 것을 깨려고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매(大梅)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일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았다. 『무문관』에도 실렸다.

  12. 一口吸盡西江水 일구흡진서강수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온갖 것과 짝하지 않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마조가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그때 일러 주겠다’고 답한 일이다. 방거사는 이 말끝에 깨쳤다. 헤아림으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를 보인 말로 일컬어진다.

  13. 合頭 합두

    합두. 이치에 그럴듯이 아귀가 맞는 말(합두어(合頭語), 합두어)이다. 참된 깨침이 아닌 알음알이의 짝맞춤이다.

  14. 公案 공안

    옛 조사들이 주고받은 문답이나 깨달음의 계기를 들어, 참선하는 이가 붙들고 궁구하게 한 것이다. 본래 관아의 판결 문서를 이르던 말이다. 화두(話頭)로 들어 의심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15. 修山主 수산주

    용제소수(龍濟紹修). 지장(地藏)(나한계침(羅漢桂琛))의 법을 이은 법안종(法眼宗) 계통 선사이다. 산주(山主)는 주지·주법(住法)의 호칭이다.

  16. 地藏桂琛 지장계침

    나한계침(羅漢桂琛, 867~928)이다. 오대 때의 선승으로 현사(玄沙) 스님의 법을 이었다. 복주 서쪽 석산의 지장원(地藏院)에 십여 년 머물러 '지장'이라 불렸고, 뒤에 장주 나한원으로 옮겼다. 법안(法眼)의 스승이다.

  17. 許多山川與汝也不惡 허다산천여여야불악

    '그 수많은 산천이 그대에게 또한 나쁘지 않았구나'. 지장이 수산주에게 던진 전어(轉語)(깨침을 여는 한마디)이다.

  18.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19. 保任 보임

    깨친 뒤에 그 자리를 잃지 않도록 잘 지키고 길러 가는 공부다. 흔히 보림이라고도 읽는다. 옛사람은 소 치는 이가 소를 지켜보아 남의 곡식을 밟지 않게 하듯 하라고 비유하였다.

  20.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21.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22. 當陽 당양

    해를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라는 뜻이다. 숨김없이 환히 드러난 바로 그 자리를 이르며, '당양하여 떠맡는다'처럼 그 자리에서 곧바로라는 뜻으로 쓴다.

  23. 淨倮倮赤灑灑 정라라적쇄쇄

    깨끗이 벌거벗고 말끔히 씻은 듯하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본래 모습을 그린다. '라(倮)'는 '라(裸)'와 같은 글자로 벌거벗었다는 뜻이다.

  24. 單提 단제

    홀로 들어 보인다는 말이다. 방편이나 설명을 섞지 않고 본분의 한 소식만 곧바로 들어 보이는 일을 이른다.

  25. 太虗日輪 태허일륜

    태허일륜. 태허(太虗)는 태허(太虛)(큰 허공), 일륜(日輪)은 해이다. 큰 허공의 태양이 두루 비추듯 함을 비유한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이다.

  26. 棒喝交馳 방할교치

    방과 할을 번갈아 몰아침.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을 합칭하여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선기(禪機)를 상징한다.

  27. 八字打開 팔자타개

    팔자타개. 여덟 팔(八) 자처럼 활짝 열어젖혀 남김없이 다 드러내 보임이다.

  28. 張國太 장국태

    원오가 법어를 써 준 재가 신자로, 그 글이 원오심요에 실려 있다. '국태'는 높여 부르는 말이나 직함으로 보이나,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29. 龐居士好雪片片 방거사호설편편

    『碧巖錄』 제42칙. 龐居士가 空中의 눈을 가리켜 '好雪片片不落別處'라 하자 全禪客이 '落在什麼處'라 물었고 居士가 손바닥으로 쳤다(T48n2003_p0179b17). 評唱에 龐居士가 石頭와 馬祖에게 '不與萬法為侶是什麼人'을 묻고 馬祖가 '待爾一口吸盡西江水,即向汝道'라 답한 인연을 실었다(T48n2003_p0179c03).

  30. 修山主·羅漢桂琛 수산주·나한계침

    修山主는 撫州 龍濟山主 紹修. 法眼文益과 함께 羅漢桂琛(地藏)에게 參學한 그 法嗣다. 『景德傳燈錄』 권24 紹修章에 다시 돌아와 '豈憚跋涉山川'이라 하자 地藏이 '汝跋涉許多山川也還不惡'이라 한 문답이 있고(T51n2076_p0400c15), 『五燈會元』 권8에도 실렸다(X80n1565_p0181a05). 桂琛의 章은 『景德傳燈錄』 권21에 있다(T51n2076_p0371a02).

이 편의 풀이 2건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8 「양주거사방온(襄州居士龐蘊)」 — 거사문마조(居士問馬祖) '불여만법위려자시심마인(不與萬法爲侶者是甚麼人)', 조왈(祖曰) '대여일구흡진서강수(待汝一口吸盡西江水), 즉향여도(卽向汝道)'. 본편이 인용한 화두의 등록(燈錄) 원 출처이다.
景德傳燈錄《景德傳燈錄》卷8 「襄州居士龐蘊」 — 居士問馬祖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麼人', 祖曰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본편이 인용한 화두의 燈錄 원 출처이다.

문단 5낱말 3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