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32편

허봉의(許奉議·庭圭)에게 드리는 글

與許奉議(庭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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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2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앞부분('此箇事…不爲折本矣')이 『圓悟佛果禪師語錄』 권14 法語 「示許庭龜奉議」(T47n1997_p0776c04–c25)에 실려 있다. 뒤의 '佛法無多子,如俱胝豎一指…' 조사 열거부터는 거기에 없다. 수신인 이름이 心要는 '庭圭', 語錄은 '庭龜'.
32.1
한문此箇事,在利根上智之人一聞千悟不爲難,
번역이 일(此箇事)은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要須腳跟牢實、諦當徹信,把得定、作得主,
그러나 반드시 발밑이 튼튼하고 단단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사무쳐 믿어야 합니다. 꽉 붙잡아 정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於一切違順境界、差別因緣打成一片,如太虗空無纖毫障隔,湛湛虗明無有轉變,雖百劫千生始終如一,方得平穩。
거스르고 따르는 온갖 경계와 갖가지 차별의 인연(因緣)을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큰 허공처럼 털끝만 한 걸림도 없어야 합니다. 맑디맑고 비고 밝아, 바뀌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백 겁 천 생이 지나도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 비로소 평온함을 얻습니다.
多見聰俊明敏、根浮腳淺,便向言句上認得轉變,卽以世間無可過,尚遂增長見刺,逞能逞解,趂語言快利,將爲佛法只如此,
흔히 보면, 총명하고 영민해도 뿌리가 뜨고 발밑이 얕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곧 언구(言句) 위에서 말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알음알이로 얻습니다. 그러고는 세간에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여기며, 오히려 알음알이의 가시를 키웁니다. 재주를 뽐내고 아는 것을 뽐내며, 빠르고 날카로운 말을 좇습니다. 불법(佛法)이 그저 이런 것이라고 여깁니다.
及至境界緣生、透脫不行、因成進退,良可痛惜也。
그러다 경계와 인연이 일어나면, 꿰뚫어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바람에 나아갔다 물러났다 동요하게 되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故古人直是千魔萬難悉皆嘗遍,雖七處割截亦不動念,一往操心猶如鐵石,以至透脫生死渾不費力,豈不是大丈夫超情慷慨所存也?
그러므로 옛사람은 천 가지 마(魔)와 만 가지 어려움을 남김없이 다 겪었습니다. 일곱 군데를 베어 내도 생각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이 마음 다잡기를 쇠와 돌같이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고 죽음(生死)을 꿰뚫어 벗어나는 데에도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정(情)을 뛰어넘어 뜻을 크게 떨쳐 품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쉽게 읽기이 일은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발밑이 튼튼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분명히 사무쳐 믿고, 꽉 붙잡아 정하여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스르고 따르는 온갖 경계와 갖가지 차별의 인연을 하나로 뭉쳐, 넓은 허공에 털끝만 한 걸림도 없는 것처럼 되어야 합니다. 맑고 비고 밝아 조금도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백 겁 천 생을 지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아야 비로소 마음이 평온합니다. 흔히 보면, 아무리 총명하고 영민해도 근기가 얕고 발밑이 얕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과 글귀 위에서 말을 이리저리 굴리는 재주를 알음알이로 여깁니다. 그러고는 세상에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도리어 알음알이의 가시만 키우고, 잘난 체 아는 체 뽐내며, 빠르고 날카로운 말재간을 좇습니다. 그러면서 불법이 고작 이런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다 막상 경계와 인연이 닥치면 뚫고 나가지 못하고, 그 바람에 나아갔다 물러났다 흔들리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천 가지 마와 만 가지 어려움을 남김없이 다 겪었습니다. 일곱 군데를 잘리는 고통에도 마음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 지키기를 오직 쇠와 돌같이 하였으며, 마침내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데에도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정을 뛰어넘어 뜻을 크게 품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풀이 4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便向言句上認得轉變
轉變은 언구 위에서 말을 굴리고 변전시키는 이미지인데, 내 번역 '알음알이를 지어'가 이를 흘려 놓쳤다(책 '전변할 줄 알고'가 오히려 축자적이다). '언구 위에서 말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알음알이로 얻어'로 보강함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卽以世間無可過
過는 능가·지남의 뜻으로, '이 경지를 세간에서 능가할 것이 없다 여긴다'는 자부·자족의 함의이다. 책 '세간에선 숭상할 게 없다'는 過를 어색하게 옮겨 자부의 함의를 놓쳤다. 내 번역 '세간에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여기며'가 원의이다.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因成進退
'이로 인해 진퇴(오르내림·동요)를 이룬다'가 원의인데, 내 번역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는 進退兩難의 반대 뉘앙스로 굳혔다. '나아갔다 물러났다 동요하게 되니'로 수정함이 옳다.
교감 · 尚遂增長見刺'尚遂增長見刺' — 저본(X69n1357 p0465b10)은 '卽以世間無可過,尚遂增長見刺'이다. 원오의 같은 글을 실은 『圜悟佛果禪師語錄』(T47n1997 p0776c13)은 '世間無可過上,遂增長見刺'(세간에 이보다 위가 없다 여겨)이다. 尚은 上의 잘못일 수 있으나 뜻이 거의 같아 저본대로 '오히려'로 옮긴다.
32.2
번역재가 보살(在家菩薩)이 출가의 행을 닦는 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명예와 지위, 권세(權勢), 의기 따위는 끝내 길들여 다스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況火宅煩擾煎熬,百端千緒,除非自己直下本真妙圓,到大寂定休歇之場,
하물며 불타는 집(火宅)처럼 시달리고 애타는 일이 백 갈래 천 갈래인 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오직 자기가 곧바로 본래의 참되고 묘하고 원만한 자리에 이르러, 크게 고요한 선정(大寂定), 쉬어 그친 자리에 닿아야 합니다.
尤能放下,廓爾平常,徹證無心,觀一切法如夢如幻,空豁豁地隨時應節消遣將去,卽與維摩詰、傅大士、裴相國、楊內翰諸在家勝士同其正因,
그리고 더욱 능히 내려놓아 툭 트여 예사로워야 합니다. 무심(無心)을 사무쳐 깨닫고, 온갖 법을 꿈 같고 허깨비 같이 보아야 합니다. 텅 비고 훤한 채로, 때에 따르고 철에 맞추어 지내 가야 합니다. 그러면 곧 유마힐(維摩詰) · 부대사(傅大士) · 배상국(裴相國) · 양내한(楊內翰) 같은 재가의 뛰어난 선비들과 그 바른 인(正因)을 함께합니다.
隨自己力量轉化未悟,同入無爲無事法性海中,則出來南閻浮提打一遭,不爲折本矣。
그리하여 자기 힘닿는 대로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이끌어, 함이 없고 일이 없는(無爲無事) 법성(法性)의 바다에 함께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이 남염부제(南閻浮提)에 한 번 나와 다녀간 것이 밑진 장사는 아닙니다.
佛法無多子,如俱胝豎一指,打地只打地。
불법에는 별것이 없습니다. 구지(俱胝)가 손가락 하나를 세운 것, 타지(打地)가 그저 땅을 친 것과 같습니다.
鳥窠吹布毛,無業莫妄想。中邑哆哆和和,古堤無佛性。
조과(鳥窠)는 베 올 하나를 불었고, 무업(無業)은 ‘망상하지 말라’ 했습니다. 중읍(中邑)은 ‘다다화화(哆哆和和)’ 했고, 고제(古堤)는 ‘불성(佛性)이 없다’ 했습니다.
骨剉。一生只道箇骨剉,只爲信得及,所以一生受用不盡。
골좌(骨剉) 화상은 한평생 ‘뼈를 갈아낸다’는 이 한마디만 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확실히 믿었기에, 한평생 써도 다함이 없었습니다.
若疑著,便有異見差別。有向上,有向下,豈能坐得斷?所以貴久長,乃難得人也。
만약 의심을 붙이면, 곧 다른 견해와 차별이 생깁니다. 위로 향함도 있고 아래로 향함도 있게 됩니다. 어찌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래 이어 감을 귀하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얻기 어렵습니다.
쉽게 읽기재가 보살이 출가의 행을 닦는 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대개 명예와 지위, 권세, 의기 같은 것은 끝내 다스려 굴복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불타는 집 같은 번뇌가 백 갈래 천 갈래로 들끓으며 애를 태우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오직 자기 자신이 곧바로 본래 참되고 미묘하며 원만한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크게 고요한 선정과 쉬어 그친 자리에 다다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능히 내려놓아 툭 트이고 평범해지며, 무심을 사무쳐 깨달아 얻고, 온갖 법을 꿈같고 허깨비같이 봅니다. 텅 비고 활짝 열린 자리에서 때에 맞추어 알맞게 지내 갑니다. 그러면 곧 유마힐과 부대사, 배상국과 양내한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뛰어난 선비들과 그 바른 인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힘닿는 대로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이끌어, 함이 없고 일이 없는 법성의 바다에 함께 들어간다면, 이 남염부제에 한 번 나와 다녀간 것이 밑진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불법에는 별것이 없으니, 구지가 손가락 하나를 세운 것과 같고, 타지 화상이 그저 땅을 두드린 것과 같습니다. 조과는 베실 한 올을 불었고, 무업은 망상하지 말라 하였으며, 중읍은 다다화화라 하였고, 고제 화상은 불성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골좌’, 곧 뼈를 갈아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한평생 오직 이 골좌 한마디만 말하였습니다. 이는 그것을 확실히 믿었기에, 한평생 써도 다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의심을 붙이면 곧 다른 견해와 차별이 생깁니다. 위로 향함도 있고 아래로 향함도 있게 되니, 어찌 그 자리에서 딱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래 이어감을 귀하게 여기니,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얻기 어렵습니다.
풀이 12
碧巖錄 벽암록'俱胝豎一指'는 『碧巖錄』 제19칙 본칙 '俱胝和尚凡有所問只竪一指'이다. 頌은 雪竇, 著語·評唱은 圜悟.
火中出蓮 화중출련'在家菩薩修出家行,如火中出蓮'은 佛道品의 '在欲而行禪,希有亦如是'를 그대로 살린 쓰임. 뒤에 維摩詰·傅大士·裴相國 등 在家의 先例를 든다.
南閻浮提 남염부제'則出來南閻浮提打一遭,不爲折本矣'—재가의 몸으로도 無爲法性海에 들면, 인간 세상에 한 번 다녀간 것이 밑지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
碧巖錄 벽암록벽암록(碧巖錄) 제19칙「구지일지두선(俱胝一指頭禪)」(구지화상(俱胝和尚) 범유소문(凡有所問) 지수일지(只豎一指)): 본편 '구지수일지(俱胝豎一指)'과 동일 공안이자 원오 자신의 대표 평창(評唱)이다.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T47-1997) 상당(上堂)·법어(法語): 타지(打地)·조과취포모(鳥窠吹布毛)·무업막망상(無業莫妄想) 등 일기일경(一機一境) 조사를 나란히 열거하는 상투이다 → 본편의 조사 열거와 동형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蓋名位、權實、意氣卒難調伏
구두점(、)이 名位·權實·意氣를 卒難調伏의 세 병렬 주어로 세운다. 책 '권과 실의 의기'는 意氣를 권실의 수식 대상에 종속시켜 구조를 오독하였다. 내 번역 '명예와 지위, 권세(權勢), 의기 따위'가 원문 구조에 맞다(權實은 원오어록 같은 글의 '權勢'를 따름 — 교감).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骨剉。一生只道箇骨剉'의 '骨剉'을, 어떤 조사가 평생 지켜 되뇐 '한마디(어구)'로 보는 자체역과, '골좌(骨剉)'라는 인명의 화상이 '뼈 꺾인다'는 말을 평생 하였다고 보는 책 독해가 양립한다. 앞의 열거가 '打地只打地·鳥窠吹布毛·無業莫妄想·中邑哆哆和和·古堤無佛性'처럼 대체로 인명(또는 별호)+상용어의 병렬이라 책의 인명 독해도 형식상 가능하다. 다만 打地(땅을 두드리던 화상)의 예처럼 상용어가 곧 별호가 되는 유형이어서 '骨剉'을 어구로 보는 독법도 동등하게 성립하며, 문맥('一生只道箇骨剉,只爲信得及')상으로도 어느 쪽이든 통한다. 『景德傳燈錄』 권12 杭州 羅漢院 宗徹章에 '師曰骨剉也 師對機多用此語 故時人因號骨剉和尚'(T51n2076_p0293a20)이라 하여, 骨剉는 宗徹이 평생 되뇐 한마디이자 그 말로 붙은 별호이다. 두 독해는 한 사실의 두 면이므로, 사람 이름으로 옮기되 평생 되뇐 한마디라는 뜻을 살려 ‘두 읽기가 다 성립함’에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只爲信得及
信得及은 '믿음이 사무치다·충분히 믿다'의 禪門 성어이다. 책 '믿음으로써 여기에 이르렀을 뿐'은 及을 '이르다(到)'로 분해해 오독하였다. 내 번역 '그것을 확실히 믿었기에'가 옳다.
교감 · 權實'權實' — 저본(X69n1357 p0465b15)은 '蓋名位、權實、意氣卒難調伏'이다. 원오의 같은 글을 실은 『圜悟佛果禪師語錄』(T47n1997 p0776c20)은 '名位權勢意氣'이고, 재가 보살이 끝내 다스리기 어려운 것으로 명예 · 지위 · 의기와 나란히 서는 것은 권세라야 맞다(방편과 진실은 세간의 집착이 아니다). → 實은 勢의 잘못으로 보고 '권세(權勢)'로 옮긴다.
32.3
한문既趣向得入,根腳洞明,當令脫灑,特立孤危,壁立萬仞,
번역이미 나아가 들어갔고 뿌리와 발밑이 환히 밝아졌으면, 마땅히 훌훌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홀로 높이 우뚝 서서, 만 길 벼랑처럼 서야 합니다.
佛病祖病,去玄妙理性,遣等閑蕩蕩地,百不知,百不會,一如三家村裏人,初無殊異,
부처라는 병, 조사(祖師)라는 병, 현묘한 이치와 성품을 다 버리십시오. 그저 한가하고 텅 비게 두어, 백 가지를 모르고 백 가지를 알지 못하게 하십시오. 세 집뿐인 시골 마을 사람과 똑같이, 처음부터 아무 다를 것이 없게 하십시오.
養來養去,日久歲深,朴實頭大,安穩方得安樂,
그렇게 기르고 또 길러 날이 오래고 해가 깊어지면, 소박하고 참된 바탕이 커지고 안온해집니다. 그래야 비로소 안락함을 얻습니다.
終不肯露出自己作聰明,顯作略,衒耀知見,趂口頭禪。
그런 사람은 끝내 자기를 드러내어 총명한 체하려 하지 않습니다. 솜씨를 드러내거나, 지견(知見)을 자랑하거나, 입끝의 선(口頭禪)을 좇으려 하지 않습니다.
所以道:十語九中不如一嘿也。又道:我見千百人只是覓作佛底,於中求一箇無心道人難得。
그래서 말했습니다. “열 마디에 아홉이 맞아도, 한 번 입 다문 것만 못하다.” 또 말했습니다. “내가 천백 사람을 보았으나, 모두 부처가 되려고 찾는 이들뿐이었다. 그 가운데 무심한 도인 하나를 찾기가 어렵다.”
此事最要行持,而於行持不著相,不居德,是名無相真修。
이 일은 지켜 행함(行持)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켜 행하면서도 모양(相)에 붙지 않고, 덕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을 모양 없는 참된 닦음(無相真修)이라 합니다.
香象渡河,截流而過,如此行持,滴水滴凍尚不留於胷中,何況特地起心作諸罪惡?
향상(香象)이 강을 건널 때 물살을 끊고 지나가듯, 이와 같이 지켜 행하면, 방울방울 떨어지며 어는 물조차 가슴속에 남겨 두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부러 마음을 일으켜 온갖 죄악을 짓겠습니까.
既已如是保護,亦如是轉勸未悟,便於此箇上調直純信,無爲無事,豈不快哉!
이미 이렇게 지키고, 또 이렇게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굴려 권합니다. 그리하여 이 일 위에서 고르고 곧게, 순일하게 믿어, 함도 없고 일도 없게 합니다.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쉽게 읽기이미 나아가 들어가서 근본 발밑이 환히 밝아졌거든, 마땅히 훌쩍 벗어나 홀로 우뚝 서고, 만 길 벼랑처럼 우뚝 서야 합니다. 부처라는 병과 조사라는 병, 그리고 현묘한 이치와 성품 따위를 다 버리십시오. 그저 텅 비고 넓디넓은 자리에 놓아두어, 온갖 것을 알지도 못하고 온갖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기를, 마치 세 집밖에 없는 시골 마을 사람처럼 하십시오. 처음부터 아무 다름이 없게 하십시오. 그렇게 기르고 또 길러 날이 오래고 해가 깊어지면, 질박하고 참된 바탕이 커지고 안온해집니다. 그제야 비로소 안락함을 얻습니다. 그런 사람은 끝내 자기를 드러내어 총명한 체하려 하지 않습니다. 솜씨를 부려 자랑하거나, 지견을 뽐내거나, 입끝의 선을 좇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열 마디 가운데 아홉이 맞아도 한 번 침묵함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내가 천 명 백 명을 보았으되 모두 부처가 되기를 구하는 이들뿐이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무심한 도인을 구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무엇보다 행지, 곧 지켜 행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행지하되 상에 집착하지 않고 덕에 머물지 않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상 없는 참된 닦음이라 합니다. 향상 코끼리가 강을 건널 때 물살을 끊고 밑바닥까지 밟고 지나가듯, 이와 같이 지켜 행하면 물방울이 방울마다 얼어붙는 것조차 가슴속에 남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부러 마음을 일으켜 온갖 죄악을 짓겠습니까. 이미 이와 같이 지키고 보호하며, 또한 이와 같이 이끌어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권합니다. 그리하여 곧 이 일 위에서 곧고 순수한 믿음으로 다스려, 함이 없고 일이 없게 한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풀이 5
滴水滴凍 적수적동'如此行持,滴水滴凍尚不留於胷中' — 行持의 엄정함조차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말로, 앞의 '於行持不著相,不居德'을 잇는다.
無心道人 무심도인'我見千百人只是覓作佛底,於中求一箇無心道人難得'은 趙州의 上堂語 '遮裏一千人盡是覓作佛漢子,於中覓一箇道人無'(『景德傳燈錄』 권28)를 든 것이다. 원오는 『圜悟語錄』 권10에서도 趙州의 말로 인용한다.
黃檗希運 황벽희운황벽희운(黃檗希運) 완능록(宛陵錄)「멱일개무심저인불가득(覓一箇無心底人不可得)」: 본편 '구일개무심도인난득(求一箇無心道人難得)'의 직접 전거이다(배상국(裴相國) 소록(所錄) 황벽어(黃檗語) 계열, 등록(燈錄) 전승).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9
  1. 一聞千悟 일문천오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친다는 말이다. 타고난 그릇이 크고 지혜가 날카로운 사람은 한마디만 듣고도 단번에 다 깨친다는 뜻으로 쓴다.

  2. 腳跟牢實 각근뇌실

    「발꿈치가 견고·진실함」이다. 각근(腳跟)(발꿈치)은 수행자의 근본 입지·실지 경계를 뜻하는 선어(禪語)이다.

  3. 打成一片 타성일편

    여럿이 한 덩어리로 뭉쳐 틈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세상일과 불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를 이른다.

  4. 七處割截 칠처할절

    몸을 일곱 군데나 베인다는 말로, 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고통을 견디는 일을 비유한다. 흔히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몸을 베이고도 성내지 않은 이야기와 이어 읽는다.

  5. 大丈夫超情 대장부초정

    정량(情量)(분별·감정)을 초월해 생사를 뚫는 기개 있는 수행자이다. 선문(禪門)의 이상적 인격이다.

  6. 火中出蓮 화중출련

    불 속에서 연꽃이 핀다는 말이다. 있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귀한 일을 비유한다. 『유마경(維摩經)』에서 욕망 속에 살면서 선을 닦는 일을 불 속의 연꽃에 견준 데서 왔다.

  7. 南閻浮提 남염부제

    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싼 네 큰 땅 가운데 남쪽 땅으로,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을 이른다. 줄여서 염부제라고도 하고, 남섬부주라고도 한다.

  8. 折本 절본

    밑천을 잃음이다(장사 은유). 헛된 생을 「밑진 장사」에 빗댄다.

  9. 佛法無多子 불법무다자

    「불법엔 별것 없다」이다. 임제의현(臨濟義玄)이 대우(大愚) 문하에서 크게 깨치며 「원래황벽불법무다자(元來黃檗佛法無多子)」라 한 데서 유래한다. 임제록(臨濟錄) 전거이다.

  10.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11. 打地只打地 타지지타지

    타지화상(打地和尚)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제(法弟)로, 무엇을 물어도 몽둥이로 땅만 쳤다. 시자(侍者)가 몽둥이를 감추자 입만 벌렸다는 일기(一機)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12.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

    조과도림(鳥窠道林) 선사가 베실 한 올을 불어 보인 일이다. 시자 회통(會通)이 불법을 배우러 떠나겠다고 하자, 조과는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조금 있다’며 옷에서 실오라기를 집어 훅 불었다. 회통은 그 자리에서 깨달아 ‘포모시자(布毛侍者)’라 불렸다.

  13. 無業莫妄想 무업막망상

    분주무업(汾州無業)의 기연이다. 무업은 마조(馬祖)의 법을 이은 당나라 선승이다. 배우는 이가 무엇을 물어 오든 대개 '망상하지 말라(莫妄想)' 한마디로 답했다. 묻고 따지는 그 마음을 그 자리에서 쉬게 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14. 中邑哆哆和和 중읍치치화화

    중읍홍은(中邑洪恩)(마조(馬祖) 법제(法弟))이다. 「치치화화(哆哆和和)」는 갓난아기의 옹알이 소리로 분별 이전의 본지(本地)를 가리킨다. 앙산(仰山)과의 불성(佛性)·호손(猢猻)(원숭이·육창(六窓)) 문답으로 알려졌다.

  15. 古堤無佛性 고제무불성

    고제화상(古堤和尚)이 오는 승려를 보면 곧 '물러서라, 물러서라, 너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한 기연이다. 뒤에 오직 앙산혜적(仰山慧寂)만이 그 참뜻을 알았다고 한다. '무불성(無佛性)'은 조주구자(趙州狗子) 이래 집착을 깨는 상투어이다.

  16. 壁立萬仞·特立孤危 벽립만인·특립고위

    만 길 벼랑처럼 우뚝하여 범접 못할 준초한 경계이다. 불병조병(佛病祖病)·현묘리성(玄妙理性)까지 다 버린 절대 입지이다.

  17. 佛病祖病 불병조병

    부처라는 병과 조사라는 병이다. 부처나 조사를 높이 받들어 그 말과 자취에 매이는 것도 병이 된다는 뜻이다. 부처·조사라는 생각마저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롭다.

  18. 三家村裏人 삼가촌리인

    몇 집 안 되는 두메 시골 사람이다. 꾸밈없이 「백불지백불회(百不知百不會)」한 질박무사의 경지 비유이다.

  19. 十語九中不如一嘿 십어구중불여일묵

    「열 마디 중 아홉이 맞아도 한 번의 침묵만 못하다.」이다. 언전(言詮)보다 무언(無言)(일묵(一默), 유마(維摩)의 묵연(默然)과 통함)을 귀히 여긴 선문(禪門) 상투어이다. 묵(嘿)=묵(默).

  20. 無心道人 무심도인

    분별하고 꾸미는 마음이 다 쉬어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도인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전심법요』에 ‘시방의 부처를 공양함이 무심도인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21. 求一箇無心道人難得 구일개무심도인난득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말이다(완능록(宛陵錄) 계열). 모두 부처 되기를 구할 뿐 무심(無心) 도인(道人)은 드물다는 취지이다. 앞의 배상국(裴相國)이 기록한 황벽(黃檗) 가르침과 호응한다.

  22. 無相真修 무상진수

    행지하되 상(相)에 집착 않고 덕(德)에 머물지 않는 「형상 없는 참된 닦음」이다. 원오 수증관의 핵심 용어이다.

  23. 香象渡河截流而過 향상도하절류이과

    큰 코끼리가 강물을 밟아 바닥까지 끊고 건넘이다. 열반경(涅槃經) 삼수도하(三獸渡河)(토(兔)·마(馬)·향상(香象))의 향상(香象)에 해당하며 철저한 구경(究竟)의 증득을 비유한다.

  24. 滴水滴凍 적수적동

    떨어지는 물방울이 방울마다 그대로 얼어붙는다는 말이다. 조금의 틈이나 머뭇거림도 없이 매섭고 철저한 모습을 이른다. 공부와 몸가짐이 빈틈없이 엄정함을 나타낼 때 쓴다.

  25.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26.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설법을 제자 소륭(紹隆) 등이 엮은 20권의 어록이다. 법당 설법과 제자에게 준 법어, 옛 공안에 붙인 평과 게송을 실었다. 『원오심요』의 몇 편이 이 책의 법어에도 실려 있다.

  27. 無爲無事 무위무사

    억지로 짓는 일 없는 무위(無爲)와 따로 일삼는 일 없는 무사(無事)를 함께 이른다. 분별과 애씀이 다 쉰 평상한 경지다. 임제(臨濟)는 일 없는 이가 귀한 사람이라 하였다.

  28. 此箇事 차개사

    '이 일'이라는 말로, 선문에서 깨달음의 근본 과제를 가리킨다. 나고 죽는 큰일을 푸는 일, 곧 본분사(本分事)를 이름 붙이지 않고 곧바로 가리키는 말이다.

  29. 太虗空 태허공

    끝없이 넓고 텅 빈 큰 허공이다. 걸림도 막힘도 없이 모든 것을 품는 마음의 바탕을 비유한다. 허(虗)는 허(虛)와 같은 글자다.

  30. 裴休 배휴

    배휴(裴休, 797~870)이다. 당나라의 재상으로 자는 공미(公美)이다. 황벽(黃檗)을 스승으로 모셔 그 가르침을 『전심법요』로 엮었다. 선문에서는 재가 수행자의 본보기로 꼽힌다.

  31. 黃檗希運 황벽희운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고안현의 황벽산에 머물러 '황벽'이라 불린다. 임제(臨濟)의 스승이며, 배휴(裴休)가 그의 법문을 모아 『전심법요』를 엮었다.

  32. 圜悟克勤·著者 원오극근·저자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1063~1135)이다. 오조법연의 법을 이었으니, 법맥은 양기방회 · 백운수단 · 오조법연으로 이어진다. 벽암록 · 원오불과선사어록 · 격절록을 남겼고, 제자와 거사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다.

  33. 許奉議·庭圭 허봉의·정규

    수신인이다. 이름은 허정규(許庭圭), 관직은 봉의랑(奉議郎)(약칭 봉의(奉議), 북송(北宋) 문산관계(文散官階))의 재가 거사이다. 원오가 「재가보살수출가행(在家菩薩修出家行)」의 수행을 설한 상대이다. 상세한 전기는 미상이다.

  34. 大寂定 대적정

    대적멸정(大寂滅定), 크게 고요한 삼매이다. 일체(一切) 동란이 쉰 근본 정경(定境)이다.

  35. 維摩詰 유마힐

    Vimalakīrti.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이자 재가 보살의 전형이다. 재가 수신인에 맞춘 재가 승사(勝士) 열거의 첫 표본이다.

  36. 傅大士 부대사

    부흡(傅翕)(497~569), 선혜대사(善慧大士)이다. 양대(梁代)의 거사로 유마후신(維摩後身)으로 일컬어진다(심왕명(心王銘) 등). 재가 선지식의 표본이다.

  37. 楊內翰 양내한

    양억(楊億)(974~1020)이다. 북송(北宋) 한림학사(翰林學士)(내한(內翰))로 임제종(臨濟宗) 광혜원연(廣慧元璉)의 재가 제자이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교정하고 서문을 지었다. 재가 문사(文士) 선객의 표본이다.

  38. 正因 정인

    정인불성(正因佛性)이다. 삼인불성(三因佛性)의 하나로, 성불의 바른 원인을 이른다.

  39. 骨剉 골좌

    '뼈를 간다'는 뜻의 말이다. 당나라 나한종철(羅漢宗徹) 선사가 누가 무엇을 물어도 '골좌야(骨剉也)'라고만 답해 '골좌 화상'이라 불렸다.

이 편의 풀이 2건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앞부분('此箇事…不爲折本矣')이 『圓悟佛果禪師語錄』 권14 法語 「示許庭龜奉議」(T47n1997_p0776c04–c25)에 실려 있다. 뒤의 '佛法無多子,如俱胝豎一指…' 조사 열거부터는 거기에 없다. 수신인 이름이 心要는 '庭圭', 語錄은 '庭龜'.

문단 3국역본 대조 6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