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21편

일서기(一書記)에게 준 법어에 덧붙여

跋一書記法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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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한문跋一書記法語
번역〔일 서기(一書記)에게 준 법어에 붙이는 발문(跋文)〕
쉽게 읽기일 서기에게 준 법어에 붙이는 발문
21.2
한문予政和末抵瑯邪,會一師若故舊,喜其志道不羣,因作前偈。及應詔大梁,遂得游從,日以此段咨扣益勤,數百眾中乃肯斆力,復示以後語。
번역나는 정화(政和) 말년에 낭야(瑯邪)에 이르렀다. 일(一) 스님을 만났는데, 오랜 벗 같았다. 그가 도에 뜻을 둔 것이 남달라 기뻤다. 그래서 앞의 게송(偈頌)을 지어 주었다. 이어 조칙(詔勅)에 응하여 대량(大梁)으로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는 날마다 이 일을 더욱 부지런히 묻고 두드렸다. 수백 대중 가운데서 기꺼이 힘을 쏟았다. 그래서 다시 뒷말(後語)로 일러 주었다.
쉽게 읽기나는 정화 말년에 낭야에 이르렀다. 거기서 일 스님을 만났다. 오래 사귄 벗 같았다. 그가 도에 뜻을 둔 것이 남달리 뛰어나 기뻤다. 그래서 앞의 게송을 지어 주었다. 이어 나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대량으로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와 함께 노닐며 지낼 수 있었다. 그는 날마다 이 한 가지 일을 더욱 부지런히 묻고 파고들었다. 그러다 수백 대중 가운데서 마침내 기꺼이 힘을 떨쳐 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다시 뒷말로 일러 주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應詔大梁'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의 오역. 책은 '대량산에 주지하라는 조서'로 옮겨 大梁을 산·도량명으로 오인하였다. 고증대로 大梁은 開封(汴京, 東京) 북송 수도이며, 應詔는 徽宗의 부름에 응해 상경한 것(佛果 호를 받던 시기)이다. '조칙에 응하여 대량으로 갔다'가 옳다.
21.3
한문建炎元祀,將之東南,因爲重書,而復系之以䟦,爲他日再會之識,且以相分。
번역건염(建炎) 원년, 그가 동남쪽으로 떠나려 한다. 그래서 다시 써 주고, 또 발문을 붙인다. 훗날 다시 만날 때의 표지로 삼고, 아울러 서로 헤어지는 정표로 삼는다.
쉽게 읽기건염 원년에 그가 동남쪽으로 떠나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다시 써 주고 발문도 붙인다. 훗날 다시 만날 때의 표시로 삼으려는 것이다. 또 서로 헤어지는 정표로도 삼는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爲他日再會之識。且以相分'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의 경미한 과의역. 책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짐'류의 옮김은 識(표지·기념물)과 以(정표로 삼음)의 함의를 탈락시켰다. '다시 만날 때의 표지로 삼고 아울러 이별하는 정표로 삼는다'가 축자에 충실하다.
21.4
번역도인(道人)의 본분으로 서로 아는 사이라면, 천만 리 밖에 있어도 털끝만큼도 막힘이 없다. 그래도 옛사람은 흔히 이렇게 헤어지는 때에 바른 명령(正令)을 행했다.
쉽게 읽기도 닦는 이들은 서로 마음을 알아준다. 그런 사이라면 천만 리 밖에 떨어져 있어도 털끝만큼도 가로막힘이 없다. 그렇지만 옛 스승들은 이렇게 헤어지는 때에 흔히 정령을 폈다. 이는 종문의 곧고 바른 법령이다.
풀이 3
正令 정령이별의 때에 '行正令'했다 하고 곧이어 趙州가 떠나는 승에게 한 '有佛處不得住,無佛處急走過'(『景德傳燈錄』 권27)와 石室의 '莫一向去'(같은 책 권14), 洞山의 '萬里無寸草'(같은 책 권15) 등을 든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雖道人本分相知千萬里外不隔毫末'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相知를 '서로 알아주는 사이(친지)'로 보아 주어를 수식하는 독법과, '서로 안다'는 주동사로 보아 '천만 리 밖에서도 털끝만큼 막히지 않음을 서로 안다'(책)로 읽는 독법이 있다. '本分相知'를 연속으로 끊느냐 '本分' 뒤에서 절단하느냐에 따라 두 독법이 각각 성립하며, 저본 구두를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으로 유지한다.
21.5
한문趙州云:有佛處不得住,無佛處急走過。
번역조주(趙州)는 말했다. “부처 있는 곳에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은 서둘러 지나가라.”
石室云:莫一向去,已後卻來我邊。
석실(石室)은 말했다. “줄곧 가 버리지만 말고, 뒷날 도리어 내 곁으로 오라.”
洞山萬里無寸草,大慈帶取老僧去。歸宗時寒,途中善爲曹山去,亦不變異。
동산(洞山)은 “만 리에 풀 한 치 없다”고 했다. 대자(大慈)는 “노승을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귀종(歸宗)은 “날이 차니, 가는 길에 몸 잘 돌보라”고 했다. 조산(曹山)은 “가도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悟本飛猿嶺峻好看,皆直截不覆藏,
오본(悟本)은 “비원령(飛猿嶺)이 험하니 잘 살펴 가라”고 했다. 모두 곧바로 끊어 보였고, 덮어 감추지 않았다.
쉽게 읽기조주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은 급히 달려 지나가라.” 석실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곧장 가 버리기만 하지 말고, 뒷날 도리어 내 곁으로 돌아오라.” 동산 스님은 “만 리 길에 한 치의 풀도 없다”고 하였다. 대자 스님은 “이 노승을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귀종 스님은 “날이 추우니 도중에 몸을 잘 보전하라”고 하였다. 조산 스님은 “가도 변함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오본, 곧 동산 양개는 “비원령이 험하니 잘 살펴 가라”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곧바로 끊어 보여, 아무것도 덮어 감추지 않았다.
풀이 8
趙州從諗 조주종심'有佛處不得住,無佛處急走過'는 하직하는 승에게 준 말로 『景德傳燈錄』 권27에 '僧辭趙州和尚'으로 실렸다. 작별 때 正令을 행한 옛사람들의 예 가운데 첫째로 들었다.
洞山良价 동산양개洞山의 示衆 '秋初夏末 兄弟或東或西 直須向萬里無寸草處去'를 줄인 것. 石霜의 '出門便是草'와 짝을 이루어 『景德傳燈錄』 권15 石霜慶諸章(T51n2076_p0321a18)과 『從容錄』 권5(T48n2004_p0270a01)에 실렸다. 여기서는 옛사람의 송별어로 든다.
洞山동산(洞山) '만리무촌초처거(萬里無寸草處去)'와 석상(石霜) '출문편시초(出門便是草)'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동산장(洞山章) 및 송고(頌古) 전통(종용록(從容錄)류)에 실린 통행 공안으로, 본문 이별어의 출전을 확정하는 근거이다.
有佛處不得住·無佛處急走過 유불처부득주·무불처급주과조주(趙州) '유불처불득주(有佛處不得住),무불처급주과(無佛處急走過)'는 조주록(趙州錄)의 대표 상당어로 통행 등록(燈錄)·어록에 널리 인용되며, 본문 첫 인용의 전거이다.
洞山良价 동산양개본문 '하처불봉거(何處不逢渠)'는 동산양개(洞山良价) 과수오도게(過水悟道偈) '처처득봉거(處處得逢渠),거금정시아(渠今正是我),아금불시거(我今不是渠)'(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반향으로, '거(渠)=본래면목' 해석을 확정하는 근거이다.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원문'曹山去亦不變異' — ‘이 역주의 번역을 고침’ 이 말은 조산이 동산(悟本)을 하직하며 '변하지 않는 곳에 어찌 감이 있느냐'는 물음에 스스로 한 대답이다(심요 示月禪人 '山云:去亦不變異。悟本領之' X69n1357 p0487b12 · 示超然居士 p0478c10 · 원오어록 T47n1997 p0761a09 '曹山和尚辭洞山'). 그러므로 不變異는 서술로 읽어 '가도 변함이 없습니다'가 옳다. 자체역은 권계('떠나가더라도 변하지 말라')로 읽었으나 법문 말투 원고에서 고쳤다 — 서술로 읽은 책 '가도 달라질 것 없다'가 옳았다. 亦/也 이문은 뜻에 무관하다.
21.6
한문唯務百川。明宗當陽領略,則南州北縣何處不逢?渠
번역오직 온갖 냇물이 바다로 모이듯 종지(宗旨)를 밝혀, 드러난 그 자리에서(當陽) 알아차리기를 힘쓸 뿐이다. 그러면 남쪽 고을 북쪽 고을 어디선들 그(渠)를 만나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온갖 냇물이 바다로 돌아가듯 하나의 종지로 밝힐 뿐이다. 환히 드러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차리기를 힘쓴다. 그렇게만 하면 남쪽 고을이든 북쪽 고을이든 어디에서든 그것을 만난다. 그것은 바로 자기 본래면목이다. 그러니 어느 곳에선들 만나지 못하겠는가.
풀이 4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何處不逢(渠)'는 洞山良价의 過水偈 '我今獨自往,處處得逢渠,渠今正是我,我今不是渠'(『景德傳燈錄』 권15 洞山章)를 떠올리게 하여, '渠'를 본래면목으로 읽는 근거가 된다(추정, 병렬용례).
渠 거'南州北縣何處不逢渠'는 洞山 過水偈 '處處得逢渠'와 같은 뜻. 원오는 『圜悟語錄』 권18에서도 '何處不逢渠'를 한 구로 쓴다. 다만 CBETA 구두는 '何處不逢?渠末後慇懃'으로 끊는다.
교감 · 何處不逢渠구두 '何處不逢?渠末後慇懃' — 이 역주는 '何處不逢渠'로 이어 읽었다(渠 = 본래면목;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8 T47n1997_p0797c22 '何處不逢渠'). 저본 구두대로면 '그(一書記)가 끝에 간곡하니 한 번 더 집어 보이지 않을 수 없다'가 된다.
21.7
한문末後慇懃,未免重拈一遍。且作麼生是諦當處?
번역끝으로 간곡한 마음에, 한 번 더 집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자, 어떤 것이 딱 들어맞는 그 자리(諦當處)인가?
쉽게 읽기맨 끝으로 한마디 더 보탠다. 나는 간곡한 마음으로 이것을 한 번 더 집어 보인다. 자, 어떤 것이 바로 딱 들어맞는 그 자리인가?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諦當處'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諦當을 '딱 들어맞음(정확한 요체)'으로 보아 '딱 들어맞는 그 자리'로 읽음이 선어 諦當의 관용상 우세하나, 諦를 '진실로'로 풀어 '진실한 곳'(책)으로 읽는 것도 오라 단정할 수 없다.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으로 유지하되 현재 번역이 관용에 더 부합한다.
21.8
한문楖𣗖撗擔不顧人,直入千峰萬峰去。
번역주장자(楖栗)를 비껴 메고 사람은 돌아보지 않은 채, 곧장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0
  1. 政和末 정화말

    북송 휘종(徽宗) 연호 정화(政和)(1111~1118)의 말년으로, 약 1117~1118년이다.

  2. 應詔 응조

    황제(휘종)의 부름에 응함이다. 원오가 대량으로 나아간 계기이다.

  3. 建炎元祀 건염원사

    남송 고종(高宗) 건염(建炎) 원년(1127)이다. 사(祀)는 연(年)의 고어이다. 정강(靖康)의 변 직후 조정과 승속이 동남(東南)으로 피난하던 해로 '장지동남(將之東南)'과 부합한다.

  4. 正令 정령

    본분(本分)의 바른 명령이라는 뜻이다. 선사가 말이나 이치로 달래지 않고 근본을 곧바로 들이밀어 알음알이를 끊는 엄한 가르침이다. ‘정령당행(正令當行)’이라 흔히 쓴다.

  5. 有佛處不得住·無佛處急走過 유불처부득주·무불처급주과

    '부처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은 급히 지나가라.' 조주종심(趙州從諗)의 말로, 『조주록(趙州錄)』의 대표 상당어이다.

  6. 莫一向去 막일향거

    '곧장 가 버리기만 하지 말고, 뒷날 도리어 내 곁으로 돌아오라(莫一向去,已後卻來我邊)'는 석실(石室)의 떠나보내는 말이다.

  7. 萬里無寸草 만리무촌초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다'는 말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하안거를 마칠 때 대중에게 보인 '만리무촌초처거(萬里無寸草處去)'로, 석상경제(石霜慶諸)의 '출문편시초(出門便是草)'로 이어지는 이름난 공안이다.

  8. 帶取老僧去 대취노승거

    '이 노승을 데리고 가라'는 말이다. 대자환중(大慈寰中)이 떠나는 이에게 준 이별의 말이다.

  9. 時寒途中善爲 시한도중선위

    '날이 추우니 가는 길에 몸을 잘 보살피라'는 말이다. 귀종지상(歸宗智常)이 떠나는 이에게 건넨 정겨운 작별의 말이다.

  10. 曹山辭悟本 조산사오본

    동산이 '어디로 가는가' 묻자 조산이 '불변이처거(不變異處去)', 다시 '변이 없는데 어찌 감이 있는가' 하매 '거역불변이(去亦不變異)'라 답한 송별 문답이다. 《동산어록(洞山語錄)》·《조산어록(曹山語錄)》 및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에 실려 있다.

  11. 洞山良价 동산양개

    당나라 선승(807~869)으로, 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을 이었고 조동종(曹洞宗)을 연 사람으로 받든다. 균주(筠州) 동산에서 크게 가르쳐 동산이라 불린다. 죽은 뒤 오본대사(悟本大師)라는 시호를 받아 오본이라고도 부른다. 조산(曹山)이 그의 제자다. 운문의 제자 동산수초(洞山守初)와는 다른 사람이다.

  12. 飛猿嶺峻好看 비원령준호간

    '비원령(飛猿嶺)이 험하니 잘 살펴 가라'는 말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시호 오본대사(悟本大師))가 한 말이다.

  13. 百川明宗 백천명종

    온갖 냇물이 바다로 돌아가듯 하나의 종지로 귀결시켜 밝힘이다.

  14. 楖栗橫擔不顧人·直入千峰萬峰去 즐률횡담불고인·직입천봉만봉거

    주장자를 비껴 메고 뒤돌아보지 않고 천봉만봉으로 들어감이다. 이별·행각을 노래한 선문의 상투 게구이다.

  15.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16.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17. 曹山本寂 조산본적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 조산에 머물렀다. 스승 동산과 함께 조동종(曹洞宗)의 조사로 받든다. 동산을 떠날 때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

  18. 當陽 당양

    해를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라는 뜻이다. 숨김없이 환히 드러난 바로 그 자리를 이르며, '당양하여 떠맡는다'처럼 그 자리에서 곧바로라는 뜻으로 쓴다.

  19. 一書記 일서기

    원오 문하에서 서기(書記) 소임을 맡았던 승려이다. 서기는 선원의 글과 편지를 맡는 자리이다. 법명 가운데 한 글자를 따 '일 서기'라 불렸다. 뒤에 명주(明州) 설두산의 주지로 갔다.

  20. 渠 거

    '그'를 가리키는 옛 입말이다. 선어록에서는 자기의 참모습, 곧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남처럼 '그'라 부르기도 한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물을 건너다 깨치고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고 읊은 것이 대표적이다.

  21. 瑯邪 낭사

    저주(滁州)(안휘)의 낭사산(瑯邪山)·낭사사(瑯邪寺)이다. 임제종 낭사혜각(瑯邪慧覺)으로 유명한 도량이며, 원오가 정화 말에 이곳에 이르렀다.

  22. 大梁 대량

    개봉(開封)(변경(汴京), 동경(東京))으로 북송의 수도이다. 원오가 휘종(徽宗)의 조서에 응해 상경하여 천녕만수사(天寧萬壽寺) 등에 주석하며 불과선사(佛果禪師) 호를 받던 시기이다.

  23. 飛猿嶺 비원령

    험준한 산고개(지명)이다. 이별 노정의 난관을 상징한다.

  24. 領略 영략

    곧바로 알아차림(領會)이다.

  25. 諦當處 제당처

    딱 들어맞는 바로 그 자리, 정확한 요체의 처소이다.

  26. 楖栗 즐률

    즐률(楖栗)나무 지팡이로, 선승의 주장자 통칭이다.

  27. 歸宗智常 귀종지상

    당나라 선승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을 이었다. 강서 여산(廬山)의 귀종사(歸宗寺)에 머물러 '귀종'이라 불린다. 선문에서는 그가 돌을 끈 일(歸宗拽石)을 덕산의 몽둥이, 임제의 고함과 함께 선사들의 이름난 가르침 솜씨로 꼽는다.

  28. 石室 석실

    당나라 선사 석실이다. 담주(潭州) 석실선도(石室善道)로 추정되며 석두(石頭) 계통이다. 행적은 확실하지 않다.

  29. 楖栗橫擔不顧人 즐률횡담불고인

    주장자를 비껴 메고 뒤돌아보지 않고 천봉만봉으로 들어감이다. 이별·행각을 노래한 선문의 상투 게구이다.

  30. 大慈寰中 대자환중

    780~862. 백장(百丈) 문하의 선승이다.

문단 8국역본 대조 5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