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55편

심도자(心道者)에게 주는 글

示心道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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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한문有祖以來,直指此一段大因緣,政爲透脫生死。
번역조사(祖師)께서 오신 뒤로, 이 한 가닥 큰 인연(一段大因緣)을 곧바로 가리켜 보이셨다. 바로 생사(生死)를 꿰뚫어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須是上根利智,超言詮,出情域,不以世緣、彼我、高低、強弱、衰榮爲意,徑於自己根腳下,了悟取本來清淨、寂照虗凝、輝騰今古、迥絕知見底本分事,
반드시 높은 근기에 날카로운 지혜(上根利智)라야 한다. 말과 설명(言詮)을 뛰어넘고 망정의 테두리를 벗어나, 세간의 인연, 너와 나, 높고 낮음, 강하고 약함, 쇠하고 성함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곧장 제 발밑에서 본분의 일(本分事)을 깨달아 얻는다. 그것은 본래 맑고 깨끗하며, 고요히 비추고 텅 비어 엉기며, 예와 지금에 빛나고, 알음알이(知見)를 아득히 끊었다.
便翛然獨立,萬象不能藏覆,千聖無以擬倫。
그러면 곧 훌쩍 홀로 우뚝 선다. 삼라만상(萬象)도 그를 감추거나 덮지 못하고, 일천 성인(千聖)도 견줄 수 없다.
等閑蕩蕩地,一物不思,一物不爲,自然無欲無依,超諸三昧,更說甚建立門戶、差別作爲?
예사로이 툭 트여, 한 물건도 생각하지 않고 한 물건도 짓지 않는다. 저절로 바람도 없고 기댐도 없어, 온갖 삼매(三昧)를 뛰어넘는다. 다시 무슨 문호(門戶)를 세우고 차별을 짓는 일을 말하겠는가.
直下坐斷壁,立千仞,凡亦不拘,聖亦不管,方是了事衲僧。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앉은 채 끊어 버리고, 천 길 벽처럼 우뚝 선다. 범부에도 걸리지 않고 성인에도 매이지 않는다. 그래야 일을 마친 납승(了事衲僧)이다.
身心如枯木杇株、寒灰死火,乃真休歇也。
몸과 마음이 마른 나무와 썩은 그루터기 같고, 식은 재와 꺼진 불 같아야, 비로소 참된 쉼(休歇)이다.
所以從上來,只貴忘懷獨得。既得之後,不立我見,不自貢高,任運縱橫,如癡似兀,始稱無爲無事道人。
그래서 예로부터 오직 생각을 잊고 홀로 얻는 것(忘懷獨得)을 귀하게 여겼다. 얻은 뒤에는 ‘나’라는 견해(我見)를 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는다. 되어 가는 대로 맡겨 종횡으로 거침없되, 어리석은 듯 멍한 듯하다. 그래야 비로소 함이 없고 일이 없는 도인(無爲無事道人)이라 한다.
行履設使三五十年,亦不變,亦不異,至於千生萬劫,亦只如如,所謂長久最難得人也。
그 걸음걸이(行履)가 설령 삼십 년 오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다. 천 생 만 겁(千生萬劫)에 이르러도 그저 한결같을(如如) 뿐이다. 이른바 오래 가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
若一往恁麼信得及,透得徹,不憂不能度世,跳煩惱生死坑。
만약 단번에 이렇게 믿어 들고 사무쳐 꿰뚫으면, 세상을 건너 번뇌와 생사의 구덩이를 뛰어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는다.
唯在當人諸根猛利,超毗盧,越祖代,亦不爲難。此真大解脫門也。
오직 그 사람의 모든 근기가 날카롭고 매서운 데 달렸다. 비로자나(毗盧)를 뛰어넘고 역대 조사를 넘어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것이 참된 큰 해탈의 문(大解脫門)이다.
쉽게 읽기조사가 세상에 온 뒤로, 오직 이 한 가닥 큰 인연 하나만을 곧바로 가리켜 보였다. 오직 나고 죽음을 꿰뚫고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일은 그릇이 크고 지혜가 날카로운 사람이라야 된다. 그런 사람은 말과 설명을 뛰어넘고, 이러니저러니 따지는 마음의 자리를 벗어난다. 세상 인연도, 너와 나도, 높고 낮음도, 강하고 약함도, 잘되고 못되는 것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저 제 발밑에서 본분의 일을 깨달아 가진다. 그 자리는 본디 맑아 고요히 비추고, 텅 빈 채 엉겨 있고, 옛날과 지금을 꿰뚫어 빛나며, 알음알이마저 뚝 끊어진 자리이다. 이 자리에 서면 홀로 우뚝 선다. 삼라만상도 그를 감추거나 덮지 못하고, 일천 성인도 그와 견주지 못한다. 텅 비고 넓은 그 자리에서는 한 가지도 생각하지 않고 한 가지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절로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댈 것도 없어, 온갖 삼매를 다 뛰어넘는다. 그런데 다시 무슨 문을 세우고 이것저것 갈라 지어내는 일을 말하겠는가. 그 자리에 앉은 채 딱 끊어 버리고 천 길 벽처럼 우뚝 서면, 여느 사람에게도 걸리지 않고 성인에게도 매이지 않는다. 그제야 할 일을 다 마친 스님이라 부른다. 몸과 마음이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 같고, 식은 재와 꺼진 불 같아야, 이것이 참된 쉼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마음속 생각을 잊고 홀로 얻는 것만을 값지게 여겼다. 이미 얻은 뒤에는 나라는 생각을 세우지 않고,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는다. 인연에 맡겨 마음대로 노닐되 어리석은 듯 무딘 듯하다. 이런 사람을 비로소 함도 없고 일도 없는 도인이라 부른다. 서른 해 쉰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으며, 천 생 만 겁이 지나도 오직 한결같다. 이렇게 오래도록 한결같기가 가장 어려우니, 그런 사람은 참 드물다. 단번에 이렇게 믿음이 사무치고 속속들이 꿰뚫으면, 세상을 건너 번뇌와 생사의 구덩이를 뛰어넘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 없다. 오직 그 사람의 그릇이 얼마나 날카롭고 매서운가에 달렸을 뿐이다. 그러면 비로자나불을 뛰어넘고 조사의 계보를 넘어서기도 어렵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큰 해탈의 문이다.
풀이 8
了事衲僧 요사납승'凡亦不拘 聖亦不管 方是了事衲僧'은 같은 문단 뒤의 '如癡似兀 始稱無爲無事道人'과 짝을 이룬다.
毗盧 비로'超毗盧,越祖代'는 '超佛越祖'(『景德傳燈錄』 권17·19)와 같은 짜임으로, 法身佛과 祖師의 자리에도 머물지 않음을 말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翛然獨立
翛然은 소요·유연·거침없는 자재의 모양이다. 책 '홀연히'는 忽然(문득)으로 읽은 경미한 오역 소지가 있고, 내 '훌쩍(홀로 우뚝)'이 翛然의 결에 더 부합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諸根猛利
諸根을 '근기'(자체역)와 '6근'(책)으로 모두 옮길 수 있다. 諸根猛利는 관용상 信進念定慧 五根을 포함한 근기의 예리함을 뜻하므로 근기 쪽이 무난하나, 諸根이 六根(감각기관)을 가리키는 불전 용례도 흔하여 책의 독해 또한 성립한다. 결정적 전거로 어느 한쪽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양립가능한 이독으로 유지한다.
교감 · 政爲透脫生死'政爲透脫生死'의 '政'은 '正'(바로)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
교감 · 寒灰死火'寒灰死火'의 '灰' — 저본 글자는 CBETA 조자 CB01926 [厂@火](CBETA 정규자 灰)이고 유니코드로는 CJK 호환 한자 U+2F835뿐이다. 데이터에 호환 한자를 쓰지 않으므로 통합 한자 '灰'(U+7070)로 실음(X69n1357 p0471c20). 뜻은 같다.
55.2
한문達磨祖師初來少林九年,面壁冷坐,深雪之中得箇可祖,
번역달마(達磨) 조사께서 처음 소림(少林)에 오시어 아홉 해 동안 벽을 마주하고 차갑게 앉아 계시다가, 깊은 눈 속에서 혜가(可祖)를 얻으셨다.
洎勘證所得,只禮三拜,依位而立,此豈涉許多言詮耶?
얻은 것을 점검해 증명하실 때에 이르러서도, 혜가는 그저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가 섰을 뿐이다. 이것이 어찌 그 많은 말과 설명을 거친 것이겠는가.
要須直下領取,透頂透底,纖芥無違,現成撲不破,萬機莫能到,然後於無住本中流出一切,融通無滯,百千作爲皆我妙用,
반드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차려, 정수리부터 밑바닥까지 사무쳐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어 쳐도 깨지지 않고, 온갖 기틀(萬機)도 이르지 못한다. 그런 뒤에 머무름 없는 근본(無住本)에서 모든 것을 흘려 내어, 두루 통해 막힘이 없다. 백천 가지 하는 일이 모두 나의 묘한 작용(妙用)이다.
處處與人抽釘拔楔,令各安穩去,豈不省要哉?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못을 뽑고 쐐기를 빼 주어(抽釘拔楔), 저마다 편안하게 한다. 어찌 간명하고 요긴하지 않은가.
玄沙一日見人𢱲屍過,指而示眾:四箇死漢𢱲一箇活漢,
현사(玄沙)께서 하루는 사람들이 주검을 메고 지나가는 것을 보시고, 가리켜 대중에게 보이며 말씀하셨다. “죽은 놈 넷이 산 놈 하나를 메고 가는구나.”
若隨情見,卻是玄沙自相顛倒。若以向上正眼離見超情,乃知玄沙爲人極是親切,是故透脫須出他陰界。
망정과 견해(情見)를 따라 보면, 도리어 현사가 스스로 뒤바뀐 것이다. 향상(向上)의 바른 눈으로 견해를 여의고 망정을 뛰어넘어 보면, 현사께서 사람을 위하심이 더없이 간절한 줄 안다. 그러므로 꿰뚫어 벗어나려면 반드시 저 오음의 경계(陰界)를 벗어나야 한다.
不見古德道:白雲淡泞,水注滄溟,萬法本閑,而人自閙。
보지 못했는가. 옛 큰스님(古德)께서 말씀하셨다. “흰 구름은 맑고 잔잔하고, 물은 큰 바다로 흘러든다. 만법(萬法)은 본래 한가한데, 사람이 스스로 시끄럽다.”
果是真實諦當,聊聞舉著,便知落處,可以透脫生死,不在陰界中窒礙,如鳥出籠,自由自在。
과연 참되고 딱 맞는 사람이라면, 잠깐 들어 보이는 것을 듣기만 해도 곧 떨어지는 곳(落處)을 안다. 생사를 꿰뚫어 벗어나, 오음의 경계 속에서 막히지 않는다. 마치 새가 새장을 벗어난 듯 자유자재하다.
自餘一切機用言句,只一截便休,更不落第二見也。
그 밖의 온갖 기용(機用)과 언구(言句)도 다만 한칼에 끊고 그만두어, 다시는 두 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쉽게 읽기달마 조사가 처음 소림사에 왔다. 아홉 해 동안 벽을 마주하고 깊은 눈 속에 차갑게 앉아 있다가 저 혜가를 얻었다. 그 얻은 것을 따져 밝힐 때에도, 혜가는 그저 세 번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섰을 뿐이다. 이것이 어찌 그 많은 말과 설명에 매인 일이겠는가. 모름지기 곧바로 알아차려,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속속들이 사무쳐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쳐도 깨지지 않고, 온갖 재주로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그런 뒤에야 머무름 없는 근본에서 온갖 것이 흘러나와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으니, 백천 가지 하는 일이 모두 나의 오묘한 쓰임이 된다. 곳곳에서 사람마다 못을 뽑고 쐐기를 빼내어 얽힌 매듭을 풀어 저마다 편안하게 해 준다. 어찌 간단하고 요긴하지 않겠는가. 현사가 하루는 사람들이 주검을 메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켜 대중에게 보이며 말했다. “네 명의 죽은 놈이 한 명의 산 놈을 메고 가는구나.” 이 말을 이러니저러니 따지는 눈으로 보면, 도리어 현사 자신이 거꾸로 된 소리를 한 셈이 된다. 그러나 향상의 바른 눈으로 온갖 견해를 여의고 따지는 마음을 뛰어넘어 보면, 현사가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더없이 간절함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꿰뚫어 벗어나려면 반드시 저 오음의 세계, 곧 몸과 마음의 얽힘을 벗어나야 한다. 옛 큰스님의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흰 구름은 맑고 잔잔하고 / 물은 큰 바다로 흘러들며 / 온갖 것은 본디 한가한데 / 사람만 스스로 시끄러울 뿐이다.” 과연 참되고 딱 맞는 사람이라면, 잠깐 들어 보이기만 해도 곧 그 돌아갈 자리를 안다. 그런 사람은 나고 죽음을 꿰뚫어 벗어나 오음의 세계 속에서도 막히지 않으니, 마치 새가 새장을 벗어나듯 마음대로 자유롭다. 이 밖의 온갖 솜씨와 말도 다만 단칼에 끊어 버리고 그만두어, 다시는 두 번째 견해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풀이 2
玄沙師備 현사사비'四箇死漢舁一箇活漢'은 玄沙의 示衆으로 인용되나, 『景德傳燈錄』·『五燈會元』·『玄沙師備禪師廣錄』에서는 이 말을 찾지 못하였다(출전 미확인).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白雲淡泞
淡泞을 '맑고 잔잔'(자체역)과 '담담히 떠가고'(책)로 모두 읽을 수 있다. 泞은 濘의 이체자로 저본 이문은 교감으로 처리하며, 흰 구름의 담박한 모습을 형용하는 어구로서 두 독법이 모두 성립하는 양립이독이므로 유지한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5
  1. 壁立萬仞 벽립만인

    만 길 낭떠러지처럼 우뚝 서 있다는 말이다. 알음알이나 말로는 붙을 데가 없는 깨침의 자리, 또는 그런 엄한 가르침을 이른다. 원오의 『벽암록』에도 자주 나온다.

  2. 了事衲僧 요사납승

    일을 마친 납승(衲僧)이다. 나고 죽는 큰일을 다 마쳐 더 구할 것이 없는 선승을 이른다. 납승은 누더기 옷을 입은 선승이다.

  3. 枯木朽株寒灰死火 고목후주한회사화

    사량분별이 끊긴 대휴헐(大休歇)의 비유이다. 다만 침공체적의 사선(死禪)이 아니라 '진휴헐(真休歇)'로 규정되니, 뒤의 무주본(無住本) 유출과 짝한다.

  4. 毗盧 비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줄인 말이다. 온 누리에 빛을 비추는 부처로, 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나타낸다. 선어록에서는 '비로자나를 넘어선다'처럼 부처의 경지에도 머물지 말라는 뜻으로 쓴다.

  5.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6. 少林 소림

    숭산(嵩山)에 있는 절 소림사(少林寺)다. 달마가 이 절에 머물며 날마다 벽을 마주하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로 이름나, 선종이 비롯된 곳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7. 達磨少林面壁九年 달마소림면벽구년

    보리달마(菩提達磨)(Bodhidharma)가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面壁)(벽을 마주하고 좌선)한 고사이다. 선문(禪門) 좌선 정진의 대표 전고이다.

  8. 二祖慧可 이조혜가

    중국 선종의 둘째 조사(487~593)로, 달마(達磨)의 법을 이었다. 처음 이름은 신광(神光)이다.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어 법을 구했다는 '입설단비(立雪斷臂)'와, 달마에게 마음을 편안케 해 달라고 하자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하여 깨친 '안심(安心)' 문답이 전한다. 그 법은 삼조 승찬(僧璨)에게 이어졌다.

  9. 三拜依位 삼배의위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섬. 달마(達磨)가 제자들에게 얻은 바를 말하게 하여, 도부(道副)·이총지(尼總持)·도육(道育)에게는 각각 살갗(皮)·살(肉)·뼈(骨)를 얻었다 하고, 혜가(慧可)가 절을 올린 뒤 제자리에 서자 '그대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汝得吾髓)'라고 하였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3 보리달마장(菩提達磨章)에 실렸다.

  10. 玄沙舁屍 현사여시

    현사사비(玄沙師備)가 사람들이 주검을 메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중에게 '네 명의 죽은 놈이 한 명의 산 놈을 메고 간다(사개사한여일개활한, 四箇死漢舁一箇活漢)'고 보인 공안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7 현사사비장(玄沙師備章)과 『현사사비선사광록(玄沙師備禪師廣錄)』에 나온다.

  11. 四箇死漢舁一箇活漢 사개사한여일개활한

    현사(玄沙)가 시신 메기를 보고 한 공안이다. 오음신(五陰身)을 '사한(死漢)', 향상정안으로 견정을 여읜 이를 '활한(活漢)'으로 가리킨다. 정견으로 보면 도리어 현사(玄沙)가 전도되어 보인다.

  12. 玄沙師備 현사사비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복주(福州) 사람이다. 젊어서 고기잡이를 하다 서른에 출가했고, 고행을 엄하게 지켜 '비두타(備頭陀)'라 불렸다.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그 계통에서 법안종이 나왔다.

  13. 向上 향상

    위로 향한다는 말로, 부처와 조사의 자리마저 넘어선 그 위의 궁극을 이른다. 말과 단계가 끊어진 자리라 '향상일로'라고도 한다. 방편으로 내려오는 향하(向下)와 짝을 이룬다.

  14. 向上正眼 향상정안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정법안(正法眼)이다. 견을 여의고 정을 초월한 눈이다.

  15. 白雲淡泞·而人自鬧 백운담녕·이인자뇨

    '불견고덕도(不見古德道)'로 인용된 고덕(古德)의 게송이다. '만법은 본래 한가한데 사람이 스스로 시끄럽다'는 뜻이다. 특정 출전 미상의 고덕(古德) 말로 처리한다.

  16. 陰界 음계

    오음(五陰)과 십팔계(十八界)를 줄인 말로, 몸과 마음과 그 모든 경계를 뜻한다. 선에서는 여기에 갇힘을 '음계에 떨어진다', 벗어남을 '음계를 나온다'고 한다.

  17. 本分事 본분사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근본의 일, 곧 제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또 스승이 방편을 빌리지 않고 바로 그 근본으로 학인을 이끄는 본연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18. 一段大因緣 일단대인연

    '한 가닥 큰 인연'이니, 부처와 조사가 세상에 나온 단 하나의 큰일을 이른다.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 제 성품을 깨치는 일이다.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19. 達磨得髓 달마득수

    달마가 제자를 시험하여 혜가(慧可)가 절하고 물러서자 '득오수(得吾髓)'라 한 것이다(皮肉骨髓).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卷)3에 실린다.

  20. 師承法脈 사승법맥

    스승에게서 법을 이어받음, 또는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법의 계보이다. 원오 극근(1063~1135)은 임제종 양기파로, 스승은 오조 법연, 그 스승은 백운 수단, 다시 그 스승은 양기 방회이다.

  21. 忘懷獨得 망회독득

    회포(생각)를 잊고 홀로 증득함이다. '불립아견(不立我見)·불자공고(不自貢高)'과 이어지는 보임행리이다.

  22. 無爲無事道人 무위무사도인

    임제계(臨濟系)의 '무사인(無事人)'이다. 짓고 세움 없는 도인의 살림살이(행리)이다.

  23. 無住本 무주본

    유마경(維摩經) 관중생품(觀衆生品) '종무주본립일체법(從無住本立一切法)'의 무주본(無住本)이다. 머묾 없는 근본에서 일체(一切)가 유출되어 묘용이 된다.

  24. 抽釘拔楔 추정발설

    못을 뽑고 쐐기를 빼 준다는 말이다. 스승이 학인의 집착과 막힘을 풀어 주는 수단을 이르며, 흔히 해점거박(解黏去縛)과 짝지어 쓴다. 『임제록(臨濟錄)』 '여인추정발설(與人抽釘拔楔)'에서 나와 원오(圜悟)의 『벽암록(碧巖錄)』 수시(垂示)·평창(評唱)에 자주 쓰인다.

  25. 白雲淡泞 백운담녕

    '不見古德道'로 인용된 古德의 게송이다. '만법은 본래 한가한데 사람이 스스로 시끄럽다'는 뜻이다. 특정 출전 미상의 古德 말로 처리한다.

문단 2국역본 대조 3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