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62편

원장선인(元長禪人)에게 주는 글

示元長禪人

이 편의 풀이 2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대주혜해장(大珠慧海章)—원률사(源律師) 문답 '기래끽반(飢來喫飯),곤래즉면(困來卽眠)'이다. 본문 '飢來喫飰困來打眠'의 전거다.
景德傳燈錄《景德傳燈錄》 권6 大珠慧海章—源律師 문답 '飢來喫飯,困來卽眠'이다. 본문 '飢來喫飰困來打眠'의 전거다.
62.1
한문佛語心爲宗,達磨傳此者矣。而馬師爲虵𦘕足,慈悲落草,乃云:諸人欲識佛語心麼?已是漏逗了也。
번역부처님 말씀은 마음을 종지(宗旨)로 삼는다. 달마(達磨)께서 전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마조(馬祖) 대사께서는 뱀을 그리고 발을 덧붙이셨다. 자비로 풀숲에 내려와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을 알고 싶은가?” 이 말부터가 벌써 허물이 새어 나온 것이다.
更言:只如今語便是佛語,此語出於自心便是佛心。若舉揚正宗,作如是話會,如何出得作家八十四人邪?
게다가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하는 말이 곧 부처님 말씀이다. 이 말이 제 마음에서 나오니, 곧 부처님 마음이다.” 바른 종지를 드날리면서 이렇게 알음알이로 헤아렸다면, 어떻게 작가(作家) 여든네 사람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是故從上來行正令底視之,如將惡水澆潑人,成甚模㨾?應知這老子太煞屈曲,事不獲已。
그러므로 예로부터 바른 명령(正令)을 행하는 이가 보면, 이는 더러운 물을 사람에게 끼얹는 것과 같다. 무슨 꼴이 되겠는가. 알아야 한다. 이 노인네가 몹시 에둘러 굽이지신 것은 어쩔 수 없어서였다.
쉽게 읽기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달마께서 바로 이것을 전하셨다. 그런데 마조도일 대사께서는 여기에 군더더기를 붙이셨다. 뱀을 그리면서 발까지 덧붙이는 것과 같았다. 자비로 풀숲까지 몸을 낮추어 내려오시어 이렇게 물으셨다. '여러분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을 알고 싶은가?' 이 물음부터가 벌써 허물이 새어 나온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 말이 제 마음에서 나오니 곧 부처님의 마음이다.' 바른 가르침을 드날린다면서 이렇게 알음알이로 따졌다면, 어떻게 작가 여든네 사람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예로부터 바른 명령을 곧게 행하는 이의 눈으로 보면, 이는 더러운 물을 남에게 끼얹는 꼴이다. 이래서야 무슨 모양이 되겠는가? 다만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이 마조 노인네께서 이토록 빙 둘러 굽이도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풀이 8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원오가 든 마조의 풀이('只如今語便是佛語')와 취지가 같은 馬祖 법어 '佛語心者,即心即佛,今語即是心語'가 『宗鏡錄』 권1에 실렸다. 원오는 이를 '爲虵畫足'·'漏逗'라 하여 뒤집는다.
菩提達磨 보리달마馬祖 示衆이 達磨가 '楞伽經文을 끌어 衆生의 心地를 印證했다' 하며 '佛語心為宗,無門為法門'을 들었다(『景德傳燈錄』 권6).
馬祖道一 마조도일'馬大師出八十四人善知識'은 黃檗 上堂 등에 보이는 상투구다(『五燈會元』 권3·『景德傳燈錄』 권14). 『景德傳燈錄』 권6은 入室弟子를 139인이라 한다.
蛇畫足 사화족마조가 방편의 말을 덧붙였음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62.2
한문然今學者尚看他底不破,只管落語言執解會,認光影做窠窟,好不性僺也。
번역그런데 요즘 배우는 이들은 아직도 그분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저 말에 떨어지고 알음알이를 붙들며, 빛과 그림자를 소굴로 삼는다. 참으로 날래지 못하다.
可中有箇生鐵鑄就,手裏握得頑石粉碎,眼目定動,擬議不來,一綽便透,更說甚佛語心如之?
만약 무쇠를 부어 만든 듯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손에 쥔 굳은 돌을 가루로 부수고, 눈매가 흔들림 없어, 헤아려 따질 겨를도 없이 단번에 낚아채 꿰뚫는다. 그런 사람에게 다시 무슨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니,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이 있겠는가.
쉽게 읽기그런데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그분의 참뜻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저 말에 걸려 알음알이에 매달린다. 눈앞의 빛과 그림자를 붙들어 소굴로 삼는다. 참으로 날래지 못하다. 그런데 만약 무쇠를 부어 만든 듯 굳센 이가 있다고 하자. 그는 손에 쥔 단단한 돌을 가루가 되도록 부순다. 눈매가 흔들림 없이 확고하여 곧장 꿰뚫어 본다. 이리저리 따지려는 마음이 일지 않는다. 단번에 낚아채 곧바로 꿰뚫어 버린다. 이런 사람에게 다시 무슨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니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이 있겠는가?
풀이 2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認光影做窠窟
책 오역. '認X做Y'(X를 Y로 여기다)라는 백화 구문을 책이 '認光影'(그림자 오인)과 '做窠窟'(격식 만듦) 둘로 끊고 窠窟(집착의 소굴)을 '격식'으로 옮겼다. '광영을 소굴로 삼음'으로 옮긴 내 번역이 구문상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眼目定動'.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 定을 취해 '눈매가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나)로 읽든, 動을 취해 '눈을 굴리는 그 찰나'(책)로 읽든, 뒤 구절 擬議不來·一綽便透와 문맥이 모두 통한다. 곧 不動의 定力으로 보아도, 눈이 움직이는 즉각의 應機로 보아도 성립하므로 결정적 전거가 없다.
62.3
한문若彼直饒千佛萬祖躬親動地放光,如雲如雨,行棒行喝,雷奔電激,不消箇熱,不釆等閑,
번역설령 천 부처 만 조사가 몸소 땅을 흔들고 빛을 놓아 구름처럼 비처럼 쏟아진다 해도, 방망이를 휘두르고 할(喝)을 하여 우레가 내닫고 번개가 치듯 한다 해도, 그는 조금도 달아오르지 않는다. 예사로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凡不收,聖不管,更喚甚作生死菩提、涅槃煩惱?
범부도 그를 거두지 못하고, 성인도 그를 다스리지 못한다. 다시 무엇을 생사니 보리(菩提)니 열반(涅槃)이니 번뇌니 부르겠는가.
不如飢來喫飰,困來打眠,此乃稍稍類他家種草也。
차라리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잠자는 것만 못하다. 이것이 그나마 조금은 그 집안의 씨앗(種草)을 닮았다.
所以地藏道:你南方佛法浩浩地,爭如我種田,愽飰喫十成。
그래서 지장(地藏)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남방 불법이 드넓고 성대하다 한들, 내가 밭 갈아 밥 지어 배불리 온전하게 먹는 것만 하겠는가.”
쉽게 읽기그런 사람은 설령 천 부처 만 조사가 나서더라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분들이 몸소 땅을 뒤흔들고 광명을 쏟아 낸다. 그 빛이 구름처럼 비처럼 퍼붓는다. 방망이를 휘두르고 고함을 질러 우레가 내닫고 번개가 치듯 한다. 그래도 그는 조금도 달아오르지 않는다. 예사로이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범부도 그를 거두지 못하고 성인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그러니 다시 무엇을 생사니 보리니 열반이니 번뇌니 하고 부르겠는가? 그런 높은 경지조차 차라리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잠자는 것만 못하다. 도리어 이 편이 그나마 그 집안의 종자에 조금은 가깝다. 그래서 지장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남방 불법이 드넓고 성대하다지만, 내가 밭 갈아 밥 지어 배불리 온전하게 먹는 것만 하겠는가?'
풀이 3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不消箇熱,不釆等閑
책 과의역·누락. 책은 '그 열을 받을 필요 없다'로 압축하고 '不釆(采)等閑'(예사로 여겨 거들떠보지 않음)을 옮기지 않은 채 원문에 없는 '무심하여'를 보태었다. 두 구절('열에 데지 않음'과 '예사로 거들떠보지 않음')을 온전히 반영한 내 번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愽飰喫十成'.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 '愽'의 자형이 博(배불리·얻어)과 摶(주먹밥) 사이에 걸쳐 있어, '밭 갈아 배불리 온전히 먹는다'(나)와 '밭 갈아 주먹밥 지어 먹는다'(책)가 모두 성립한다. 摶飯은 禪 구어에서 握飯의 뜻으로 쓰인 예가 있고 博飯은 '얻어먹다'의 상용구이므로, 어느 쪽이든 남방의 浩浩한 불법보다 자급자족의 農禪을 앞세우는 취지가 동일하여 결정적 전거로 한쪽을 물리치기 어렵다. 다만 十成(온전히)을 살린 자체역이 원문 완결성에서 낫다.
교감 · 若彼直饒'若彼直饒' — 저본(X69n1357 p0495c04~05)은 '更說甚佛語心如之?若彼直饒…'로 끊었다. 원오의 같은 글을 실은 『圜悟佛果禪師語錄』(T47n1997 p0787b01)은 '更說甚佛語心,如之若何,直饒千佛萬祖…'이고, '如之若何'(이러쿵저러쿵 따짐)는 심요의 다른 세 곳(p0467c11 · p0490c18 · p0494a22)과 원오어록 여러 곳('不用如之若何')에 쓰는 원오의 말버릇이다. 저본대로면 '如之'가 '무슨 佛語心'에 걸려 말이 되지 않고(옛 번역도 '如之'를 옮기지 못했다), '若彼'와 '直饒'가 가정을 겹친다. → 彼는 何의 잘못으로 보고 '更說甚佛語心,如之若何?直饒…'로 끊어 옮긴다(번역 고침 2026-10-31). 下36 '漸次如之。若彼來今時'도 같은 꼴이나, 같은 글이 원오어록에 없고 저본대로도 읽혀 거기서는 저본대로 둔다.
62.4
한문是以此爲事,徹到無事,如斬一綟絲,一斬一切斬,把斷世界,不漏絲毫,諸見不生,了無滲漏,以長歲月,不動不退,靠之自然成辦。
번역그러므로 이것을 일로 삼아 아무 일 없는 데(無事)까지 사무쳐야 한다. 한 타래의 실을 베듯, 한 번 베면 모두 베어지게 하라. 온 세계를 끊어 잡아 실오라기만큼도 새지 않게 하라. 온갖 견해가 생기지 않아 조금도 새어 나감이 없게 하라. 긴 세월 흔들리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이에 기대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향림(香林) 스님은 사십 년 만에야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셨다. 위산(溈山) 스님은 삼십 년 동안 물소 한 마리를 기르셨다.
既有此志,深宜長久,乃能堪報不報之恩,是真出家大解脫衲子也。
이미 이런 뜻을 품었으면, 깊이 오래 지녀야 마땅하다. 그래야 갚을 수 없는 은혜를 갚을 수 있다. 이것이 참으로 출가하여 크게 해탈한 납자(衲子)이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이 일을 붙잡아 아무 일 없는 경지에까지 사무쳐 이르러야 한다. 한 타래의 실을 자르듯 하라. 한 번 자르면 모두 잘리게 하라. 온 세계를 끊어 붙들어 실오라기 하나만큼도 새지 않게 하라. 온갖 헛된 견해가 일어나지 않아 조금의 새어 나감도 없게 하라. 그리하여 긴 세월 흔들리지도 물러서지도 않아야 한다. 이 자리에 의지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향림 스님은 사십 년 만에야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셨다. 위산에 머문 대안 스님은 삼십 년 동안 물소 한 마리를 기르셨다. 이미 이러한 뜻을 품었거든 마땅히 깊고 오래도록 지녀야 한다. 그래야 갚을 수 없는 은혜를 갚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집을 떠나 크게 벗어난 납자이다.
풀이 6
溈山靈祐 위산영우福州 大安이 '安在溈山三十來年…不學溈山禪。只看一頭水牯牛'라 한 말(『景德傳燈錄』 권9). 소를 돌본 이는 溈山 자신이 아니라 그 회하의 大安이다.
打成一片 타성일편香林澄遠의 말 '老僧四十年方打成一片'(『五燈會元』 권15, X80n1565_p0309c14; 『碧巖錄』 제17칙 평창, T48n2003_p0157b09). 이 대목은 『圓悟佛果禪師語錄』 권16(T47n1997_p0787b10)에도 같은 글로 실렸다.
香林澄遠 향림징원〔병렬용례〕 《碧巖錄》 제17칙(香林 '坐久成勞') 評唱—원오가 香林澄遠이 雲門 회하에서 오래 참구해 '四十年方打成一片'했음을 언급한다. 본문 '香林四十年方打成一片'과 직접 병렬한다.
景德傳燈錄〔병렬용례〕 《景德傳燈錄》 溈山靈祐章 및 《碧巖錄》의 溈山 관련 칙—溈山의 水牯牛(물소) 비유다. 본문 '溈山三十載牧一頭水牯'와 병렬한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4
  1.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마조(馬祖)가 『능가경』의 뜻을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고 간추려 보인 데서 널리 쓰였다.

  2. 蛇畫足 사화족

    뱀을 그리고 발까지 덧그린다는 '화사첨족(畫蛇添足)'의 고사에서 온 말로, 쓸데없이 덧붙인 군더더기, 곧 사족(蛇足)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이미 다 드러난 일에 말이나 몸짓을 보태는 것을 스스로 낮추거나 꾸짖을 때 쓴다.

  3. 落草 낙초

    '풀숲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배우는 이의 눈높이로 말과 방편을 써서 일러 주는 일을 이른다. 말에 떨어져 본분을 잃었다고 낮추어 이를 때에도 쓴다.

  4. 漏逗 누두

    새어 나와 드러난다는 말로, 말이나 행동에 빈틈이나 허물이 드러남을 이른다. 선가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자리를 조금이라도 말로 내보이면 이미 누두라 한다. 『벽암록』에 자주 보인다.

  5. 作家八十四人 작가팔십사인

    마조 문하의 뛰어난 종장들이다. 마조에게 입실한 선지식이 84인이라는 전승으로, 작가(作家)는 본분을 갖춘 대장부를 이른다.

  6. 惡水澆潑 악수요발

    더러운 물을 끼얹음이다. 방편의 말이 본분의 눈으로 보면 도리어 사람을 더럽히는 꼴이라는 비유다.

  7. 光影 광영

    빛과 그림자다. 광영문두(光影門頭), 곧 식(識)이 지어낸 빛과 그림자 같은 헛된 분별상을 이른다.

  8.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9. 生鐵鑄就 생철주취

    무쇠를 녹여 부어 만든 것 같다는 뜻이다. 깨친 이가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모습을 빗대는 말이다.

  10. 飢來喫飯困來眠 기래끽반곤래면

    대주혜해(大珠慧海)가 원률사(源律師)의 물음에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잔다'고 답한 데서 유래한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무위(無爲)·평상심의 도다.

  11. 種田愽飰喫 종전박반끽

    밭 갈아 밥 지어 배불리 먹음이다(박반(博飯)=飽飯). 지장의 소박한 살림살이가 남방의 성대한 교학보다 낫다는 뜻이다.

  12. 如斬一綟絲 여참일려사

    한 타래(려, 綟)의 실을 자르듯 한다는 말이다. 한 타래 실을 단칼에 다 끊듯, 모든 번뇌와 견해를 한꺼번에 몰록 끊음에 견준다.

  13. 一斬一切斬 일참일체참

    한 번 자르면 모두 잘린다는 말이다. 한 타래 실을 자를 때처럼 단번에 모든 것이 끊기는 몰록 깨침(돈오, 頓悟)의 비유로, 선문에서 흔히 쓴다.

  14. 打成一片 타성일편

    여럿이 한 덩어리로 뭉쳐 틈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세상일과 불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를 이른다.

  15. 報不報之恩 보불보지은

    갚을 수 없는 은혜, 곧 불조(佛祖)의 은혜를 갚음이니 최상의 보은이다. 《능엄경(楞嚴經)》의 '보불은(報佛恩)' 정신과 통한다.

  16. 衲子 납자

    누더기 옷(衲衣)을 걸친 수행승이다. 선승의 통칭이다.

  17.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18.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19. 香林澄遠 향림징원

    향림징원(香林澄遠, ?~987)이다.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으로, 운문(雲門)을 열여덟 해 동안 시자로 모시다 깨쳐 그 법을 이었다. 촉(蜀) 땅 청성산 향림원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날 때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한 말이 이름났다.

  20. 正令 정령

    본분(本分)의 바른 명령이라는 뜻이다. 선사가 말이나 이치로 달래지 않고 근본을 곧바로 들이밀어 알음알이를 끊는 엄한 가르침이다. ‘정령당행(正令當行)’이라 흔히 쓴다.

  21. 溈山靈祐 위산영우

    위산영우(溈山靈祐, 771~853)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위산에 머물며 제자 앙산(仰山)과 함께 위앙종을 열었다. 시호는 대원(大圓) 선사이다.

  22. 地藏桂琛 지장계침

    나한계침(羅漢桂琛, 867~928)이다. 오대 때의 선승으로 현사(玄沙) 스님의 법을 이었다. 복주 서쪽 석산의 지장원(地藏院)에 십여 년 머물러 '지장'이라 불렸고, 뒤에 장주 나한원으로 옮겼다. 법안(法眼)의 스승이다.

  23. 元長禪人 원장선인

    원오 스님이 원오심요의 「시원장선인」을 지어 준 납자 '원장'이다. '선인'은 참선하는 수행자를 이르는 말이다.

  24. 蛇畫足 사화족

    뱀을 그리고 발까지 덧그린다는 '화사첨족(畫蛇添足)'의 고사에서 온 말로, 쓸데없이 덧붙인 군더더기, 곧 사족(蛇足)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이미 다 드러난 일에 말이나 몸짓을 보태는 것을 스스로 낮추거나 꾸짖을 때 쓴다.

이 편의 풀이 2건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대주혜해장(大珠慧海章)—원률사(源律師) 문답 '기래끽반(飢來喫飯),곤래즉면(困來卽眠)'이다. 본문 '飢來喫飰困來打眠'의 전거다.
景德傳燈錄《景德傳燈錄》 권6 大珠慧海章—源律師 문답 '飢來喫飯,困來卽眠'이다. 본문 '飢來喫飰困來打眠'의 전거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4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