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29편

제상인(諸上人)에게 주는 글

示諸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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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한문道本無言,法本無生,以無言言顯不生法,更無第二頭,纔擬追捕已蹉過也。
번역도(道)는 본래 말이 없고, 법(法)은 본래 생겨남이 없다. 말 없는 말로 생겨나지 않는 법을 드러낸다. 다시 두 번째 자리(第二頭)란 없다. 붙잡으려 하는 순간, 벌써 어긋나 지나가 버린다.
是故祖師西來特唱此事,只貴言外體取、機外薦取,自非上上機器,何能驀爾便承當得?
그러므로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이 일을 특별히 외치셨다. 오직 말 밖에서 몸소 얻고, 기틀 밖에서 알아차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셨다. 스스로 가장 뛰어난 근기(根機)를 갖춘 그릇이 아니라면, 어찌 단박에 곧장 떠맡을 수 있겠는가.
쉽게 읽기도에는 본래 말이 없다. 법에도 본래 생겨남이 없다. 말 없는 말로 생겨남 없는 법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제이두, 곧 근본에서 한 걸음 벗어난 두 번째 자리가 없다. 그래서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어긋나 지나가 버린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시어 이 일을 특별히 드러내 외쳤다. 오직 말 밖에서 몸소 체득하고 기틀 밖에서 알아차리는 것을 귀히 여겼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주 뛰어난 근기를 갖춘 그릇이 아니면, 어찌 문득 곧바로 감당해 내겠는가.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機外薦取'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은 '일 밖에서 알아차리는'으로 옮겨 機를 事로 처리했으나, 機는 기틀·기연(機鋒)을 뜻하고 앞 짝 言外와 대구를 이루므로 '기틀 밖에서'가 옳다. 책은 부정확한 과의역이다.
29.2
한문然有志於是者,豈計程限?要須立處孤危,辦得一刀兩段猛利身心,放下複子,靠著箇似咬猪狗惡手段底,
번역그러나 여기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어찌 걸리는 길과 날을 따지겠는가. 반드시 선 자리가 외롭고 위태로워야 한다. 한 칼에 두 동강 내는(一刀兩段) 사납고 날카로운 몸과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봇짐(複子)을 내려놓고, 돼지와 개를 물어뜯는 듯한 모진 수단을 지닌 이에게 기대야 한다.
盡情將從前學解路布、黏皮貼肉知見一倒打疊,卻使胸次空勞勞地,己私不露、一物不爲,便能徹底契證,與從上來不移易毫髮許。
그리하여 이제까지 배워 안 이론의 갈래와, 살갗에 들러붙고 살에 달라붙은 지견(知見)을 남김없이 한꺼번에 걷어치운다. 도리어 가슴속을 텅 비고 훤하게 한다. 사사로운 나를 드러내지 않고, 한 물건도 짓지 않는다. 그러면 곧 밑바닥까지 계합하여 증득할 수 있다. 예로부터 내려온 것과 털끝만큼도 바뀌지 않는다.
쉽게 읽기그러나 여기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어찌 걸리는 거리와 기한을 따지겠는가. 반드시 선 자리가 외롭고 위태로워야 한다. 한 칼에 두 동강을 낼 만한 사납고 날카로운 몸과 마음을 갖춘다. 봇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돼지와 개를 물어뜯듯 모진 수단을 지닌 이에게 의지한다. 그리하여 배워 알던 이론의 갈래와, 살갗과 살에 들러붙은 지견을 한꺼번에 쓸어 없앤다. 도리어 가슴속을 텅 비고 훤하게 한다. 사사로운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 물건도 짓지 않으면, 곧 철저히 하나 되어 깨쳐 얻는다. 그러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과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는다.
풀이 5
碧巖錄 벽암록'一刀兩段'은 『碧巖錄』 제63칙 雪竇의 頌 '一刀兩段任偏頗'와 그 評唱, 제76·94칙 著語 등에 보인다(병렬용례).
一刀兩段 일도량단벽암록(碧巖錄) 평창의 상용구 '일도량단(一刀兩段)'(절단(截斷)·결단을 상찬)이다. 본편 '판득일도량단맹리신심(辦得一刀兩段猛利身心)'과 같은 어법으로, 원오가 즐겨 쓰는 절단중류(截斷衆流)의 표현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立處孤危'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은 '처한 위치가 준엄하여'로 孤危를 '준엄'으로 뭉뚱그렸다. 孤危는 의지처를 다 버린 외롭고 위태로운 절대고독의 경계(孤峰頂上)이므로 '외롭고 위태로워야'가 원의에 맞고, '준엄'은 孤를 탈락시킨 과의역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學解路布'에서 路布는 배워 얻은 지해(知解)를 펼쳐 늘어놓음을 가리키는데, 이를 '배워서 이해한 주장'으로 옮긴 책과 '이론의 갈래'로 옮긴 자체역은 모두 '지해의 나열·전개'라는 큰 뜻을 담아낸다.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 가능하다. ‘두 읽기가 다 성립함’
교감 · 胸次'胸次'의 '胸' — 저본·부록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자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85c22). 胸次는 심중·가슴속의 상용어이다. 이체자로 판단하며 오각이 아니다.
29.3
한문直得如此,更知有向上超師作略始得。
번역이렇게 되었으면, 다시 향상(向上)하여 스승마저 뛰어넘는 솜씨(作略)가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된다.
所以古者問佛,向上答非佛,又答方便呼爲佛,則見性成佛乃筌罤爾。
그래서 옛사람은 부처를 넘어선 자리(佛向上)를 물으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방편으로 부처라 부른다’고도 답했다. 그렇다면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말도 통발이요 올무(筌罤)일 뿐이다.
是中云何指東畫西?直須密契,自能將護,方得灑灑落落,更說甚證涅槃、契生死?皆增語也。
이 속에서 어찌 동쪽을 가리키며 서쪽을 그리겠는가. 다만 남모르게 계합하여 스스로 잘 지켜 보살펴야, 비로소 시원하고 걸림 없게(灑灑落落) 된다. 그러니 다시 무슨 열반을 증득한다느니 생사에 계합한다느니 말하겠는가. 모두 군더더기 말이다.
쉽게 읽기바로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향상하여 스승마저 뛰어넘는 작략, 곧 이끄는 솜씨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옳다. 그래서 옛사람은 부처를 넘어선 자리를 물으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방편으로는 '부처'라 답했다. 그렇다면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란 고기 잡는 통발과 토끼 잡는 올무, 곧 전제일 뿐이다. 곧 뜻을 얻고 나면 버리는 도구다. 이 가운데 어찌 동쪽을 가리키면서 서쪽을 그리듯 하겠는가. 다만 은밀히 하나 되어 스스로 잘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시원하고 걸림 없이 자유자재해진다. 다시 무슨 열반을 얻는다느니 생사에 든다느니 말하겠는가. 모두 군더더기 말일 뿐이다.
풀이 10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5 洞山良价章: '如何是佛向上人'에 洞山은 '非常', 保福은 '佛非', 法眼은 '方便呼為佛'이라 別語했다. 여기 '向上答非佛,又答方便呼爲佛'은 이 두 別語를 든 것이다.
筌罤 전제'向上答非佛,又答方便呼爲佛,則見性成佛乃筌罤爾' — 見性成佛이라는 표어마저 방편으로 돌린 대목.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5에도 실렸다(그쪽은 '筌蹄').
見性成佛 견성성불'向上答非佛,又答方便呼爲佛,則見性成佛乃筌罤爾'—向上의 자리에서 보면 見性成佛도 筌蹄(방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
方便呼爲佛 방편호위불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육(卷六)·권이십팔(卷二十八) 마조장(馬祖章)의 '즉심즉불(卽心卽佛)'·'비심비불(非心非佛)' 병설이 본편 '향상답비불(向上答非佛)…방편호위불(方便呼爲佛)'의 직접 전거이며, 벽암록(碧巖錄)에서도 마조 화두를 다룬다.
莊子 장자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 '득어망전(得魚忘筌)'이 원오 어록(語錄)·벽암록(碧巖錄)의 득의망언(得意忘言)·득어망전(得魚忘筌)으로 활용되며, 본편 '견성성불내전제이(見性成佛乃筌罤爾)'는 방편을 통발에 견주는 이 상투를 그대로 썼다.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佛向上(부처를 넘어선 자리)은 선문의 한 낱말이고, 원오의 같은 글을 실은 원오어록(T47n1997 p0784c05)도 '古者問佛向上,答非佛'으로 끊는다. 두 답의 출처도 이 읽기를 받친다 — 『洞山語錄』(T47n1986A p0510b16~19)에서 洞山良价가 '知有佛向上人,方有語話分'이라 하자 僧이 '如何是佛向上人'이라 묻고 洞山이 '非佛'이라 답했으며 法眼이 '方便呼爲佛'이라 別語했고, 『景德傳燈錄』 권15 洞山章(T51n2076 p0322c27~29)에도 같은 문답이 실렸으며(洞山 답 '非常', 保福 別語 '佛非', 法眼 別語 '方便呼爲佛'), 권24 法眼章(p0399a07)에서는 法眼이 '如何是佛向上人'에 '方便呼爲佛'이라 답한다. 곧 '非佛'과 '方便呼爲佛'은 둘 다 '佛向上人'을 물은 데 대한 답이다. 뒤의 '又答方便呼爲佛'은 又答 다음의 '方便呼爲佛'이 답의 내용이라, 向上과 方便을 答을 꾸미는 말로 맞세운 옛 판정의 대구는 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向上을 물음에 붙여 '부처를 넘어선 자리를 물으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방편으로 부처라 부른다」고도 답했다'로 읽어야 한다 — 向上을 물음 쪽에 붙인 책이 옳고, 자체역('향상의 자리에서는 … 답했다')을 고쳤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更說甚證涅槃、契生死'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은 '생사를 깨친다느니'로 옮겼으나 契는 계합·부합(契證)의 뜻으로 앞 證涅槃과 짝이 되며, '깨친다'는 悟로의 부정확한 치환이다. '생사에 계합한다'가 옳다.
29.4
한문雖然,只小僧恁麼道,也未可取爲極則,始免佛病祖病。
번역그렇기는 하나, 소승(小僧)이 이렇게 말한 것조차 궁극의 법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비로소 부처라는 병(佛病)과 조사라는 병(祖病)을 면한다.
大丈夫漢圖心要參,豈可立限劑耶?但辦卻深信,一往向前,未有不腳蹋實地者。
대장부가 마음의 요체(心要)를 참구하려 한다면, 어찌 한계와 분량을 정해 두겠는가. 다만 깊은 믿음을 다잡아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발이 실지(實地)를 밟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日新日新日日新,日損日損日日損,退步到底便是也,至了是亦不立,此正是作工夫處。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여, 나날이 새롭게 한다. 날마다 덜고 또 덜어, 나날이 덜어 낸다. 걸음을 물려 밑바닥에 이르면 곧 그것이다. 끝에 가서는 그 ‘이것’마저도 세우지 않는다. 바로 여기가 공부를 짓는 자리이다.
쉽게 읽기비록 그렇더라도, 소승이 이렇게 말한 것조차 궁극의 법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비로소 부처라는 병과 조사라는 병을 면한다. 대장부가 마음의 요체를 참구하려 한다면, 어찌 한계와 분량을 세우겠는가. 다만 깊은 믿음을 다잡고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발이 실지를 밟지 않는 이가 없다. 날마다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하여 나날이 새롭게 한다. 날마다 덜어 내고 덜어 내어 나날이 덜어 낸다. 물러서고 물러서 밑바닥에 이르면 곧 그것이다. 끝에 이르러서는 그 '이것'마저도 세우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공부를 짓는 자리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8
  1. 纔擬追捕已蹉過 재의추포이차과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차과(蹉過)(어긋나 지나쳐 버림)한다. 사량(思量)을 대면 곧 어긋난다는 선(禪)의 상투 표현이다.

  2. 祖師西來 조사서래

    조사(祖師) 달마(達磨)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일이다. 선에서는 그 뜻을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데 둔다. 그 뜻을 묻는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선문의 대표적인 물음이다.

  3. 言外體取·機外薦取 언외체취·기외천취

    말 밖에서 몸소 체취(體取)(체득)하고 기틀 밖에서 천취(薦取)(알아차려 취함)한다. 언구·기봉(機鋒)에 걸리지 않고 직접 계합함이다.

  4. 上上機器 상상기기

    상상(上上)의 근기(根機)를 갖춘 그릇(器)이다. 최상의 자질을 지닌 수행자이다.

  5. 立處孤危 입처고위

    선 자리가 고위(孤危)(외롭고 위태로움)하다. 의지처를 다 버린 절대고독의 경계에 서야 한다.

  6. 一刀兩段 일도량단

    한 칼에 두 동강이다. 분별·정식(情識)을 단번에 절단(截斷)하는 결단이다.

  7. 似咬猪狗惡手段底 사교저구악수단저

    돼지·개를 물어뜯는 듯한 모진 수단을 지닌 이(스승)이다. 학인을 사정없이 다그치는 준엄한 접화(接化)의 종장을 비유한다.

  8. 學解路布·黏皮貼肉知見 학해로포·점피첩육지견

    배워 얻은 지해(知解)의 갈래(路布)와 살갗에 들러붙은 지견(知見)이다. 사량분별로 쌓은 알음알이이다.

  9. 胸次空勞勞 흉차공로로

    흉차(胸次)(가슴속)를 텅 비워 훤하게 함이다. 흉중의 정식이 사라진 무심(無心)의 모습이다.

  10. 己私不露 기사불로

    사사로운 나(자아, 自我)를 드러내지 않음이다.

  11. 一物不爲 일물불위

    '한 물건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무심·무위(無爲)의 경지를 이른다. 석두(石頭)와 약산(藥山)의 문답에서 '한가히 앉아 있으면 그것도 하는 것이다'—'하지 않는다는 그것은 무엇인가'—'천 성인도 알지 못한다(천성역불식, 千聖亦不識)'로 이어진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4 약산유엄장(藥山惟儼章)에 실려 있다.

  12. 向上超師 향상초사

    향상(向上)하여 스승을 뛰어넘음이다. 향상일로(向上一路)로 스승의 경계마저 초월하니 견과어사(見過於師)의 뜻이다.

  13. 問佛·向上答非佛 문불향상·답비불

    부처를 넘어선 자리(불향상, 佛向上)를 물으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말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부처를 넘어선 사람을 알아야 비로소 말할 자격이 있다'고 하자 한 스님이 '무엇이 부처를 넘어선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고, 동산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한 문답에서 왔다. 법안(法眼)은 같은 물음에 '방편으로 부처라 부른다'고 달리 답하였다.

  14. 方便呼爲佛 방편호위불

    방편으로는 '부처'라고 부름이다. 마조(馬祖) 도일의 '마음이 곧 부처다(즉심즉불, 卽心卽佛)'를 가리킨다.

  15. 見性成佛 견성성불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경전 공부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음을 깨닫는 선종의 근본 표방으로, 흔히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로 함께 쓴다.

  16. 筌罤 전제

    고기 잡는 통발(筌)과 토끼 잡는 올무(罤)이다.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는 『장자』의 비유에서 나와, 잠시 빌려 쓰는 방편을 가리킨다. 선에서는 불조의 말씀도 이와 같다고 본다.

  17. 指東畫西 지동화서

    동쪽을 가리키며 서쪽에 금을 긋는다는 말이다. 곧바로 짚어 보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에둘러 말하거나 헤아리는 것을 나무랄 때 쓴다.

  18. 灑灑落落 쇄쇄락락

    씻은 듯 깨끗하고 홀가분하여 아무 데도 걸림이 없는 모양이다. 마음에 한 점 티끌도 남기지 않고 시원스럽게 벗어난 경지를 이른다.

  19. 增語 증어

    증어. 군더더기 말이다. 열반(涅槃) 증득·생사(生死) 계합 운운도 다 덧붙인 사족(蛇足)이라는 뜻이다.

  20. 小僧恁麼道 소승임마도

    원오(圜悟)가 자신을 낮춘 소승(小僧)의 겸칭이다. '이렇게 말한 것(恁麼道)조차 극칙(極則)으로 삼지 말라'고 함이다.

  21. 圖心要參 도심요참

    심요(心要)를 참구하려는 대장부는 限劑(한제, 한계·분량)를 세우지 않는다. 정해진 정도(程度)에 스스로 갇히지 말라는 뜻이다.

  22. 腳蹋實地 각답실지

    발로 참된 땅을 딛고 선다는 말이다. 관념에 들뜨지 않고 깨달음의 실제 자리에 단단히 발붙인 경지를 이른다. 흔히 각답실지(腳踏實地)라고 쓴다.

  23. 日新日新日日新 일신일신일일신

    대학(大學)에 인용된 탕(湯)임금 반명(盤銘) '苟日新,일일신(日日新),우일신(又日新)'을 변용한 것이다. 나날이 새로워짐이다.

  24. 日損日日損 일손일일손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48장 '위도일손(爲道日損),손지우손(損之又損),이지어무위(以至於無爲)'에서 온 말. 도를 닦음은 날로 덜어내어 무위(無爲)에 이름을 뜻함.

  25. 退步到底 퇴보도저

    물러서고 물러나 밑바닥에 이름. 물러서는 공부를 끝까지 하는 것이 곧 향상(向上)의 완성이라는 말이다.

  26. 至了是亦不立 지료시역불립

    끝에 이르러서는 그 '이것(是)'마저도 세우지 않음. 그것이 참된 공부처(工夫處)라는 역설이다.

  27.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28.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29. 佛病祖病 불병조병

    부처라는 병과 조사라는 병이다. 부처나 조사를 높이 받들어 그 말과 자취에 매이는 것도 병이 된다는 뜻이다. 부처·조사라는 생각마저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롭다.

  30. 複子 복자

    행각승이 지고 다니는 봇짐이다. '봇짐을 내려놓는다(放下複子)'는 말은 떠돌기를 그치고 참된 스승 곁에 머물러 공부를 끝까지 해냄을 이른다.

  31. 第二頭 제이두

    '두 번째 머리'라는 뜻으로, 근본 자리에서 이미 한 걸음 물러난 버금 자리를 이른다. 머뭇거리며 헤아리거나 말로 붙잡는 순간 제이두에 떨어진다고 한다.

  32. 道本無言·法本無生 도본무언·법본무생

    도(道)에는 본래 말(言說)이 없고 법(法)에는 본래 생멸(生滅)이 없다는 뜻이다. 불립문자·무생(無生)의 종지를 여는 서두 정형구이다.

  33. 道本無言 도본무언

    도(道)에는 본래 말(言說)이 없고 법(法)에는 본래 생멸(生滅)이 없다는 뜻이다. 불립문자·무생(無生)의 종지를 여는 서두 정형구이다.

  34. 言外體取 언외체취

    말 밖에서 몸소 體取(체취, 체득)하고 기틀 밖에서 薦取(천취, 알아차려 취함)한다. 언구·기봉(機鋒)에 걸리지 않고 직접 계합함이다.

  35. 學解路布 학해로포

    배워 얻은 지해(知解)의 갈래(路布)와 살갗에 들러붙은 지견(知見)이다. 사량분별로 쌓은 알음알이이다.

  36. 問佛 문불

    부처를 넘어선 자리(불향상, 佛向上)를 물으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말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부처를 넘어선 사람을 알아야 비로소 말할 자격이 있다'고 하자 한 스님이 '무엇이 부처를 넘어선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고, 동산이 '부처가 아니다'라고 답한 문답에서 왔다. 법안(法眼)은 같은 물음에 '방편으로 부처라 부른다'고 달리 답하였다.

  37. 日損日損 일손일손

    노자(老子) 도덕경 48장 '爲學日益,爲道日損,損之又損,以至於無爲'에서 온 것이다. 알음알이를 덜어 무위에 이름이다.

  38. 莊子 장자

    戰國 시대 莊周의 책. 外物篇의 '得魚忘筌'(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는다)은 방편을 목적에 견주는 비유로 禪門에서도 두루 쓰였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8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