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3편

영상인(瑛上人)에게 주는 글

示瑛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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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한문此事在當人快利,既承當擔荷,知有自己根腳,尤宜卓卓特立獨行,須絕情離照,俾廓然空寂,無一法可得,
번역이 일은 바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재빠르고 날카롭게 이미 떠맡아 짊어지고, 제게 근본 바탕(根腳)이 있음을 알았다면, 더욱 우뚝이 홀로 서서 홀로 가야 한다. 반드시 정(情)을 끊고, 비추어 아는 마음마저 떠나야 한다. 툭 트여 텅 비고 고요하게 하여, 얻을 법이 하나도 없게 해야 한다.
쉽게 읽기이 일은 바로 그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재빠르고 날카로워서 이미 이 일을 받아들여 짊어지고, 제 발밑이 든든함을 알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더욱 우뚝이 홀로 서고 홀로 걸어가야 한다. 먼저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라. 무엇을 비추어 안다는 그 앎마저 내려놓아라. 그리하여 활짝 트여 텅 비고 고요하게 하고, 단 하나의 법도 붙잡을 것이 없게 해야 한다.
풀이 3
達磨廓然無聖 달마확연무성'廓然空寂,無一法可得'의 '廓然'은 달마의 답 '廓然無聖'과 같은 말로, 텅 비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는 자리를 이른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此事在當人快利'은 快利를 在의 목적어로 붙여 '당사자의 예리함에 달려 있다'로 읽는 출판본 독법과, 在當人에서 끊고 快利를 뒤 절의 술어로 보는 자체역이 모두 성립한다. '此事在人'이 선가의 상투어라 뒤에서 끊는 구두도 자연스럽고 快利를 在에 붙이는 독법도 무리가 없으니, 어느 한쪽을 가릴 결정적 전거가 없는 句讀 선택 차이다. ‘두 읽기가 다 성립함’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絕情離照'의 '照'는 寂照의 작용(用)으로 보아 '작용을 떠나'로 푸는 출판본 독법과, 反照하는 앎으로 보아 '비추어 아는 마음마저 떠나'로 옮긴 자체역이 모두 성립한다. 照를 體用의 用으로 읽는 출판본에도 근거가 있고 고증(情識을 끊고 反照의 앎마저 여읨)은 자체역을 지지하나, 출판본을 오독으로 단정할 결정적 전거는 없고 다만 다소 느슨한 의역일 뿐이다. ‘두 읽기가 다 성립함’
43.2
한문截斷諸緣,令灑灑落落到大安穩之地,綿密無滲漏。所謂壁立萬仞,峭巍巍地,然後卻回來,涉世應物,初無我相,豈有聲色順違、魔佛境界耶?
번역모든 인연을 끊어 버려라. 씻은 듯 홀가분하게 하여, 크게 편안한 자리에 이르게 하라. 빈틈없이 촘촘하여 새는 곳이 없게 하라. 이것이 이른바 만 길 벼랑처럼 우뚝 서서(壁立萬仞),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자리다. 그런 뒤에 도리어 돌아와, 세상에 나아가 일과 사물에 응한다. 애초에 나라는 생각(我相)이 없다. 그러니 어찌 소리와 빛, 순함과 거스름, 마와 부처의 경계가 있겠는가.
쉽게 읽기모든 인연을 끊어 버려라. 씻은 듯 깨끗하고 홀가분해져라. 그렇게 크게 편안한 자리에 이르러, 빈틈없이 여며 조금도 새는 곳이 없게 하라. 이것이 이른바 만 길 벼랑처럼 우뚝 서서 험하게 솟은 자리다. 그런 뒤에야 다시 세상으로 돌아 나와 온갖 일에 응하게 된다. 애초에 아상, 곧 나를 앞세우는 마음이 없다. 그러니 소리와 빛, 순함과 거스름, 마와 부처라는 경계인들 어찌 있겠는가.
풀이 2
壁立萬仞 벽립만인벽립만인(壁立萬仞)…연후각회래섭세응물(然後卻囘來涉世應物) ↔ 《벽암록(碧巖錄)》 평창(評唱)의 전형 논법이다. 원오(圜悟)가 '벽립천인(壁立千仞)(만인(萬仞))'으로 준기(峻機)를 세운 뒤 '위인일로(爲人一路)'로 돌이켜 자비로 접인하는 기용겸행(機用兼行) 구조와 같다.
綿密無滲漏 면밀무삼루면밀무삼루(綿密無滲漏) ↔ 동산양개(洞山良价)의 삼종삼루(三種滲漏)(견삼루(見滲漏)·정삼루(情滲漏)·어삼루(語滲漏); 《인천안목(人天眼目)》·《오등회원(五燈會元)》 동산장(洞山章))이다. 원오(圜悟)의 '무삼루(無滲漏)'는 이 조동(曹洞) 술어를 차용한 표현이다.
43.3
한문最難是等閑不作意處,驀地被牽轉,便漏逗也。應須相續管帶,使勿走作,久之打成一片,乃爲歇場,更須會取向上行履始得。古德云:得坐披衣,向後自看。
번역가장 어려운 것은 무심히 마음 두지 않는 자리에서, 문득 끌려 굴러가 곧 새어 버리는 것이다. 반드시 끊임없이 이어 챙겨 지녀, 달아나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오래되면 한 조각을 이룬다(打成一片). 이것이 쉬는 자리다. 다시 향상의 걸음(向上行履)을 알아 취해야 비로소 된다. 옛 큰스님(古德)께서 말씀하셨다. “자리를 얻고 가사를 걸쳤거든, 그 뒤로는 스스로 살펴보라.”
쉽게 읽기가장 다루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무심코 아무 마음도 두지 않는 사이에, 문득 어딘가로 끌려 굴러가서, 그대로 새어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이어서 챙겨 지녀라. 마음이 달아나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오래 지나면 마침내 한 조각으로 뭉쳐진다. 곧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되니, 이것이 바로 쉬는 자리다. 여기서 다시 위로 더 나아가는 향상의 행리를 알아 챙겨야 비로소 옳다. 옛 큰스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자리를 얻어 옷을 입고, 그런 뒤에 스스로 돌아보라.”
풀이 4
漏逗 누두'最難是等閑不作意處,驀地被牽轉,便漏逗也' — 깨친 뒤 지녀 가는 중에 방심하여 본분을 놓치는 것. 바로 이어 '相續管帶,使勿走作'을 처방한다.
古德 고덕仰山慧寂이 幽州 출신 僧에게 '據汝所解只得一玄,得坐披衣向後自看'이라 한 말(『景德傳燈錄』 권11·『聯燈會要』 권8). 본디 '한 玄만 얻었으니, 자리 얻고 가사 걸친 뒤로는 스스로 살피라'는 경책. 『五燈會元』 권17에도 '得坐披衣,向後自看,自然七通八達去'로 보인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9
  1. 此事 차사

    본분사(本分事)·기사(己事)이다. 각자가 스스로 짊어져 깨쳐야 할 근본의 일이다.

  2. 我相 아상

    《금강경(金剛經)》 사상(四相)(아(我)·인(人)·중생(衆生)·수자(壽者))의 하나이다. ātman-saṃjñā이다.

  3. 漏逗 누두

    새어 나와 드러난다는 말로, 말이나 행동에 빈틈이나 허물이 드러남을 이른다. 선가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자리를 조금이라도 말로 내보이면 이미 누두라 한다. 『벽암록』에 자주 보인다.

  4. 打成一片 타성일편

    여럿이 한 덩어리로 뭉쳐 틈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세상일과 불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를 이른다.

  5. 得坐披衣·向後自看 득좌피의·향후자간

    자리를 얻어 가사를 걸침, 곧 안착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뒤에도 다시 돌이켜 살피라는 선문의 경책이다.

  6.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7. 壁立萬仞 벽립만인

    만 길 낭떠러지처럼 우뚝 서 있다는 말이다. 알음알이나 말로는 붙을 데가 없는 깨침의 자리, 또는 그런 엄한 가르침을 이른다. 원오의 『벽암록』에도 자주 나온다.

  8.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9. 灑灑落落 쇄쇄락락

    씻은 듯 깨끗하고 홀가분하여 아무 데도 걸림이 없는 모양이다. 마음에 한 점 티끌도 남기지 않고 시원스럽게 벗어난 경지를 이른다.

  10. 根腳 근각

    뿌리와 발, 곧 발밑의 근본 바탕이다. 선문에서 '자기 근각'은 제 발밑의 본래 자리를 이르고, '근각이 굳지 못하다'는 공부의 바탕이 단단히 서지 못했다는 말이다.

  11. 走作 주작

    마음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경계를 따라 밖으로 달아나 흩어지는 것을 이른다.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고 틈이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

  12. 向上行履 향상행리

    향상(向上), 곧 깨달음마저 넘어선 자리에서의 실제 살림살이와 실천을 이른다. 깨친 데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몸소 살아 내는 일이다.

  13. 圜悟心要 원오심요

    원오극근(圜悟克勤)이 제자와 사대부에게 써 준 법어와 편지를 모은 책이다. 원오의 법을 이은 자문(子文)이 엮었으며, 모두 4권으로 전한다.

  14. 上人 상인

    덕 높은 승려에 대한 존칭이다.

  15. 承當擔荷 승당담하

    선어이다. 본분사를 스스로 받아들여 감당하고 짊어짐이다.

  16. 卓卓特立獨行 탁탁특립독행

    우뚝 홀로 서서 홀로 행함이니, 남에게 기대지 않는 자립의 자세이다.

  17. 絕情離照 절정리조

    정식(情識)(분별정)을 끊고 반조(反照)하는 앎마저 여읨이다. 미세한 지해(知解)에도 머물지 않음이다.

  18. 廓然空寂 곽연공적

    확 트여 텅 비고 고요하다는 말이다.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는 자리를 이르며, 달마가 양 무제에게 '텅 비어 성스러울 것도 없다(곽연무성)'고 답한 말과 통한다(벽암록 제1칙).

  19. 截斷諸緣 절단제연

    모든 반연(緣)을 끊어 버림이다.

  20. 綿密無滲漏 면밀무삼루

    촘촘하고 빈틈이 없어 조금도 새는 데가 없다는 말이다. '삼루(새어 나감)'는 동산 양개 스님이 공부의 허점을 견해·감정·말 세 가지로 가려 본 '세 가지 새는 곳'에서 온 선가의 말이다.

  21. 峭巍巍地 초외외지

    험준하고 우람하게 솟은 모양이다('지(地)'는 상태 접미어이다).

  22. 涉世應物 섭세응물

    세상에 나아가 사물에 응함이니, 오후(悟後)의 이타(利他) 작용(向下門)이다.

  23. 聲色順違魔佛境界 성색순위마불경계

    소리·빛(六塵), 순경·역경, 마와 부처이니, 모든 상대적 경계의 통칭이다.

  24. 等閑 등한

    무심코 심상하게, 별 힘 들이지 않은 상태이다.

  25. 蟇地 마지

    =맥지(驀地)이다. 문득·갑자기이다(오각으로 판단하니 교감 참조).

  26. 相續管帶 상속관대

    끊임없이 이어 챙겨 지님이다. 관대(管帶)는 보임(保任)(깨침을 보호임지(保護任持)하여 지킴)이다.

  27. 歇場 헐장

    쉬는 자리(休歇處)이다. 《능엄(楞嚴)》 '광심돈헐(狂心頓歇), 헐즉보리(歇卽菩提)'의 헐(歇)과 통한다.

  28. 壁立萬仞·萬仞 벽립만인·만인

    만 길 낭떠러지처럼 우뚝 서서 붙잡거나 기댈 데가 없음. 情識이 범접할 수 없는 孤峻한 本分의 자리, 또는 學人에게 틈을 주지 않는 宗師의 把定을 이른다. '壁立千仞'이라고도 한다. 『碧巖錄』 제39칙 評唱 '雲門…有時把定,壁立萬仞,無爾湊泊處;有時與爾開一線道'(T48n2003_p0177b21); 제22칙 垂示 '人人坐斷要津,箇箇壁立千仞'(p0162b29).

  29. 達磨廓然無聖 달마확연무성

    양나라 무제(武帝)가 달마(達磨)에게 '거룩한 진리의 첫째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달마는 '텅 비어 거룩하다 할 것도 없다(廓然無聖)'고 답했다. 무제가 '내 앞에 있는 그대는 누구냐'고 다시 묻자 '모른다'고 했다. 뜻이 통하지 않자 달마는 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다. 『벽암록』 첫째 칙으로 널리 알려진 공안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