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15편

현상인(顯上人)에게 주는 글

示顯上人(住蘇州崑山惠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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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한문見處通透,用處明白,當旋機電卷,結角羅紋,槃錯縱橫,自能回轉無凝滯。
번역보는 곳이 훤히 통하고 쓰는 곳이 분명하면, 기틀을 굴리기를 번갯불 감기듯 한다. 모서리가 얽히고 무늬가 엉켜 이리저리 서려 뒤섞여도, 스스로 돌이켜 굴려 막힘이 없다.
亦不立見,亦不存機,滔滔地風行草偃蓋根腳。
또 견해(見)를 세우지도 않고 기틀(機)을 두지도 않는다. 도도하게,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 뿌리까지 덮는다.
悟入時,徹淵源,修證得,無回互。會尚不可得,豈況不會?
깨쳐 들어갈 때에는 근원을 사무치고, 닦아 증득하면 서로 뒤섞임이 없다. 안다는 것조차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모르는 것이겠는가.
二六時中,只恁無繫無絆,初不存能所,我人何有於佛法哉?
하루 열두 때(二六時)에 그저 이렇게 매인 데도 얽힌 데도 없다. 애초에 보는 이와 보이는 것(能所)을 두지 않으니, 불법(佛法)에 나와 남(我人)이 어디 있겠는가.
此無心無爲無事境界,豈世間聦明利智、辯慧多聞、無根本人能測量耶?
이 무심(無心)·무위(無爲)·무사(無事)의 경계를, 세간의 총명하고 날랜 지혜와 말재주와 많이 들음을 지녔으되 근본이 없는 사람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쉽게 읽기보는 자리가 훤히 뚫리고 쓰는 자리가 또렷하면, 기틀을 굴리는 것이 번갯불이 번쩍 감기듯 빠르다. 모서리를 얽고 무늬를 짜며 이리저리 뒤엉킨 자리에서도 스스로 척척 돌이켜 굴리니 걸리는 데가 없다. 이런 사람은 견해를 따로 세우지 않고 기틀도 따로 붙들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 거침없이 흘러가 뿌리까지 덮는다. 깨쳐 들어갈 때에는 그 근원을 밑바닥까지 꿰뚫고, 닦아 얻을 때에는 이것저것 뒤섞이는 법이 없다. 안다는 것조차 잡을 수 없는데, 하물며 알지 못함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루 온종일, 곧 열두 때 내내 이렇게 매인 데도 얽힌 데도 없다. 애초에 아는 나와 알려지는 대상을 나누어 두지 않으니, 나와 남이라는 것이 불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 무심·무위·무사의 자리를, 세상의 총명하고 날랜 머리로 말 잘하고 많이 들었어도 근본이 없는 사람이 어찌 헤아리겠는가.
풀이 2
回互 회호'悟入時,徹淵源,修證得,無回互'에서 無回互는 얽혀 넘나들거나 에두름이 없이 곧바르다는 뜻으로 보인다(추정). 下/49의 '了無回互'도 같은 쓰임이다.
15.2
한문達磨西來,豈將得此法來?他惟直指各各當人本有之性,令出徹明淨,不爲如許惡知惡覺、妄想計較所染污。
번역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신 것이, 어찌 이 법을 가지고 오신 것이겠는가. 그분은 오직 저마다 그 사람에게 본래 있는 성품을 곧바로 가리켜, 사무쳐 밝고 깨끗하게 드러나게 하셨다. 그 많은 그릇된 앎과 그릇된 깨달음, 망상과 헤아림에 물들지 않게 하셨을 뿐이다.
參須實參,得真正道。師不引入草窠裏,直截契證,脫卻貼肉汗衫子,令胸次虗豁,無一毫凡情聖量,亦不向外馳求,湛然真實,千聖莫能排遣。
참구하려면 반드시 실답게 참구하여, 참되고 바른 도를 얻어야 한다. 스승은 풀숲(草窠)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곧바로 끊어 계합하여 깨닫게 한다. 살에 붙은 땀 밴 속옷(汗衫子)을 벗겨 버려, 가슴속을 텅 비고 트이게 한다. 털끝만 한 범부의 정(凡情)이나 성인의 헤아림(聖量)도 없고, 밖을 향해 치달아 구하지도 않는다. 맑고 고요하게 참되고 실다우니, 천 명의 성인도 밀어내지 못한다.
得一片淨倮倮田地,透出空劫,那邊威音王猶是兒孫,何況更從他覓?有祖以來,作家漢莫不如是。
깨끗하여 발가벗은 한 조각 땅을 얻어 공겁(空劫)을 뚫고 나가면, 저쪽 위음왕(威音王)도 오히려 자손이다. 하물며 다시 남에게서 찾겠는가. 조사(祖師)가 있은 뒤로, 솜씨 있는 작가(作家)치고 이렇지 않은 이가 없었다.
쉽게 읽기달마께서 서쪽에서 오신 것이 무슨 법을 따로 손에 들고 오신 것이겠는가. 그분은 오직 사람마다 저마다 본래 지닌 성품을 곧바로 가리켰을 뿐이다. 그 성품이 사무치게 밝고 깨끗이 드러나, 온갖 그릇된 앎과 그릇된 깨달음과 헛된 분별에 물들지 않게 하셨다. 참구하려면 참되게 참구하여 바른 도를 얻어야 한다. 좋은 스승은 배우는 이를 풀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는다. 곧장 끊어 주어 그 자리에서 계합해 얻게 한다. 마치 살에 달라붙어 땀에 전 속옷을 벗겨 내듯, 속을 온통 텅 비게 한다. 그리하여 털끝만 한 범부의 마음도, 성인이라는 헤아림도 남기지 않는다. 밖으로 치달아 구하지도 않으니, 맑고 고요한 참자리에 이른다. 이 자리는 천 명의 성인이 와도 밀어내지 못한다. 이렇게 깨끗하고 발가벗은 한 조각 자리를 얻어 공겁 저편까지 뚫고 나오면, 저 위음왕조차 오히려 자손일 뿐이다. 그러니 무엇을 다시 남에게서 찾겠는가. 조사가 나신 뒤로, 안목을 갖춘 스승치고 이렇지 않은 이가 없었다.
풀이 5
威音王 위음왕『五燈會元』 권3 南泉章: 南泉이 '長老甚麼年中行道'라 묻자 黃檗이 '威音王已前'이라 답하니 南泉이 '猶是王老師兒孫在'라 했다. 『景德傳燈錄』 권8은 黃檗의 답을 '空王佛時'로 적었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得眞正道師不引入草窠裏'는 '得眞正道(진정한 도를 얻다)'에서 끊고 師를 뒤 문장(不引入·脫卻·令…)의 주어로 보는 독법과, '得眞正道師(진정한 도의 스승을 얻다)'로 붙여 읽는 독법이 모두 성립한다.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으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脫卻貼肉汗衫子
오역(뉘앙스 약화). 책은 汗衫子를 '장삼'(겉옷)으로 옮겼으나, 貼肉汗衫子는 '살에 붙은 속적삼'으로 벗기 가장 어려운 미세한 我執·法執이다. 겉옷으로 옮기면 '최후의 미세 집착'이라는 비유가 흐려진다. '살에 붙은 땀 밴 속옷'으로 옮긴 번역 유지.
교감 · 胸次'胸次'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59c15). 이체이며 뜻이 같다.
15.3
한문且如六祖新州一鬻薪人,目不體字,逗至於大滿相見,一面披襟,著著透脫。
번역또 육조(六祖)는 신주(新州)의 한 나무꾼으로, 눈으로 글자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대만(大滿), 곧 오조 홍인을 만나기에 이르러, 한 번 마주하여 옷깃을 헤치자 낱낱이 뚫고 벗어났다.
雖則聖賢混迹,要以方便顯示。此段不隔賢愚,皆已本有。
비록 성현이 세상에 자취를 섞으셨더라도, 요컨대 방편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이 일은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이미 본래 갖추고 있다.
今既廁跡禪流,日逐冥心體究,知此大緣不從人得,只在猛利擔荷增進,
이제 이미 선(禪)의 무리에 자취를 두고, 날마다 마음을 그윽이 가라앉혀 몸소 파고든다면(冥心體究), 알아야 한다. 이 큰 인연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매섭고 날카롭게 짊어지고 나아가는 데 있다.
日損日益,如精金百煉千煅,出塵之要,利生之本,尤須七穿八穴,到無疑安穩,得大機大用之處。
날로 덜고 날로 더하기를, 순금을 백 번 달구고 천 번 두드리듯 해야 한다. 이것이 티끌을 벗어나는 요체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근본이다. 더욱이 반드시 일곱 구멍 여덟 구멍이 두루 뚫리도록(七穿八穴) 해야 한다. 의심 없이 편안한 데 이르러, 큰 기틀과 큰 작용(大機大用)을 얻는 자리에 닿아야 한다.
此工夫正在密作用中,只日於萬緣交參,紅塵擾攘,順違得失,摐然羅列於中,出沒不被他所轉,能轉於他,活鱍鱍地水灑不著,乃是自己力量。
이 공부는 바로 은밀한 작용 속에 있다. 다만 날마다 온갖 인연이 뒤섞이고 붉은 티끌(紅塵)이 어지러운 데서, 순경과 역경, 얻음과 잃음이 그 가운데 엄연히 벌여져 있다. 그 속을 드나들면서도 그것에 굴려지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굴린다. 펄펄 살아(活鱍鱍地) 물을 뿌려도 젖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자기의 힘이다.
至於靜嘿虗凝,亦非兩種,乃至奇言妙句,險機絕境,亦只一槩平之,了無得失,皆爲我用。
고요히 잠잠하여 텅 비고 엉긴 데에 이르러서도 둘이 아니다. 나아가 기이한 말과 묘한 구절, 험한 기틀과 끊어진 경계까지도, 다만 한결같이 고르게 한다. 얻음도 잃음도 전혀 없이, 모두 나의 씀이 된다.
似此磨琢久之,生死之際脫然,視世間閑名破利,如風過游塵,夢幻空花耳。翛然度世,豈非出塵大阿羅漢耶?
이렇게 오래도록 갈고 쪼으면, 생사의 즈음에 훌쩍 벗어난다. 세간의 부질없는 이름과 하찮은 이익 보기를, 바람이 떠도는 티끌을 스쳐 가듯, 꿈과 허깨비와 헛꽃(空花)같이 볼 뿐이다. 유유히 세상을 건너가니, 어찌 티끌을 벗어난 대아라한(大阿羅漢)이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또 육조 혜능 같은 이는 신주의 한 나무꾼이라 글자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조 홍인을 만나 마주 서자, 한 번 옷깃을 헤치는 사이에 낱낱이 뚫고 벗어났다. 성현이 짐짓 자취를 감추고 섞여 사시더라도, 결국 방편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이 자리는 잘난 이와 못난 이를 가리지 않으니, 누구에게나 본래 갖추어져 있다. 이제 이미 선을 배우는 무리에 몸을 두었거든, 날마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소 파고들라. 그러면 이 큰 인연이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오직 매섭고 날카롭게 짊어지고 나아가는 데 달렸다. 날마다 덜어 내고 날마다 더하기를, 여러 번 달구고 두드려 불린 순금처럼 하라. 이것이 티끌을 벗어나는 요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근본이다. 나아가 일곱 구멍 여덟 구멍이 두루 뚫리듯 사무쳐, 의심 없이 편안한 자리, 곧 큰 기틀과 큰 작용을 얻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 공부는 바로 남몰래 작용하는 가운데 있다. 날마다 온갖 인연이 뒤섞이고 속세의 붉은 티끌이 어지러이 인다. 좋은 일과 거스르는 일, 얻음과 잃음이 눈앞에 빽빽이 벌여진다. 그 한복판을 드나들면서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굴린다. 활발발하게, 물을 뿌려도 젖지 않는 듯하니, 이것이 바로 제 힘이다. 고요히 잠잠하여 텅 비어 엉긴 자리에 이르러서도 이와 둘이 아니다. 나아가 기이한 말과 묘한 구절, 아슬아슬한 기틀과 꽉 막힌 경계에 이르러서도, 다만 한꺼번에 고르게 하여 얻음도 잃음도 없이 모두 내 것으로 쓴다. 이렇게 오래 갈고 쪼면, 나고 죽는 갈림길에서도 훌쩍 벗어난다. 세상의 헛된 이름과 하찮은 이익 보기를, 바람이 떠도는 먼지를 스쳐 지나듯, 꿈이나 허깨비나 헛꽃같이 여긴다. 그렇게 홀가분히 세상을 건너가니, 어찌 티끌을 벗어난 대아라한이 아니겠는가.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摐然羅列於中出沒'의 摐然은 CBETA 그대로면 '어지러이'이나 교정안 儼然은 '엄연·즐비'로 어감이 정반대다. 번역은 '엄연히 벌여져'로 새겼으나 摐然 독법도 성립하여 확정할 수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으로 남긴다.
15.4
한문骨剉。和尚一生有問,只以骨剉也酬之,如鐵彈子,不妨緊峭。若善體究,真祖師門下師子兒。
번역골좌(骨剉) 화상은 한평생 묻는 이가 있으면 그저 ‘골좌야(骨剉也)’로 답했다. 쇠 탄알(鐵彈子) 같아서 참으로 팽팽하고 매섭다. 이것을 잘 몸소 파고든다면, 참으로 조사 문하의 사자 새끼(師子兒)이다.
忠國師問本淨禪師:汝見一切奇言妙句時如何?淨云:無一念心愛。國師云:是汝屋裏事。
충국사(忠國師)께서 본정(本淨) 선사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온갖 기이한 말과 묘한 구절을 볼 때에 어떠한가?” 본정이 말했다. “한 생각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국사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대 집안의 일이다.”
參學到此,乃是淨潔乾嚗嚗地不受人瞞者。只山僧恁麼道,也合與本分卓料。
쉽게 읽기골좌 화상은 평생 누가 무엇을 물어도 그저 '골좌야'라고만 답하였다. 그 말이 마치 쇠탄알과 같아 몹시 팽팽하고 날카로웠다. 이 뜻을 잘 몸소 파고들어 안다면, 참으로 조사 문하의 사자새끼이다. 충국사께서 본정 선사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온갖 기이한 말과 묘한 구절을 대할 때 어떠한가?" 본정이 답하였다. "한 생각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국사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그대 집안의 일이다." 참선하며 배우는 이가 여기에 이르면, 이것이 곧 티 없이 바싹 마른 자리여서, 남에게 속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나 산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본분에 맞는 꼴과 여물을 건네주는 셈일 뿐이다.
풀이 4
本分草料 본분초료'只山僧恁麼道,也合與本分卓料'—자기 말도 本分草料를 받아 마땅하다는 自謙의 結語. 『碧巖錄』 著語 '好與本分草料'와 같은 쓰임이다. 저본 글자는 '卓料'.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國師云…只山僧恁麼道也'에서 '參學到此…不受人瞞者'를 국사의 발화로 이어 붙일 수도, 원오(山僧)의 방외 논평으로 돌릴 수도 있다. 직후 '只山僧恁麼道也'가 원오 자신을 가리켜 원오 논평 귀속이 더 일관되나 국사의 일반화 발화로도 읽히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으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合與本分草料
과의역·오역. 책은 '본분소식에 맞는 것'으로 옮겨 草料(꼴·여물)의 심상을 없애고 '與'를 '合'에 흡수시켰다. 本分草料는 근기에 맞는 본분사(꼴과 여물)를 '주는' 것이니 '본분초료를 주는 것과 합당하다'는 번역이 옳다. 번역 유지.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0
  1. 回互 회호

    서로 맞물려 넘나든다는 말이다. 석두(石頭)의 『참동계』에서 모든 경계가 ‘넘나들면서도 넘나들지 않는다’고 한 데서 이름났다. ‘잘 어우러짐’이나 ‘뒤섞임’을 뜻하기도 한다.

  2.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3. 能所我人 능소아인

    능(能)은 주관, 소(所)는 객관이며 아인(我人)은 아상(我相)·인상(人相)이다. '불존능소아인(不存能所我人)'은 주객·자타 분별을 세우지 않음이다.

  4. 無心無爲無事 무심무위무사

    조작 없는 본래 경계를 가리키는 원오·선림의 상용 3어다.

  5. 草窠裏 초과리

    풀숲·덤불이다. 언어·개념의 갈등 속으로 학인을 끌어들임의 비유다('사불인입초과리(師不引入草窠裏)').

  6. 貼肉汗衫 첩육한삼

    살에 착 달라붙은 땀 젖은 속적삼이다. 떼어 내기 가장 어려운 마지막 집착이나 알음알이를 비유한다. 선문에서는 이것마저 벗어 버려야 비로소 홀가분해진다고 말한다.

  7. 威音王 위음왕

    『법화경』에 나오는 아득한 옛 부처,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다. 같은 이름의 부처 가운데 맨 처음 부처다. 선어록에서는 '위음왕 이전'이라 하여 시간과 분별이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8. 作家漢 작가한

    종문의 안목과 수단을 갖춘 노련한 종사다.

  9. 精金百煉 정금백련

    정금을 백 번 단련하듯 하는 철저한 마련이다.

  10. 七穿八穴 칠천팔혈

    일곱 군데 뚫리고 여덟 군데 구멍 난다는 말이다. 어디에도 막힘 없이 사방으로 환히 꿰뚫린 경지를 형용한다.

  11. 大機大用 대기대용

    큰 기틀과 큰 작용이다. 깨달은 이의 근본 힘과, 그 힘이 걸림 없이 쓰이는 것을 함께 이른다. 황벽(黃檗)이 스승 백장(百丈)의 이야기를 듣고 '마조(馬祖)의 대기대용을 보았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12. 活潑潑地·水灑不著 활발발지·수쇄불저

    생동하여 걸림 없음이며, 물을 뿌려도 젖지 않아 경계에 물들지 않음이다. 원오의 상용구다.

  13.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14. 骨剉和尚一生有問只以骨剉也酬之如鐵彈子 골좌화상일생유문지이골좌야수지여철탄자

    골좌 화상(骨剉和尚)이 어떤 물음에나 '골좌야(骨剉也)' 한마디로만 답한 일을 말한다.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구지(俱胝)처럼, 한 마디로 끝까지 밀고 나간 가르침이다.

  15. 忠國師 충국사

    남양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775)다. 육조(六祖)의 법사이며 당(唐) 숙종(肅宗)·대종(代宗)의 국사(國師)였다.

  16. 本淨禪師 본정선사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667-761)이다. 육조(六祖)의 법사다. 충국사(忠國師)와의 문답 '견기언묘구시여하(見奇言妙句時如何)—무일념심애(無一念心愛)—시여옥리사(是汝屋裏事)'는 전등계(傳燈系) 등록(燈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계열)에 전하며, 정확한 권차는 확인이 필요하다.

  17.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18. 六祖慧能 육조혜능

    중국 선종의 여섯째 조사(638~713)다. 신주(新州)에서 나무를 팔던 사람으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가 법을 이었다. 소주(韶州) 조계의 보림사(寶林寺)에서 가르침을 펴 '조계'라고도 불린다. 남종선을 열었고, 뒤의 선종 여러 갈래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19. 本分草料 본분초료

    제 몫에 꼭 맞는 꼴과 여물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상대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참된 처방, 흔히 말에 매인 이에게 내리는 방망이나 꾸짖음을 이른다. 『벽암록』의 촌평에 자주 나온다.

  20. 新州 신주

    당나라 영남(嶺南)의 고을로, 지금의 중국 광동성 신흥 일대이다. 육조 혜능(慧能)이 자라며 나무를 해다 팔던 곳이다. 혜능은 만년에 이곳 옛집을 절로 삼은 국은사(國恩寺)로 돌아가 입적했다.

  21. 師子兒 사자아

    사자 새끼라는 말이다. 사자 새끼가 어려서부터 사자의 기상을 지니듯, 부처와 조사의 법을 이어받을 만한 참된 제자를 비유한다. 영가(永嘉)의 『증도가』에 사자 새끼는 세 살이면 크게 포효한다는 구절이 있다.

  22. 示顯上人·住蘇州崑山惠嚴 시현상인·주소주곤산혜엄

    심요(心要) 제16편의 수신자다. 소주(蘇州) 곤산(崑山) 혜엄선원(惠嚴禪院)에 주석한 현(顯) 상인으로 생평은 미상이다.

  23. 五祖弘忍 오조홍인

    중국 선종의 다섯째 조사 홍인(弘忍, 602~675)이다. 기주(蘄州) 황매(黃梅) 사람으로 사조 도신(道信)의 법을 잇고 황매 동산(東山)에서 가르쳐, 그 가르침을 동산법문이라 한다. 당나라 대종(代宗)이 내린 시호가 대만선사(大滿禪師)여서 '대만'이라고도 부른다. 혜능(慧能)에게 법을 전했다.

  24. 空劫·空劫那邊 공겁·공겁나변

    성주괴공(成住壞空) 4겁 중 공겁(空劫)으로 세계 생성 이전이다. '공겁나변(空劫那邊)'은 '위음나반(威音那畔)'과 같은 뜻이며 언어·분별 이전의 자기다.

  25. 骨剉和尚 골좌화상

    골좌화상(骨剉和尚)은 당나라 항주(杭州) 나한원(羅漢院)의 종철(宗徹) 선사다.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다. 누가 무엇을 물어도 '골좌야(骨剉也)'라고만 답해, 사람들이 골좌 화상이라 불렀다.

  26. 淨倮倮·淨裸裸·乾曝曝地 정라라·정라라·건폭폭지

    발가벗은 듯 일물(一物)도 없는 청정한 경계이며, 바싹 말라 아무것도 붙지 않는 깨끗함이다.

  27. 鐵彈子 철탄자

    쇠탄환이다. 물어뜯을 수 없는 준엄한 기어(機語)의 비유로 '긴초(緊峭)'와 호응한다.

  28. 透出空劫那邊·威音王猶是兒孫 투출공겁나변·위음왕유시아손

    공겁 저편까지 뚫고 나가면 위음왕불조차 오히려 자손뻘이라는 말이다. 공겁은 세계가 무너진 뒤 다음 세계가 생기기 전의 텅 빈 때이고, 위음왕불은 아득한 옛적의 부처로 선가에서는 맨 처음 부처로 친다. 어떤 시작보다도 앞선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황벽이 '위음왕 이전'이라 하자 남전이 '그래도 이 늙은이의 자손이다'라고 받은 문답(오등회원 권3)과 같은 결이다.

  29. 六祖新州·一鬻樵人·目不識字·遇大滿·著著透脫 육조신주·일육초인·목불식자·우대만·저저투탈

    육조 혜능의 내력을 줄여 이른 말이다. 혜능은 신주에서 땔나무를 팔아 늙은 어머니를 모시던 나무꾼으로 글을 알지 못했으나, 오조 홍인(시호 대만선사)을 만나 낱낱이 뚫고 벗어나 법을 이었다(육조단경).

  30. 淨倮倮·淨裸裸 정라라·정라라

    발가벗은 듯 一物도 없는 청정한 경계이며, 바싹 말라 아무것도 붙지 않는 깨끗함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