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2편

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示禪人

42.1
한문大凡截生死流,濟無爲岸,無他奇特,只貴當人根器猛利,揭自胷㦗,了一切有爲有漏,如虗空花,元無實性,
번역무릇 나고 죽는 흐름을 끊고 함이 없는 언덕(無爲岸)으로 건너가는 데에는 달리 기특한 것이 없다. 오직 이것이 귀할 뿐이다. 그 사람의 근기(根器)가 굳세고 날카로워, 스스로 제 가슴속을 열어젖힌다. 함이 있고 새어 나가는(有爲有漏) 모든 것이 허공의 꽃과 같아, 본디 실다운 성품이 없음을 깨쳐 안다.
以照了之心,返自觀省,翻覆覰捕,審諦諦審,久之當有趣入之證。
밝게 비추어 아는 마음으로 도리어 스스로를 돌이켜 살핀다. 뒤집고 또 뒤집어 엿보아 붙잡는다. 자세히 살피고 또 살핀다. 오래 하면 마땅히 깨쳐 들어가는 증험이 있을 것이다.
蓋此段並非他物,亦非他人能著力令自己省發,
대개 이 일은 결코 다른 물건이 아니다. 또 남이 힘을 써서 자기를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如人負千斤擔子,當由己有如許力量,方能堪可,若氣小力弱,則被他壓倒去也。
사람이 천 근 짐을 지는 것과 같다. 자기에게 그만한 힘이 있어야 비로소 감당할 수 있다. 기운이 작고 힘이 약하면, 그 짐에 눌려 쓰러지고 만다.
쉽게 읽기무릇 나고 죽는 흐름을 끊고 함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데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오직 그 사람의 그릇이 굳세고 날카로워야 한다. 스스로 제 가슴속을 활짝 열어젖히고, 유위유루, 곧 함이 있고 새어 나가는 것들이 모두 허공에 핀 헛꽃과 같아 본디 참된 성품이 없음을 사무쳐 알아야 한다. 이것이 귀할 뿐이다. 그리하여 밝게 비추어 아는 마음으로 도리어 자기를 돌이켜 살핀다. 뒤집고 또 뒤집어 엿보아 붙잡고, 자세히 살피고 또 살피기를 오래 하면 마땅히 깨쳐 드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무릇 이 일은 결코 다른 물건이 아니다. 남이 힘을 써서 나를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천 근짜리 짐을 질 때 제 몸에 그만한 힘이 있어야 감당하는 것과 같다. 기운이 작고 힘이 여리면 도리어 그 짐에 눌려 쓰러지고 만다.
풀이 4
有爲有漏 유위유루'了一切有爲有漏 如虛空花 元無實性' — 생사의 흐름을 끊는 요체로 有爲有漏가 空華처럼 實性이 없음을 了達하라고 한다.
根器 근기'只貴當人根器猛利'는 바로 뒤의 비유 '如人負千斤擔子,當由己有如許力量'으로 이어진다. 끝 단락의 '況自具猛利根性'이 이 말을 다시 받는다.
42.2
한문所以道:大人具大見,大智得大用。大丈夫漢打辦精彩,豈可向山鬼窟子裏作活計?有甚出徹之期?
번역그러므로 말했다. “큰 사람은 큰 견해를 갖추고, 큰 지혜는 큰 작용을 얻는다.” 대장부라면 정신을 가다듬어 기운(精彩)을 떨쳐야 한다. 어찌 산도깨비 굴속에서 살림살이를 하겠는가? 거기서 무슨 뚫고 나올 기약이 있겠는가?
應須發不可測、不可量,荷負大事,超情離見,卓絕頴邁之志,直下透脫,
마땅히 헤아릴 수도 잴 수도 없으며, 큰일을 짊어지고, 정(情)을 뛰어넘어 견해를 여읜, 우뚝하고 빼어난 뜻을 내어야 한다. 그 뜻으로 곧바로 뚫고 벗어나야 한다.
擺撥無始以來妄想輪迴、彼我得失、是非榮辱、穢濁之心,令淨穢兩邊都不依怙,翛然獨脫,不依倚一物,
시작 없는 옛적부터의 망상과 윤회, 너와 나, 얻음과 잃음, 옳음과 그름, 영예와 치욕이라는 더럽고 탁한 마음을 떨쳐 버려야 한다. 깨끗함과 더러움, 두 가장자리 어디에도 기대지 않게 해야 한다. 훌쩍 홀로 벗어나 한 물건에도 기대지 않아야 한다.
向千聖未有消息時,生佛世間、出世間不曾顯露處,一念不生,前後際斷,蹋著本地風光,明見本來面目,
천 성인도 아직 소식이 없던 때, 중생과 부처, 세간과 출세간이 일찍이 드러나지 않은 자리를 향해야 한다. 한 생각도 나지 않고 앞뒤의 끝이 끊어져, 본래 자리의 풍광(本地風光)을 밟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밝게 보아야 한다.
承當得直下牢固,無毫髮見刺,內外融通,蕩蕩然得大安穩,乃轉身吐氣於這邊來,
곧바로 떠맡아 굳건해야 한다. 털끝만큼의 견해의 가시(見刺)도 없이 안팎이 녹아 통하고, 텅 트여 크나큰 안온함을 얻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몸을 돌려 숨을 내쉬며 이쪽으로 돌아온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큰 사람은 큰 견해를 갖추고, 큰 지혜는 큰 작용을 얻는다'고 하였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떨쳐야 한다. 어찌 산도깨비 굴속을 향해 살림을 차리려 하겠는가. 그런 데서 무슨 뚫고 나올 길이 있겠는가. 마땅히 헤아릴 수도 잴 수도 없는 큰 뜻을 내어 큰일을 짊어져야 한다. 정을 뛰어넘고 견해를 여의어, 우뚝하고 빼어난 뜻으로 곧바로 뚫고 벗어나야 한다. 시작 없는 옛적부터의 헛된 생각과 나고 죽는 굴레, 그리고 너와 나, 얻음과 잃음, 옳음과 그름, 기림과 욕됨이라는 더럽고 흐린 마음을 다 떨쳐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깨끗함과 더러움, 그 두 가장자리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다. 훌쩍 홀로 벗어나 한 물건에도 기대지 않는다. 그리하여 온갖 성인도 아직 소식이 없던 때, 중생과 부처, 세간과 세간을 벗어난 자리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곳을 향한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 경계가 뚝 끊어져, 본래 제 자리의 풍광을 밟고 본래의 면목을 환히 보아야 한다. 곧바로 받아 지녀 굳건히 서서, 털끝만 한 견해의 가시도 없이 안팎이 두렷이 하나로 통한다. 텅 비어 걸림이 없고 크나큰 안온을 얻는다. 그런 뒤에라야 비로소 몸을 돌리고 숨을 내쉬며 이쪽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풀이 3
示衆 시중'一念不生,前後際斷,蹋著本地風光,明見本來面目'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3의 '踏著本地風光、明見本來面目'과 거의 같은 짝말이다(병렬용례).
示衆 시중《원오어록(圜悟語錄)》 시중(示衆)·법어류에 상투적으로 나오는 '본지풍광(本地風光), 본래면목(本來面目)' 대구와 '일념불생(一念不生), 전후제단(前後際斷)'이다. 깨침의 자리를 가리키는 원오 상용 표현으로 본문과 그대로 겹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應須發不可測、不可量…卓絕頴邁之志
양립가능이독. 책은 '不可測·不可量'을 뒤의 '大事'에 붙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일'로 읽고, 자체역은 '發…之志'를 한 틀로 보아 '不可測·不可量' 이하를 모두 '志'의 수식으로 읽었다. 구문 분석상의 이독으로, '發…之志' 틀에 밀착한 자체역이 자구에 더 가까우나 책도 오역은 아니어서 결정적 전거로 어느 한쪽을 확정하기 어렵다.
42.3
한문自然日用之中,凡百施爲之際,一一朝宗返本,豈是分外事耶?
번역그러면 저절로 날마다 쓰는 가운데, 온갖 일을 하는 즈음에 낱낱이 근원으로 모여들고 근본으로 돌아간다.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는가?
雖喫飯著衣,修世間法,無不如如,無不通透,無不與所證正體相應,更論甚高低向背?纔生見刺,卽刺卻命根。
밥 먹고 옷 입으며 세간의 법을 닦더라도, 여여(如如)하지 않음이 없다. 사무쳐 통하지 않음이 없다. 깨달은 바른 본체와 서로 맞지 않음이 없다. 그러니 다시 무슨 높고 낮음, 향함과 등짐을 따지겠는가? 견해의 가시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곧 목숨의 뿌리(命根)를 찔러 버린다.
爾祖師及古宿德,行棒行喝,作用百千億種,無他志元,只令人自透脫,自休歇。
저 조사(祖師)와 옛 큰스님들이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하며 백천억 가지 작용을 지은 것도 다른 본뜻이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뚫고 벗어나고, 스스로 쉬게 하려는 것이었다.
쉽게 읽기그러면 자연히 하루하루 온갖 일을 하는 사이에 낱낱이 근본 자리로 모여들고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는가. 비록 밥 먹고 옷 입으며 세간의 법을 닦더라도, 있는 그대로 한결같지 않음이 없다. 사무쳐 통하지 않음이 없고, 깨쳐 얻은 바른 바탕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 무슨 높고 낮음이나 향하고 등짐을 따지겠는가. 조금이라도 견해의 가시가 돋으면 곧 목숨줄을 찔러 죽인다. 저 조사와 옛 큰스님들이 몽둥이질인 방을 쓰고 고함인 할을 하며 백천억 가지 작용을 지은 것도 다른 뜻이 아니다.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뚫고 벗어나고 스스로 쉬게 하려는 것이었다.
풀이 2
行棒行喝 행방행할'行棒行喝,作用百千億種,無他志元,只令人自透脫,自休歇' — 棒喝의 뜻을 自透脫·自休歇로 못 박은 대목.
42.4
한문如大死人,豈只了自己度世便休,勉有餘乃不忘悲願,推此以發未悟,居人間世,汎然若不繫之舟,喚作無心道人。
번역크게 죽은 사람(大死人)과 같아야 한다. 어찌 자기 한 몸이 세상을 건너기를 마쳤다고 곧 그만두겠는가? 힘쓰고도 남음이 있어 자비의 서원(悲願)을 잊지 않는다. 이를 미루어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일깨운다. 사람 세상에 머물되 매이지 않은 배처럼 두둥실 떠다닌다. 이를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부른다.
今既未能頓了頓明,且放教若身若心空勞勞地,虗寂既久,驀地打破漆桶,到桶底子脫處也不難,
이제 단박에 깨쳐 마치고 단박에 밝히지 못했다면, 우선 몸이든 마음이든 부질없이 헛되이 애쓰는 자리에 놓아 두어라. 텅 비고 고요하기를 오래 하면, 문득 칠통(漆桶)을 쳐부순다. 통 밑바닥이 빠지는 자리에 이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
況自具猛利根性,荷負佛事,作爲殊特奇勝之緣,此豈借別人力耶?
하물며 스스로 굳세고 날카로운 근성을 갖추어 부처의 일을 짊어지고, 남다르고 뛰어난 인연을 짓는 데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어찌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이겠는가?
是故古者道:學道須是鐵漢,著手心頭便拌。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했다.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무쇠 같은 사나이(鐵漢)라야 한다. 손을 대자마자 마음자리에서 곧바로 떨쳐 던져 버려라.”
쉽게 읽기크게 죽은 사람과 같아야 한다. 어찌 제 한 몸이 세상을 건너기를 마쳤다 하여 곧 그만두겠는가. 힘을 다 쓰고도 남음이 있어 가엾이 여겨 건지려는 서원을 잊지 않는다. 이를 미루어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일깨운다. 사람 세상에 머물되 매어 두지 않은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니, 이런 이를 무심도인이라 한다. 이제 비록 단박에 사무쳐 알고 단박에 밝히지는 못하였더라도, 우선 몸이든 마음이든 부질없이 애쓰는 자리에 놓아두어 텅 비고 고요하기를 오래 하라. 그러면 문득 캄캄한 무명의 옻통, 곧 칠통을 쳐부수게 된다. 그 밑바닥이 쑥 빠져 버리는 자리에 이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물며 스스로 굳세고 날카로운 근성을 갖추어 부처의 일을 짊어지고, 남다른 뛰어난 인연을 짓는 이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어찌 남의 힘을 빌리는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이르기를, '도를 배우려면 무쇠 같은 사나이라야 하니, 손을 대자마자 마음자리에서 곧바로 모두 떨쳐 던져 버리라'고 하였다.
풀이 12
學道須是鐵漢 학도수시철한'古者'는 李遵勖. 여기서는 悟道頌 넉 구 가운데 앞 두 구만 들었다.
無心道人 무심도인'汎然若不繫之舟'는 『莊子』 列禦寇의 '飽食而遨遊,汎若不繫之舟'에서 온 말로, 세간에 머물되 매이지 않는 無心道人의 모습에 빌려 썼다.
大死人 대사인'如大死人,豈只了自己度世便休,勉有餘乃不忘悲願,推此以發未悟' — 大死 뒤 自度에 그치지 않고 悲願으로 未悟를 일깨운다는 대목. 大死卻活의 '活'을 利他로 푼 쓰임.
悲願〔병렬용례〕 《碧巖錄》 제41칙 '趙州大死底人卻活'의 본칙·평창이다. 조주가 투자에게 '大死底人卻活時如何'라 물은 공안으로, 본문 '如大死人…不忘悲願(죽음 속에서 다시 살아 悲願을 행함)'과 직결되는 원오 자신의 대표 용례이다.
漆桶·桶底子脫 칠통·통저자탈《벽암록(碧巖錄)》 여러 칙(제2칙 등)에 거듭 나오는 '흑산하귀굴리작활계(黑山下鬼窟裏作活計)'와 '타파칠통(打破漆桶)·통저탈(桶底脫)' 어법이다. 본문 '산귀굴자리작활계(山鬼窟子裏作活計)'·'타파칠통(打破漆桶)…통저자탈(桶底子脫)'과 같은 고선(枯禪) 비판·개오(開悟) 비유의 병렬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如大死人
양립가능이독. 저본에 구두가 없어, 앞구 '令人…自休歇'에 붙여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쉬게 한다'로 읽는 책과, 뒷구의 주어로 삼아 '크게 죽은 사람과 같아야 하니'로 읽는 자체역이 모두 성립한다. 뒤의 '豈只…便休' 반어 흐름에는 자체역의 구두가 더 자연스러우나 이를 배제할 결정적 전거는 없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豈只了自己度世便休
책 오역. 책 '어찌 자기만…쉬어버렸는가'는 度世(자기 제도)와 便休(곧 그침)를 잘못 갈라 뜻을 뒤틀었다. 본의는 '어찌 자기 한 몸이 세상 건너기를 마쳤다 하여 곧 그만두겠는가'의 반어이며, 내 번역이 정역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且放教若身若心空勞勞地
양립가능이독(책 과소역). 책 '몸과 마음을 놓아버려 텅 비게'는 '空'만 살리고 '勞勞(부질없이 수고로움)'의 뉘앙스를 줄였으며, 자체역 '부질없이 헛되이 애쓰는 자리에 놓아 두어'가 자구에 더 밀착한다. 다만 책도 오역은 아니라 과소역 수준이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교감 · 著手心頭便拌'著手心頭便拌'의 '拌' — 『五燈會元』 권12(X80n1565_p0246a05)·『圜悟佛果禪師語錄』 권13(T47n1997_p0773c05)에는 '判'(가르다)이다. 이 역주는 저본 세 곳(上2·下4·下42)이 모두 拌이므로 저본대로 拌(=拚, 내던지다)으로 읽는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1
  1. 有爲有漏 유위유루

    유위(有爲)는 인연이 모여 지어진 것, 유루(有漏)는 번뇌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둘을 아울러 생겨났다 사라지며 번뇌에 물든 세간의 모든 일을 이른다. 반대말은 무위(無爲)·무루(無漏)다.

  2. 虗空花 허공화

    허공화(虛空華)(곧 공화(空華))이다. 눈병 난 이가 허공에서 헛꽃을 보듯 실체 없는 헛것의 비유이다. 《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의 공화(空華) 비유에 근거한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이다.

  3. 大人具大見 대인구대견

    '큰 사람은 큰 견해를 갖추고 큰 지혜는 큰 작용을 얻는다'이다. 근기의 크기가 곧 見(견)·用(용)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대구(對句)이며 정확한 출전은 미상이다.

  4. 山鬼窟子 산귀굴자

    산도깨비 굴이다. 곧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의 줄임말이다. 고요·무기(無記)에 빠져 죽은 선(枯禪)을 지어 살림 삼는 병통을 꾸짖는 선가의 상투어이다. 원오·대혜(大慧) 계열이 묵조 유의 침공(沈空)을 경계할 때 즐겨 썼다.

  5. 前後際斷 전후제단

    앞뒤의 끝이 끊어졌다는 말이다. 지나간 생각과 다가올 생각이 이어지지 않아, 지금 이 자리만 오롯이 드러남을 이른다. 흔히 '일념불생(一念不生)'과 함께 쓴다.

  6. 朝宗返本 조종반본

    조종반본이다. 조종(朝宗)은 《서경(書經)·우공(禹貢)》 '강한조종우해(江漢朝宗于海)'에서 온 말로, 온갖 강물이 바다로 돌아가듯 일상의 만행(萬行)이 낱낱이 근본으로 귀결됨을 뜻한다.

  7. 命根 명근

    목숨의 뿌리, 곧 목숨줄이다. '명근을 찌른다(刺卻命根)'는 말은, 조금이라도 얻고 잃음을 따지거나 제 견해를 세우면 그것이 곧 치명상이 된다는 경책이다.

  8. 大死人 대사인

    크게 죽은 사람, 곧 분별과 알음알이가 다 끊어져 숨마저 멎은 듯한 사람이다. 조주(趙州)가 투자(投子)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도로 살아날 때는 어떠한가' 물은 문답이 유명하다.

  9. 不繫之舟 불계지주

    매어 두지 않은 배이다. 《장자(莊子)·열어구(列御寇)》의 '汎若不繫之舟(범약불계지주)'에서 유래하였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떠도는 무심도인(無心道人)의 비유이다.

  10. 無心道人 무심도인

    분별하고 꾸미는 마음이 다 쉬어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도인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전심법요』에 ‘시방의 부처를 공양함이 무심도인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11. 學道須是鐵漢 학도수시철한

    송나라 부마도위 이준욱(李遵勖)이 석문(石門) 곧 곡은온총의 말끝에 크게 깨치고 지은 게송이다. '도를 배우려면 무쇠 같은 사나이라야 한다'로 시작해, 손대는 즉시 결판내고 옳고 그름에 매이지 말라고 잇는다.

  12.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13. 本來面目 본래면목

    본디 그대로의 제 참모습, 곧 분별 이전의 참 나를 이른다. 육조 혜능(慧能)이 혜명(惠明)에게 한 물음에서 널리 퍼졌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14.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15.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16. 示衆 시중

    스승이 대중 앞에서 법을 일러 보이는 일, 또는 그 말을 이른다. 선종 어록에서는 법당에 올라 하는 상당(上堂), 저녁에 하는 소참(小參)과 함께 설법의 한 갈래로 묶인다.

  17. 無爲岸 무위안

    무위(無爲)(조작 없는 열반)의 언덕이다. 앞의 생사류(生死流)(생사의 흐름)와 짝을 이루어, 생사를 끊고 건너가는 열반의 저 언덕(彼岸)을 가리킨다. 유위(有爲)의 상대어이다.

  18. 根器 근기

    수행자가 본디 타고난 자질과 역량이다. 뿌리처럼 타고난 힘과 그것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로, 가르침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의 크기를 이른다.

  19. 漆桶·桶底子脫 칠통·통저자탈

    칠통(漆桶)(옻칠한 검은 통)은 캄캄한 무명(無明)·미혹의 비유이다. 이를 쳐부수고(打破漆桶) 통 밑바닥이 쑥 빠지면(桶底脫) 확철히 깨침을 뜻하는 선가의 상투 비유이다.

  20. 大人具大見·大智得大用 대인구대견·대지득대용

    '큰 사람은 큰 견해를 갖추고 큰 지혜는 큰 작용을 얻는다'이다. 근기의 크기가 곧 견(見)·용(用)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대구(對句)이며 정확한 출전은 미상이다.

  21. 開悟 개오

    미혹을 열고 깨달음. 지혜가 열려 진리를 깨치는 일을 두루 이른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