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2편
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示禪人
풀이 4
풀이 3
양립가능이독. 책은 '不可測·不可量'을 뒤의 '大事'에 붙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일'로 읽고, 자체역은 '發…之志'를 한 틀로 보아 '不可測·不可量' 이하를 모두 '志'의 수식으로 읽었다. 구문 분석상의 이독으로, '發…之志' 틀에 밀착한 자체역이 자구에 더 가까우나 책도 오역은 아니어서 결정적 전거로 어느 한쪽을 확정하기 어렵다.
풀이 12
양립가능이독. 저본에 구두가 없어, 앞구 '令人…自休歇'에 붙여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쉬게 한다'로 읽는 책과, 뒷구의 주어로 삼아 '크게 죽은 사람과 같아야 하니'로 읽는 자체역이 모두 성립한다. 뒤의 '豈只…便休' 반어 흐름에는 자체역의 구두가 더 자연스러우나 이를 배제할 결정적 전거는 없다.
책 오역. 책 '어찌 자기만…쉬어버렸는가'는 度世(자기 제도)와 便休(곧 그침)를 잘못 갈라 뜻을 뒤틀었다. 본의는 '어찌 자기 한 몸이 세상 건너기를 마쳤다 하여 곧 그만두겠는가'의 반어이며, 내 번역이 정역이다.
양립가능이독(책 과소역). 책 '몸과 마음을 놓아버려 텅 비게'는 '空'만 살리고 '勞勞(부질없이 수고로움)'의 뉘앙스를 줄였으며, 자체역 '부질없이 헛되이 애쓰는 자리에 놓아 두어'가 자구에 더 밀착한다. 다만 책도 오역은 아니라 과소역 수준이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이 편의 낱말 21
- 有爲有漏 유위유루
유위(有爲)는 인연이 모여 지어진 것, 유루(有漏)는 번뇌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둘을 아울러 생겨났다 사라지며 번뇌에 물든 세간의 모든 일을 이른다. 반대말은 무위(無爲)·무루(無漏)다.
- 虗空花 허공화
허공화(虛空華)(곧 공화(空華))이다. 눈병 난 이가 허공에서 헛꽃을 보듯 실체 없는 헛것의 비유이다. 《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의 공화(空華) 비유에 근거한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이다.
- 大人具大見 대인구대견
'큰 사람은 큰 견해를 갖추고 큰 지혜는 큰 작용을 얻는다'이다. 근기의 크기가 곧 見(견)·用(용)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대구(對句)이며 정확한 출전은 미상이다.
- 山鬼窟子 산귀굴자
산도깨비 굴이다. 곧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의 줄임말이다. 고요·무기(無記)에 빠져 죽은 선(枯禪)을 지어 살림 삼는 병통을 꾸짖는 선가의 상투어이다. 원오·대혜(大慧) 계열이 묵조 유의 침공(沈空)을 경계할 때 즐겨 썼다.
- 前後際斷 전후제단
앞뒤의 끝이 끊어졌다는 말이다. 지나간 생각과 다가올 생각이 이어지지 않아, 지금 이 자리만 오롯이 드러남을 이른다. 흔히 '일념불생(一念不生)'과 함께 쓴다.
- 朝宗返本 조종반본
조종반본이다. 조종(朝宗)은 《서경(書經)·우공(禹貢)》 '강한조종우해(江漢朝宗于海)'에서 온 말로, 온갖 강물이 바다로 돌아가듯 일상의 만행(萬行)이 낱낱이 근본으로 귀결됨을 뜻한다.
- 命根 명근
목숨의 뿌리, 곧 목숨줄이다. '명근을 찌른다(刺卻命根)'는 말은, 조금이라도 얻고 잃음을 따지거나 제 견해를 세우면 그것이 곧 치명상이 된다는 경책이다.
- 大死人 대사인
크게 죽은 사람, 곧 분별과 알음알이가 다 끊어져 숨마저 멎은 듯한 사람이다. 조주(趙州)가 투자(投子)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도로 살아날 때는 어떠한가' 물은 문답이 유명하다.
- 不繫之舟 불계지주
매어 두지 않은 배이다. 《장자(莊子)·열어구(列御寇)》의 '汎若不繫之舟(범약불계지주)'에서 유래하였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떠도는 무심도인(無心道人)의 비유이다.
- 無心道人 무심도인
분별하고 꾸미는 마음이 다 쉬어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도인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전심법요』에 ‘시방의 부처를 공양함이 무심도인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 學道須是鐵漢 학도수시철한
송나라 부마도위 이준욱(李遵勖)이 석문(石門) 곧 곡은온총의 말끝에 크게 깨치고 지은 게송이다. '도를 배우려면 무쇠 같은 사나이라야 한다'로 시작해, 손대는 즉시 결판내고 옳고 그름에 매이지 말라고 잇는다.
-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 本來面目 본래면목
본디 그대로의 제 참모습, 곧 분별 이전의 참 나를 이른다. 육조 혜능(慧能)이 혜명(惠明)에게 한 물음에서 널리 퍼졌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 示衆 시중
스승이 대중 앞에서 법을 일러 보이는 일, 또는 그 말을 이른다. 선종 어록에서는 법당에 올라 하는 상당(上堂), 저녁에 하는 소참(小參)과 함께 설법의 한 갈래로 묶인다.
- 無爲岸 무위안
무위(無爲)(조작 없는 열반)의 언덕이다. 앞의 생사류(生死流)(생사의 흐름)와 짝을 이루어, 생사를 끊고 건너가는 열반의 저 언덕(彼岸)을 가리킨다. 유위(有爲)의 상대어이다.
- 根器 근기
수행자가 본디 타고난 자질과 역량이다. 뿌리처럼 타고난 힘과 그것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로, 가르침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의 크기를 이른다.
- 漆桶·
桶底子脫 칠통·통저자탈 칠통(漆桶)(옻칠한 검은 통)은 캄캄한 무명(無明)·미혹의 비유이다. 이를 쳐부수고(打破漆桶) 통 밑바닥이 쑥 빠지면(桶底脫) 확철히 깨침을 뜻하는 선가의 상투 비유이다.
- 大人具大見·
大智得大用 대인구대견·대지득대용 '큰 사람은 큰 견해를 갖추고 큰 지혜는 큰 작용을 얻는다'이다. 근기의 크기가 곧 견(見)·용(用)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대구(對句)이며 정확한 출전은 미상이다.
- 開悟 개오
미혹을 열고 깨달음. 지혜가 열려 진리를 깨치는 일을 두루 이른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