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29편

혜선인(慧禪人)에게 주는 글

示慧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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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한문水潦參馬祖,問佛法的的大意,馬祖與一蹋,遂大悟,
번역수료(水潦) 화상이 마조(馬祖)를 찾아뵙고, 불법(佛法)의 분명하고 분명한 큰 뜻을 물었다. 마조가 한 번 밟아 버렸다. 그러자 수료는 마침내 크게 깨달았다.
乃曰:百千法門、無量妙義,只向一毫頭上識得根源,豈不快哉?卽呵呵大笑,
그리고 말했다. “백천 가지 법문(法門)과 헤아릴 수 없는 묘한 뜻을, 그저 터럭 하나 끝에서 그 근원을 알아 버렸으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곧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以至平生示眾長云:自從一喫馬師蹋,直至如今笑未休。又復呵呵大笑,
그 뒤로 평생 대중에게 법을 보일 때면 늘 말했다. “마조 스님께 한 번 밟힌 뒤로, 지금까지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고는 또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쉽게 읽기수료 화상이 마조를 찾아갔다. 그리고 불법의 아주 분명한 큰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조가 발로 한 번 밟아 넘어뜨렸다. 그 순간 수료는 크게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가르침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을, 터럭 하나 끝에서 그 뿌리를 알아차렸습니다.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곧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 뒤로 평생 사람들 앞에서 법을 보일 때마다 늘 이렇게 말했다. “마조 스님께 한 번 밟힌 뒤로 지금까지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풀이 1
三昧수요피답(水潦被踏) 공안 자체가 오등회원(五燈會元) 권3 마조법사장(馬祖法嗣章)과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8에 '당흉도도(當胸蹈倒)…백천삼매무량묘의지향일호두상(百千三昧無量妙義只向一毫頭上)…자종일끽마사도직지여금소불휴(自從一喫馬師蹈直至如今笑不休)'로 실려 있다. 본문 서두 인용의 저본으로, 삼매(三昧)/법문(法門)과 불휴(不休)/미휴(未休) 대조의 근거이다.
29.2
한문蓋是存誠堅確,正覓入頭處未得,驀然遭蹋,便徹底承當擔荷,透脫無疑,尋吐出胸中所證,亦不復以別事。
번역이는 대개 정성스럽고 굳센 마음을 지니고서, 들어갈 곳(入頭處)을 찾되 아직 얻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밟히자, 곧바로 철저히 받아들여 짊어졌다. 훤히 꿰뚫고 벗어나 의심이 없었다. 이윽고 가슴속에 깨달은 것을 그대로 토해 냈고, 다시는 다른 일에 의지하지 않았다.
如今參學,若果諦實宗師,以一語一言、一機一境投之,撥著便轉,豈有難事?
지금 참학(參學)하는 이가 만약 참으로 진실하다면, 종사(宗師)가 한마디 말이나 한 기틀 한 경계를 던져 줄 때, 툭 건드리기만 해도 곧 굴러 돌아선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겠는가.
但患根浮識淺,飄然似風過樹頭,千回萬度提持亦未能便契,
다만 뿌리가 들뜨고 앎이 얕은 것이 걱정이다. 바람이 나뭇가지 끝을 스쳐 가듯 나부낀다. 그러면 천 번 만 번 들어 보여 주어도 곧바로 맞아떨어지지(契合) 못한다.
何況更被作情解者指爲無如是悟入之事?
하물며 다시 알음알이를 짓는 자들에게서, 이같이 깨달아 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지목당함에랴.
馬師水潦亦只如是一期建立,如此則直到驢年也未夢見在。
‘마조와 수료도 그저 이렇게 한때 세워 보인 것일 뿐이다.’ 이렇게 여긴다면, 나귀 해(驢年)가 되도록 꿈에도 보지 못한다.
쉽게 읽기이것은 이런 까닭이다. 수료는 마음이 정성스럽고 참되며 굳셌다. 다만 들어갈 곳을 찾으면서도 아직 얻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한 번 밟히자, 곧바로 그 뜻을 남김없이 받아들여 짊어졌다. 그리고 환히 꿰뚫고 벗어나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이윽고 가슴속에 깨달아 얻은 것을 그대로 쏟아 냈다. 다시는 다른 것에 기대지 않았다. 오늘날 공부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그가 참으로 참되다면, 스승이 한 마디 말이나 하나의 기틀과 경계를 던질 때 툭 건드리기만 해도 곧 돌아선다. 무엇이 어렵겠는가. 다만 걱정이 있다. 뿌리가 들뜨고 마음이 얕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바람이 나뭇가지 끝을 스쳐 가듯 나부낀다. 천 번 만 번 붙잡아 이끌어 주어도 곧바로 하나로 들어맞지 못한다. 게다가 알음알이로 이리저리 풀이하는 사람들에게 붙잡히기까지 한다. 그들은 이렇게 깨달아 드는 일 따위는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러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마조 스님과 수료 화상도 그저 이렇게 한때 세워 보였을 뿐이다’ 하고 여긴다면, 나귀 해가 되도록, 곧 영영 꿈에도 보지 못한다.
풀이 4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亦不復以別事
원 구문이 생략적이어서 두 읽기가 모두 성립한다. 자체역은 以를 '쓰다·의지하다'로 보아 '다시는 다른 일에 의지(쓰지) 않았다'로 읽고, 책은 別事를 '다른 일이 아님'으로 보아 '그것이 결코 다른 일은 아니다'로 읽는다. 깨달은 뒤 그저 웃기만 하는 문맥상 '다른 방편을 다시 쓰지 않았다'가 자연스러워 자체역을 유지하되 양립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撥著便轉
'撥著便轉'은 스승의 一機에 학인이 즉각 응하는 선가 상투 표현으로, 撥著은 '툭 건드림', 便轉은 '곧 굴러 돌아섬'이다. 자체역 '툭 건드리기만 해도 곧 굴러 돌아선다'가 이 즉응성에 부합한다. 撥을 '헤치다', 轉을 '나아가다'로 느슨히 옮긴 책의 '(경계를) 헤치면서 나아간다'는 기봉의 즉응성을 잃은 오독이므로 자체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一期建立如此。則直到驢年也
문장 분절이 갈린다. 책은 '一期建立如此'를 앞 마조·수료 문장에 붙여 '이처럼 한번에 건립하였을 뿐'으로 읽고 뒤를 '則直到驢年…'으로 끊는다. 자체역은 '如此~則'을 조건 구문으로 보아, 앞 구 馬師水潦亦只如是一期建立을 알음알이 짓는 자들의 말로 받아 '이렇게 여긴다면 나귀 해가 되도록 꿈에도 보지 못한다'로 읽는다(亦只의 깎아내리는 말씨 · 앞의 徹底承當 찬탄과 맞음). 則의 조건 구조상 자체역이 문법적으로 더 정합적이나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한다.
교감 · 胸中'胸中'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64c07). 이체이며 뜻이 같다.
29.3
한문是故學道唯尚諦信,慧禪人操履甚專,聊出此以示方便耳。
번역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데는 오직 참된 믿음을 높일 뿐이다. 혜선인(慧禪人)은 지조와 행실이 매우 한결같다. 그래서 그저 이것을 내어 방편(方便)으로 보일 따름이다.
若論此事,如擊石火,似閃電光,明得明不得,未免喪身失命。
이 일을 말하자면, 부싯돌 불꽃 같고 번쩍이는 번갯빛 같다. 밝혀 얻든 밝혀 얻지 못하든, 몸을 잃고 목숨을 잃기를 면치 못한다.
只如明不得喪身失命,則固是明得,因什麼也喪身失命?
밝혀 얻지 못하여 몸을 잃고 목숨을 잃는 것이야 본래 그렇다. 그런데 밝혀 얻고서는 무엇 때문에 또 몸을 잃고 목숨을 잃는가.
多少人到此疑著,殊不知及得盡,方到命根斷處,換卻心肝五臟,與向上齊等。
많은 사람이 여기에 이르러 의심에 걸린다. 그들은 전혀 모른다. 끝까지 다 얻어야 비로소 목숨 뿌리(命根)가 끊어지는 자리에 이른다. 심장과 간과 오장을 바꾸어, 향상(向上)과 나란히 같아진다.
所以道:直下似懸崖撒手,然後乃生鐵鑄就。
그래서 말한다. 당장 벼랑에서 손을 놓아 버리듯 하라. 그런 뒤에야 무쇠를 새로 부어 만든 듯 된다.
喚作透出荊棘林,不疑天下老漢舌頭,信有真的參學分。
이를 일러 가시덤불 숲을 뚫고 나온다고 한다. 천하 노스님들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고, 참으로 참학할 몫이 있음을 믿는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데는 오직 참된 믿음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혜 선인은 지조와 수행이 무척 한결같다. 그래서 그저 이 글을 지어 방편으로 보일 따름이다. 이 일을 말해 보자. 그것은 부싯돌이 튀는 불꽃 같고, 번쩍이는 번갯빛 같다. 밝혀 얻든 못 얻든, 몸을 잃고 목숨을 잃는 일을 피하지 못한다. 밝히지 못해 몸과 목숨을 잃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런데 밝혀 얻고서도 어째서 또 몸과 목숨을 잃는가. 수많은 사람이 여기서 의심에 걸린다. 이들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끝까지 다 얻고 나서야 비로소 목숨의 뿌리가 끊어지는 자리에 이른다. 그제야 심장과 간장과 오장을 통째로 바꾸어, 저 높은 자리와 나란해진다. 이것을 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당장 벼랑 끝에서 손을 탁 놓아 버리듯 하라. 그런 뒤에야 무쇠를 새로 부어 만든 것처럼 된다. 이를 일러 가시덤불 숲을 뚫고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천하 노스님들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는다. 참으로 참학할 진실한 분수가 있음을 믿는 것이다.
풀이 10
擊石火閃電光 격석화섬전광'如擊石火,似閃電光,明得明不得,未免喪身失命'은 保福從展 示衆 '…搆得搆不得,未免喪身失命'(『聯燈會要』 권24)의 '搆得搆不得'을 '明得明不得'으로 바꾼 꼴. 『碧巖錄』 제16칙 評唱에도 같은 구('構得構不得')가 보인다.
擊石火閃電光 격석화섬전광'若論此事,如擊石火,似閃電光,明得明不得,未免喪身失命'은 『碧巖錄』 제26칙 評唱의 '如擊石火似閃電光'과 같은 꼴의 비유다.
生鐵鑄就 생철주취'直下似懸崖撒手,然後乃生鐵鑄就'는 懸崖撒手(大死)를 거쳐야 흔들림 없는 경지가 된다는 순서를 말한다. 『碧巖錄』 권3 '這般生鐵鑄就底漢'과 같은 쓰임.
懸崖撒手 현애살수벽암록(碧巖錄) 제41칙(조주(趙州) '대사저인각활(大死底人卻活)')의 원오(圜悟) 평창(評唱)에 나오는 '현애살수(懸崖撒手), 자긍승당(自肯承當), 절후재소(絕後再甦)'는 본문의 현애살수(懸崖撒手)·상신실명(喪身失命)·환각심간오장(換卻心肝五臓)(절후재소(絕後再甦))를 확정하는 직접 방증이다. 해당 칙은 대사저인(大死底人) 공안으로 확정된다.
碧巖錄전광석화(電光石火)(격석화(擊石火)·섬전광(閃電光))는 벽암록(碧巖錄) 여러 칙에서 원오(圜悟)가 쓴 상용어로, 기봉의 찰나성을 나타내는 원오 특유의 상투 표현이다.
懸崖撒手 현애살수벽암록(碧巖錄) 제41칙(趙州 '大死底人卻活')의 圜悟 評唱에 나오는 '懸崖撒手, 自肯承當, 絕後再甦'는 본문의 懸崖撒手·喪身失命·換卻心肝五臓(絕後再甦)를 확정하는 직접 방증이다. 해당 칙은 大死底人 공안으로 확정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然後乃生鐵鑄就,喚作透出荊棘林
인용 경계와 구문 분절이 다르다. 자체역은 喚作(~라 부름)을 살려 '무쇠로 새로 주조된 듯 되어, 이를 일러 가시덤불을 뚫고 나온다 한다'로 옮기고, 책은 生鐵鑄就를 주어로 삼아 '가시덤불을 뚫고 나왔다'는 인용으로 편입한다. 둘 다 통하며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하나, 자체역이 喚作에 더 충실하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2
  1. 佛法的的大意 불법적적대의

    '무엇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如何是佛法大意)?' 하는 물음이다. 부처가 전한 가르침의 참뜻을 단번에 묻는 말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과 함께 선문답에서 가장 흔히 나오는 물음이다. 임제(臨濟)가 황벽(黃檗)에게 이것을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은 일이 이름났다.

  2. 一蹋 일답

    마조가 가슴을 밟아 넘어뜨린 것이다(등록(燈錄) '당흉도도(當胸蹈倒)'). 도(蹈)·답(踏)·답(蹋)은 발로 밟음이나 걷어참을 뜻하는 통용자이다.

  3. 只向一毫頭上識得根源 지향일호두상식득근원

    수요(水潦)가 깨달은 뒤에 한 말이다. 등록본(燈錄本)은 '백천삼매무량묘의(百千三昧無量妙義), 지향일호두상편식득근원거(只向一毫頭上便識得根源去)'이며, 터럭 하나 끝에서 만법의 근원을 단박에 알아챈다는 뜻이다.

  4. 自從一喫馬師蹋直至如今笑未休 자종일끽마사답직지여금소미휴

    수요(水潦)가 평생 시중(示衆) 때마다 반복한 상투어이다. 등록본(燈錄本)은 '직지여금소불휴(直至如今笑不休)'로 되어 있다.

  5. 存誠慤確 존성각확

    정성되고(誠) 진실하며(각(慤)=각(愨)) 확고함(確)이다. 근기가 성실하나 아직 바른 견처를 얻지 못한 상태이다.

  6. 諦實 제실

    참되고 실답다는 말이다. 공부와 깨달음이 빈틈없이 참되어 실답게 이루어진 것을 이르며, 흔히 배우는 이의 참된 깨달음을 두고 쓴다.

  7. 作情解 작정해

    정식(情識)(알음알이)으로 헤아려 뜻을 풀이함이다. 선에서 가장 경계하는 지적 이해의 태도이다.

  8. 擊石火閃電光 격석화섬전광

    부싯돌을 쳐서 튀는 불꽃과 번쩍이는 번갯불이다. 헤아릴 틈 없이 빠른 것을 이르며, 선문에서는 깨달음의 기틀이 그러함을 비유한다. 흔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 한다.

  9. 喪身失命 상신실명

    알음알이와 목숨(命根)을 통째로 놓아 버리는 대사(大死)이다. 선에서 철저한 자기부정을 가리키는 상투어이다.

  10. 命根斷 명근단

    생사와 아집의 뿌리인 명근(命根)이 끊어짐이다. '대사일번(大死一番)'과 짝하는 표현이다.

  11. 換卻心肝五臓 환각심간오장

    심장·간·오장을 바꾼다는 것이다. 알음알이의 낡은 몸을 죽여 새로 태어나는 철저한 전환(絕後再甦)을 뜻한다.

  12. 懸崖撒手 현애살수

    깎아지른 벼랑에 매달려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는 말이다. 목숨처럼 붙들던 알음알이와 기댈 곳을 한꺼번에 놓아 버리는 결단을 이른다. '크게 한 번 죽는다(大死一番)'와 통한다.

  13. 生鐵鑄就 생철주취

    무쇠를 녹여 부어 만든 것 같다는 뜻이다. 깨친 이가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모습을 빗대는 말이다.

  14. 透出荊棘林 투출형극림

    가시덤불 숲을 뚫고 나옴이다. 알음알이와 경계의 얽힘을 벗어남을 비유한다.

  15.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16. 向上 향상

    위로 향한다는 말로, 부처와 조사의 자리마저 넘어선 그 위의 궁극을 이른다. 말과 단계가 끊어진 자리라 '향상일로'라고도 한다. 방편으로 내려오는 향하(向下)와 짝을 이룬다.

  17. 驢年 여년

    나귀 해라는 뜻이다. 십이지(十二支)에는 나귀 해가 없으므로 '끝내 오지 않는 때', 곧 '영영 ~하지 못한다'는 말로 쓴다.

  18. 水潦和尚 수료화상

    홍주(洪州) 수요화상(水潦和尚)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法嗣)이다. 서래의를 묻다가 마조에게 가슴을 밟혀 크게 깨달았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3과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8에 실리며, '수로(水老)'로도 표기한다.

  19. 慧禪人 혜선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시혜선인」을 지어 준 선객 혜이다.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고, 원오는 그 글에서 그를 '지조와 행실이 매우 한결같다'고 평하였다.

  20. 一踏 일답

    마조가 가슴을 밟아 넘어뜨린 것이다(燈錄 '當胸蹈倒'). 蹈·踏·蹋은 발로 밟음이나 걷어참을 뜻하는 통용자이다.

  21. 水潦被踏 수료피답

    洪州 水潦和尚이 馬祖에게 '如何是西來的的意'를 묻자 馬祖가 절하라 하고는 가슴을 밟아 넘어뜨렸다. 水潦는 일어나 손뼉 치고 크게 웃으며 '百千三昧,無量妙義,祇向一毫頭上識得根源去'라 하였고, 뒤에 늘 '自從一喫馬祖蹋,直至如今笑不休'라 하였다(『五燈會元』 권3, X80n1565_p0086c24; 『景德傳燈錄』 권8은 '水老和尚', T51n2076_p0262c08).

  22. 諦信 제신

    참된 믿음이다. 제(諦)는 참됨·진실함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4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