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16편

간장로(諫長老)에게 드리는 글

示諫長老 住蜀中無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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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한문趙州云:我在南方三十年,除粥飯二時是雜用心處。
번역조주(趙州)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남방(南方)에 삼십 년 있는 동안,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이 마음을 잡되게 쓴 자리였다.”
將知古德爲此箇事,不將作等閑,直是鄭重。
이로써 알 수 있다. 옛 큰스님(古德)들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결코 예사로 여기지 않으셨다. 참으로 정중하셨다.
所以操修覰捕到徹底分明,於一機一境、一句一言悉不落虗,是故世法佛法打成一片。
그러므로 잡아 닦고 살펴 붙들기를 속속들이 분명한 데까지 이르셨다. 한 기틀 한 경계(一機一境), 한 구절 한 마디에도 모두 헛되이 떨어지지 않으셨다. 이 때문에 세간법(世法)과 불법(佛法)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쉽게 읽기조주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남방에서 삼십 년을 지내는 동안,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 말고는 마음을 잡되게 쓴 적이 없다." 이 말로 알 수 있다. 옛 큰스님들은 이 일을 결코 예사로 여기지 않고 참으로 정중히 다루었다. 그래서 마음을 잡아 닦고 낱낱이 살펴 붙들기를 아주 또렷한 데까지 밀고 갔다. 한 기틀, 한 경계, 한 구절, 한 마디 말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세간법과 불법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풀이 2
趙州從諗 조주종심『趙州錄』 上堂에는 '老僧行脚時,除二時齋粥是雜用心力處,餘外更無別用心處'로 실렸다. '南方三十年'은 원오의 인용 꼴이며, 같은 글이 『圜悟語錄』 권14에도 있다.
16.2
한문今時要湊泊著實,須是猛利奮發、倒腸換肚,莫取惡知惡見、莫雜毒食,
번역요즈음 착실한 데에 가 닿으려면(湊泊), 반드시 사납고 날카롭게 떨쳐 일어나야 한다. 창자를 뒤집고 뱃속을 바꾸어야 한다. 나쁜 지견(惡知惡見)을 취하지 마시고, 독 든 음식을 뒤섞지 말라.
一味純正真淨妙明,直下蹋著本地風光,到安穩大解脫之地,
한결같은 맛으로 순수하고 바르며, 참되고 깨끗하며, 오묘하게 밝아야 한다. 그리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고, 편안한 큰 해탈(大解脫)의 땅에 이르러야 한다.
坐斷報化佛頭,凜凜孤危,風吹不入、水灑不著,正體現成,
보신불·화신불(報化佛)의 정수리를 앉은 채 끊어 버리면, 늠름히 홀로 우뚝하다. 바람이 불어도 들어오지 못하고, 물을 뿌려도 묻지 않는다. 바른 본체(正體)가 그대로 드러난다.
日用有力量,聞聲見色不生取舍,著著有出身之路。
날마다 쓰는 데에 힘이 있다. 소리를 듣고 빛깔을 보아도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한 수 한 수마다 몸을 빼낼 길(出身之路)이 있다.
쉽게 읽기요즈음 착실한 자리에 나아가 머무르려면, 모질고 날카롭게 떨쳐 일어나 창자를 뒤집고 뱃속을 갈아 끼우듯 해야 한다. 나쁜 앎과 그릇된 견해를 붙들지 말고, 독 든 음식을 함께 삼키지 말라. 오직 한결같이 순수하고 참되며, 맑고 오묘하게 밝아야 한다.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서 본지풍광을 걷어차 밟고, 편안한 큰 해탈의 자리에 이른다. 보신불·화신불의 정수리마저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리면, 홀로 우뚝 늠름하여 바람이 불어도 들어오지 못하고 물을 뿌려도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참된 본바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날마다 쓰는 살림에 힘이 실려, 소리를 듣고 빛을 보아도 붙잡거나 버리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니 하는 일마다 몸을 빼낼 길이 있게 된다.
풀이 4
湊泊 주박'今時要湊泊著實'은 '착실한 데 가 닿으려면'의 뜻으로, 흔한 '難湊泊'의 부정적 쓰임과 달리 긍정의 뜻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3) 원문 '莫雜毒食'은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앞 구 '莫取惡知惡見'과의 대구가 '莫+동사(取/雜)+목적어' 구조이므로, 雜(뒤섞다)+毒食(독든 음식)으로 끊어 '독든 음식을 뒤섞지 말라'로 읽는 자체역이 옳다. 책 '잡독을 먹지 않아서'는 雜毒+食으로 끊어 대구 구조를 깨뜨린다. '독든 음식을 먹다'는 뜻이라면 어순이 莫食雜毒으로 잡혔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원문 어순(莫雜毒食)은 雜을 동사로 보는 자체역을 지지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2) 원문 '坐斷報化佛頭'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하다. 자체역 '앉은 채 끊어 버리면'은 坐斷을 관용구(완전히 끊어 차단함)로 보아 報化佛見마저 초월한다는 뜻을 살린다. 책 '머리에 눌러앉아서'는 坐는 살리되 斷을 약화하나, 佛頂에 앉아 넘어선다(坐佛頂)는 선가의 이미지 또한 성립한다. 어느 쪽도 결정적 전거로 한쪽을 확정하기 어렵고, 報化佛을 초월한다는 취지로 수렴한다.
16.3
한문豈不見僧問九峰:見說和尚親見延壽,是否?峰云:山前麥熟也。
번역보지 못했는가. 어떤 스님이 구봉(九峰)에게 물었다. “듣자니 화상께서 연수(延壽)를 친히 뵈었다는데, 그러한가?” 구봉이 말했다. “산 앞의 보리는 익었느냐?”
未識得渠親切,近處便見衲僧巴鼻,所謂殺人刀、活人劒,
그의 친절하고 가까운 곳을 알아보면, 곧 납승(衲僧)의 콧구멍(巴鼻)을 본다. 이른바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사람을 살리는 칼(殺人刀活人劒)이다.
但請長時自著眼看,到出格時自然知落處也。
다만 오래도록 스스로 눈을 붙여 보아 가시라. 격식을 벗어나는 때(出格時)에 이르면, 저절로 떨어지는 곳(落處)을 알게 된다.
쉽게 읽기어찌 보지 못하였는가. 어떤 스님이 구봉에게 물었다. "듣자니 큰스님께서 연수 스님을 직접 만나 뵈었다는데, 정말입니까?" 구봉이 대답했다. "산 앞의 보리는 익었느냐?" 이 말이 얼마나 절실하고 가까운지를 알아차리면, 곧 납승의 콧구멍, 곧 반드시 붙잡아야 할 요처를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사람을 살리는 검이다. 다만 오래도록 스스로 눈을 대고 지켜보아, 격을 벗어나는 때에 이르면, 자연히 그 말이 떨어진 자리를 알게 된다.
풀이 3
九峰 구봉이 九峰은 延壽慧輪 아래에서 10년을 지낸 道詮(930~985)이다. '承聞和尚親見延壽來,是否'라는 물음에 '山前麥熟也未'로 답한 문답이 『景德傳燈錄』 권24(T51n2076_p0403b10)·『禪林僧寶傳』 권10(X79n1560_p0513c01)·『聯燈會要』 권27(X79n1557_p0233c15)에 그의 것으로 실렸다. 石霜慶諸의 法嗣 九峰道虔이 아니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巴鼻
책의 지나친 의역이다. 책은 '본면목[巴鼻]'으로 옮겼으나 巴鼻는 소 코뚜레, 곧 把柄·붙잡을 요처다. '본래면목'은 별개로 확립된 술어여서 과잉 의역이다. '콧구멍(巴鼻)'이 축자에 더 충실하다(요처 뜻을 주석함이 옳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1
  1. 除粥飯二時是雜用心處 제죽반이시시잡용심처

    조주(趙州)의 법어다. 하루 중 죽·밥 두 끼 외엔 마음을 잡되이 쓴 적 없다는 뜻으로, 순일한 용심(用心)의 전형이다.

  2. 操修覷捕 조수처포

    잡아 닦고(操修) 엿보아 붙듦(覷捕)이니, 철저한 공부와 관조를 뜻한다.

  3. 一機一境一句一言 일기일경일구일언

    접화의 기틀·경계·구절·말 낱낱이니, 어떤 계기도 헛되지 않음을 뜻한다.

  4. 世法佛法打成一片 세법불법타성일편

    세상살이의 법과 부처의 법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으면 일상의 온갖 일과 수행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5. 湊泊 주박

    배를 대어 머문다는 뜻으로, 어떤 자리에 가 닿아 붙는 것을 이른다. 선에서는 흔히 '주박하기 어렵다'고 하여, 분별로는 다가붙을 틈이 없는 자리를 나타낸다.

  6. 倒腸換肚 도장환두

    창자를 뒤집고 뱃속을 바꿈이니, 근본적 환골탈태의 비유다.

  7. 毒食 독식

    독든 음식이니, 곧 사견·잡된 가르침의 비유다.

  8.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9. 踢著本地風光 척저본지풍광

    본지풍광을 걷어차 밟음이니, 단박에 드러냄의 활구적 표현이다.

  10. 坐斷報化佛頭 좌단보화불두

    보신불·화신불(報化佛)의 머리를 깔고 앉아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부처라는 생각에조차 매이지 않고 그 위로 벗어난 경지를 이른다. 임제(臨濟)의 법문에서 온 말이다.

  11. 凜孤危 늠고위

    늠름하고 외로이 우뚝함(孤危)이니,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절대 경지다.

  12. 風吹不入水灑不著 풍취불입수쇄불저

    바람도 물도 침범 못 함이니, 경계에 물들지 않는 정체(正體)다.

  13. 禍僧 화승

    문맥상 물은 그 스님을 가리킨다(다만 '화(禍)'자(字)는 오각 의심이니 교감 참조).

  14. 九峰 구봉

    선사가 머문 산 이름으로, 그 선사를 부르는 이름으로도 쓴다. 석상경제의 법을 이은 균주(筠州) 구봉도건(九峰道虔)이 이 이름으로 이름났다. 연수혜륜 밑에서 10년을 지내고 뒤에 구봉에 머문 도전(道詮, 930~985)도 '구봉'으로 불렸다.

  15. 山前麥熟也未 산전맥숙야미

    물음을 되받아 딴 데로 돌리는 구봉(九峰)의 전어(轉語)다. 지식적 '친견(親見)' 여부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활구다.

  16. 殺人刀活人劒 살인도활인검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 스승이 공부하는 이의 망상을 끊어 없애는 솜씨와 그를 다시 살려 내는 솜씨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원오는 벽암록에서 '사람 죽이는 칼, 사람 살리는 칼은 옛날의 법도이자 지금의 요긴한 일'이라고 하였다(벽암록 제12칙 · 제15칙 수시).

  17. 落處 낙처

    말이나 행동이 떨어져 닿는 자리, 곧 그 말이 참으로 가리키는 속뜻을 이른다. 선에서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 낙처를 알아채는 것을 눈 밝은 사람의 일로 친다.

  18.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19. 巴鼻 파비

    붙잡을 데, 곧 요긴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이다. 소의 코를 꿰어 끌듯 꽉 쥘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왔다. '납승의 파비'는 수행자가 꼭 붙들어야 할 핵심을 가리킨다.

  20. 示諫長老·住蜀中無爲山 시간장로·주촉중무위산

    촉(蜀) 땅 무위산(無爲山)에 머물던 간(諫) 장로에게 준 글의 제목이다. 장로(長老)는 한 절을 이끄는 주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간 장로의 행적은 더 알려져 있지 않다.

  21. 此箇事 차개사

    '이 일'이라는 말로, 선문에서 깨달음의 근본 과제를 가리킨다. 나고 죽는 큰일을 푸는 일, 곧 본분사(本分事)를 이름 붙이지 않고 곧바로 가리키는 말이다.

  22. 惡知惡見 악지악견

    그릇된 앎과 그릇된 견해를 이른다. 이리저리 헤아려 얻은 알음알이가 마음을 더럽혀 깨달음을 가로막는다 하여 선에서 경계한다.

  23. 出身之路 출신지로

    몸을 빼낼 길이니, 걸림에서 벗어나는 활로다(저저(著著)=낱낱마다).

  24. 延壽慧輪 연수혜륜

    오대(五代) 때 담주(潭州, 지금의 장사) 연수사(延壽寺)에 머문 선승 혜륜(慧輪)이다.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보복종전(保福從展)의 법을 이었다. 뒤에 여산(廬山) 구봉(九峯)과 귀종사(歸宗寺)에 머문 도전(道詮)이 그 아래에서 10년을 지냈으므로, 사람들이 도전에게 '스님께서 연수를 직접 뵈었다지요?' 하고 물었다.

  25. 親切近處渠 친절근처거

    거(渠)는 구봉(九峰)이다. 그의 말이 겨눈 절실·긴밀한 급소다.

  26. 出格 출격

    격식·상규를 벗어남이니, 언구를 초월한 자리다.

  27. 南方 남방

    강남(江南) 일대이니, 당·오대 선장들이 성행하던 지역이다.

  28. 趙州·除二時粥飯是雜用心處 조주·제이시죽반시잡용심처

    조주 스님이 '하루 두 끼 죽과 밥을 먹을 때만 마음을 섞어 쓸 뿐, 그 밖에는 마음을 딴 데 쓰는 곳이 없다'고 한 말이다. 온종일 오직 한 일에만 마음을 쓰는 철저한 공부를 보여 주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고존숙어록 조주록 · 오등회원 권4).

  29. 示諫長老 시간장로

    「示諫長老」. 圜悟克勤이 諫長老에게 준 法語로 『圜悟心要』에 실렸고, 제목 아래 '住蜀中無爲山'(蜀 無爲山에 住持)이라 적혔다(X69n1357_p0460a13). 『圜悟語錄』 권14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렸다(T47n1997_p0778c29).

  30. 雜毒食 잡독식

    독든 음식이니, 곧 사견·잡된 가르침의 비유다.

  31. 親切近處 친절근처

    渠는 九峰이다. 그의 말이 겨눈 절실·긴밀한 급소다.

문단 3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