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백운수단 광록 · 卷二 124

개당 — 축성과 첫 문답

開堂日 祝聖白槌罷

124.1
한문師開堂日,祝聖白槌罷,乃云:便恁麼散去,祖𦦨高輝了也。若也未然,不免平高就下。
번역선사가 개당(開堂)하는 날, 축성(祝聖)의 백퇴(白槌)를 마치고 말했다. “이대로 흩어져 간다면, 조사의 불꽃은 벌써 높이 빛났다. 그렇지 못하다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옴을 면치 못한다.
所以道:吾大聖人之道,不在有言,不在無言,不關有言,不關無言。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우리 대성인(大聖人)의 도는 말 있음에 있지 않고, 말 없음에도 있지 않다. 말 있음과도 상관없고, 말 없음과도 상관없다.’
只者箇赫然獨耀,逈出古今,寄古今間,應時而作。
다만 이 하나가 환히 홀로 빛나 옛과 지금을 아득히 벗어나 있다. 그러면서도 옛과 지금 사이에 몸을 부쳐, 때에 맞추어 일어난다.
今日還有知時之士麼?出事與興化相見。
오늘 때를 아는 이가 있는가? 나와서 이 흥화와 서로 보자.”
쉽게 읽기선사가 개당하던 날, 황제의 만수무강을 비는 축성과 법회의 시작을 알리는 백퇴를 마치고 말했다. “이대로 다들 흩어져 돌아간다면, 조사의 등불은 이미 높이 빛난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낮은 데에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우리 큰 성인의 도는 말이 있는 데에도 있지 않고, 말이 없는 데에도 있지 않다. 말이 있고 없음과는 아예 상관이 없다.’ 다만 이 하나가 환하게 홀로 빛나, 옛날과 지금을 훌쩍 벗어나 있으면서도, 옛날과 지금 사이에 몸을 맡겨 때에 맞춰 드러난다. 오늘 때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나와서 이 흥화와 마주해 보라.”
풀이 1
교감 · 𦦨저본 글자: 「𦦨」(U+269A8, CBETA CB08504 [舀*炎]) — 통용자 「焰」으로 읽음(CBETA 정규자는 「燄」, 뜻은 같음; X69n1352 p0312c14).
124.2
한문僧問:朝蓋親臨於法會,西來密意請師宣。師云:五挎歌中搥法皷,箇中消息少人知。
번역한 승이 물었다. “조정의 일산(朝蓋)①을 받친 분이 몸소 법회에 오셨으니, 서쪽에서 온 은밀한 뜻을 스님께서 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오고가(五袴歌)② 속에서 법고를 친다. 그 속 소식은 아는 이가 적다.”
僧云:恁麼則清風匝地。師云:聽不著。
승이 “그렇다면 맑은 바람이 온 땅에 두루 불겠습니다” 하니, 선사가 “알아듣지 못하는군” 했다.
僧云:三十年後有人舉此話在。師云:好。僧禮拜。
승이 “삼십 년 뒤에 이 이야기를 들어 보일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선사가 “좋다” 했다. 승이 절했다.
쉽게 읽기한 스님이 물었다. “조정의 높은 관리께서 몸소 법회에 오셨으니,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깊은 뜻을 스님께서 펼쳐 주십시오.” 선사가 답했다. “백성이 태평을 노래하는 오고가 속에서 법고를 친다. 그 안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스님이 “그렇다면 맑은 바람이 온 땅에 두루 불겠습니다” 하자, 선사는 “못 알아들었구나” 했다. 그 스님이 “삼십 년 뒤에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낼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자, 선사는 “좋다” 했다. 그 스님이 절했다.
풀이 3
① 朝蓋 조개조정 관원이 쓰는 일산(日傘). 개당에 임석한 지방관·고관을 가리킨다.
② 五袴歌 오고가後漢 염범(廉範)이 蜀郡 태수로 선정을 베풀자 백성이 ‘平生無襦今五袴(전엔 저고리도 없더니 이제 바지가 다섯)’라 노래한 고사. 선정을 기리는 백성의 노래 속에서 법고를 친다 — 세속의 태평과 불법의 소식을 겹쳐 말한다.
교감 · 五挎歌「五挎歌」 — ‘挎’는 ‘袴’의 오각(扌·衤 혼동)으로 보고 ‘五袴歌’(後漢 염범의 선정을 기린 노래 — 주석 ②)로 읽음.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 권20(X78n1556 p0768c01)에 「五袴歌中檛法皷」. 원문 글자는 저본대로 둠(X69n1352 p0312c19).

광록 卷二 차례 (78편)

이 편의 낱말 6
  1. 開堂 개당

    새로 주지가 된 선사가 처음으로 법좌에 올라 설법하는 의식이다. 관원과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임명 글을 읽고, 황제와 관원을 위해 향을 사르며, 법을 이어 준 스승을 위해서도 향을 올린다.

  2. 祝聖 축성

    법회에서 향을 사르며 황제의 만수무강을 비는 일이다. 선원에서는 새 주지가 처음 법을 펴는 개당(開堂) 때나 초하루·보름의 상당 때, 먼저 이 축원을 올렸다.

  3. 白槌 백추

    법회를 시작하거나 마칠 때 소임을 맡은 스님이 나무망치로 받침을 쳐서 대중을 조용히 하고 알리는 일이다. 개당 때에는 이름난 스님이 이 일을 맡아 '법회에 모인 용상 대중이여, 으뜸가는 진리를 보라'고 외친다.

  4. 興化禪院 흥화선원

    서주(舒州)에 있던 절이다. 백운수단(白雲守端)이 용문산(龍門山)을 떠나 이곳에 머물며 법을 폈고, 뒤에 백운산 해회선원(海會禪院)으로 옮겼다. 이 무렵의 상당에서 백운은 스스로를 '흥화'라 불렀다. 임제(臨濟)의 제자 흥화존장(興化存獎)이 머문 위주(魏州) 흥화사와는 다른 절이다.

  5. 祖師西來意 조사서래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와서 전한 참뜻, 곧 선의 근본을 묻는다. 선문답에서 가장 흔한 물음으로, 조주(趙州)의 '뜰 앞의 잣나무' 답이 이름났다.

  6. 三十年後 삼십년후

    '삼십 년 뒤'라는 말로, 선사들이 문답을 맺으며 흔히 썼다. 지금은 알아듣지 못해도 오랜 세월 공부한 뒤에야 알게 되리라는 뜻이다. 때로는 훗날 이 말을 들어 널리 펼 사람이 있으리라는 뜻으로도 쓴다. 운문(雲門) 스님이 즐겨 썼다.

서주 흥화선원 어록 舒州興化禪院語錄주석 2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6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門人 處凝 編 · 序 太原 王孜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