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0편

이연도인(怡然道人)께 드리는 글

答怡然道人

40.1
한문宿承光賁,小參。以此道爲懷,況利根上智廓然自得,以極清淨本源而能玲瓏照了、徹透鑒覺,不出戶庭已驗過諸方。
번역지난번 찾아와 주어(光賁) 소참(小參)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 도(道)를 마음에 품고 있으니, 하물며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나 훤히 스스로 얻었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더없이 맑은 본원(本源)으로 영롱하게 비추어 밝히고, 사무치게 꿰뚫어 살펴 깨달았다. 문밖 뜰을 나서지 않고도 이미 제방(諸方)을 두루 시험해 본 것이다.
쉽게 읽기지난번 그대가 찾아와 주어, 스승이 대중을 모아 때 없이 법을 베푸는 소참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대는 이 도를 마음에 품고 있다. 게다가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나, 스스로 훤히 깨쳤으니 더 말할 것이 없다. 더없이 맑은 본원으로 환하게 비추어 밝히고, 속속들이 꿰뚫어 살펴 깨쳤다. 그래서 문밖 뜰을 나서지 않고도, 이미 여러 지방의 큰 스승들을 두루 시험해 본 것이다.
풀이 4
諸方 제방'不出戶庭已驗過諸方'은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 선지식을 두루 점검했다는 칭찬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宿承光賁,小參'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光賁을 承의 목적어로 보아 '빛나는 은혜를 입고 소참에 함께함'으로 읽는 자체역과, 光賁을 小參의 수식으로 묶어 '훌륭한 소참 법문을 들음'으로 읽는 출판본이 모두 성립한다. CBETA 구두(光賁,小參)와 문의가 두 독법을 함께 허용하여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以此道爲懷'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爲懷의 주어를 수신인으로 보아 '이 도를 품고 계시니 하물며…'로 읽는 자체역과, 주어를 필자로 보아 '이 도를 간직하게 됨' 뒤에 '더구나 그대는…'으로 잇는 출판본이 모두 성립한다. 況의 대비 구조가 출판본 쪽을 다소 자연스럽게 하나 자체역도 무리가 없고 확정 전거가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40.2
한문而老僧淺陋,乃沐知照,許令擊揚,既同風密契,因不自疎外,於此事盡底裏羅列一句一言、一機一境,皆絕唱之深致也。
번역이 노승은 얕고 못났다. 그런데도 그대의 밝은 앎에 젖어, 서로 치고 드날리기(擊揚)를 허락받았다. 이미 같은 가풍으로 은밀히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스스로 멀리하여 물리치지 않고, 이 일을 밑바닥까지 낱낱이 늘어놓는다. 한 구절 한 마디, 한 기틀 한 경계가 모두 더없이 빼어난 노래(絕唱)의 깊은 뜻이다.
非心性玄妙、語默關涉、葛藤路布,直是透頂透底。
이는 심성(心性)의 그윽하고 묘함이 아니다. 말과 침묵에 걸린 것도 아니다. 칡덩굴 같은 말(葛藤)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곧바로 정수리를 꿰뚫고 밑바닥을 꿰뚫는 것이다.
蓋色騎聲,坐斷報化佛頭,不落是非得失,唯徹根源清淨正眼,
형색을 덮고 소리를 올라탄다. 보신불(報身佛)과 화신불(化身佛)의 머리를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린다. 옳고 그름, 얻고 잃음에 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근원의 맑고 바른 눈을 사무쳐 밝힐 뿐이다.
雖思念寂滅明惠,脫去籠羅,超然獨證頂𩕳上一著,此時豈有纖毫道理?
비록 생각이 고요히 스러지고 밝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온갖 그물과 얽매임을 벗어 던지고 초연히 홀로 정수리 위의 한 수(一著)를 깨쳐 얻는다. 이때에 어찌 털끝만 한 도리인들 있겠는가.
쉽게 읽기이 노승은 얕고 못났다. 그런데도 도리어 그대의 밝은 앎에 젖어, 서로 북돋우고 드날리기를 허락받았다. 이미 같은 가풍으로 은밀히 맞아떨어졌으니, 스스로 멀리하여 물리치지 않고 이 일을 밑바닥까지 낱낱이 늘어놓는다. 한 구절 한 마디, 한 기틀 한 경계가 모두 더없이 빼어난 한 곡조에 담긴 깊은 뜻이다. 이는 마음자리의 그윽함에 매인 것도 아니고, 말과 침묵에 걸린 것도 아니다. 칡덩굴처럼 얽힌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곧바로 정수리를 꿰뚫고 밑바닥을 꿰뚫을 뿐이다. 소리를 올라타고 형색을 덮어, 보신불과 화신불, 곧 과보로 이룬 몸과 교화로 나툰 몸의 머리마저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끊어 버린다. 옳고 그름, 얻고 잃음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근원의 맑고 바른 눈을 사무치게 밝힐 뿐이다. 비록 온갖 생각이 고요히 스러지고 밝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온갖 그물과 얽매임을 벗어 던진다. 그리고 초연히 홀로 정수리 꼭대기의 한 수, 곧 향상의 궁극 한 소식을 증득한다. 이때에 어찌 털끝만 한 도리인들 있겠는가.
풀이 7
葛藤 갈등路布는 露布(널리 알리는 글)와 통하여 말을 늘어놓음. '非心性玄妙、語默關涉、葛藤路布'에서 心性玄妙·語默關涉과 함께 물리치는 항목이다.
坐斷 좌단'坐斷報化佛頭'는 『臨濟錄』 示衆 '取山僧見處,坐斷報化佛頭,十地滿心猶如客作兒'에서 나온 구로, 『圜悟語錄』에도 거듭 보인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許令擊揚'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擊揚은 擊節揚扢, 곧 선문답을 주고받아 종지를 드날림을 뜻하는 어록 상용어로, 許令擊揚은 '(내가) 격양하도록 허락받음'이다. 擊揚을 막연히 '격려'로 옮긴 출판본('격려해 주셔서')은 이 술어의 종문상 어의를 잃은 오독이므로, 자체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因不自疎外'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疎外(=疏外)는 사전상 '소원히 하다·따돌리다'의 타동 어의이며, 因不自疏外는 '(그대를) 소원히 물리치지 아니하고'로 새겨 뒤의 '낱낱이 늘어놓음(羅列)'과 인과로 이어진다. 疏外를 필자 자신의 '외로움' 상태로 옮긴 출판본('스스로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은 어의와 因…羅列 구조를 오독한 것이므로, 자체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雖思念寂滅明惠,脫去籠羅'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明惠를 앞 절에 붙여 '사념이 적멸하고 밝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로 읽는 자체역과, 明惠를 뒤 절에 붙여 '밝은 지혜로 속박을 벗어나'로 읽는 출판본이 모두 성립한다. 구두가 없어 분절을 확정할 전거가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40.3
한문亦不立空劫已前、威音已後,到箇裏諸天捧花無路、外道潛覰不見,淨倮倮、赤灑灑乃本地風光、本來面目,
번역또한 공겁(空劫) 이전이니 위음왕불(威音王佛) 이후이니 하는 것조차 세우지 않는다. 이 자리에 이르면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외도(外道)가 몰래 엿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깨끗이 발가벗고 텅 비어 말끔하다. 이것이 바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이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直得佛覰不見,謂之向上一路,千聖不傳,除非其中人則一舉便知落處矣。
곧바로 부처가 엿보아도 보이지 않는 데에 이른다. 이를 위로 향하는 한 길(向上一路)이라 한다.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다만 그 안의 사람이라야 한 번 들어 보이면 곧 떨어지는 곳(落處)을 안다.
쉽게 읽기또한 세계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던 공겁 이전이니, 아득한 옛적 맨 처음의 부처인 위음왕불 이후이니 하는 구분조차 세우지 않는다. 이 자리에 이르면,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고,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찾지 못한다. 깨끗이 발가벗고 텅 비어 말끔하니, 이것이 바로 본지풍광, 곧 본래 스스로 지닌 그 자리요, 본래면목, 곧 부모에게 나기 전의 참모습이다. 곧바로 부처가 엿보아도 보이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향상일로, 곧 위로 사무쳐 오르는 외길이라 하며,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다만 그 가운데 든 사람이라야, 한 번 들어 보이면 곧 말이 떨어지는 참뜻을 알아차릴 뿐이다.
풀이 8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諸天捧花無路'는 牛頭法融의 석실에 '百鳥銜華之異'가 있었다는 이야기(『景德傳燈錄』 권4)와 통하는 말이다. 같은 짝말이 『碧巖錄』 제16칙 垂示·제97칙 評唱에 있다.
五燈會元 오등회원盤山寶積의 上堂語 '向上一路,千聖不傳,學者勞形,如猿捉影'. 『景德傳燈錄』 권7 盤山章(T51n2076_p0253b13)·『五燈會元』 권3(X80n1565_p0077b09).
空劫 공겁'亦不立空劫已前、威音已後'—本地風光의 자리에서는 空劫已前·威音已後 같은 시간의 상투어조차 세우지 않는다.
五燈會元 오등회원오등회원(五燈會元) 권3 반산보적장(盤山寶積章): '향상일로(向上一路), 천성불전(千聖不傳), 학자로형(學者勞形), 여원착영(如猿捉影)' — 본문 '향상일로(向上一路), 천성불전(千聖不傳)'의 출전이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4 우두법융장(牛頭法融章): 법융이 사조(四祖) 도신(道信)을 만나기 전 백조(百鳥)가 꽃을 물어 공양했으나 깨친 뒤 이르지 않았다는 고사 — '제천봉화무로(諸天捧花無路)'의 배경이다.
六祖法寶壇經 육조법보단경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행유품(行由品): 혜능이 혜명(惠明)에게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 정임마시(正恁麼時), 나개시명상좌본래면목(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이라 한 대목 — 본문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출전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9
  1. 小參 소참

    방장이 침당이나 법당에서, 흔히 저녁에 대중을 모아 베푸는 설법이다. 법당에 올라 정식으로 하는 상당(上堂)과 짝이 되는 말이다. 집안의 가르침이라 하여 '가훈(家訓)'이라고도 했다.

  2. 諸方 제방

    '여러 곳'이라는 말로, 선문에서는 천하 여러 지방의 선원과 그곳의 종사(宗師)들을 두루 이른다. '제방을 두루 다녔다'·'제방의 노숙(老宿)'처럼 쓰며, 자기 문하 밖의 다른 스승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3. 同風密契 동풍밀계

    같은 가풍으로 은밀히 계합함이다. 스승과 제자가 말없이 종지가 암합함을 이른다.

  4. 葛藤 갈등

    칡과 등나무 덩굴이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말과 글, 곧 깨달음에 보탬이 안 되는 군더더기 말을 이른다. 선사들은 자기 법문을 낮추어 '갈등'이라 부르기도 했다.

  5. 蓋色騎聲 개색기성

    선가 관용어 '기성개색(騎聲蓋色)'과 같은 말이다. 소리를 타고 형색을 덮는다는 뜻으로, 성(聲)·색(色)의 대상경계를 자유자재로 부리고 초월함이다. 여기 개(蓋)는 '덮다'라는 동사이다(참고번역은 개(蓋)를 부사 '대개'로 오독한 것으로 의심된다).

  6. 報化佛 보화불

    보신불(報身佛)과 화신불(化身佛)이다. 보신은 수행의 결과로 이룬 몸, 화신은 중생을 건지려 나타낸 몸이다. 임제(臨濟)의 '보신불·화신불의 머리를 끊는다'는 말이 이름났다.

  7. 坐斷 좌단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단번에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온갖 분별과 경계를 꽉 눌러 끊어 아무것도 끼어들 틈이 없게 함이다. ‘시방을 좌단한다’처럼 쓴다.

  8. 正眼 정안

    바른 눈, 곧 마음과 사물의 근본을 그르침 없이 꿰뚫어 보는 안목을 이른다. 정법안(正法眼)과 같은 뜻으로 쓴다.

  9. 頂𩕳上一著 정녕상일착

    정수리 꼭대기의 한 수(一著)이다. 정문일착(頂門一著)·頂𩕲上과 같은 계열의 표현으로, 궁극·최상의 한 착(著)을 가리킨다(글자 판독은 교감 참조).

  10. 空劫 공겁

    세계가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비는 네 시기 가운데, 무너진 뒤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시기다. 선문에서는 '공겁 이전'이라 하여 천지가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11. 威音 위음

    『法華經』 常不輕菩薩品에 나오는 아득한 옛 부처(범어 Bhīṣmagarjitasvararāja, T09n0262_p0050b29). 禪家에서 '威音那畔'·'威音已前'은 모든 부처가 나오기 이전, 곧 시간과 분별 이전의 본분을 뜻한다.

  12.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

    ‘하늘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은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신들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마군과 외도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와 짝지어 쓴다.

  13. 外道潛覰不見 외도잠처불견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보지 못함이다. 처(覰)는 처(覷)의 이체자로 '엿보다'이다. 앞의 봉화무로(捧花無路)와 짝을 이루는 관용 대구이다.

  14. 淨倮倮 정라라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깨끗이 발가벗었다는 말이다. 아무것에도 가려지거나 기대지 않은 본래 마음의 맨모습을 그린다. 흔히 정라라적쇄쇄(淨倮倮赤灑灑)로 이어 쓴다.

  15.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16. 本來面目 본래면목

    본디 그대로의 제 참모습, 곧 분별 이전의 참 나를 이른다. 육조 혜능(慧能)이 혜명(惠明)에게 한 물음에서 널리 퍼졌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17. 向上一路·千聖不傳 향상일로·천성불전

    '위로 향하는 한 길은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마지막 자리는 말이나 가르침으로 건네줄 수 없고 스스로 사무쳐야 한다는 뜻이다. 반산보적(盤山寶積)의 법문에서 나왔다.

  18. 落處 낙처

    말이나 행동이 떨어져 닿는 자리, 곧 그 말이 참으로 가리키는 속뜻을 이른다. 선에서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 낙처를 알아채는 것을 눈 밝은 사람의 일로 친다.

  19.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20. 五燈會元 오등회원

    남송의 보제(普濟)가 다섯 가지 선종 역사서(燈錄)를 줄여 하나로 엮은 20권의 책이다. 과거 칠불부터 송나라 스님들까지 법의 계보를 따라 문답과 행적을 실었다.

  21. 淨倮倮赤灑灑 정라라적쇄쇄

    깨끗이 벌거벗고 말끔히 씻은 듯하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본래 모습을 그린다. '라(倮)'는 '라(裸)'와 같은 글자로 벌거벗었다는 뜻이다.

  22. 怡然道人 이연도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이연도인께 드리는 글」로 답한 상대이다. '도인'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아울러 부르는 수행자 호칭이다. 그 글에 따르면 원오의 소참에 와서 서로 뜻이 맞았다. 원오 문하의 거사인지 승려인지, 구체적 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23. 光賁 광비

    남이 찾아와 준 것을 높여 이르는 편지 투의 말이다(광림(光臨)·비림(賁臨)과 같은 뜻). '숙승광비(宿承光賁)'는 '지난번 찾아와 주셨다'는 인사말이다.

  24. 知照·擊揚 지조·격양

    지조(知照)는 그대의 밝게 비추어 앎이다. 격양(擊揚)은 선문답을 주고받아 서로 종지를 부딪쳐 드날림(擊節揚扢)이다.

  25. 明惠 명혜

    밝은 지혜이다. 혜(惠)는 혜(慧)와 통용되는 글자이다.

  26. 威音·威音王佛 위음·위음왕불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헤아릴 수 없이 먼 옛날의 부처이다. 선가에서는 '위음왕 저편', '위음 이전'이라는 말로 모든 부처가 나기 이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27. 知照 지조

    知照는 그대의 밝게 비추어 앎이다. 擊揚은 선문답을 주고받아 서로 종지를 부딪쳐 드날림(擊節揚扢)이다.

  28. 頂𩕳上一著 정녕상일착

    정수리 꼭대기의 한 수(一著)이다. 頂門一著·頂𩕲上과 같은 계열의 표현으로, 궁극·최상의 한 착(著)을 가리킨다(글자 판독은 교감 참조).

  29. 六祖法寶壇經 육조법보단경

    六祖 慧能의 설법과 행적을 엮은 책. 흔히 『壇經』이라 하며, 宗寶本이 『六祖大師法寶壇經』(T48n2008)이다. 行由品에서 慧能이 惠明에게 '不思善,不思惡,正與麼時,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이라 한 대목(T48n2008_p0349b24)이 '本來面目'의 출전으로 이름났다.

문단 3국역본 대조 5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