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25편

조상인(祖上人)에게 주는 글

示祖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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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한문如祖上人自德山來,久以此段爲務,見蔣山佛果何曾有兩種佛法?
번역조상인(祖上人) 그대는 덕산(德山)에서 와서, 오래도록 이 일을 힘쓸 일로 삼아 왔다. 장산(蔣山)의 불과(佛果)를 뵈었으니, 어찌 일찍이 두 가지 불법(佛法)이 있었겠는가?
若擔帶來,是納敗闕;不擔帶來,須知轉身處始得。
그것을 짊어지고 온다면, 이는 허물을 떠안는 것이다. 짊어지고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몸을 굴리는 곳(轉身處)을 알아야 비로소 된다.
如今時衲子到處叢林,有宗匠莫不咨參,然求一實證到本分田地,得大休大歇安穩之場,實難其人。
요즘 납자(衲子)들은 곳곳의 총림(叢林)에서, 종장(宗匠)이 있으면 찾아가 묻고 참구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참으로 몸소 깨쳐 본분(本分)의 자리에 이르고, 크게 쉬고 크게 그친 편안한 자리를 얻은 이를 하나라도 찾으려 하면, 참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쉽게 읽기조 스님, 그대는 덕산 땅에서 왔다. 오래도록 이 한 가지 큰일을 제 할 일로 삼아 왔고, 장산의 불과를 찾아뵈었다. 그러니 부처의 법에 어찌 두 갈래가 따로 있었겠는가? 만약 그 깨침을 짊어지고 온다면, 이는 도리어 허물을 떠안는 꼴이다. 짊어지지 않고 온다면, 반드시 몸을 돌이키는 자리를 알아야 비로소 옳다. 요즘 수행하는 승려들은 곳곳의 큰 절을 두루 다닌다. 이름난 스승만 있으면 찾아가 묻고 배우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참으로 몸소 깨쳐 제 본래 자리에 이르고, 크게 쉬고 크게 그쳐 툭 트인 편안한 자리를 얻은 사람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다.
풀이 5
德山宣鑑 덕산선감'祖上人自德山來'의 德山은 人名이 아니라 山名·寺名이다(德山宣鑑은 咸通六年(865) 입적). 宣鑑이 머문 朗州 德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뒤의 '至於德山、臨濟'는 人名이다.
大休大歇 대휴대헐〔병렬용례〕 '得大休大歇安穩之場'은 『圓悟佛果禪師語錄』 권14 法語의 '透到大休大歇安穩之場'(T47n1997_p0777a15)과 같은 짜임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見蔣山佛果,何曾有兩種佛法'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자체역('장산의 불과를 뵈었으니')과 책('장산의 나를 본들')이 모두 佛果를 저자 원오 자신으로 보아 일치하며, 다만 見을 자체역은 인과로, 책은 양보로 처리해 어감이 갈린다. 조상인이 덕산에서 와 장산의 원오를 참문한 정황상 둘 다 성립하고, 何曾의 반어가 결국 '두 불법은 없다'로 귀결되는 점에서 결정적 전거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若擔帶來,是納敗闕'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자체역은 擔帶를 선어의 '견해·소득을 짊어져 걸림'으로, 納敗闕을 '허물을 받아들임'으로 추상 처리하고, 책은 擔帶를 '보따리를 걸머지다', 納敗闕을 '낭패를 볼 것'으로 구상화하였다. 擔帶의 선적 용례상 자체역이 원의에 더 밀착하나, 뒤의 抛鄉離井·歸德山이라는 행각승 정황을 살린 책의 구상화도 오역이 아니어서 양립한다.
25.2
한문大丈夫兒已能是拋鄉離井,在本分尊宿身邊又能効勤戮力,作種種緣,皆非分外,亦足以不昧行腳。
번역대장부라면 이미 고향을 버리고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본분의 존숙(尊宿) 곁에서 부지런히 힘을 다해 갖가지 인연을 지을 수도 있었다. 이는 모두 분수 밖의 일이 아니며, 행각(行脚)을 저버리지 않기에도 넉넉하다.
然至諦實,要須知有從上來事。且從上來列祖相承,至於德山、臨濟,行棒行喝,作千萬種方便,至竟要人何爲?
그러나 참되고 진실한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예로부터 전해 온 일(從上來事)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예로부터 여러 조사가 서로 이어 덕산과 임제(臨濟)에 이르기까지, 방(棒)을 휘두르고 할(喝)을 하며 천만 가지 방편(方便)을 지었다. 끝내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이었겠는가?
쉽게 읽기대장부라면 이미 고향을 버리고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본래 자리를 갖춘 큰스승 곁에서 부지런히 힘을 다해 갖가지 인연도 지을 수 있었다. 이는 모두 분수에 넘치는 일이 아니며, 두루 다니며 도를 닦는 그 뜻을 저버리지 않기에도 넉넉하다. 그러나 참되고 진실한 데에 이르려면, 반드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일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여러 조사가 이 법을 서로 이어받아, 덕산과 임제에 이르렀다. 이들은 몽둥이질을 하고 벼락같이 고함을 치며 천만 가지 방편을 베풀었다. 그렇게까지 하여 마침내 사람에게 바란 것이 무엇이겠는가?
풀이 2
德山棒·臨濟喝 덕산방·임제할'如祖上人自德山來'·'歸德山舉似堂頭'의 德山은 祖上人이 온 사찰(그 주지를 '堂頭'라 함)이고, '至於德山、臨濟,行棒行喝'의 德山만 德山宣鑑이다.
25.3
한문應須似香象渡河,截流而過,了無疑礙,尚未稱從上來事。
번역마땅히 향기 나는 코끼리(香象)가 강을 건너듯 흐름을 끊고 지나가, 조금도 의심과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래도 아직 예로부터 전해 온 일에 걸맞다고는 할 수 없다.
道人家相逢,不拈出棒打石人頭,不可向卷子上指東畫西去也,只此已是漏逗了也。
歸德山舉似堂頭,看它如何爲你證據。
덕산으로 돌아가 당두(堂頭)께 들어 보이고, 그분이 그대를 위해 어떻게 증명해 주시는지 보라.
쉽게 읽기마땅히 코끼리가 강을 건너듯, 물살을 끊고 곧장 건너가 조금의 의심도 걸림도 없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아직 예로부터 전해 온 일에 걸맞다고는 할 수 없다. 도를 닦는 이들이 서로 만날 때에는, 몽둥이를 집어 돌사람의 머리를 치지도 않는다. 또 문서 위에서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긋듯 이러쿵저러쿵 따지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허물이 새어 나온 것이다. 덕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주지 화상께 이 일을 들어 보이고, 그분이 그대를 위해 어떻게 증거해 주시는지 살펴보라.
풀이 10
指東畫西 지동화서'不可向卷子上指東畫西去也' — 卷子(두루마리 문서·책) 위에서 말을 따지며 에두르지 말라는 것. 앞의 '不拈出棒打石人頭'와 대를 이룬다.
香象渡河 향상도하'似香象渡河,截流而過,了無疑礙'는 百丈懷海의 말 '亦如香象截流而過更無疑滯'(『景德傳燈錄』 권6)를 받은 것. 圜悟는 그조차 '尚未稱從上來事'라 하여 한 걸음 더 밀었다.
石人 석인'棒打石人頭'는 情識이 끊긴 곳에서의 활용을 가리키는 선가 상투구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截流而過
책 과의역이다. 원문은 '흐름을 끊고 지나감'으로 香象渡河(三獸渡河)의 강물 흐름을 가리킨다. 책의 '번뇌의 물길을 끊고'는 流를 번뇌로 특정한 부연 삽입이라, 비유의 원 뜻(가장 철저한 截流 도하)을 굳이 번뇌론으로 좁힌 의역이다. 내 '흐름을 끊고'가 원문에 충실하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尚未稱從上來事'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자체역은 稱을 相稱('걸맞다')으로, 책은 稱呼('칭하다')로 읽으나, 두 독해 모두 尚의 '한 단계 더 밀어붙이는' 어감을 살려 '香象渡河의 경지조차 아직 從上來事에 이르지 못한다'는 귀결로 수렴하므로 결정적 전거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不拈出棒打石人頭
책 오독이다. '拈出棒(방을 집어 듦)'과 '打石人頭(돌사람 머리를 침)'가 한 동사구로 不의 지배를 받는데, 책은 不을 拈出에만 걸어 '드러내 보이지 말고'로 끊고 '몽둥이로 돌장승 머리를 쳐야지'라며 棒打를 긍정 명령으로 처리하였다. 이는 문법상 무리이고(拈出棒은 선문 상투 결합), 뒤의 '只此已是漏逗'와도 어긋난다. 병렬 부정 '방으로 돌사람 머리를 치지도, 문서에서 지동획서하지도 않는다'가 옳다.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원문 '不拈出…去也'의 내 번역 → ‘이 역주의 번역을 고침’ 내 오류(경미)이다. 병렬 부정이어야 할 두 절을 '~치지 않는다면 …안 됩니다'라는 조건절로 묶어 논리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개정본에서 병렬 부정으로 바로잡았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4
  1. 敗闕 패궐

    결함·허물(패궐)이다. '납패궐(納敗闕)'은 그 허물을 스스로 받아들여 짊어짐이다.

  2. 大休大歇 대휴대헐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는 말이다. 찾고 헤아리던 마음이 다 쉬어, 더 구할 것 없이 편안해진 깨침의 자리를 이른다.

  3. 列祖相承 열조상승

    역대 조사(列祖)가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법을 이어옴이다. 등록(燈錄)의 법맥 계승 관념을 압축한 표현이다.

  4.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5. 香象渡河 향상도하

    향상(香象), 곧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넌다는 비유다. 토끼는 물에 떠서 건너고 말은 바닥에 닿기도 하고 못 닿기도 하지만, 코끼리는 바닥을 밟고 건넌다. 밑바닥까지 철저히 사무치는 깨달음을 비유한다.

  6. 從上來事 종상래사

    예로부터 부처와 조사가 대대로 이어 온 그 일, 곧 깨달음이라는 근본의 일을 이른다. 말이나 방편 이전의 본분사(本分事)를 가리킨다.

  7. 石人 석인

    돌로 깎은 사람, 곧 돌사람이다. 보지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무정물이어서, 선문에서는 분별이 끊긴 무심의 자리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쓴다. '돌사람이 절을 한다', '돌 여인이 춤춘다'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을 들어 생각의 길을 끊는다.

  8. 指東畫西 지동화서

    동쪽을 가리키며 서쪽에 금을 긋는다는 말이다. 곧바로 짚어 보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에둘러 말하거나 헤아리는 것을 나무랄 때 쓴다.

  9. 漏逗 누두

    새어 나와 드러난다는 말로, 말이나 행동에 빈틈이나 허물이 드러남을 이른다. 선가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자리를 조금이라도 말로 내보이면 이미 누두라 한다. 『벽암록』에 자주 보인다.

  10. 證據 증거

    증거함, 곧 스승이 학인의 깨달음을 점검·인가(印可)함이다.

  11.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12.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13. 德山棒·臨濟喝 덕산방·임제할

    덕산(德山) 스님의 몽둥이와 임제(臨濟) 스님의 고함이다. 덕산은 묻는 이를 몽둥이로 쳤고, 임제는 벼락같은 ‘할’로 맞았다. 말과 헤아림을 단번에 끊는 선문의 매서운 가르침을 이른다.

  14. 行腳 행각

    수행승이 스승을 찾아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며 묻고 닦는 일이다. 넓게는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 생활 전체를 이른다.

  15. 祖上人 조상인

    원오가 훈시하는 상대 납자이다. '조(祖)'는 이름(혹은 자)이고, '상인(上人)'은 덕 높은 승려에 대한 존칭이다. 아래 문맥상 덕산(德山) 총림에서 수행하다 금릉(金陵)의 원오를 찾아온 행각승이며, 마지막에 다시 덕산으로 돌아가 그곳 당두(堂頭) 화상에게 인가받으라 권한다.

  16. 蔣山佛果 장산불과

    저자 원오극근(圜悟克勤)(1063~1135) 자신을 3인칭으로 가리킨다. 휘종(徽宗)에게서 '불과선사(佛果禪師)' 호를 받았고, 금릉(금릉(金陵), 지금 남경(南京)) 종산(鍾山)의 장산태평흥국사(蔣山太平興國寺)에 주석하였다. 법맥은 임제종 양기파로 양기방회(楊岐方會)(사조(師祖))→백운수단(白雲守端)(사공(師公))→오조법연(五祖法演)(사(師)=본사)→원오극근(圜悟克勤)이다. '어찌 두 가지 불법이 있었겠는가'는 자신과 덕산 당두의 가르침이 둘이 아님을 뜻한다.

  17. 佛果 불과

    원오의 사호(賜號) '불과선사(佛果禪師)'의 약칭이다. 만년의 '원오(圜悟)' 호와 더불어 그를 지칭하는 대표 명호이다.

  18. 轉身處 전신처

    몸을 굴리는 자리, 곧 짊어진 것(擔帶)에 걸리지 않고 자유로이 벗어나 활용하는 전기(轉機)의 경지이다. '담대래(擔帶來)(짊어지고 옴)가 곧 허물을 받아들임'과 대비된다.

  19. 本分田地 본분전지

    본래 갖춘 자기 자리(밭·터전)이다. 본분사(本分事)가 드러나는 근원의 경지이다.

  20. 尊宿 존숙

    덕과 연치가 높은 노숙(老宿) 선지식이다. '본분존숙(本分尊宿)'은 참된 본분을 갖춘 스승이다.

  21. 卷子 권자

    두루마리 문서, 곧 어록·공안 등의 문자 자료이다. '권자상(卷子上)'에 매달리는 지해(知解)를 경계한다.

  22. 堂頭 당두

    총림의 주지 스님, 곧 당두화상을 이른다.

  23. 香象渡河·截流而過 향상도하·절류이과

    향기 나는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널 때 바닥을 딛고 물살을 끊으며 건넌다는 말이다. 토끼·말·코끼리 세 짐승이 강을 건너는데 코끼리만 바닥까지 닿는다는 비유(우바새계경)에서 나와, 밑바닥까지 사무치는 철저한 깨달음에 빗댄다. 백장 스님도 '향상이 흐름을 끊고 건너듯 다시 막힘이 없다'고 했다(경덕전등록 권6).

  24. 從上來事·本分田地 종상래사·본분전지

    '종상래사'는 예로부터 부처와 조사가 이어 전해 온 일, 곧 깨달음이라는 본분의 일을 이른다. '본분전지'는 누구나 본래 갖추고 있는 제 몫의 마음 바탕을 밭에 빗댄 말이다. 황벽 스님도 '출가한 사람은 예로부터 이어 온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경덕전등록 권9).

문단 3국역본 대조 6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4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