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53편

도인(道人)에게 주는 글

示道人

이 편의 풀이 1
本分事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의 상당·시중에서 '威音那畔'·'一念不生'을 본분사(本分事) 제시의 상용어로 쓰니, 본편과 같은 '분별 이전 본래 자리' 논법의 병렬 용례이다.
53.1
한문當人腳跟下一段事,本來圓湛,不曾動搖。
번역사람마다 발꿈치 아래의 한 가지 일은 본래 원만하고 맑아서, 일찍이 흔들린 적이 없다.
威音王佛前,直至如今,廓徹靈明,如如平等。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부터 바로 지금까지, 툭 트여 신령하게 밝고, 있는 그대로 한결같아(如如) 고르다.
只爲起見生心,分別執著,便有情塵煩惱擾攘。
다만 견해를 일으키고 마음을 내어 분별하고 집착한다. 그 때문에 감정의 티끌(情塵)과 번뇌가 어지럽게 들끓는 것이다.
若以利根勇猛,身心直下頓休,到一念不生之處,卽是本來面目。
만약 날카로운 근기와 용맹함으로 몸과 마음을 그 자리에서 단박에 쉬어, 한 생각도 나지 않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所以古人道:一念不生全體現。此體乃金剛不壞正體也。
그래서 옛사람이 말했다.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난다.” 이 본체는 곧 금강(金剛)처럼 부서지지 않는 바른 본체다.
六根纔動被雲遮,此動乃妄想知見也。
“여섯 감관(六根)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린다.” 이 움직임이 바로 망상이고 알음알이의 견해다.
쉽게 읽기사람마다 발꿈치 아래에는 한 가지 일이 있다. 이것은 본래 온전하고 맑아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아주 먼 옛날 위음왕불 이전부터 지금까지 늘 그러하다. 툭 트여 신령스레 밝고, 있는 그대로 여여하여 고르다. 다만 우리가 이런저런 견해를 일으키고 마음을 낸다. 이것저것 가르고 붙잡는다. 그래서 주관과 객관의 미혹인 정진과 번뇌가 어지럽게 들끓는다. 날카로운 그릇과 용맹으로 몸과 마음을 그 자리에서 단박에 쉰다고 하자. 그렇게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본래면목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난다”라고 했다. 이 바탕이 곧 금강처럼 부서지지 않는 참된 본체다. 여섯 감관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려진다. 이 움직임이 바로 망상이고 알음알이의 견해다.
풀이 7
五燈會元 오등회원張拙秀才가 石霜慶諸에게 바친 悟道偈 '光明寂照徧河沙…一念不生全體現,六根纔動被雲遮…'(『五燈會元』 권6, X80n1565_p0127c12; 『聯燈會要』 권22, X79n1557_p0190b17). 『景德傳燈錄』에서는 찾지 못했다.
本來面目 본래면목'一念不生全體現'과 뒤의 '六根纔動被雲遮'는 張拙秀才가 石霜에게 참문하여 깨치고 지은 偈의 구절이다(『五燈會元』 권6). 一念不生處를 本來面目이라 하고 이 偈로 뒷받침했다.
六根 육근앞의 '一念不生全體現'과 함께 張拙秀才가 石霜慶諸를 참하고 지은 悟道偈의 구절(『五燈會元』 권6). '所以古人道'의 古人이 張拙이다.
一念不生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의 상당·시중에서 '위음나반(威音那畔)'·'일념불생(一念不生)'을 본분사(本分事) 제시의 상용어로 쓰니, 본편과 같은 '분별 이전 본래 자리' 논법의 병렬 용례이다.
53.2
한문多見聰明之人,以妄心了了,放此妄心不下,逗到歇至不動處,不肯自承當本性,便喚作空豁豁地,卻擬棄有著空,是大病。
번역총명한 사람들을 흔히 본다. 망령된 마음으로 또렷또렷 알면서도, 이 망령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쉬고 쉬어 움직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도, 자기 본성을 스스로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텅 비어 훤한 경지라 부르고, 있음을 버리고 공(空)에 집착하려 한다. 이것이 큰 병이다.
若有心棄一邊,著一邊,便是知解,不能徹底見性。此性非有不須棄,此性非空不須著。
만약 마음을 내어 한쪽을 버리고 한쪽에 집착한다면, 이것이 바로 알음알이다. 철저히 성품을 볼 수 없다. 이 성품은 있음이 아니니 버릴 필요가 없고, 이 성품은 공이 아니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
쉽게 읽기이런 사람을 흔히 본다. 총명한 사람이 망령된 마음으로 또렷또렷하게 안다. 그러면서도 이 망령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쉬고 쉬어 움직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도, 자기 본성을 스스로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자리를 텅 비어 훤한 경지라 부른다. 그러고는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려 한다. 이것이 큰 병이다. 마음을 내어 한쪽을 버리고 한쪽에 붙잡으면, 이것이 바로 알음알이다. 그래서는 성품을 끝까지 볼 수 없다. 이 성품은 있는 것이 아니니 버릴 것이 없다. 이 성품은 공한 것이 아니니 붙잡을 것이 없다.
풀이 3
空豁豁地 공활활지쉬어 움직이지 않는 곳에 이르고도 本性을 承當하지 않고, 이를 空豁豁地라 부르며 '棄有著空'하는 병이다. 곧 頑空을 깨달음으로 잘못 아는 것을 가리킨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不肯自承當本性'. ‘두 읽기가 다 성립함’ 承當의 역어 차이. 나 '스스로 감당하려(떠맡으려) 하지 않고'는 承當의 축자적 본뜻(받아 지님·담당)을, 책 '스스로 본성을 알아차리려 하지는 않고'는 그 인정·자각의 함의를 취한 것이다. 承當은 선어에서 담당·받아 지님과 인정·자각의 뜻을 아울러 지녀(直下承當) 가리키는 내용이 서로 겹치므로 양립하며, 결정적 전거로 어느 한쪽을 배제할 수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53.3
한문要當離卻棄著有無,直下怗怗地,圓湛虗凝,翛然安穩,便能自信此真淨妙心。
번역마땅히 버림과 집착, 있음과 없음을 다 여의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편안하고 고요하며, 원만하고 맑으며, 텅 비어 엉기고, 초연히 안온해야 한다. 그러면 이 참되고 깨끗한 묘한 마음(眞淨妙心)을 스스로 믿을 수 있다.
餉間被世緣牽拖,便能覺得不隨他去。覺卽把得住,不覺卽隨他去。
잠깐 사이 세상 인연에 끌려가더라도, 곧 알아차려 그것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다. 알아차리면 곧 붙잡아 머물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곧 그것을 따라가 버린다.
直須長時虗閑,自做工夫,消遣諸妄,使有箇自家省悟之處始得。
다만 오랜 시간 텅 비고 한가롭게, 스스로 공부를 지어야 한다. 온갖 망령됨을 녹여 없애고, 자기 스스로 살펴 깨닫는 곳이 있게 해야 비로소 된다.
옛사람이 말했다. “당처(當處)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니, 찾으려 하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
쉽게 읽기마땅히 버림과 집착, 있음과 없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문다. 원만하고 맑으며, 텅 비어 엉긴다. 얽매임 없이 초연하여 안온하다. 그러면 곧 이 참되고 깨끗한 묘한 마음을 스스로 믿을 수 있다. 잠깐 사이 세상 인연에 끌려가더라도, 곧 알아차려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알아차리면 곧 붙잡아 머문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곧 끌려가 버린다. 다만 오랜 시간 텅 비고 한가롭게 스스로 공부를 지어야 한다. 그렇게 온갖 망령됨을 녹여 없앤다. 그리하여 스스로 살펴 깨닫는 곳이 생겨야 비로소 된다. 옛사람은 “당처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니, 찾으려 하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라고 했다.
풀이 5
不離當處常湛然 불리당처상담연'昔人云' 아래 두 구는 永嘉玄覺 『證道歌』의 구절이다(T48n2014_p0396b12).
永嘉真覺大師 영가진각대사영가진각대사(永嘉眞覺大師) 증도가(證道歌)의 '…불리당처상담연(不離當處常湛然), 멱즉지군불가견(覓卽知君不可見), 취불득사불득(取不得捨不得)…'가 본문 '석인운(昔人云)'의 직접 전거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翛然安穩'.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 翛然을 郭象 注의 '無係貌'(초연·자적)로 보면 나의 '초연히'가 되고, 陸德明 經典釋文의 '崔本作倏'(속히·홀연)로 보면 책의 '홀연히'가 되어 양쪽 모두 전거를 갖춘다. 뒤의 安穩과의 의미결합 및 앞선 怗怗地·圓湛虗凝 등 정태적 묘사와의 연속성으로 보면 초연·자적 쪽(나)이 우세하나, 崔本의 倏 독법 또한 실재하는 이문 전통에 근거하여 결정적으로 배제되지 않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 '覓卽知君不可見耶'.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나는 證道歌(不離當處常湛然,覓卽知君不可見)의 통설대로 知[君不可見]로 끊어 '찾으려 하면 그대를 볼 수 없음을 알리라'로 읽고, 책은 知君+不可見으로 끊어 '찾으면 그대를 아나 보지는 못한다'로 옮겼다. 이 구절은 傳燈錄·語錄에 두루 인용되는 정착된 표준 게송으로 그 표준 독법이 知[君不可見]이며, 自性이 곧 찾는 자 자신이어서 '찾으면 볼 수 없음을 안다'가 문맥에 부합한다. 책의 끊어 읽기는 표준 게송의 구문을 깨뜨려 의미가 어긋나므로 나의 독법이 옳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19
  1. 腳跟下 각근하

    발꿈치(腳跟) 아래. 선종에서 각자가 본래 갖춘 근본 대사(本分事)를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각근하일단사(腳跟下一段事)'는 곧 자기 본래면목을 이른다.

  2. 威音王 위음왕

    『법화경』에 나오는 아득한 옛 부처,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다. 같은 이름의 부처 가운데 맨 처음 부처다. 선어록에서는 '위음왕 이전'이라 하여 시간과 분별이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3. 一念不生全體現 일념불생전체현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난다.' 당나라 말 석상 경제 스님에게서 깨친 재가 제자 장졸 수재가 지은 깨달음의 게송 한 구절로, 뒤의 '여섯 감관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린다'와 짝을 이룬다(오등회원 권6).

  4. 金剛不壞 금강불괴

    금강불괴. 금강석처럼 결코 부서지지 않음이다. 무너지지 않는 참된 본체(正體)를 형용한다.

  5. 六根 육근

    여섯 감관(感官)이다. 눈·귀·코·혀·몸·뜻을 이르며, 이것들이 바깥 대상을 받아들여 앎이 일어난다.

  6. 六根纔動被雲遮 육근재동피운차

    '여섯 감관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린다.' 장졸 수재가 석상 스님에게서 깨치고 지은 게송의 구절로, 앞의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난다'와 짝을 이룬다(오등회원 권6).

  7. 知解 지해

    알음알이, 곧 생각으로 따지고 헤아려 얻은 앎이다. 선문에서는 제 성품을 곧바로 보는 일을 가로막는다 하여 크게 경계한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은 신회를 ‘지해종도(知解宗徒)’라 꾸짖었다.

  8. 空豁豁地 공활활지

    텅 비어 훤하게 트인 모양이다. 원오 스님은 망념이 다 쉬어 확 트인 자리를 그릴 때도 이 말을 쓰지만, 그 텅 빈 자리를 깨달음으로 여겨 붙드는 것은 공에 집착하는 큰 병이라고 경계한다.

  9. 棄有著空 기유저공

    기유착공. 있음(有)을 버리고 공(空)에 집착함이다. 유무 양변에 치우친 알음알이의 병이다.

  10. 怗怗地 첩첩지

    첩첩지. 고요하고 안정된 모양이다. 첩(怗)은 편안·고요함을 뜻한다.

  11. 不離當處常湛然 불리당처상담연

    영가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나, 찾으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는 뜻이다. 참성품은 바로 여기 있으되, 따로 찾으면 도리어 놓친다는 말이다.

  12. 本來面目 본래면목

    본디 그대로의 제 참모습, 곧 분별 이전의 참 나를 이른다. 육조 혜능(慧能)이 혜명(惠明)에게 한 물음에서 널리 퍼졌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13.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14. 如如 여여

    있는 그대로 한결같아 변하지 않는 참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진여(眞如)와 같은 뜻으로, 차별 없이 평등한 본래의 성품을 가리킨다. 『금강경』의 ‘여여부동(如如不動)’이 잘 알려져 있다.

  15. 五燈會元 오등회원

    남송의 보제(普濟)가 다섯 가지 선종 역사서(燈錄)를 줄여 하나로 엮은 20권의 책이다. 과거 칠불부터 송나라 스님들까지 법의 계보를 따라 문답과 행적을 실었다.

  16. 情塵 정진

    ‘정(情)’은 보고 듣고 가려 아는 마음, ‘진(塵)’은 그 마음이 좇는 바깥 경계를 이른다. 둘이 맞물려 일으키는 망상과 번뇌, 곧 마음을 흐리는 티끌을 통틀어 말한다.

  17. 餉間 향간

    잠깐 사이라는 말이다. ‘향(餉)’은 끼니로, 밥 한 끼 먹을 만한 짧은 동안을 뜻한다. 일향(一餉)이라고도 한다.

  18. 見性 견성

    자기의 본래 성품을 사무쳐 본다는 말이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않고, 제 안에 본디 갖춘 성품을 몸소 깨닫는 일이다. 선종은 이것을 깨침의 핵심으로 삼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19. 永嘉真覺大師 영가진각대사

    永嘉玄覺. 六祖 慧能을 찾아가 하룻밤 묵고 인가받아 '一宿覺'이라 불렸고, 號를 眞覺大師라 하였다(『景德傳燈錄』 권5, T51n2076_p0241b11). 그의 『證道歌』가 『景德傳燈錄』 권30에 '永嘉真覺大師證道歌'로 실렸다(T51n2076_p0460a14; 단행 T48n2014). '不離當處常湛然,覓即知君不可見'도 그 구절이다(T48n2014_p0396b12).

이 편의 풀이 1건

本分事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의 상당·시중에서 '威音那畔'·'一念不生'을 본분사(本分事) 제시의 상용어로 쓰니, 본편과 같은 '분별 이전 본래 자리' 논법의 병렬 용례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