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61편

장직전(張直殿)에게 주는 글

示張直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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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한문契證佛祖道妙,最宜上智利根,忘懷體究,不墮機境,直下拔萃超羣,
번역부처와 조사(祖師)의 도(道)의 오묘함에 맞아들어 증득하는 일은, 지혜가 높고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에게 가장 알맞습니다. 생각을 잊고 몸소 파고들어, 기틀(機)과 경계(境)에 떨어지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무리 가운데 우뚝 빼어나야 합니다.
虗心領略,直得圜明廣照,透地通天,徹生死根源,出葛藤路布,胸中灑落,一念不生,前後際斷,
마음을 비워 알아차리면, 곧 원만하고 밝게 널리 비추어 땅을 꿰뚫고 하늘에 통합니다. 생사(生死)의 근원에 사무치고, 얽힌 말(葛藤)과 늘어놓은 말길(路布)을 벗어납니다. 가슴속이 말끔해져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의 끝이 끊어집니다(前後際斷).
一句當陽,脫去解會,諦實取證,了無疑惑。
한 구절이 정면에 드러나면(一句當陽) 알음알이를 벗어 버리고, 참되고 확실하게 증득을 취하여 조금도 의혹이 없습니다.
쉽게 읽기부처와 조사가 이룬 도의 오묘한 자리에 계합, 곧 딱 들어맞아 증득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은 무엇보다 지혜가 빼어나고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에게 알맞습니다. 이런 사람은 온갖 생각을 잊고 몸소 파고들어, 마음의 기틀과 바깥 경계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여럿 가운데 우뚝 솟습니다. 마음을 텅 비우고 알아차리면, 두렷하고 밝은 빛이 널리 비추어 땅을 꿰뚫고 하늘까지 통합니다. 나고 죽는 일의 뿌리를 끝까지 꿰뚫어 보고, 얽힌 덩굴 같은 말과 늘어놓은 글을 훌쩍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가슴속이 말끔히 씻겨,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가 뚝 끊어집니다. 한 구절이 눈앞에 환히 드러나면, 이런저런 알음알이를 벗어 던지고, 참된 것을 살펴 그대로 증득하니, 조금의 의심도 남지 않습니다.
풀이 3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不墜機境
機는 주관적 작용인 기틀(機用)이지 방편이 아니다. '기틀과 경계'로 옮긴 내 번역이 옳고, '방편과 경계'로 옮긴 책은 機·境 이원의 함정이라는 뜻을 놓친 과의역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一句當陽'을 나는 '한 구절이 정면에 드러나면'(當陽=밝은 데 온전히 드러남)으로, 책은 '당장에'(當場=즉각)로 옮겼다. '當陽一句(子)'는 어록·벽암록에 두루 쓰이는 표준 성구로 '한낮·정면에 온전히 드러난 한 구절'을 뜻하며, 陽을 場으로 바꿔 '즉각'으로 새기는 것은 자의(字義)·전거상 근거가 없다. 축자·표준구문상 자체역이 옳으므로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로 재분류한다.
교감 · 胸中'胸中'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74a01). 부록본은 '胷中'(胷도 胸의 이체자). 이체이며 뜻이 같다.
61.2
한문如昔則老問青林:如何是佛?對云:丙丁童子來求火。
번역옛적에 칙(則) 노인이 청림(靑林)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청림이 대답했습니다. “병정(丙丁) 동자가 와서 불을 구하는구나.”
渠便入語言作道理,便謂丙丁是火,更來求火,如我是佛,更去問佛。
그는 곧 말에 끌려 들어가 이치를 지었습니다. 병정이 곧 불인데 다시 와서 불을 구하는 것이니, 내가 곧 부처인데 다시 가서 부처를 묻는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及至法眼究窮撥正,他卽大不信,及翻然投誠,法眼亦只如前云云,渠大悟。
뒤에 법안(法眼)이 끝까지 파고들어 바로잡아 주자, 그는 크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음을 돌려 정성으로 귀의하자, 법안도 다만 앞서와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蓋當風證驗,始解回光,更不作惡知惡解,
바로 그 자리에서 증험하고서야, 비로소 빛을 돌이킬 줄 알았습니다. 다시는 그릇된 앎과 그릇된 이해를 짓지 않았습니다.
當下如暗得燈,如貧獲寶,此豈小事哉?誠實諦信,千萬億劫長得受用。
그 자리에서 어둠 속에 등불을 얻은 듯,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듯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참되고 확실하게 살펴 믿으면, 천만억 겁(劫) 동안 길이 누려 씁니다.
쉽게 읽기옛적에 칙이라는 노스님이 청림이라는 스승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청림은 ‘병정 동자가 불을 구하러 오는구나’라고 답하였습니다. 이 노스님은 그 말에 그만 끌려들어 제멋대로 이치를 지어냈습니다. ‘병정은 곧 불인데 다시 불을 구하러 온 셈이니, 이는 내가 곧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찾아 묻는 것과 같구나’ 하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다 법안문익이라는 스님이 끝까지 파고들어 그를 바로잡자, 이 노스님은 좀처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홀연히 마음을 돌려 정성껏 귀의하니, 법안이 앞서와 똑같이 그대로 일러 주었고, 그제야 크게 깨달았습니다. 대개 바로 그 자리에서 몸소 겪어 증험하고서야 비로소 빛을 돌이킬 줄 알았으니, 다시는 그릇된 앎과 그릇된 이해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등불을 얻은 듯하고,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듯하였으니, 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참되고 진실하게 살펴 믿으면 천만억 겁이 지나도록 길이 누려 쓰게 됩니다.
풀이 7
法眼文益 법안문익則老 = 金陵 報恩院 玄則. 『景德傳燈錄』 권25는 처음 '如何是佛'을 물은 상대를 靑峯(일본 白兆)이라 하나 心要는 '靑林'으로 적었다. 法眼에게 같은 답을 다시 듣고 깨쳤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5 「金陵報恩院玄則」: 처음 '青峯(有本云白兆)'에게 '如何是佛(有云自己)'을 물어 '丙丁童子來求火'를 듣고, 뒤에 法眼에게 같은 답을 듣고 깨쳤다. 권17에는 白兆志圓의 말로 실렸다. 여기 '青林'은 두 이름과 다르다. 원오는 『碧巖錄』 제7칙 評唱에서도 玄則의 말을 '某甲於青林處有箇入頭…林云:丙丁童子來求火'로 들어 '青林'이라 적었으므로(T48n2003_p0147b16), 誤字로 단정하지 않는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5「금릉보은현칙선사(金陵報恩玄則禪師)」(오등회원(五燈會元) 권10 병존) : 현칙(玄則)이 처음 청봉(青峰)에 참문해 '여하시학인자기(如何是學人自己)'를 묻자 봉(峰)이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라 했고, 뒤에 법안(法眼)의 재인가로 대오(大悟)했다. 본편 공안의 출전이다. 원오는 물음을 '여하시불(如何是佛)'로 축약했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翻然投誠
投誠은 진심으로 귀의·투항함이다. '마음을 돌려 정성으로 귀의'로 옮긴 내 번역이 옳고, '돌연 마음에 투합'으로 옮긴 책은 投誠을 投合으로 오독한 오역이다. 玄則이 처음 撥正을 믿지 않다가 뒤에 귀의하는 문맥도 귀의를 지지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蓋當風證驗'을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증험'(當風=당면·직하)으로, 책은 '종풍에다 증험'(風=宗風)으로 옮겼다. 當風은 정면으로 맞닥뜨림이 표준 어의이나, 뒤의 인가(印可) 맥락상 '종풍에 비추어 증험함'도 배제하기 어렵다. 어느 한쪽으로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가능한 이독으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61.3
한문是故道本無言,因言顯道,若得此道,斷不在言句上。
번역그러므로 도는 본래 말이 없지만, 말로 말미암아 도가 드러납니다. 이 도를 얻으면, 결코 말과 구절 위에 있지 않습니다.
後番纔有言句,知得底裏,便七縱八橫,顛來倒去,腳蹋實地,迺不隨語生解,遂能自在,出沒予奪,莫不窮源極本。
뒤에 말과 구절이 있게 되더라도, 그 속을 알아차린 사람은 곧 이리저리 거침없이(七縱八橫) 엎치락뒤치락합니다. 발로 실지(實地)를 밟아,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자재하게 나타나고 사라지며 주고 빼앗는 데, 근원과 근본을 끝까지 다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從上大達之士,無不經此場地,琢磨煅煉,方堪行持。
예로부터 크게 통달한 이들은 이 마당을 거쳐 갈고 닦고 단련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행하여 지닐 만합니다.
但熟處放教生,生處弄令熟,悠久得大機大用,見一切萬變千化,皆卽識得破,信得及,把得住,作得主,
다만 익은 곳은 설게 하고 선 곳은 익게 하여, 오래도록 큰 기틀(大機)과 큰 작용(大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천만 가지 온갖 변화를 보아도, 모두 곧 꿰뚫어 알아보고, 믿어 의심하지 않고, 붙잡아 지니고, 주인 노릇을 합니다.
選甚放光動地,千百萬億佛來,也不消箇了字。
빛을 놓아 땅을 뒤흔들든, 천백만억 부처가 오든 가릴 것 없이, ‘요(了)’ 한 글자조차 쓸 것이 없습니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도는 본디 말이 없지만, 말을 빌려야 그 도가 드러납니다. 만약 이 도를 얻으면, 그것은 결코 말이나 글귀 위에 있지 않습니다. 뒷날 말과 글귀가 생기더라도, 그 속뜻을 알아챈 사람은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거침없이 자유롭습니다. 두 발이 참된 땅, 곧 실지를 굳게 밟고 서서, 말에 끌려 부질없는 알음알이를 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마음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되, 그 뿌리와 바탕을 끝까지 파고들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크게 통달한 이들은 하나같이 이 자리에서 갈고닦고 단련하였으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몸에 지녀 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익은 곳은 설게 만들고 선 곳은 익게 만들어, 오래도록 큰 기틀과 큰 작용을 얻으면, 천 가지 만 가지 변화를 마주해도 모두 곧바로 알아차려 깨뜨리고, 믿어 들어가며, 붙잡아 지켜 스스로 주인이 됩니다. 그리되면 빛을 뿜어 땅을 뒤흔들든, 천백만억 부처가 한꺼번에 몰려온들, ‘요(了)’, 곧 ‘다 마쳤다’는 그 한 글자조차 쓸 데가 없습니다.
61.4
한문巖頭云:卻物爲上,逐物爲下。若論戰也,箇箇力在轉處,唯向上轉,不落下風,便是急著眼處也。
번역암두(巖頭)가 말했습니다.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위요, 사물을 좇는 것이 아래다.” 싸움을 논한다면, 낱낱의 힘은 굴리는 곳에 있습니다. 오직 위로 굴려 아래 바람(下風)에 떨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서둘러 눈을 둘 곳입니다.
擬議不來,便喚卻眼睛也。正宜快斷割取,久之純熟,與摩詰、龐老無以異。
헤아리고 따지느라 미처 오지 못하면 곧 눈동자를 바꿔 치우게 됩니다. 참으로 마땅히 빠르게 끊어 베어 취해야 합니다. 오래되어 무르익으면, 유마힐(維摩詰)이나 방(龐) 노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쉽게 읽기암두라는 스님은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위요, 사물에 끌려가는 것이 아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암두의 이 말을 싸움에 빗대어 보면, 그 힘은 낱낱이 어떻게 굴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직 위를 향해 굴려서 아랫바람에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바로 이곳이 서둘러 눈을 붙여야 할, 곧 착안해야 할 자리입니다. 이리저리 헤아리고 따지느라 때를 놓치면, 곧바로 눈동자가 뒤바뀌어 어긋나 버립니다. 참으로 마땅히 재빨리 끊고 베어 가져, 오래도록 순수하게 익히면, 유마힐이나 방 노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풀이 3
巖頭全豁 암두전활'卻物爲上,逐物爲下'는 巖頭가 늘 쓰던 말로, 『碧巖錄』 제51칙 評唱에 '巖頭常用此機示衆云:明眼漢沒窠臼,卻物爲上,逐物爲下'라 하였다(T48n2003_p0186c05). 뒤의 '若論戰也,箇箇力在轉處'도 巖頭의 말로, 『碧巖錄』 제26칙 評唱 등에 '若論戰也,箇箇立在轉處'로 인용된다(T48n2003_p0167b13). 원오는 『碧巖錄』 評唱에서 이 두 말을 즐겨 끌어온다.
熟處放敎生 숙처방교생〔병렬용례〕 원오 碧巖錄 평창의 상투 어법 '擬議不來便換卻眼睛'·'熟處放敎生 生處放敎熟' : 본편의 '擬議不來 便換卻眼睛'·'熟處放敎生 生處弄令熟'과 동일 구법으로, 원오 자저(自著) 내의 자기 병렬 용례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擬議不來 便換卻眼睛也
換卻眼睛也는 머뭇거리면 눈동자가 바뀌어 버린다는 경책의 서술이다. '눈동자를 바꿔 치우게 된다'로 옮긴 내 번역이 옳고, '눈동자를 바꾸어 버리라'로 옮긴 책은 명령형으로 오독한 오역이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17
  1. 機境 기경

    기(機)는 스승이 내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솜씨, 경(境)은 그때 드러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다. 가르침의 수단을 두루 이르나, 거기에 붙들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병이 된다.

  2. 葛藤露布 갈등노포

    갈등(葛藤)은 칡덩굴 곧 얽힌 언구·정해(언구(言句)·정해(情解))이고, 노포(露布)는 공개적으로 내걸린 문서(軍檄)이다. 합하여 말과 알음알이의 늘어놓음이다.

  3. 報恩玄則 보은현칙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을 이은 선승으로, 금릉(金陵) 보은원(報恩院)에 머물렀다. 처음 청봉(青峰)에게서 '병정동자가 불을 구하러 온다'는 말을 들었고, 뒤에 법안에게서 같은 말을 다시 듣고 깨쳤다.

  4. 青林 청림

    보은 현칙 스님이 처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던 스승이다. 그가 '병정 동자가 불을 구하러 온다'고 답한 말을 현칙은 잘못 알았다가, 뒤에 법안 스님에게서 같은 말을 듣고 깨쳤다. 경덕전등록(권25)과 오등회원(권10)에는 '청봉'으로, 원오의 벽암록 제7칙에는 '청림'으로 적혀 있으며, 동산 스님의 제자 청림 사건과는 다른 사람이다.

  5. 丙丁童子來求火 병정동자래구화

    '불의 동자가 불을 구하러 온다'는 말이다. 천간(天干)의 병(丙)·정(丁)은 불(火)에 속하니, 이미 부처인 자기가 밖에서 부처를 찾는 격이라는 뜻이다. 보은현칙(報恩玄則)이 청봉(青峰)과 법안(法眼)에게서 들은 말로 이름났다.

  6. 法眼文益 법안문익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이다. 오대 때의 선승으로 지장(地藏) 스님 계침의 법을 이었다. 금릉(金陵)의 보은원·청량원에 머물며 크게 교화했고, 법안종의 시조가 되었다. 죽은 뒤 대법안 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7. 回光 회광

    회광반조(迴光返照)이다. 밖으로 향하던 빛을 돌이켜 자기를 비추는 회광이다. '시해회광(始解囘光)'은 현칙(玄則)이 비로소 반조할 줄 알게 됨이다.

  8. 熟處放敎生·生處弄令熟 숙처방교생·생처롱령숙

    익숙한 곳(습기·정해)은 설게, 낯선 곳(화두 참구)은 익게 만드는 공부 지침이다. 대기대용(大機大用)으로 나아가는 방편이다.

  9. 卻物爲上逐物爲下 각물위상축물위하

    사물을 물리쳐 초탈함이 위(上)이고, 사물을 좇아 끌려감이 아래(下)라는 암두(巖頭)의 강종어(綱宗語)이다. 이어지는 '전처(轉處)·향상전(向上轉)·불락하풍(不落下風)'도 암두(巖頭)의 임진(臨陣) 비유이다.

  10.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11. 維摩詰 유마힐

    Vimalakīrti.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이자 재가 보살의 전형이다. 재가 수신인에 맞춘 재가 승사(勝士) 열거의 첫 표본이다.

  12. 龐老 방로

    방온(龐蘊)(?–808)이다. 마조(馬祖)·석두(石頭) 문하 재가선의 대표로, 유마힐(維摩詰)과 병칭되어 재가 성취의 표준으로 제시된다.

  13.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14. 張直殿 장직전

    원오가 원오심요의 「장직전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장씨 성의 재가 사대부이다. '직전'은 송나라 때 관직 이름으로 보인다.

  15. 摩詰 마힐

    유마힐(維摩詰)(Vimalakīrti)이다. 재가 대사(大士)의 전형이다.

  16. 青林 청림

    『圜悟心要』 「示張直殿」에서 報恩玄則이 처음 '如何是佛'을 물어 '丙丁童子來求火'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 스승의 이름. 『景德傳燈錄』은 이 문답의 상대를 권25 玄則章에서 '青峯(有本云白兆)'(T51n2076_p0413b12), 권17에서 白兆志圓(p0341c10)으로 적어 '青林'은 보이지 않는다. 傳燈錄에서 '青林和尚'은 洞山良价의 法嗣 師虔(後洞山 第三世)의 다른 이름이다(권17, p0338b20).

  17. 熟處放敎生 숙처방교생

    익숙한 곳(습기·정해)은 설게, 낯선 곳(화두 참구)은 익게 만드는 공부 지침이다. 大機大用으로 나아가는 방편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