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17편

원선객(元禪客)에게 주는 글

示元禪客 住成都府廣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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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한문趙州道:佛之一字,吾不喜聞。且道他爲甚如此?
번역조주(趙州)가 말했다. “‘부처 불(佛)’ 한 글자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자, 말해 보라. 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했는가?
莫是佛爲一切智人,渠不喜聞耶?軒知不是這箇道理。既不如此,何以不喜聞之?
혹 부처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一切智人)이라서, 그가 듣기 좋아하지 않은 것인가? 그런 도리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듣기 좋아하지 않았는가?
若是明眼人,聊聞便知落處。請問落在什麼處?試吐露看。
눈 밝은 사람이라면 잠깐 듣기만 해도 곧 그 말이 떨어진 곳(落處)을 안다. 묻겠다. 어디에 떨어지는가? 한번 털어놓아 보라.
쉽게 읽기조주는 이렇게 말했다. "부처 불이라는 한 글자, 나는 그 말 듣기가 싫다." 자, 말해 보라. 그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부처는 온갖 것을 다 아는 분이다. 그래서 그 이름 듣기가 싫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님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듣기 싫다고 했을까?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잠깐만 들어도 곧 안다. 그 말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그 참뜻을 안다. 자, 물어보자. 그 말은 대체 어디로 떨어지는가? 한번 시원하게 털어놓아 보라.
풀이 6
趙州從諗 조주종심'佛之一字,吾不喜聞'은 『趙州錄』의 示衆語로, 곧이어 '和尚還為人也無' 문답이 따른다(권13·권14 두 곳).
佛之一字吾不喜聞 불지일자오불희문조주(趙州)「불지일자오불희문(佛之一字吾不喜聞)」은 조주화상어록(趙州和尚語錄)에 실리며, 이어지는 '여하시위인일구(如何是爲人一句)' 문답과 함께 불견(佛見)을 쓸어내는 예로 원오가 즐겨 인용한다. 본문 '위심여차(爲甚如此)'의 반문이 그 문맥과 일치한다.
佛之一字吾不喜聞 불지일자오불희문'莫是佛爲一切智人,渠不喜聞耶'는 趙州가 '佛之一字,吾不喜聞'이라 한 까닭을 짐짓 세워 묻는 말이다. 곧이어 '軒知不是這箇道理'로 물리친다.
교감 · 軒知不是這箇道理'軒知不是這箇道理' — 저본 그대로. '軒知'는 '분명히 알고 보면'의 뜻이다(上13 교감).
17.2
한문魯祖見僧來便面壁,是爲人不爲人?節文在什麼處?若要與他投機,作何趣向卽得?
번역노조(魯祖)는 스님이 오는 것을 보면 곧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面壁). 이것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인가? 그 요점(節文)은 어디에 있는가? 그와 기틀이 맞아떨어지려면(投機),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하겠는가?
쉽게 읽기노조 선사는 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곧 벽으로 돌아앉았다. 이것은 그 스님을 위한 것일까, 위하지 않은 것일까? 그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그와 마음의 기틀이 딱 맞아떨어지려면,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까?
풀이 5
魯祖面壁 노조면벽'節文在什麼處'는 保福이 長慶에게 '只如魯祖節文在什麼處, 被南泉恁麼道'라 물은 말(『景德傳燈錄』 권7 夾注)을 빌린 것이다.
節文 절문'節文在什麼處'는 保福이 長慶에게 魯祖面壁을 들어 물은 '只如魯祖節文在什麼處,被南泉恁麼道'(『景德傳燈錄』 권7 魯祖章 夾注)와 같은 꼴이다.
魯祖面壁 노조면벽노조면벽(魯祖面壁)은 從容錄 第23則(萬松)과 聯燈會要 魯祖寶雲章에 南泉評과 함께 실린다. 본문 '是爲人不爲人'이 南泉의 評('尋常向師僧道…')과 호응하여 해석을 확정해 준다.
17.3
한문百丈大智每上堂說法竟,復召大眾,眾回首,丈云:是什麼?藥山自云:百丈下堂句。且道用接何人?如何領覧?
번역백장 대지(百丈大智)는 법상에 올라 설법을 마칠 때마다 다시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고개를 돌리면 백장이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약산(藥山)이 스스로 말했다. “백장의 하당구(下堂句)다.” 자, 말해 보라. 어떤 사람을 이끄는 데 쓰는가? 어떻게 알아차리겠는가?
쉽게 읽기백장 대지는 법상에 올라 설법을 마칠 때마다 다시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고개를 돌리면 백장은 이렇게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약산은 이를 두고 스스로 말했다. "저것이 바로 백장이 법상에서 내려오며 던지는 한마디, 곧 하당구다." 자, 말해 보라. 이 한마디는 어떤 사람을 이끌어 맞아들이는 데 쓰는 것인가? 그 뜻을 너는 어떻게 알아차리겠는가?
풀이 4
藥山惟儼 약산유엄『景德傳燈錄』 권6 百丈章 夾注 '藥山目之為百丈下堂句'에 대응한다. 心要는 '目之'(그렇게 일컬음)를 '自云'으로 적었다.
百丈懷海 백장회해『景德傳燈錄』 권6 百丈章: '師有時說法竟 大眾下堂 乃召之 大眾迴首 師云是什麼(藥山目之為百丈下堂句)'(T51n2076_p0250c23~c24).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17
  1. 佛之一字吾不喜聞 불지일자오불희문

    조주어록(趙州語錄)에 실린 화두이다. '부처라는 한 글자조차 듣기 싫다'는 뜻으로 불견(佛見)·법견(法見)까지 쓸어버리는 차전(遮詮)이다. 흔히 '염불일성수구삼일(念佛一聲漱口三日)'류와 짝을 이룬다.

  2. 落處 낙처

    말이나 행동이 떨어져 닿는 자리, 곧 그 말이 참으로 가리키는 속뜻을 이른다. 선에서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 낙처를 알아채는 것을 눈 밝은 사람의 일로 친다.

  3. 魯祖面壁 노조면벽

    노조보운(魯祖寶雲)은 마조(馬祖)의 법을 이은 선승으로, 스님이 찾아오면 늘 돌아앉아 벽을 바라보았다. 이를 들은 남전(南泉)은 '부처가 나기 전 자리를 알라고 해도 한둘도 얻지 못하는데, 저렇게 해서는 나귀 해에나 될 것'이라 했다. 말 없는 면벽이 무엇을 보였는지 묻는 공안이다.

  4. 是爲人不爲人 시위인불위인

    사람을 위한 것인가, 위하지 않은 것인가. 노조면벽(魯祖面壁)을 두고 던지는 물음으로, 남전(南泉)의 평 '심상향사승도(尋常向師僧道)…'와 맞물린다. 이 공안은 『종용록(從容錄)』 제23칙(만송(萬松))과 『연등회요(聯燈會要)』 노조보운장(魯祖寶雲章)에 남전의 평과 함께 실린다.

  5. 節文 절문

    본래 예법의 마디와 꾸밈을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요긴한 곡절이나 숨은 뜻을 가리킨다. 노조(魯祖)의 면벽을 두고 흔히 그 절문을 묻는다.

  6. 百丈懷海 백장회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백장산에 선원을 열고 선원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처음 세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났다. 제자로 황벽(黃檗)과 위산(溈山)이 있다.

  7. 百丈下堂句 백장하당구

    백장(百丈)이 설법(說法)을 마치고 대중(大眾)을 불러 돌아보게 한 뒤 '시십마(是什麼)'라 한 기어(機語)이다. 약산(藥山)이 이를 '백장하당구(百丈下堂句)'라 품평하였다. 전등록(傳燈錄)·연등회요(聯燈會要)에 실린다.

  8.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9. 投機 투기

    스승과 배우는 이의 기틀(機)이 딱 맞아떨어져 마음이 통하고 깨달음이 열림을 이른다. 이때 깨친 마음을 읊어 바치는 게송을 투기게(投機偈)라 한다.

  10. 藥山惟儼 약산유엄

    약산유엄(藥山惟儼, 746~829)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석두(石頭) 스님의 법을 이었고, 마조(馬祖)에게도 배웠다. 예주(澧州) 약산에 머물렀다. 석두가 '무엇을 하느냐' 묻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한 문답이 유명하다. 그 법은 조동종으로 이어졌다.

  11. 示元禪客·住成都府廣孝 시원선객·주성도부광효

    원오가 원(元)이라는 선객(禪客)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선객은 선을 닦으러 다니는 수행승이다. 제목에 붙은 '주성도부광효(住成都府廣孝)'는 그가 성도부(成都府)의 광효(廣孝)에 머물렀음을 적은 말이다.

  12. 一切智人 일체지인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일체지)를 갖춘 사람, 곧 부처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13. 明眼人 명안인

    정법안(正法眼)을 갖춘, 안목이 분명한 납승(納僧)이다. '요문편지락처(聊聞便知落處)'—한마디 듣고 곧 귀결처를 아는 자이다.

  14. 魯祖寶雲 노조보운

    노조보운(魯祖寶雲)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에 머물렀다. 스님이 찾아오면 말없이 벽을 향해 돌아앉은 일로 이름나, 그 일이 '노조면벽(魯祖面壁)' 공안이 되었다.

  15. 趣向 취향

    나아갈 방향·착안점이다.

  16. 是什麼 시십마

    '이 무엇인고'—돌아보는 찰나의 당처(當處)를 곧장 겨누는 직지어이다.

  17. 領覽 영람

    알아차림·영회(領會)의 뜻이다(이문 의심은 교감 참조).

문단 3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