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4편

등상인(燈上人)에게 주는 글

示燈上人

44.1
한문要直截透脫,須先深信自己根腳下有此一段,
번역곧바로 뚫고 벗어나려면, 먼저 자기 발밑에 이 한 가지 일(一段)이 있음을 깊이 믿어야 한다.
輝騰今古,迥絕知見,淨倮倮,沒依倚,常在目前,無毫髮相,寬同太虗,明逾杲日。
그것은 예와 지금에 빛나 떨치고, 지견(知見)을 아득히 끊었다. 깨끗이 발가벗어 기댈 데가 없다. 늘 눈앞에 있으나 털끝만 한 모습(相)도 없다. 넓기로는 큰 허공(太虛)과 같고, 밝기로는 밝은 해를 넘어선다.
天地萬物有成壞,此箇無變無移,古人謂之不與萬法爲侶底人,亦號如來正徧知覺。
하늘과 땅과 만물은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변하지도 옮겨 가지도 않는다. 옛사람은 이를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라 했고, 또 여래(如來)의 바르고 두루 한 앎(正徧知覺)이라 불렀다.
쉽게 읽기곧바로 뚫고 벗어나려면, 먼저 한 가지를 깊이 믿어야 한다. 바로 자기 발밑에 이 한 단락의 것, 곧 누구에게나 본래 갖추어진 그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환히 빛나 떨친다. 온갖 분별과 알음알이를 아득히 벗어나고, 한 물건도 걸치지 않은 깨끗한 알몸이어서 기댈 데가 없다. 늘 눈앞에 있으나 털끝만 한 모습도 없다. 넓기로는 끝없는 허공과 같고, 밝기로는 한낮의 해보다도 밝다. 하늘과 땅과 온갖 것은 이루어졌다가 무너지지만, 이것만은 변하지도 옮겨 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은 이를 두고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라 불렀고, 또 여래의 정변지각이라 이름하였다.
44.2
한문但諦實承當,使一念不生,徹透本來,元不動搖,長時無間,若行若住,百種作爲,初不妨礙,歷歷孤明,一機一境,一句一言,皆含法界,稱本真如,情想計度,無起滅處。
번역다만 참되게 떠맡아,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본래를 사무쳐 뚫어라. 그러면 원래 흔들림이 없어 오래도록 끊어짐이 없다. 가든 머물든 온갖 짓고 하는 일에 애초에 걸림이 없다. 또렷또렷 홀로 밝다. 하나의 기틀과 하나의 경계, 한 구절과 한 마디가 모두 법계(法界)를 머금어 본래의 진여(眞如)에 들어맞는다. 정식의 생각과 헤아림이 일어나고 스러질 곳이 없다.
以此正印一印印定,自然隨方逐圓,悉非二種。
이 바른 도장(正印)으로 한 번 찍어 정하면, 저절로 모남을 따르고 둥긂을 좇아도 모두 두 가지가 아니다.
쉽게 읽기다만 이것을 참되게 떠맡아,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본래의 자리를 사무쳐 뚫으면 된다. 그러면 처음부터 흔들림이 없어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는다. 가든 머물든 온갖 하는 일이 조금도 걸리지 않고, 또렷또렷 홀로 밝다. 하나의 기틀, 하나의 경계, 한 구절, 한 마디가 모두 온 진리의 세계, 곧 법계를 머금어, 본래 그대로의 참됨인 진여에 딱 들어맞는다. 헤아리고 따지는 마음이 일어나거나 스러질 자리가 없다. 이 바른 도장으로 한 번 꾹 찍어 인가하여 정하면, 모난 것을 따르든 둥근 것을 좇든 저절로 둘로 갈리지 않는다.
44.3
한문他自古明見佛性得道之士,運用作爲未嘗不在觀塵緣境界,無塵緣可得,鞠歸一真實際。如此退步,一日之功便抵一劫。
번역저 예로부터 불성(佛性)을 밝게 보아 도를 얻은 이들은, 운용하고 행하는 것이 일찍이 티끌 인연(塵緣)의 경계를 보는 데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얻을 티끌 인연이 없어, 마침내 하나의 참된 실제(眞實際)로 돌아갔다.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면, 하루의 공부가 곧 한 겁(劫)에 맞먹는다.
是故南泉道:王老師十八上便會作活計,不是揭搦強爲。
그러므로 남전(南泉)이 말했다. “왕노사(王老師)는 열여덟 살에 벌써 살림살이(活計)를 지을 줄 알았다. 억지로 붙잡아 애써 한 것이 아니다.”
蓋任運騰騰,寬通自在,天龍鬼神覓他起心行處不得。
대개 되어 가는 대로 맡겨 거침없고(任運騰騰), 넓게 통하여 자재하다. 천룡(天龍)과 귀신도 그가 마음을 일으켜 가는 곳을 찾아내지 못한다.
쉽게 읽기예로부터 불성을 밝게 보아 도를 얻은 이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티끌세상의 인연, 곧 진연의 경계를 마주하는 가운데 있었다. 그러면서도 거기서 따로 붙잡을 진연이 없어, 마침내 하나의 참된 실제, 곧 진실제로 돌아갔다. 이렇게 한 걸음 물러나 자기를 돌이켜 살피면, 하루의 공부가 한 겁의 공부에 맞먹는다. 그래서 남전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 왕노사는 열여덟 살에 벌써 살림살이를 지을 줄 알았다. 이것은 억지로 붙잡아 애써 지은 것이 아니다.' 대개 인연에 맡겨 걸림 없이 유유하니, 천룡과 귀신이 그가 마음을 일으켜 움직이는 자리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아내지 못한다.
풀이 5
南泉普願 남전보원南泉 上堂 '老僧十八上解作活計'(『景德傳燈錄』 권28). '王老師十八上便解作活計'의 꼴은 『聯燈會要』 권4. 趙州의 '我十八上便解破家散宅'과 짝지어 거론되기도 한다(『聯燈會要』 권12·16).
活計남전(南泉)「왕로사(王老師)」자칭 및 활계(活計) 용례: 남전이 속성 왕(王)을 따 '왕로사(王老師)'로 자칭하는 예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8 남전장(南泉章)에 보이며, 원오(圜悟) 『벽암록(碧巖錄)』의 여러 남전(南泉) 관련 칙(제28칙 남전불설저법(南泉不說底法), 제40칙 남전일주화(南泉一株花), 제69칙 남전화원상(南泉畫圓相) 등)에서 남전의 활계(活計)적 작용이 반복 제창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鞠歸一真實際
鞠을 내 번역은 竟·窮(마침내)으로 읽어 '마침내 하나의 진실제로 돌아감'으로 옮겼고, 책은 掬(움켜쥐다)의 가차로 보아 '움켜쥐어 귀결시켰다'로 옮겼다. 앞 구 '無塵緣可得'(얻을 진연이 없음)과 정면으로 어긋나므로 문맥상 '끝내 귀결'이 옳다. 掬 가차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책 쪽이 과·오역에 가깝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王老師十八上便會作活計
'十八上'의 '上'은 나이 '~살 무렵'을 뜻하는 백화 어법이니 '열여덟 살에'가 옳고 내 번역과 일치한다. 책 '열여덟 차례만에'는 上을 횟수로 오독한 것으로 南泉의 상용 어투에 어긋난다.
44.4
한문此無心人行履直下深嚴,若能休歇,知見解礙,將來便有徹證之分,亦解作活計去。要須揭志勉強,然後無行不圓,於曹溪路上得無間力用也。
번역이 무심(無心)한 사람의 걸음걸이(行履)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깊고 엄하다. 지견과 알음알이의 걸림을 쉴 수 있다면, 앞으로 사무쳐 깨칠 몫이 있고, 또한 살림살이를 지을 줄 알게 된다. 반드시 뜻을 높이 세우고 힘써 애써야 한다. 그런 뒤에야 어떤 행도 원만하지 않음이 없다. 조계(曹溪)의 길 위에서 끊임없는 힘과 작용을 얻는다.
쉽게 읽기이처럼 마음을 비운 무심한 사람이 나날이 살아가는 자취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깊고 반듯하다. 만약 능히 푹 쉬어, 지견과 알음알이가 만드는 걸림을 놓아 버릴 수 있다면, 앞으로 사무쳐 깨쳐 얻을 분수가 있고, 또한 스스로 살림살이를 지을 줄 알게 된다. 다만 반드시 뜻을 높이 세우고 힘써 애써야 한다. 그런 뒤라야 어떤 행도 두루 원만하지 않음이 없어, 조계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힘의 작용을 얻는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此無心人行履直下深嚴
'直下'는 '바로 그 자리에서·곧장'의 뜻이다. 책 '행리는 간결하나 깊숙하고 엄하다'는 直下의 즉하(卽下) 뜻을 버리고 '간결하나'라는 대비적 뉘앙스를 임의로 보탠 과의역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4
  1. 迥絕知見 형절지견

    '형(迥)'은 아득히 멀다는 뜻이다. 분별과 알음알이(知見)를 까마득히 벗어남을 형용한다.

  2. 太虗 태허

    태허(太虛)(끝없는 허공)와 같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이다.

  3. 杲日 고일

    높이 떠 환히 밝은 해다. '고(杲)'는 해가 나무 위로 떠올라 밝다는 뜻이다. 선어록에서는 걸림 없이 밝은 마음의 비유로 쓴다.

  4. 不與萬法爲侶底人 불여만법위려저인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다. 방거사(龐居士)(방온(龐蘊))가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불여만법위려자시십마인(不與萬法爲侶者是什麼人)(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이라 물은 데서 유래한다. 마조는 '대여일구흡진서강수(待汝一口吸盡西江水), 즉향여도(卽向汝道)(그대가 한 입에 서강 물을 다 마셔버리면 일러주겠다)'라 답하였다. '저(底)'는 '~하는'을 뜻하는 백화(白話) 어조사이다. 어떤 대상과도 상대하지 않는 절대 주체를 가리킨다.

  5. 正印一印印定 정인일인인정

    바른 심인(心印)으로 도장 찍듯 한 번 찍어 인가(印可)하여 확정함이다. 선종의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인가를 도장(印)에 비유한 표현이다.

  6. 鞠歸一真實際 국귀일진실제

    '국(鞠)'은 '마침내·끝내(=경(竟)·궁(窮))'의 뜻이니 국귀(鞠歸)는 마침내 돌아감이다. 일진실제(一真實際)는 하나의 진실한 실제(實際), 곧 진여실상(眞如實相)의 궁극 자리이다.

  7. 退步 퇴보

    한 걸음 물러섬이다. 밖으로 치닫는 반연을 거두어 자기 근원을 돌이켜 살피는 선 수행의 공부로, 뒤의 휴헐(休歇)과 짝을 이룬다.

  8. 一日之功便抵一劫 일일지공편저일겁

    하루의 공부가 한 겁(劫)에 맞먹는다는 말이다. 퇴보(退步)·휴헐(休歇)의 공효가 지극함을 강조한다.

  9.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10. 王老師十八上便會作活計 왕로사십팔상편회작활계

    남전이 '나 왕노사는 열여덟에 이미 살림살이(活計) 지을 줄 알았다'고 한 말이다. '활계(活計)'는 살림살이·생계이나, 선가에서는 본분의 자유로운 작용(전신수용의 살림)을 비유한다. '십팔상(十八上)'의 '상(上)'은 '~살 무렵'을 뜻하는 백화 표현이다. 조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본분 작용을 뜻한다.

  11. 揭搦強爲 게닉강위

    억지로 붙잡아 조작함이다. '게(揭)'는 들어올림이고 '닉(搦)'은 손으로 쥐거나 누름이니, 작위(作爲)·조작을 부정하는 말이다.

  12. 任運騰騰 임운등등

    인연에 맡겨(任運) 걸림 없이 유유자적한 모양이다. '등등임운(騰騰任運), 임운등등(任運騰騰)'의 게송에서 온 선가 관용어이다.

  13. 無間力用 무간역용

    간단(間斷) 없이 이어지는 힘의 작용, 곧 끊임없이 발현되는 본분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이다.

  14. 不與萬法爲侶 불여만법위려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은 문답이다. 마조는 '그대가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일러 주겠다'고 답했고, 방거사는 그 말끝에 깨쳤다고 한다. 원오는 이 말을 온갖 것에 매이지 않는 본래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쓴다.

  15. 淨倮倮 정라라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깨끗이 발가벗었다는 말이다. 아무것에도 가려지거나 기대지 않은 본래 마음의 맨모습을 그린다. 흔히 정라라적쇄쇄(淨倮倮赤灑灑)로 이어 쓴다.

  16. 休歇 휴헐

    온갖 생각과 얽매임을 쉬어 그침을 이른다. 밖으로 찾아 헤매는 마음을 내려놓는 그 자리가 곧 깨달음이라는 뜻에서, 선문에서 공부의 요긴한 말로 썼다.

  17. 行履 행리

    걸음걸이와 발자취, 곧 날마다 몸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실제 모습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깨친 뒤의 수행과 처신, 그 사람의 살림살이를 두루 가리킨다.

  18. 塵緣 진연

    티끌 같은 인연, 곧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이라는 여섯 경계(육진, 六塵)와 얽히는 인연을 이른다. 마음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어지럽히는 세속의 인연을 가리킨다.

  19. 燈上人 등상인

    원오 스님이 원오심요의 「시등상인」을 지어 준 승려이다. '상인'은 덕 높은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등'은 그의 법명 가운데 한 글자이다.

  20. 一段 일단

    '한 가지 일'이라는 말이다. 선가에서는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는 근본 소식, 곧 본래면목 · 불성을 '이 한 가지 일'이라 부르며,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제 발밑에 본래 있는 것임을 강조할 때 쓴다.

  21. 如來正徧知覺 여래정편지각

    부처의 열 가지 명호(如來十號) 중 '정편지(正徧知)(정변지, 산스크리트 samyak-saṃbuddha)'이다. '편(徧)'은 편(遍)(변)의 이체자이다. 온갖 법을 두루 바르게 아는 부처의 깨달음을 이른다.

  22. 天龍鬼神 천룡귀신

    천룡팔부(天龍八部)와 귀신이다. 온갖 신령한 존재조차 무심한 사람의 마음 자취(起心行處)를 엿볼 수 없음을 말한다.

  23. 曹溪路 조계로

    조계(曹溪)는 육조혜능(六祖慧能)이 주석한 소주(韶州)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이다. '조계로(曹溪路)'는 혜능이 연 남종선(南宗禪)의 정법(正法)의 길, 곧 조사선(祖師禪)의 대도를 상징한다.

  24. 淨裸裸·迥絕知見 정라라·형절지견

    '정라라'는 털끝만 한 가림도 없이 깨끗이 드러난 모양이고, '형절지견'은 앎과 견해가 미치지 못할 만큼 아득히 벗어나 있음을 이른다. 둘 다 본래 갖춘 근본 자리를 그릴 때 원오 스님이 즐겨 쓴 말로, '정라라 적쇄쇄(깨끗이 벗고 말끔히 씻은 듯함)'는 벽암록과 원오 어록에 거듭 나온다.

문단 4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4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