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71편

증대제(曾待制)에게 드리는 글

示曾待制

71.1
한문禪非意想,道絕功勳。若以意想參禪,如鑽冰求火,堀地覓天,只益勞神。
번역선(禪)은 뜻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닙니다. 도(道)는 애써 쌓는 공훈(功勳)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만약 뜻으로 헤아려 선을 참구하면, 얼음을 뚫어 불을 구하고 땅을 파서 하늘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한갓 정신만 수고롭게 할 뿐입니다.
若以功勳學道,如土上加泥,眼裏撒沙,轉見困頓。
만약 공훈을 들여 도를 배우면, 흙 위에 진흙을 더하고 눈 속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갈수록 더 지치고 고달파질 뿐입니다.
儻歇卻意識,息卻妄想,則禪河浪止,定水波澄。
만일 의식(意識)을 쉬고 망상(妄想)을 그치면, 선의 강물에 물결이 멎고 선정의 물에 파도가 맑아집니다.
去卻功用,休卻營爲,則大道坦然,七通八達。
애써 부리는 공용(功用)을 버리고 이리저리 꾸미는 짓을 그치면, 큰 도(大道)가 평탄하여 일곱 갈래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트입니다.
쉽게 읽기선은 머리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도 애써 공훈을 쌓아 이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뜻으로 이리저리 따져 선을 참구하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얼음을 뚫어 불을 구하고, 땅을 파서 하늘을 찾는 일과 같습니다. 한갓 정신만 지치게 할 뿐입니다. 애써 공훈을 들여 도를 배우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흙 위에 다시 진흙을 바르고, 눈 속에 모래를 뿌리는 격이라, 갈수록 더 고달프고 막힐 뿐입니다. 그러나 의식을 쉬고 망상을 그치면 달라집니다. 선의 강물에 물결이 멎고, 선정의 물에 파도가 잦아들어 맑아집니다. 애써 부리던 공용을 없애고, 이리저리 꾸미던 조작을 그치면, 대도가 평탄해져 사방팔방으로 훤히 통하게 됩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鑽冰求火
CBETA 확정저본은 '冰(얼음)'인데 책은 '나무를 뚫어 불을 구함'으로 옮겼다. 이 구절은 堀地覓天과 짝을 이뤄 방향이 근본부터 어긋난 헛수고를 말하므로, 얼음을 뚫어 불을 구한다야 무의미함이 성립한다. 나무 뚫기는 실제 발화 방법이라 도리어 비유가 무너진다. '얼음을 뚫어 불을 구하고'가 저본에 맞다. 책의 '나무'는 오역이거나 다른 저본을 따른 것일 수 있다.
71.2
한문是故僧問石頭:如何是禪?頭云:碌磚。僧云:如何是道?云:木頭。此豈意想功勳所能辯哉?除非直下頓領,截流便透,則禪道歷然。才擬作解,則千里萬里。
번역그러므로 어떤 스님이 석두(石頭)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선입니까?” 석두가 말했습니다. “벽돌이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무엇이 도입니까?” 석두가 말했습니다. “나무토막이다.” 이것이 어찌 뜻으로 헤아리거나 공훈을 들여 분별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단박에 알아차리고 흐름을 끊어 곧바로 꿰뚫어야만, 선과 도가 또렷해집니다. 조금이라도 헤아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곧 천 리 만 리로 어긋납니다.
쉽게 읽기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스님이 석두희천 스님에게 “무엇이 선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석두는 “벽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이 다시 “무엇이 도입니까?” 하고 묻자, “나무토막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어찌 뜻으로 헤아리거나 애써 공을 들여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단박에 알아차려, 흐름을 뚝 끊고 그대로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선과 도가 또렷이 드러납니다. 조금이라도 머리로 따져 알음알이를 지으면, 곧 천 리 만 리로 어긋나 버립니다.
풀이 4
石頭希遷 석두희천『景德傳燈錄』 권14 石頭希遷章·『五燈會元』 권5 石頭章에 있다.
木頭 목두석두(石頭)의 녹전(碌塼)/목두(木頭) 문답은 『오등회원(五燈會元)』권오(卷五) 석두희천장(石頭希遷章) 등 등록(燈錄)에 실린 것으로, 생각의 길을 끊는 석두(石頭) 가풍(家風)의 대표 용례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功勳'·'所能辯哉'는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功勳은 애써 쌓는 노력(공용)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이룬 공로를 뜻하므로 '노력'과 '공로' 어느 쪽으로 새겨도 무방하고, 辯(辨)은 변별하여 가려냄과 말로 풀어 설명함을 아울러 '분별'과 '설명'이 모두 성립한다. '此豈意想功勳所能辯哉'의 문맥에서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양립가능한 이독으로 둔다.
71.3
한문要是向來世智辯聰,頓然放卻,消遣令盡,自然於此至實之地,自證自悟,而不留證悟之迹,翛然玄虗,通達乃善。
번역요컨대 여태 지녀 온 세상의 지혜와 말재주와 총명을 단박에 놓아 버리고, 남김없이 녹여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이 더없이 참된 자리에서 스스로 증득하고 스스로 깨닫되, 증득하고 깨달은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훌쩍 벗어나 그윽이 비고 걸림 없이 통해야 비로소 좋습니다.
쉽게 읽기한마디로, 여태껏 지녀 온 세상의 지혜와 말재주와 총명함을 단박에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남김없이 녹여 없애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이 더없이 참된 자리에서 스스로 증득하고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증득했다거나 깨달았다는 자취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훌쩍 벗어나 그윽이 비고, 어디에도 걸림 없이 두루 통해야 비로소 좋습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翛然玄虗
翛然은 얽매임 없이 훌쩍 벗어난 모양이다. 책은 '단박에 현허하게'로 옮겼으나 '단박에'는 頓의 뜻이어서 翛然을 시간부사로 잘못 새겼다. '훌쩍 벗어나 그윽이 비고'가 적절하다.
71.4
한문馬大師嘗舉楞伽經以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乃云:諸人要識佛語心麼?只你如今語便是心,心便是佛。
번역마 대사(馬大師)께서 일찍이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능가경(楞伽經)』은 부처의 말과 마음(佛語心)을 종지로 삼고, 문 없음(無門)을 법문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르셨습니다. “여러분은 부처의 말과 마음을 알고자 하는가? 다만 그대들이 지금 말하는 그것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故云:佛語心乃是宗也,此宗無門乃是法門。
그래서 이르셨습니다. “부처의 말과 마음이 곧 종지요, 이 종지의 문 없음이 곧 법문이다.”
古人大煞老婆,拖泥涉水,若一舉便透,猶較些子,或窮研義理,卒模𢱢不著。
옛사람은 참으로 노파심이 지극하여,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너듯 애를 쓰셨습니다. 한 번 들 때 곧바로 꿰뚫는다면 그래도 조금은 가깝습니다. 혹 뜻과 이치를 끝까지 파고든다면, 끝내 더듬어도 닿지 못합니다.
쉽게 읽기마조 대사께서는 일찍이 『능가경』의 말씀을 드셨습니다. 이 경은 ‘부처의 말과 마음’을 종지로 삼고,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마 대사께서 이르셨습니다. “여러분은 부처의 말과 마음을 알고 싶습니까? 그대들이 지금 말하는 바로 그것이 곧 마음이요, 그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그래서 “부처의 말과 마음이 곧 종지요, 이 종지의 문 없음이 곧 법문이다”라고 이르신 것입니다. 옛 스승은 참으로 노파심이 깊어,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너듯 애를 다하셨습니다. 그 말을 한 번 드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꿰뚫는다면, 그래도 조금은 가까운 편입니다. 그러나 뜻과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며 따지기만 한다면, 끝내 더듬어도 닿지 못할 것입니다.
풀이 7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只你如今語便是心,心便是佛'은 『宗鏡錄』 권1의 馬祖 법어 '佛語心者,即心即佛,今語即是心語'와 취지가 같다. 『景德傳燈錄』 권6에는 '楞伽經云'의 두 구까지만 있다.
馬祖道一 마조도일'佛語心爲宗, 無門爲法門'은 馬祖 示衆이 『楞伽經』을 끌어 쓴 대목(『景德傳燈錄』 권6 馬祖章). 뒤의 '只你如今語便是心' 구는 燈錄의 馬祖章에서 같은 글귀를 찾지 못하였다.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마조(馬祖) 인용의 출처는 『강서마조도일선사어록(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및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육(卷六) 마조장(馬祖章))이다. '달마대사종남천축국래(達磨大師從南天竺國來)…이능가경인중생심(以楞伽經印眾生心)…능가경운(楞伽經云) 불어심위종(佛語心爲宗) 무문위법문(無門爲法門).'을 원오가 거의 그대로 끌어 썼다.
拖泥涉水 타니섭수노파심절(老婆心切)·타니대수(拖泥帶水)는 원오 『벽암록(碧巖錄)』 수시(垂示)·평창(評唱)에서 스승의 간절한 접인을 나타낼 때 자주 쓰는 어법으로, 본편(本篇) '大煞老婆 타니섭수(拖泥涉水)'와 같은 용례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拖泥涉水
涉水는 물을 건넘이다. 책의 '물에 떠 있다'는 涉(건널 섭)의 뜻을 벗어난 무리한 풀이다.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너듯'이 축자에 부합한다. 다만 관용구 拖泥帶水가 지닌 '군더더기를 무릅쓴 노고'라는 함의는 양쪽 다 전한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15
  1. 鑽冰求火 찬빙구화

    얼음을 뚫어 불을 구함이다. 방향이 근본부터 어긋난 헛수고의 비유로, 이어지는 '堀地覓天(땅을 파 하늘을 찾음)'과 대구(對句)를 이룬다.

  2. 七通八達 칠통팔달

    일곱 갈래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트인다는 말이다. 어디로 가나 막힘없이 훤히 통함을 이르며, 깨친 이의 걸림 없는 자재함을 그린다.

  3.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4. 碌磚 녹전

    벽돌 조각이다. '전(塼)'은 '전(磚)(벽돌 전)'의 이체자로 뜻이 같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의미한 답으로 분별을 끊는다.

  5. 木頭 목두

    나무토막이다. 석두(石頭)가 '무엇이 도(道)입니까'라는 물음에 한 답으로, '녹전(碌磚, 벽돌)'과 짝을 이루어 도(道)·선(禪)을 개념으로 붙잡을 수 없음을 보인다.

  6. 翛然玄虗 소연현허

    '소연(翛然)'은 얽매임 없이 훌쩍 벗어난 모양이고, '현허(玄虗)'는 '현허(玄虛)' 곧 그윽이 빈 경계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다.

  7. 楞伽經 능가경

    『능가경(楞伽經)』, 산스크리트 Laṅkāvatāra-sūtra이다. 달마(達磨)가 이조(二祖) 혜가(慧可)에게 전하여 심인(心印)을 인가했다는 초기 선(禪)(능가종(楞伽宗))의 소의경이다.

  8. 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 불어심위종·무문위법문

    '부처가 말씀한 마음을 종지로 삼고,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마조(馬祖)가 대중에게 『능가경(楞伽經)』의 뜻이라며 들어 보인 표어다. 『무문관』도 이 말로 첫머리를 연다.

  9.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10. 拖泥涉水 타니섭수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넘이다. 노파심에서 군더더기를 무릅쓰고 자상히 이끄는 수단을 이르는 선가(禪家) 관용어다.

  11. 較些子 교사자

    '조금 낫다, 그런대로 괜찮다'는 뜻의 송나라 때 입말이다. 선사가 상대의 말을 다 옳다고 하지는 않으면서 어느 만큼 인정할 때 '그래도 조금은 낫다(猶較些子)'처럼 쓴다. '조금 모자란다'는 뜻이 아니다.

  12.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마조(馬祖)가 『능가경』의 뜻을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고 간추려 보인 데서 널리 쓰였다.

  13. 世智辯聰 세지변총

    세상살이의 지혜와 말재주, 총명함을 이른다.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처지(八難)의 하나로 꼽힌다. 똑똑함이 도리어 알음알이를 키워 깨달음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14. 曾待制 증대제

    원오가 법어를 보낸 송나라 사대부이며, 대제(待制)는 그의 벼슬 이름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증 대제'라 부르며 편지를 주고받은 증개(曾開)와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15. 老婆心切 노파심절

    할머니가 손주를 걱정하듯 간절한 마음. 禪家에서 스승이 學人을 위해 지나치리만큼 자상하게 일러 주는 마음을 이른다. 臨濟가 黃檗에게 '秖為老婆心切'이라 하고(『臨濟錄』, T47n1985_p0504c25), 大愚가 '黃檗與麼老婆心切,為儞徹困'이라 한 대목(『碧巖錄』 제11칙 評唱, T48n2003_p0152a09)이 이름났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