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12편

한통판(韓通判)에게 드리는 글

示韓通判

영상으로 보기 →

이 편의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無方便可以使得。十二時用得一切法
자체역은 CBETA 확정 구두를 따라 '방편으로 부릴 수 없다 / 온종일 온갖 법을 쓴다'로 끊어 읽으나, 출판본은 '任運照應無方,便可以使得十二時'로 재구두하여 '곧 하루(十二時)를 부린다'로 읽는다. 후자는 趙州의 '不被十二時使,使得十二時' 공안과 통하는 유력한 이독으로, 저본 구두는 자체역을 지지하되 두 독법이 모두 성립하는 양립가능 이독이다.
12.1
한문透脫要旨,唯在歇心。此心知見生,卽轉遠,直下歇到無心之地,虗閑寂靜,雖萬變千轉,非外非中,了不相干,自然騰騰,任運照應,無方便可以使得。
번역꿰뚫어 벗어나는(透脫) 요점은 오직 마음을 쉬는 데 있습니다. 이 마음에 지견(知見)이 일어나면 곧 더 멀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곧장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도록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텅 비고 한가하며 고요합니다. 만 번 변하고 천 번 굴러도,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니어서 전혀 서로 얽히지 않습니다. 저절로 거침없이(騰騰), 인연에 맡겨 비추고 응합니다. 어떤 방편으로도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읽기꿰뚫어 벗어나는 요점은 오직 마음을 쉬는 데 있습니다. 이 마음에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도리어 더 멀어집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곧장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텅 비고 한가하며 고요해집니다. 만 번 바뀌고 천 번 굴러도,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니어서 무엇에도 얽히지 않습니다. 저절로 활발하게 인연에 맡겨 비추어 응할 뿐입니다. 이것은 어떤 방편으로도 억지로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풀이 2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30 소수 南嶽懶瓚(明瓚) '낙도가(樂道歌)': '등등임운(騰騰任運), 임운등등(任運騰騰)... 올올무위(兀兀無爲)'의 구이다. 본문 '자연등등(自然騰騰), 임운조응(任運照應)'·'치올인(癡兀人)'의 출전적 이미지로, 등록(燈錄) 계열 병렬용례이다.
癡兀人 치올인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30 소수 南嶽懶瓚(明瓚) '樂道歌': '騰騰任運, 任運騰騰... 兀兀無爲'의 구이다. 본문 '自然騰騰, 任運照應'·'癡兀人'의 출전적 이미지로, 燈錄 계열 병렬용례이다.
12.2
한문十二時用得一切法,根本廓然,不形彼我、愛憎、得失、去來。所謂任運猶如癡兀人,他家自有通人愛。
번역하루 온종일 온갖 법을 다 써도, 그 근본은 툭 트여 있습니다. 너와 나, 사랑과 미움, 얻음과 잃음, 감과 옴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른바 ‘인연에 맡김(任運)은 어리석고 무딘 사람과 같으니, 그에게는 절로 도에 통한 이(通人)의 아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읽기하루 온종일 온갖 법을 다 쓰더라도, 그 근본은 툭 트여 있습니다. 그래서 너와 나, 사랑과 미움, 얻음과 잃음, 가고 옴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른바 인연에 맡긴다는 것은, 마치 어리석고 무딘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이는 도에 통달한 사람이 절로 아끼고 알아주는 법입니다.
풀이 9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他家自有通人愛'는 寶誌 「十二時頌」 人定亥 구에 보인다(『景德傳燈錄』 권29, T51n2076_p0450b22; 『聯燈會要』 권30은 '放蕩長如癡兀人'과 짝). 원오는 '任運猶如癡兀人,他家自有通人愛' 두 구를 『語錄』 권12 小參·권15 法語('古德道')에도 들었다.
任運 임운'他家自有通人愛'는 寶誌 「十二時頌」의 구(『景德傳燈錄』 권29)이다. 앞 구 '任運猶如癡兀人'은 거기 없고, 『續傳燈錄』 권5·『五燈會元』 권15에는 '放曠長如癡兀人'이 古人云으로 인용된다.
通人 통인'他家自有通人愛'는 寶誌和尚 「十二時頌」 人定亥 끝 구(『景德傳燈錄』 권29). 앞 구 '任運猶如癡兀人'은 圜悟가 '古德道'로 인용하나(『圜悟語錄』 권15) 그 출전은 확인 못 함.
碧巖錄〔병렬용례〕 벽암록(碧巖錄) 제1칙(達磨不識): 梁武帝가 '如何是聖諦第一義'라 묻자 達磨가 '廓然無聖'이라 답한다. 본문 '根本廓然'과 같은 어휘이며, 원오 자신의 저작 속 용례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所謂任運猶如癡兀人
(경미) → 출판본은 任運을 '자재롭다'로 술어화해 '어리석은 이처럼 자재롭다'로 인용을 재구성하고 兀(무딤)을 누락했다. 任運은 인연·자연에 맡김이지 自在가 아니어서 약한 과의역이며, 자체역 '어리석고 무딘 사람'이 癡兀을 온전히 옮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他家自有通人愛
출판본 '통하는 사랑이 있다'는 通人을 '통하는 사람'으로 분해한 오독이다. 通人은 도에 통달한 안목 있는 이라는 명사 주어이고 愛는 그 통인이 도인을 아낌을 뜻한다. '그런 이는 절로 통인이 아껴주는 법'이라는 자체역이 옳고, 출판본은 오역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18
  1. 歇心 헐심

    분별하는 마음을 쉼이다. 수능엄경(首楞嚴經)의 '광심돈헐(狂心頓歇), 헐즉보리(歇卽菩提)'(미친 마음이 문득 쉬면 쉬는 그 자리가 곧 보리(菩提))에서 온 선문의 상용어이다.

  2. 虗閑寂靜 허한적정

    텅 비고 한가하며 고요하다는 말이다. 분별을 쉬어 무심(無心)에 이른 마음의 모습을 형용한다. 허(虗)는 허(虛)와 같은 글자다.

  3. 非外非中 비외비중

    밖도 아니요 안(가운데)도 아님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무소주를 나타낸다. 선문 상투구 '비내비외비중간(非內非外非中間)'의 축약형이다.

  4. 任運 임운

    억지로 짓지 않고 흐름에 맡겨 저절로 그러함을 이른다. 선에서는 애쓰는 마음이 쉬어 일상의 움직임이 꾸밈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지를 말한다. 흔히 '등등임운(騰騰任運)'처럼 쓴다.

  5. 照應 조응

    대상을 만나 비추어(照) 응함(應)이다. 거울이 사물을 그대로 비추듯 작의 없이 응기함이다.

  6. 廓然 확연

    텅 비어 걸림 없이 툭 트인 모양이다. 양무제(梁武帝)가 '무엇이 성스러운 진리의 으뜸가는 뜻인가' 묻자, 달마(達磨)가 '확연무성(廓然無聖)', 곧 툭 트여 성스러울 것도 없다고 답한 말로 널리 알려졌다.

  7. 癡兀人 치올인

    어리석고(癡) 무딘(兀) 사람이다. 득도인이 세속의 눈에는 바보처럼 보임을 이르는 선문의 상투 형상이다. 한산시(寒山詩)의 '풍전(風顛)한 바보' 이미지와 통한다.

  8. 通人 통인

    도에 환히 통달하여 안목이 트인 사람이다. 겉모습에 속지 않고 참된 경지를 알아보는 이를 이른다.

  9.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10.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설법을 제자 소륭(紹隆) 등이 엮은 20권의 어록이다. 법당 설법과 제자에게 준 법어, 옛 공안에 붙인 평과 게송을 실었다. 『원오심요』의 몇 편이 이 책의 법어에도 실려 있다.

  11. 知見 지견

    보고 아는 것, 곧 지식과 견해다. 경전에서는 ‘부처의 지견’처럼 바른 앎을 뜻하기도 한다. 선문에서는 흔히 분별로 세운 알음알이를 가리켜, 깨달음을 가로막는 병으로 경계한다.

  12. 無心 무심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쉬어 사라진 상태다. 마음이 아예 없다는 말이 아니라, 무엇에도 걸리거나 머물지 않는 마음이다. 황벽(黃檗)은 '다만 무심하면 그것이 곧 마지막 경지'라 했다.

  13. 透脫 투탈

    꿰뚫고 벗어난다는 말이다. 나고 죽음과 번뇌, 분별의 그물을 뚫고 나와 걸림 없이 자유로워진 것을 이른다. 철저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14. 韓通判 한통판

    원오가 법어를 써 준 한씨 성의 사대부 관료로, 그 글이 원오심요에 실려 있다. 통판은 송나라 때 주의 지사를 도와 정무를 살피던 버금 벼슬이다.

  15. 無心·無心之地 무심·무심지지

    분별·집착이 완전히 끊긴 경지이다. 원오가 일관되게 수증의 구경처로 제시하는 자리이다.

  16. 騰騰 등등

    얽매임 없이 활발발한 모양이다. 흔히 '등등임운(騰騰任運)·임운등등(任運騰騰)'으로 대구를 이루어 무위의 작용을 가리킨다.

  17. 十二時 십이시

    하루 12진(辰), 곧 온종일이다. 조주(趙州) '십이시가(十二時歌)' 등 선문에서 일상의 온 시간 속 수행을 가리키는 관용 표현이다.

  18. 歇心 헐심

    분별하는 마음을 쉼이다. 首楞嚴經의 '狂心頓歇, 歇卽菩提'(미친 마음이 문득 쉬면 쉬는 그 자리가 곧 菩提)에서 온 선문의 상용어이다.

이 편의 풀이 1건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無方便可以使得。十二時用得一切法
자체역은 CBETA 확정 구두를 따라 '방편으로 부릴 수 없다 / 온종일 온갖 법을 쓴다'로 끊어 읽으나, 출판본은 '任運照應無方,便可以使得十二時'로 재구두하여 '곧 하루(十二時)를 부린다'로 읽는다. 후자는 趙州의 '不被十二時使,使得十二時' 공안과 통하는 유력한 이독으로, 저본 구두는 자체역을 지지하되 두 독법이 모두 성립하는 양립가능 이독이다.

문단 2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8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