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백운수단 광록 · 卷一 47

상당 — 운문이 든 삼평의 송

上堂 雲門拈三平頌

47.1
한문上堂,舉:雲門拈三平頌云:即此見聞非見聞,更無聲色可呈君。有什麼口頭聲色?箇中若了無餘事,體用無妨分不分。
번역상당하여 들어 보였다. 운문(雲門)이 삼평(三平)의 송을 들어 보였다. ‘바로 이 보고 들음은 보고 들음이 아니니, 그대에게 바칠 소리와 빛이 다시 없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입에 올릴 소리와 빛이 있겠는가?’ 이어 들어 보였다. ‘이 가운데 남은 일이 없음을 알면, 체(體)와 용(用)은 나뉘든 안 나뉘든 걸림이 없다.’
乃拈拄杖云:拄杖是體。却指燈籠云:燈籠是用。作麼生不分?
그러고는 주장자를 집어 들고 말했다. ‘주장자는 체다.’ 다시 등롱을 가리키며 말했다. ‘등롱은 용이다. 어째서 나뉘지 않는가?’
쉽게 읽기상당하여, 운문 스님이 삼평 스님의 송을 들어 보인 일을 소개했다. 운문은 송의 첫 두 구 ‘바로 이 보고 듣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니, 그대에게 내보일 소리도 빛깔도 다시 없다’를 들고는 ‘무슨 입에 올릴 소리와 빛깔이 있겠는가?’ 하고 덧붙였다. 이어 ‘이 가운데에서 남은 일 없음을 깨닫는다면, 바탕과 작용을 나누든 나누지 않든 걸릴 것이 없다’를 들고는, 주장자를 집어 들며 ‘주장자는 바탕이다’ 하고, 등롱을 가리키며 ‘등롱은 작용이다’ 하고는 ‘그러니 어째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인가?’ 했다.
풀이 1
① 三平頌 삼평송삼평의충(三平義忠)의 게 ‘卽此見聞非見聞…’. 운문은 이를 들며 둘째 구 뒤에 ‘有什麼口頭聲色’을 끼우고 주장자·등롱으로 체용을 보였다(『운문광록』 권中, T47n1988 p0554b08). 백운은 그 자리에 ‘眼是眼, 耳是耳’를 끼워, 눈은 눈·귀는 귀라는 현성(現成)으로 체용(體用)을 넘어선다.
47.2
한문大眾!雲門只解依樣畵蛾眉,圓通則不然,
번역선사가 말했다. “대중이여! 운문은 본을 따라 눈썹을 그릴 줄만 안다. 원통은 그렇지 않다.
即此見聞非見聞,更無聲色可呈君。眼是眼,耳是耳,箇中若了無餘事,體用無妨分不分。
‘바로 이 보고 들음은 보고 들음이 아니니, 그대에게 바칠 소리와 빛이 다시 없다. 눈은 눈이고 귀는 귀다. 이 가운데 남은 일이 없음을 알면, 체와 용은 나뉘든 안 나뉘든 걸림이 없다.’
四五百條花柳巷,二三千處管絃樓。參!
꽃과 버들의 거리가 사오백 갈래요, 풍악 울리는 누각이 이삼천 곳이다.” 참구하라!
쉽게 읽기백운 스님이 말했다. “대중이여! 운문은 남이 그려 놓은 본을 따라 눈썹을 그릴 줄만 알았다. 나 원통은 그렇지 않다. ‘바로 이 보고 듣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니, 그대에게 내보일 소리도 빛깔도 다시 없다.’ 눈은 눈이고 귀는 귀다. ‘이 가운데에서 남은 일 없음을 깨닫는다면, 바탕과 작용을 나누든 나누지 않든 걸릴 것이 없다.’ 꽃과 버들 늘어선 거리가 사오백 갈래요, 풍악 울리는 누각이 이삼천 곳이다. 참구하라!”

광록 卷一 차례 (121편)

이 편의 낱말 6
  1.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2. 三平義忠 삼평의충

    삼평의충(三平義忠)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처음 석공(石鞏)을 찾았다가 대전(大顚)의 법을 이었다. 장주(漳州) 삼평산에 머물러 삼평이라 불린다. 석공이 활을 겨누자 가슴을 열어 맞선 일로 알려졌다.

  3. 拄杖 주장

    선사가 짚는 지팡이, 곧 주장자(拄杖子)다. 상당 때 이것을 들어 보이거나 바닥·법상을 내리쳐 법을 드러내므로, 선사의 손에 든 대표적인 법구(法具)가 되었다. 주장자 자체가 문답의 화두가 되기도 한다.

  4. 燈籠 등롱

    등불을 넣어 달아 두는 기구이다. 법당 앞에 드러나 선 기둥 노주(露柱)와 짝을 지어,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물(無情物)의 대표로 선문답에 자주 오른다.

  5. 白雲守端 백운수단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1025~1072)으로, 양기방회(楊岐方會)의 법을 이었다. 서주(舒州) 백운산 해회선원에 머물러 '백운'이라 불린다. 그 법이 오조법연(五祖法演)을 거쳐 원오극근(圜悟克勤)에게 이어졌으니, 원오에게는 스승의 스승이 된다.

  6. 圓通禪院 원통선원

    여산(廬山)에 있던 절로, 정식 이름은 원통숭승선원(圓通崇勝禪院)이다. 원통거눌(圓通居訥)이 오래 머물러 '원통 눌'이라 불렸고, 백운수단(白雲守端)도 승천선원에 이어 이곳에 머물렀다. 백운은 이곳에서 자신을 '원통'이라 일컫기도 했다.

강주 원통숭승선원 어록 江州圓通崇勝禪院語錄주석 1낱말 6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門人 處凝 編 · 序 太原 王孜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