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52편

시자 법영(法榮)에게 주는 글

示侍者法榮

52.1
한문學道之人,能矻矻孜孜,以生死之事居懷,晝三夜三,不憚勞苦,事善知識,求一言半語發藥,雖遭呵斥種種惡境,而力向前,
번역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지런히 애써 생사(生死)의 일을 가슴에 품는다. 밤낮으로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으며 선지식(善知識)을 섬기고, 한 마디 반 구절이라도 약이 될 말을 구한다. 꾸짖음을 듣고 갖가지 나쁜 경계를 만나더라도 힘써 앞으로 나아간다.
非自宿昔薰成自然種智,必且猶豫,或則退悔。
지난 옛적부터 배어들어(薰習) 저절로 이룬 종지(種智)가 아니라면, 반드시 머뭇거리거나 물러나 뉘우치기 마련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편안하여 처음부터 흔들림이 없다면, 그 뜻과 서원(誓願) 또한 자못 얻기 어려운 것이다.
쉽게 읽기도를 배우는 사람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애쓴다. 나고 죽는 일을 늘 마음에 품는다. 밤낮없이 힘쓰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바른 스승을 섬긴다. 한 마디 반 구절이라도 약이 될 말을 구한다. 갖가지 꾸짖음을 듣고 온갖 나쁜 처지를 만나도 힘껏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지난 오랜 세월 익히고 배어 저절로 이룬 참된 지혜가 아니고서는, 반드시 머뭇거리거나 물러나 뉘우친다. 이런 가운데서도 늘 편안해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뜻과 서원은 참으로 얻기 어렵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能於此恬然,初無動搖,其志願亦頗難得' — 현재 번역은 志願을 難得의 주체로 보아 이러한 발심이 자못 드물고 귀하다는 상찬으로 읽었고, 책은 難得을 성취의 어려움으로 처리해 '자못 얻기란 어렵다'로 새겼다. 발심의 드묾이냐 성취의 어려움이냐로 초점만 갈릴 뿐 兩讀이 다 성립하며, 어느 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다.
52.2
한문然此本有之性,現定見聞知覺,父母緣不可生,境界緣不可奪。若隨向來知解,卽墮業識。
번역그러나 이 본래 갖춘 성품은 지금 보고 듣고 알고 깨닫는 그 자리에 또렷이 정해져 있다. 부모의 인연으로도 낳을 수 없고, 경계의 인연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 만약 여태까지의 알음알이(知解)를 따르면 곧 업식(業識)에 떨어진다.
若猛擺撥,棄著一邊,只守虗靜,到一念不生之地,掀翻解路,不落機緣,直下了了,無毫髮疑間,便截徑承當,無第二頭,則玄妙理性尚自脫去,況隨世間事物所轉耶?
만약 사납게 떨쳐 한쪽으로 내던지고, 오직 텅 빈 고요만 지켜 한 생각도 나지 않는 자리에 이른다고 하자. 거기서 알음알이의 길을 뒤집어엎고, 기연(機緣)에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에서 또렷이 밝아 털끝만큼도 의심이 없다. 곧 지름길로 질러 떠맡아, 두 번째 머리(第二頭)가 없다. 그러면 현묘한 이치와 성품마저 저절로 벗어날 것이다. 하물며 세간의 일과 사물에 끌려다니겠는가?
쉽게 읽기그러나 이 본래 갖춘 성품은 딴 데 있지 않다. 지금 보고 듣고 알고 깨닫는 바로 그 자리에 또렷이 정해져 있다. 부모가 낳아 준 것이 아니니, 그 인연으로도 새로 낳지 못한다. 바깥 경계가 준 것이 아니니, 그 인연으로도 빼앗지 못한다. 만약 여태까지의 알음알이를 따르면, 곧 업식에 떨어진다. 그러니 그것을 사납게 떨쳐 한쪽으로 내던져라. 오직 텅 빈 고요만을 지켜,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자리에 이르러라. 거기서 알음알이의 길마저 뒤집어엎어라. 스승과 부딪는 계기에도 걸리지 마라. 그 자리에서 환히 밝아 털끝만 한 의심도 없이, 곧장 지름길로 질러 떠맡아라. 그리하여 두 번째 갈래가 없어야 한다. 그러면 현묘한 이치마저 저절로 벗어난다. 하물며 세상 온갖 것에 끌려다니겠는가?
풀이 5
一念不生 일념불생'只守虗靜,到一念不生之地,掀翻解路,不落機緣'은 차례로 이어지는 공부로, 掀翻의 목적어는 解路(알음알이의 길)다. 一念不生 자체를 다시 뒤엎으라는 뜻으로 읽을 근거는 없다(쉬운·학술 번역도 解路를 뒤엎는 것으로 읽음).
業識 업식'若隨向來知解,卽墮業識' — 지금까지의 知解를 따르면 이 業識에 떨어진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現定見聞知覺,父母緣不可生,境界緣不可奪' — 현재 번역은 本有之性을 生·奪의 주어로 보아 성품이 견문지각에 현전하며 부모의 인연으로도 낳지 못하고 경계의 인연으로도 빼앗지 못한다고 새겼고, 책은 見聞知覺을 주어로 삼아 '나지도 빼앗기지도 않는다'로 새겼다. 見聞知覺을 성품의 현전 작용으로 보면 양쪽이 다 성립하는 이독이며,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다. 다만 生·奪의 주어는 문맥상 本有之性이 더 자연스럽다.
52.3
한문是故古人卽心卽佛,得大力量,向上上不立佛祖,如紅鑪猛𦦨處透徹,但把得住作得主,便住山去。
번역그러므로 옛사람은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로 큰 힘을 얻었다. 향상(向上)의 위로는 부처도 조사(祖師)도 세우지 않았다. 마치 붉은 화로의 사나운 불꽃 속을 꿰뚫듯 사무쳤다. 다만 꽉 붙들어 주인이 될 수 있게 되자, 곧 산에 들어가 머물렀다.
此須十年工夫,一色專注,便可趣向入也。
이는 반드시 십 년을 공부하며 한결같이 오롯이 쏟아야, 비로소 나아가 들어갈 수 있다.
趙州云:你向衣單下坐十年,若不會禪,截取老僧頭去。
조주(趙州)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옷과 발우를 둔 자리(衣單)에 십 년을 앉아 있고도 선을 깨치지 못하거든, 이 늙은 중의 머리를 베어 가거라.”
斷定不在言句機境上,只要心休意歇,便徹底安樂耶?
이는 결코 말과 글귀(言句)나 기틀과 경계(機境) 위에 있지 않다. 다만 마음이 쉬고 뜻이 그치기만 하면, 곧 속속들이 편안하고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그러므로 옛사람은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여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위로 뛰어넘은 자리에서는 부처도 조사도 세우지 않았다. 마치 붉게 단 화로의 사나운 불꽃 속을 꿰뚫고 지나가듯 하였다. 다만 그 자리를 꽉 붙잡아 주인이 될 수 있으면, 곧 산으로 들어가 머물렀다. 이렇게 되려면 모름지기 십 년을 공부해야 한다. 오직 한 가지에만 한결같이 마음을 쏟아야 비로소 그 안으로 들어간다. 조주가 말하였다. "그대가 옷과 발우를 두는 제 자리 아래에서 십 년을 앉고도 선을 깨치지 못하거든, 이 늙은 중의 머리를 잘라 가져가라." 이는 결코 말이나 겨룸의 자취 위에 있지 않다. 다만 마음이 쉬고 뜻이 그치기만 하면, 곧 속속들이 편안하고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풀이 3
趙州從諗 조주종심『趙州錄』 上堂 '無事向衣鉢下坐窮理好', 示衆 '但究理而坐二三十年,若不會,截取老僧頭去'(『景德傳燈錄』 권28은 '三二十年'). '衣單下坐十年' 꼴은 이들 문헌에서 찾지 못했다.
卽心卽佛 즉심즉불'古人卽心卽佛…便住山去'는 大梅法常이 '卽心是佛'에 깨친 뒤 산에 들어가 머문 일(『景德傳燈錄』 권7, T51n2076_p0254c03)을 염두에 둔 말로 보인다(추정). 心要 上/34도 같은 일을 '受箇卽心卽佛,便深入閫奧,自去住山'이라 했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1
  1. 矻矻孜孜 골골자자

    쉬지 않고 부지런히 애쓰는 모양이다. 골골은 힘들여 애쓰는 모양이고, 자자는 게으름 없이 부지런한 모양이다.

  2. 善知識 선지식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스승이나 벗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흔히 학인을 깨우쳐 주는 눈 밝은 스승을 가리킨다.

  3. 發藥 발약

    병에 맞는 약을 베풂이다. 근기(根機)에 맞춰 미혹을 치유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의약(醫藥)에 빗댄 말이다.

  4. 種智 종지

    일체종지(一切種智)이다. 만법의 낱낱을 다 아는 부처의 지혜이다. '숙석훈성(宿昔薰成)한 종지(種智)'는 지난 세월 훈습(薰習)으로 익힌 근본 지혜를 가리킨다.

  5. 一念不生 일념불생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자리를 이른다. 이것저것 가르는 생각이 뚝 끊어져 마음이 본래대로 고요하고 밝은 때다. 선문에서는 이 자리에서 제 마음을 깨닫는다고 한다.

  6. 機緣 기연

    스승과 학인이 부딪는 계기·상황. '기연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機緣)'는 그런 작용의 자취에 걸리지 않음을 이른다.

  7. 第二頭 제이두

    '두 번째 머리'라는 뜻으로, 근본 자리에서 이미 한 걸음 물러난 버금 자리를 이른다. 머뭇거리며 헤아리거나 말로 붙잡는 순간 제이두에 떨어진다고 한다.

  8.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대표 종지(宗旨)이다.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으로, 뒤의 '향상불립불조(向上不立佛祖)'와 짝을 이뤄 세우고(卽心卽佛) 다시 부수는(不立佛祖) 임제 향상의 논법을 이룬다.

  9. 向上 향상

    불조(佛祖)마저 초월하는 궁극의 자리이다. '향상불립불조(向上不立佛祖)'는 향상의 경지에서 부처도 조사도 세우지 않음을 이른다.

  10. 紅鑪猛焰 홍로맹염

    붉은 화로의 맹렬한 불꽃이다. 일체의 분별(分別)·정식(情識)을 남김없이 태워 녹이는 투철(透徹)의 비유이다.

  11. 衣單 의단

    선방에서 스님마다 정해진 앉을 자리와, 거기 둔 옷과 바리 따위를 이른다. '의단 아래'는 선방의 제자리, 곧 스스로 공부를 지어 가는 자리를 뜻한다.

  12. 心休意歇 심휴의헐

    마음이 쉬고 뜻이 그침이다. 원오가 궁극의 안락처(安樂處)로 제시하는 휴헐(休歇) 사상의 핵심 표현이다.

  13.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14.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15.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16. 休歇 휴헐

    온갖 생각과 얽매임을 쉬어 그침을 이른다. 밖으로 찾아 헤매는 마음을 내려놓는 그 자리가 곧 깨달음이라는 뜻에서, 선문에서 공부의 요긴한 말로 썼다.

  17. 機境 기경

    기(機)는 스승이 내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솜씨, 경(境)은 그때 드러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다. 가르침의 수단을 두루 이르나, 거기에 붙들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병이 된다.

  18. 法榮·侍者法榮 법영·시자법영

    원오 극근 스님을 곁에서 모신 시자이다. 원오 스님이 원오심요의 「시시자법영」을 지어 주었으며, 그 밖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 業識 업식

    지은 업(業)에 이끌려 일어나는 분별하는 마음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무명(無明) 때문에 한결같던 마음이 처음 움직이는 자리를 이렇게 부른다. 선문에서는 이것저것 헤아리고 따지는 중생의 망념을 통틀어 이를 때 쓴다.

  20. 恬然 염연

    편안하고 고요한 모양이다. 온갖 악경(惡境)·呵斥(가척)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담담한 상태이다.

  21. 紅爐 홍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로를 이른다. 선가에서는 '붉은 화로 위의 눈 한 송이'라는 말로, 망념과 분별이 닿자마자 흔적 없이 녹아 버리는 경지에 빗댄다. 장자 스님이 석두 스님에게 한 대답에서 나와, 벽암록과 원오 스님의 어록 · 원오심요에 거듭 쓰였다.

문단 3국역본 대조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