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6편

걸상인(傑上人)에게 주는 글

示傑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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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傑) 선인이 홀연히 찾아와 작별을 고하며 경책의 말, 곧 정신을 채찍질하는 가르침을 청하기에, 이 글을 써서 그에게 준다.

46.1
쉽게 읽기행각하며 도를 물어, 이미 선지식을 스승으로 모셨다. 큰 총림에서 맑고 고아한 대중과 함께 지낸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의 인연으로 잠시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 걸핏하면 수백 리나 되는 먼 길이다. 그러니 반드시 제 힘으로, 배운 것을 실천하기를 잊지 마라. 가는 곳마다 티끌 하나 일지 않게 하라. 더구나 이 한 가지 일은, 선지식 곁에 있을 때만 있고 고향 마을에 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46.2
쉽게 읽기옛말에 '잠시라도 이것을 여의면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에도,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지어 그려서는 안 된다. 비록 더없이 평범한 것이지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얼어붙듯 우뚝하게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아무 함도 없고 일도 없고 마음 씀도 없는 무위·무사·무심의 사업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면 안과 밖이 훤히 뚫려 끝이 없다. 만법과 짝하지 않고, 천 명의 성인과도 길을 함께하지 않는다. 뿌리를 깊이 내리고 꼭지를 단단히 하여, 그저 한가롭고 한가로운 경지를 지킨다. 기르고 또 기를 뿐, 아직 사무쳐 뚫지 못함을 근심하지 마라.
46.3
쉽게 읽기그저 범부의 부질없는 마음을 다 없애고, 제 공부를 지어 나가라. 바깥 인연에 얽매이지 마라. 이름과 이익을 좇지 마라.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이기고 지기를 다투지 마라. 그러므로 옛 어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운에 내맡겨 어리석고 무딘 사람처럼 지내면, 절로 그를 알아보고 아껴 주는 통달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풀이 1
46.1
한문行腳參請,既依附知識於大叢林,陪清高雅眾久矣,
번역행각(行腳)하며 도를 물어, 이미 큰 총림(叢林)에서 선지식(善知識)에게 의지했다. 맑고 고아한 대중과 함께한 지도 오래되었다.
一旦以親緣,須著略歸,動是數百里遠行,
그러다 어느 날 부모와의 인연으로 잠시 고향에 돌아가야 하게 되었다. 걸핏하면 수백 리나 되는 먼 길이다.
要須以自力量,不忘履踐,直教行處不生塵。
반드시 제 힘으로, 몸소 밟아 가기를 잊지 마라. 가는 곳마다 티끌 하나 일지 않게 하라.
況此段事,不道在知識身邊時便有,居鄉井便無也。
하물며 이 일은, 선지식 곁에 있을 때에는 있고 고향 마을에 살면 없다고 하지 않는다.
46.2
번역이른바 ‘잠시라도 없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있을 때에도 모양을 짓고 본을 그리지 마라.
雖則平常,而滴水滴凍,卓然絕識,成箇無爲無事無心事業,
비록 평상(平常)한 것이지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얼어붙듯(滴水滴凍) 우뚝하게 알음알이를 끊어야 한다. 그리하여 함이 없고 일이 없고 마음이 없는(無爲無事無心) 살림을 이루어야 한다.
表裏洞然無際,不與萬法爲侶,不與千聖同途,
안팎이 훤히 트여 끝이 없다.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고, 천 명의 성인(千聖)과도 길을 같이하지 않는다.
深根固蔕,只守閑閑地,養來養去,不憂不徹,
뿌리를 깊이 내리고 꼭지를 단단히 하여, 그저 한가하고 한가한 자리를 지켜라. 기르고 또 기를 뿐, 아직 사무치지 못했다고 근심하지 마라.
풀이 5
滴水滴凍 적수적동적수적동(滴水滴凍)은 벽암록(碧巖錄) 평창(評唱)에서 준엄·냉철한 선기(禪機)를 형용하는 상투구로 반복 등장하는 원오 특유의 어법이며, 본편과 같은 용례이다.
無爲·無事·無心事業 무위·무사·무심사업무위(無爲)·무사(無事)·무심(無心) 표어는 심요(心要) 내 다른 시(示)·법어(法語) 여러 편에서도 반복되는 원오 상용 표현이며, 본편의 '무위무사무심사업(無爲無事無心事業)'과 같은 계열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所謂蹔時不在,如同死人 / 正當在時'의 在·不在는 주어가 명시되지 않아, 자체역은 앞 문맥의 '此段事(本分事)'를 주어로 삼아 그 있음·없음으로 보고, 책은 '도에서 생각이 떠남·머묾'으로 보았다. 직전의 '此段事…不道在知識身邊時便有,居鄉井便無也'가 그대로 이어지는 맥락상 '此段事'를 주어로 보는 자체역이 더 표준적이나, 결정적 전거로 한쪽을 배제할 수 없고 두 독법의 대상(본분사 대 수행자의 마음)이 실제로 갈리므로 주어 보충 차원의 양립 이독으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에 둔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而滴水滴凍,卓然絕識
책은 '滴水滴凍'을 '단절없이'로 옮겨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얼어붙는 준엄·냉철한 禪機의 상투 이미지를 잃었다. 원오 저작의 관용구로 이미지가 핵심이므로 책의 오역·과의역이다. 내 번역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얼어붙듯'이 관용구를 정확히 살렸다.
46.3
한문但盡凡情,作自己工夫,勿管外緣,勿逐名利,起我見,競勝負。是故古德道:任運猶如癡兀人,他家自有通人愛。
번역다만 범부의 망정(妄情)을 다하고 제 공부를 지어 가라. 바깥 인연에 상관하지 마라. 이름과 이익을 좇지 말고, ‘나’라는 견해(我見)를 일으키지 말고, 이기고 짐을 다투지 마라. 그래서 옛 어른(古德)이 말했다. “되어 가는 대로 맡겨 마치 어리석고 멍한 사람처럼 지내면, 저절로 그를 아껴 주는 통달한 사람이 있다.”
풀이 2
古德 고덕'任運猶如癡兀人,他家自有通人愛'의 아래 구는 寶誌의 「十二時頌」 人定亥 구(『景德傳燈錄』 권29)에 있고, 『聯燈會要』 권30 「誌公和尚十二時歌」는 위 구를 '放蕩長如癡兀人'으로 전한다. 『祖堂集』 권11에서는 招慶이 '放曠長如癡兀人'으로 들었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任運猶如癡兀人,他家自有通人愛
책은 '他家'를 古德들(그분들)로, '通人愛'를 '남들을 틔워주는 사랑'으로 분절하였으나, 이 구는 게송으로 '우직하게 인연에 맡기면 저절로 알아보고 아껴 주는 通人이 있다'는 뜻이다. '通人'은 명사(통달한 이)이지 '通(틔우다)+人(남)'의 술목 구조가 아니며, '他家'는 '저절로·자연히'의 구어이다. 책이 게송 전체를 오독하였다. 내 번역이 표준 독법에 부합한다.
46.4
한문傑禪人倐來告別,求警策,因書此語授之。
번역걸(傑) 선인(禪人)이 문득 찾아와 작별을 고하며 경책(警策)의 말을 청했다. 그래서 이 말을 써서 그에게 준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1
  1. 親緣 친연

    부모와 혈육 사이의 인연이다.

  2. 行處不生塵 행처불생진

    가는 곳마다 티끌이 일지 않음이니, 실천이 청정하여 번뇌·자취를 남기지 않음을 형용한다.

  3. 蹔時不在·如同死人 잠시불재·여동사인

    '잠시라도 본분(本分事)을 여의면 죽은 사람과 같다'는 선문 상용구이다. 대사(大事)가 늘 있음(常在)을 강조한다.

  4. 滴水滴凍 적수적동

    떨어지는 물방울이 방울마다 그대로 얼어붙는다는 말이다. 조금의 틈이나 머뭇거림도 없이 매섭고 철저한 모습을 이른다. 공부와 몸가짐이 빈틈없이 엄정함을 나타낼 때 쓴다.

  5. 不與萬法爲侶 불여만법위려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은 문답이다. 마조는 '그대가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일러 주겠다'고 답했고, 방거사는 그 말끝에 깨쳤다고 한다. 원오는 이 말을 온갖 것에 매이지 않는 본래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쓴다.

  6. 不與千聖同途 불여천성동도

    위 구와 짝을 이룬다. '천 성인과도 길을 같이하지 않음'이니 절대적 독존을 나타내는 선문 상투('불여제성동전(不與諸聖同躔)' 계열)이다.

  7. 深根固蔕 심근고체

    뿌리를 깊이 내리고 꼭지를 단단히 한다는 말이다. 『노자』의 말에서 왔다. 선에서는 공부의 바탕을 깊고 굳게 다져 흔들리지 않게 함을 이른다.

  8. 閑閑地 한한지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리라는 말이다. 깨친 사람이 아무 일도, 바라는 것도 없이 넉넉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을 이른다. ‘지(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끝이다.

  9. 任運猶如癡兀人·他家自有通人愛 임운유여치올인·타가자유통인애

    고덕(古德)의 게송으로 인용된 것이다. 인연에 내맡겨 우직하게 지내면 절로 알아보고 아껴 주는 통인(通人)이 있다는 뜻이다. 임운(任運)(등등(騰騰))류 게송 계열이며 정확한 출전은 미상이다.

  10.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11.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12. 叢林 총림

    많은 스님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큰 절이나 선원을 이른다. 나무가 빽빽이 모여 숲을 이루듯 대중이 모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넓게는 선문의 수행자 사회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13. 傑上人·傑禪人 걸상인·걸선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걸상인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승려이다. '상인'과 '선인'은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원오 문하의 총림에서 지내다가 부모와의 인연으로 잠시 고향에 돌아가며 경책의 말을 청해 그 글을 받았다.

  14. 行腳參請 행각참청

    총림을 편력하며(行腳) 선지식께 나아가 도를 물음(參請)이다. 선 수행에서 짝을 이루는 상투어이다.

  15. 善知識·知識 선지식·지식

    Skt. kalyāṇa-mitra의 역어이다. 수행을 이끄는 스승이다.

  16. 無爲·無事·無心事業 무위·무사·무심사업

    조작 없고(無爲) 일 없고(無事) 마음 씀 없는(無心) 경지이다. 심요(心要) 전편의 핵심 표어이다.

  17. 警策 경책

    수행자를 경계·독려하는 훈계의 말이다. 걸선인(傑禪人)이 구경책(求警策)한 데 응해 써 준 글의 성격이다.

  18. 傑上人 걸상인

    圜悟克勤이 「示傑上人」(『圜悟心要』, X69n1357_p0469a21)을 지어 준 승려. 같은 글이 『圜悟語錄』 권15에는 「示傑禪人」으로 실렸다(T47n1997_p0782c10). 글에 따르면 큰 叢林에서 선지식을 오래 모시다가 親緣으로 고향에 돌아가게 되자 작별하며 警策을 청하였다. 上人·禪人은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19. 蹔時不在 잠시불재

    '잠시라도 본분(本分事)을 여의면 죽은 사람과 같다'는 선문 상용구이다. 大事가 늘 있음(常在)을 강조한다.

  20. 任運猶如癡兀人 임운유여치올인

    古德의 게송으로 인용된 것이다. 인연에 내맡겨 우직하게 지내면 절로 알아보고 아껴 주는 通人이 있다는 뜻이다. 任運(騰騰)류 게송 계열이며 정확한 출전은 미상이다.

  21. 無爲 무위

    인연으로 지어지지 않아 생겨나고 사라짐이 없는 것(無爲法 — 有爲와 맞섬). 禪錄에서는 꾸며 하려는 마음 없이 본래대로인 경지를 이르며, 無事·無心과 함께 자주 쓴다. 永嘉玄覺 「證道歌」 '絕學無爲閑道人'(『景德傳燈錄』 권30, T51n2076_p0460a15).

문단 3(쉽게 읽기) · 4(깊이 읽기)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