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백운수단 광록 · 卷三 218
처음 백운산에 주석하며 지음
初住白雲作
이 편의 풀이 1
① 初住白雲백운수단이 서주 백운산 해회선원에 처음 주석하던 무렵의 자작시. ‘포대를 다 쏟았다’ 함은 미륵(포대)의 살림을 남김없이 보였다는 뜻.
218.1
한문白雲歸老稱平生,古屋低低分外清,薜茘㳂堦增野興,潺湲遶院益閒情。何妨乞食消寒暑,雖是當途少送迎,道侶不須重問祖,已將布袋為君傾。
번역백운(白雲)에 돌아와 늙으니 평생 뜻에 걸맞고, 낡은 집은 나직하여 유달리 맑다. 벽려 넝쿨은 섬돌 따라 뻗어 들의 흥을 더하고, 졸졸 흐르는 물은 뜰을 둘러 한가한 정을 더한다. 밥을 빌어 추위와 더위를 보낸들 어떠랴. 길목이라 해도 보내고 맞을 일이 적다. 도반들아, 조사를 거듭 묻지 말라. 이미 포대(布袋)를 그대들 위해 쏟아 놓았다.
이 편의 낱말 3
- 白雲山 백운산
서주(舒州)에 있는 산으로, 산속에 해회선원(海會禪院)이 있다. 양기방회의 제자 백운수단(白雲守端)이 이곳에 머물러 '백운'이라 불렸고, 그 제자 오조법연(五祖法演)도 뒤에 이 절의 주지가 되었다. 그래서 선록의 '백운'은 이 산을 가리키기도 하고, 이곳에 머문 수단이나 법연을 가리키기도 한다. 법연은 만년에 기주(蘄州) 동산(東山), 곧 오조산으로 옮겼다.
- 祖師西來意 조사서래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와서 전한 참뜻, 곧 선의 근본을 묻는다. 선문답에서 가장 흔한 물음으로, 조주(趙州)의 '뜰 앞의 잣나무' 답이 이름났다.
- 布袋和尚 포대화상
오대 때 명주(明州) 봉화(奉化)에 살던 스님으로, 스스로 계차(契此)라 했다. 지팡이에 자루 하나를 메고 다니며 얻은 것을 그 속에 넣어 '포대'라 불렸다. 죽을 때 남긴 게송으로 미륵의 화신이라 일컬어진다.
이 편의 풀이 1건
① 初住白雲백운수단이 서주 백운산 해회선원에 처음 주석하던 무렵의 자작시. ‘포대를 다 쏟았다’ 함은 미륵(포대)의 살림을 남김없이 보였다는 뜻.
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門人 處凝 編 · 序 太原 王孜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