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36편

조인사미(祖印沙彌)에게 주는 글

示祖印沙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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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한문永嘉道:不離當處常湛然,覓卽知君不可見。只於當處、湛然二邊坐斷,使平穩。切忌作知解求覓,纔求卽如捕影也。
번역영가(永嘉) 스님이 말했다. “바로 이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다. 찾으려 하면 그대는 볼 수 없음을 알라.” 다만 바로 그 자리에서 맑고 고요하게, 양변(二邊)을 앉은 채 끊어 버리고 평온하게 하라. 알음알이(知解)를 지어 구하고 찾는 일은 절대로 삼가라. 조금이라도 구하면 곧 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
쉽게 읽기영가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다. 그러니 따로 찾으려 하면 그대는 끝내 볼 수 없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라. 있다·없다 하는 두 극단, 곧 양변을 그 자리에서 끊어 버리고 마음을 평온히 하라. 알음알이로 애써 구하거나 찾으려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구하면 곧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것과 같다.
풀이 6
永嘉玄覺 영가현각「證道歌」 '不離當處常湛然。覓即知君不可見'(T48n2014_p0396b12).
二邊坐斷 이변좌단'不離當處常湛然 覓卽知君不可見'은 『永嘉證道歌』의 구(T48n2014_p0396b12). 上/26과 거의 같은 글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覓卽知君不可見
책의 오역. 책은 '知君'을 '그대를 아나'로 끊고 '不可見'을 별구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永嘉證道歌』표준 독법은 知가 '君不可見'을 목적절로 취하고 君은 호격이다. 대상화하여 찾으면 볼 수 없음을 안다는 뜻으로, 내 번역 '찾으려 하면 그대는 볼 수 없음을 알라'가 전거에 부합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二邊坐斷
책의 과소번역. 坐斷은 앉은 그 자리에서 단번에 끊어 없앰인데, 책 '두변을 눌러 앉아'는 핵심어 斷을 빠뜨리고 오히려 머묾으로 뒤집었다. 고증의 '二邊坐斷=양변을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끊음'에 비추어 내 번역 '양변을 앉은 채 끊어 버려'가 옳다.
36.2
번역마조(馬祖) 스님은 말했다.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또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또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東寺云:心不是佛,智不是道。劒去久矣,爾方刻舟。
동사(東寺) 스님은 말했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道)가 아니다. 칼은 떠난 지 오래인데, 그대는 이제야 뱃전에 표시를 새기는구나(刻舟).”
若各隨語去,豈有定論?若忘言契證,雖更宣演百千億句,亦不過一實。
저마다 말을 좇아간다면 어찌 정해진 결론이 있겠는가. 말을 잊고 맞닿아 깨닫는다면(契證), 다시 백천억 구절을 펼쳐 말한다 해도 하나의 진실(一實)을 넘지 않는다.
쉽게 읽기마조 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하였다. 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고도 하였다. 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고도 하였다. 동사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도 부처가 아니요, 지혜도 도가 아니다. 칼은 이미 떠나간 지 오래건만, 그대는 이제야 뱃전에 표시를 새기는구나." 저마다 이런 말만 좇아 따라간다면 어찌 정해진 결론이 있겠는가. 그러나 말을 잊고 깨달음에 계합한다면, 백천억 구절을 다시 펼쳐 설한다 하여도 결국 하나의 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풀이 12
不是心不是佛不是物 불시심불시불불시물馬祖에게 돌린 것은 『景德傳燈錄』 권7 伏牛自在章('馬大師…或云不是心不是佛不是物')·권28 南泉 上堂('江西大師云')과 맞는다. 권8 南泉章은 南泉 자신의 말로 싣는다.
馬祖道一 마조도일'卽心卽佛'·'非心非佛'·'不是物'은 『景德傳燈錄』 권6 馬祖章에 보이고, 세 구를 합친 '不是心不是佛不是物'은 같은 책 권7 伏牛自在章과 권28 南泉 示衆에 馬大師(江西大師)의 말로 인용된다.
卽心卽佛 즉심즉불『景德傳燈錄』 권6 馬祖章에 '卽心卽佛'→'非心非佛'→'向伊道不是物'의 차례로 실렸다. '不是心,不是佛,不是物'을 온전히 갖춘 말은 南泉의 답으로 『無門關』 제27칙 「不是心佛」에 보인다. 東寺의 말은 『景德傳燈錄』 권7 東寺章.
心不是佛 심불시불'心不是佛…爾方刻舟' 네 구가 모두 東寺如會의 示衆語다(『景德傳燈錄』 권7). 傳燈錄은 '劍去遠矣', 『心要』는 '劒去久矣'로 한 글자 다르다.
非心非佛 비심비불'不是心,不是佛,不是物'은 『景德傳燈錄』 권7 伏牛自在章에 自在가 國師에게 馬祖의 言敎를 '非心非佛,或云不是心不是佛不是物'로 전한 데 보이고, 南泉도 '江西大師云'으로 끌었다(권28).
刻舟求劍 각주구검'東寺云:心不是佛,智不是道。劒去久矣,爾方刻舟'은 東寺如會의 示衆(『景德傳燈錄』 권7 '劍去遠矣'; 『聯燈會要』 권5 '劒去久矣'). 卽心卽佛을 외우기만 하는 무리를 깨뜨린 말로, 앞의 馬祖 卽心卽佛·非心非佛과 짝지어 들었다.
景德傳燈錄〔병렬용례〕 『景德傳燈錄』 권7 東寺如會章: '心不是佛,智不是道,劍去遠矣,爾方刻舟'가 東寺의 示衆으로 한 덩어리다 — 東寺 인용 범위와 '刻舟'구의 화자(東寺)를 확정하는 근거다.
36.3
한문且什麼是實處?如大梅云:你但非心非佛,我則卽心卽佛也。豈不實耶?要徹底信得及,須是親證親見,自然不受人謾也。
번역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자리인가. 대매(大梅) 스님이 말한 것과 같다. “그대는 다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하라. 나는 ‘마음이 곧 부처다’이다.” 어찌 진실하지 않겠는가. 철저히 믿어 사무치려면(信得及), 반드시 몸소 깨닫고 몸소 보아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남에게 속지 않는다.
쉽게 읽기그렇다면 무엇이 참으로 진실한 자리인가. 대매 스님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그대는 다만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고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어찌 진실하지 않겠는가. 이 자리를 철저히 믿어 사무치려면, 반드시 몸소 증득하고 몸소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연히 남에게 속지 않게 된다.
풀이 1
景德傳燈錄〔병렬용례〕 『景德傳燈錄』 권7 大梅法常章: 마조가 卽心卽佛→非心非佛로 시험하자 '任汝非心非佛,我只管卽心卽佛'이라 하고 마조가 '梅子熟也'로 인가하였다 — 심요의 大梅 인용의 원형이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2
  1. 不離當處常湛然 불리당처상담연

    영가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나, 찾으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는 뜻이다. 참성품은 바로 여기 있으되, 따로 찾으면 도리어 놓친다는 말이다.

  2. 湛然 담연

    맑고 고요함이다. 진성의 본래 상태를 형용한다.

  3. 二邊坐斷 이변좌단

    있음과 없음, 옳음과 그름 같은 상대의 두 끝을 그 자리에서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도(中道)를 몸소 얻는 것을 이른다.

  4.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5. 非心非佛 비심비불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는 마조(馬祖)의 말이다. 마조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가르치다가, 그 말에 매이는 것을 깨려고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매(大梅)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일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았다. 『무문관』에도 실렸다.

  6. 不是心不是佛不是物 불시심불시불불시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마조(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와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를 다시 넘어선 말로, 『전등록』에는 마조의 말로도, 남전(南泉)의 말로도 전한다. 남전이 '남에게 말하지 않은 법'을 묻는 물음에 이 말로 답한 문답이 공안으로 이름났다.

  7. 心不是佛·智不是道 심불시불·지불시도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어구이다(전등록(傳燈錄)·남전어록(南泉語錄) 계열).

  8. 劍去久矣·爾方刻舟 검거구의·이방각주

    '칼은 떠나간 지 오래인데 그대는 이제야 뱃전에 표시를 새긴다'는 말로, 각주구검(刻舟求劍) 이야기를 빌렸다. 동사여회(東寺如會)가 '심불시불(心不是佛), 지불시도(智不是道)'에 이어 대중에게 보인 말(시중어, 示衆語)이다(『전등록(傳燈錄)』).

  9. 你但非心非佛·我則卽心卽佛 이단비심비불·아칙즉심즉불

    위 대매(大梅) 공안('임여비심비불(任汝非心非佛),아지관즉심즉불(我只管卽心卽佛)')의 원오식 압축 인용이다.

  10. 不受人謾瞞 불수인만만

    남의 속임·현혹에 놀아나지 않음이다. 친증(親證) 뒤의 자재를 말한다.

  11. 永嘉玄覺 영가현각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천태 지관을 닦다가 조계로 육조혜능을 찾아갔다. 문답 끝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 묵고 떠나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가 지었다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12.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13. 大梅法常 대매법상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이다. 마조(馬祖)에게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듣고 깨친 뒤 대매산에 숨어 살았다. 마조가 요즘은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도 '나는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다. 이에 마조가 '매실이 익었다'고 인정하였다.

  14. 知解 지해

    알음알이, 곧 생각으로 따지고 헤아려 얻은 앎이다. 선문에서는 제 성품을 곧바로 보는 일을 가로막는다 하여 크게 경계한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은 신회를 ‘지해종도(知解宗徒)’라 꾸짖었다.

  15. 刻舟求劍 각주구검

    강에 칼을 빠뜨리고 뱃전에 자국을 새겨 두었다가, 배가 멎은 뒤 그 아래에서 칼을 찾았다는 『여씨춘추』 이야기다. 바뀐 형편을 모르고 지난 자취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칼이 떠난 지 오래인데 이제야 뱃전에 새긴다'고 쓴다.

  16. 心不是佛 심불시불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마조(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에 제자들이 매이자 이를 깨뜨리려 한 말이다. 동사여회(東寺如會)와 남전(南泉)의 말로 전한다.

  17. 東寺如會 동사여회

    담주(潭州)(장사(長沙)) 동사여회(東寺如會)(744–823). 마조도일(馬祖道一) 법사다. 마조 사후 문도들이 즉심즉불(卽心卽佛)만 되뇌는 것을 병통으로 여겨 '심불시불(心不是佛),지불시도(智不是道)'로 집착을 깼다.

  18. 一實 일실

    유일한 진실(일실상(一實相)·일실제(一實諦))이다. 백천억 언설이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실지(實處)다.

  19. 信得及 신득급

    철저히 믿어 사무침이다. 선어록의 상용 술어다.

  20. 祖印沙彌 조인사미

    원오가 원오심요의 「시조인사미」를 지어 준 사미 조인이다. 사미는 출가하여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은 어린 승려를 이른다.

  21. 永嘉證道歌 영가증도가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 지었다고 전하는 긴 노래로, 깨달음의 경지를 일곱 자 위주의 시구로 읊었다. 현각은 육조혜능을 찾아가 하룻밤 묵고 인가를 받아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니, 찾으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 같은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22. 你但非心非佛 이단비심비불

    위 大梅 공안('任汝非心非佛,我只管卽心卽佛')의 원오식 압축 인용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