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오조법연 · 卷下 223
상당 — 혜충 국사의 이음매 없는 탑
上堂 · 舉肅宗帝問忠國師
해설혜충 국사(慧忠國師)와 숙종(肅宗)의 무봉탑(無縫塔) 문답을 든 상당으로, 「벽암록」 제18칙으로도…
혜충 국사(慧忠國師)와 숙종(肅宗)의 무봉탑(無縫塔) 문답을 든 상당으로, 「벽암록」 제18칙으로도 알려진 공안이다. 이음매 없는 탑이란 조작과 분별이 닿지 않는 본래의 경계를 가리키는데, 국사는 그 모양을 묻는 황제에게 한참 침묵(良久)하는 것으로 답을 보인다. 알아듣지 못한 황제에게 제자 탐원(耽源)을 지목한 것은 그 소식이 스승에게서 제자로 이어짐을 뜻한다. 법연은 여기에 착어를 붙여 앞뒤가 진주와 마노, 사방에 관음·세지·보현·문수, 가운데 바람에 나부끼며 "호로호로" 소리 내는 깃발을 그려 넣어, 형상 없는 탑을 도리어 온갖 장엄으로 드러내 보인다.
이 단의 낱말 4
- 肅宗 숙종
당나라 황제다. 남양 백애산 깊은 골짜기에서 사십여 년 산문을 나서지 않던 혜충(慧忠)을 조서로 불러 스승의 예로 모셨다. 혜충은 숙종과 그 뒤를 이은 대종 두 임금의 국사가 되었다. 선어록에는 혜충에게 이음매 없는 탑 이야기를 들은 황제로도 나온다.
- 忠國師 충국사
남양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775)다. 육조(六祖)의 법사이며 당(唐) 숙종(肅宗)·대종(代宗)의 국사(國師)였다.
- 無縫塔 무봉탑
이음매가 없는 탑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황제가 남양혜충 국사에게 세상을 떠난 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자, 국사가 '이음매 없는 탑을 지어 달라' 하고는 그 모양을 묻는 황제 앞에서 잠자코 있었다. 모양으로 지을 수 없는 탑을 들어 본래의 모습을 보인 공안이다.
- 耽源應真 탐원응진
당나라 선승으로 남양혜충(南陽慧忠) 국사의 시자로 있다가 그 법을 이었다. 길주(吉州) 탐원산에 머물러 '탐원'이라 불린다. 국사가 세상을 떠난 뒤 황제가 그를 불러 '이음매 없는 탑'의 뜻을 물었다. 국사의 원상(圓相) 법을 어린 앙산혜적에게 전했다고 한다.
저본
大正藏 『法演禪師語錄』 3卷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다른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대교본: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0~22. 이 어록의 편자: 門人惟慶編.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