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오조법연 · 卷中 143
상당 — 혜충 국사의 이음매 없는 탑
上堂 · 舉肅宗帝問忠國師
풀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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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의 '이음매 없는 탑(無縫塔)' 공안을 든 상당이다. 무봉탑은 꿰맨 자국 없는…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의 '이음매 없는 탑(無縫塔)' 공안을 든 상당이다. 무봉탑은 꿰맨 자국 없는 하나의 통짜 돌탑으로, 분별과 조작이 미치지 못하는 본래면목·법신(法身)의 상징이다. 국사의 침묵(良久)과 '알겠는가'라는 물음, 그리고 숙종의 '모르겠다'는 답 사이에서 법연은 '북을 매달아 놓고 채질을 기다린다(懸鼓待槌)'는 비유로, 물음 자체가 이미 답을 부르는 기연이었음을 지적한다. 작가(作家) 임금이었다면 탐원에게 미룰 것 없이 그 자리에서 '국사여!' 하고 되받아 응했으리라는 것으로, 뒤이은 탐원과 설두(雪竇)의 게송을 소개하되 법연은 설두의 '맑은 못은 푸른 용의 서림을 허락지 않는다'는 한 구절만을 처음과 끝을 꿰뚫은 안목으로 높이 산다. 끝의 '어여쁜 처녀는 은하로 돌아갔건만 어리석은 사내는 빈방을 지킨다'는 구절은, 정작 핵심은 이미 떠나갔는데 언어의 넝쿨에 매여 헛되이 남은 자취만 붙드는 학인의 처지를 풍자한 것이다.
이 단의 낱말 6
- 肅宗 숙종
당나라 황제다. 남양 백애산 깊은 골짜기에서 사십여 년 산문을 나서지 않던 혜충(慧忠)을 조서로 불러 스승의 예로 모셨다. 혜충은 숙종과 그 뒤를 이은 대종 두 임금의 국사가 되었다. 선어록에는 혜충에게 이음매 없는 탑 이야기를 들은 황제로도 나온다.
- 忠國師 충국사
남양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775)다. 육조(六祖)의 법사이며 당(唐) 숙종(肅宗)·대종(代宗)의 국사(國師)였다.
- 無縫塔 무봉탑
이음매가 없는 탑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황제가 남양혜충 국사에게 세상을 떠난 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자, 국사가 '이음매 없는 탑을 지어 달라' 하고는 그 모양을 묻는 황제 앞에서 잠자코 있었다. 모양으로 지을 수 없는 탑을 들어 본래의 모습을 보인 공안이다.
- 耽源應真 탐원응진
당나라 선승으로 남양혜충(南陽慧忠) 국사의 시자로 있다가 그 법을 이었다. 길주(吉州) 탐원산에 머물러 '탐원'이라 불린다. 국사가 세상을 떠난 뒤 황제가 그를 불러 '이음매 없는 탑'의 뜻을 물었다. 국사의 원상(圓相) 법을 어린 앙산혜적에게 전했다고 한다.
- 作家 작가
선가에서 솜씨와 안목을 두루 갖춘 노련한 스승을 이른다. 배우는 이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고 자유자재로 이끄는 사람이다. 오늘날 글 쓰는 사람을 뜻하는 '작가'와는 뜻이 다르다.
- 雪竇重顯 설두중현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 지문광조(智門光祚) 법사, 운문종(雲門宗) 중흥조. 『송고백칙(頌古百則)』(벽암록(碧巖錄)의 본칙(本則)·송(頌)) 저자이다.
저본
大正藏 『法演禪師語錄』 3卷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다른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대교본: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0~22.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