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백운수단 광록 · 卷二 123
조당강기서 — 희령 3년(1070)
祖堂綱紀序
123.1
한문吾道盛於此土,初祖菩提達磨之綱焉;剏立禪林之制,百丈大智之紀焉。
번역우리 도가 이 땅에서 성하게 된 것은, 초조(初祖) 보리달마가 세운 벼리(綱)다. 선림(禪林)의 제도를 처음 세운 것은, 백장 대지(百丈大智) 선사가 세운 규율(紀)이다.①
此實天下之共知,而奈何天下祖堂中,各以開山傳次者為其祖,殊不思乃宗乃祖所傳所持之最者乎?
이것은 실로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하의 조당(祖堂)마다, 그 절을 처음 연 이(開山)와 법을 이어 온 차례(傳次)를 저마다 조사로 삼는가? 제 종문과 제 조사가 전하고 지켜 온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찌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가?
쉽게 읽기우리 도가 이 땅에서 크게 일어난 것은 첫 조사 보리달마가 그 큰 줄기, 곧 벼리를 세웠기 때문이다. 선원의 제도를 처음 만든 것은 백장 대지 선사가 그 규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하의 조당(조사를 모신 전각)에서는 저마다 그 절을 처음 연 이와 그 뒤로 법을 이어 온 이들만 조사로 모시고, 이 종문을 세운 조사들이 전하고 지켜 온 가장 으뜸 되는 분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가?
풀이 1
① 綱紀 강기‘綱’은 그물의 벼리, ‘紀’는 실의 벼리 — 근본 질서. 달마가 선(禪)의 근본 종지(綱)를, 백장이 선원의 규율 곧 『백장청규』(紀)를 세웠다는 대구.
123.2
한문嗚呼!教來五百年後,達磨始來,
번역아! 가르침이 들어온 지 오백 년 뒤에야, 달마가 비로소 왔다.
嚮之諸家之賢者,豈不知性即乎聖,何為竟自以性以聖之泥乎?乃須少林之後,猶彈指頃,不假文字,語默有無,釋然亡其所待,而自得還其本。
그 이전 여러 학파의 어진 이들이, 어찌 성품이 곧 성인임을 몰랐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끝내 스스로 ‘성품이다, 성인이다’ 하는 진흙에 빠졌던가?② 소림(少林) 이후에야 비로소,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문자를 빌리지 않고 말과 침묵, 있음과 없음에서 기대던 것을 훌훌 잊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쉽게 읽기아, 부처의 가르침이 이 땅에 들어온 지 오백 년이 지나서야 달마가 비로소 왔다. 그 전에도 여러 학파에 어진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어찌 "성품이 곧 성인"이라는 것을 몰랐겠는가. 그런데도 어째서 끝내 '성품'이니 '성인'이니 하는 말 자체에 진흙탕처럼 빠져 버렸던가? 그러다가 소림의 달마가 온 뒤에야, 손가락 한 번 튕길 만큼 짧은 사이에, 문자를 빌리지 않고도 말할 때나 침묵할 때나, 있음에서나 없음에서나 기대던 것을 훌훌 잊고 스스로 제 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풀이 1
② 以性以聖之泥 이성이성지니달마 이전의 학인들이 ‘성품·성인’이라는 말·개념 자체에 도리어 진흙탕처럼 얽매였다는 뜻.
123.3
한문又古之巖居穴處者,但以法為勝為味,殊不慮今日其間者驕,獨大智禪師慮之,而廓以禪林之度,由是資之,而少林之風,至今藹然於天下。
번역또 옛날 바위와 굴에 살던 이들은, 다만 법을 뛰어난 것으로 여기고 맛으로 삼았을 뿐이다. 오늘날 그 가운데 있는 이들이 교만해질 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오직 대지 선사만이 이를 염려하여, 선림의 법도를 널리 열었다. 이에 힘입어 소림의 가풍이 지금까지 천하에 무성하다.③
쉽게 읽기또 옛날 바위 밑이나 굴속에 살던 수행자들은 오직 법만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맛을 즐겼을 뿐, 훗날 그 무리 가운데 교만해지는 사람이 생길 줄은 미처 걱정하지 못했다. 오직 백장 대지 선사만이 이것을 걱정하여 선원의 법도를 널리 세웠다. 그 덕분에 달마가 일으킨 소림의 가풍이 지금까지 천하에 무성하게 이어지고 있다.
풀이 1
③ 이 서(序)는 CBETA가 No.1352-B로 卷一 끝에 따로 실은 문헌으로 작자 표기가 없다. 조당(조사를 모신 전각)에 개산조가 아니라 달마·백장을 정위(正位)에 모셔야 한다는 종문 강기(綱紀) 확립의 취지문이다. 熙寧 3년(1070)은 백운 만년(海會 주석기)에 해당한다.
123.4
한문吾欲天下祖堂中以達磨大智正其位,以開山傳次者陪之,貴來者尊其始而歸其大,豈不然乎。熈寧三年歲次庚戌十月初一日立。
번역나는 천하의 조당에서 달마와 대지로 그 자리를 바로잡고, 절을 연 이와 법을 이은 이들은 그 곁에 모시게 하고자 한다. 뒤에 오는 이들이 그 시작을 높이고 그 큰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희녕(熙寧) 3년 경술년(1070) 시월 초하루에 세운다.
쉽게 읽기그래서 나는 천하의 조당에서 달마와 백장을 으뜸 자리에 바로 모시고, 절을 연 이와 법을 이은 이들은 그 곁에 모시게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뒤에 오는 이들이 그 시작을 높이 받들고 그 큰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니,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희녕 3년 경술년(1070) 시월 초하루에 세운다.
이 편의 낱말 3
-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 百丈懷海 백장회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백장산에 선원을 열고 선원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처음 세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났다. 제자로 황벽(黃檗)과 위산(溈山)이 있다.
- 少林 소림
숭산(嵩山)에 있는 절 소림사(少林寺)다. 달마가 이 절에 머물며 날마다 벽을 마주하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로 이름나, 선종이 비롯된 곳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門人 處凝 編 · 序 太原 王孜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