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14분

모양을 떠난 적멸

離相寂滅分 第十四

14.1
구마라집爾時,須菩提聞說是經,深解義趣,涕淚悲泣,而白佛言:
그때 수보리가 이 경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깊이 알았다.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현장爾時,具壽善現聞法威力悲泣墮淚,俛仰捫淚而白佛言:
그때 구수(具壽) 선현(善現)이 법을 들은 위력으로 슬피 울며 눈물을 떨구었다.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며 눈물을 훔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마라집「希有世尊!佛說如是甚深經典,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경전을 말씀하셨습니다.
현장「甚奇希有!世尊!最極希有!善逝!如來今者所說法門,
"참으로 드물고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드문 일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여래께서 지금 말씀하신 법문은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普為發趣最上乘者作諸義利,普為發趣最勝乘者作諸義利。
가장 높은 수레(最上乘)에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두루 온갖 이로움을 짓고, 가장 뛰어난 수레(最勝乘)에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두루 온갖 이로움을 짓습니다.
구마라집我從昔來所得慧眼,未曾得聞如是之經。
제가 예부터 얻은 혜안(慧眼)으로는 이와 같은 경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장世尊!我昔生智以來,未曾得聞如是法門。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지혜가 생긴 이래로 이와 같은 법문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구마라집世尊!若復有人得聞是經,信心清淨,則生實相,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
세존이시여,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는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곧 실상(實相)을 낼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으뜸가는 드문 공덕을 이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장世尊!若諸有情聞說如是甚深經典生真實想,當知成就最勝希有。
세존이시여, 유정(有情)들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경전을 듣고 참되다는 생각(真實想)을 낸다면, 가장 뛰어나고 드문 것을 이룬다고 알아야 합니다.
구마라집世尊!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
세존이시여, 이 실상이란 곧 모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실상이라 이름하여 말씀하십니다.
현장何以故?世尊!諸真實想真實想者,如來說為非想,是故如來說名真實想真實想。
왜 그렇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참되다는 생각, 참되다는 생각이라는 것을 여래께서는 생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참되다는 생각, 참되다는 생각이라 이름하여 말씀하십니다.
구마라집世尊!我今得聞如是經典,信解、受持不足為難,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 믿어 알고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현장世尊!我今聞說如是法門,領悟、信解未為希有。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깨달아 알고 믿어 아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구마라집若當來世後五百歲,其有眾生得聞是經,信解、受持,是人則為第一希有。
오는 세상 뒤의 오백 년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믿어 알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곧 으뜸가게 드문 사람일 것입니다.
현장若諸有情於當來世,後時、後分、後五百歲,正法將滅時分轉時,當於如是甚深法門,領悟、信解、受持、讀誦、究竟通利,及廣為他宣說、開示、如理作意,當知成就最勝希有。
유정들이 오는 세상, 뒷날 · 뒤의 때 · 뒤의 오백 년, 바른 법이 사라지려 할 때가 바뀌어 올 적에,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문을 깨달아 알고 믿어 알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끝까지 통달하며, 남을 위해 널리 펴서 말하고 열어 보이고 이치대로 마음에 새긴다면, 가장 뛰어나고 드문 것을 이룬다고 알아야 합니다.
구마라집何以故?此人無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
왜 그렇겠습니까? 이 사람에게는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이 없습니다.
현장何以故?世尊!彼諸有情無我想轉,無有情想、無命者想、無士夫想、無補特伽羅想、無意生想、無摩納婆想、無作者想、無受者想轉。
왜 그렇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 유정들에게는 아상(我想)이 일어나지 않고, 유정상(有情想) · 명자상(命者想) · 사부상(士夫想) · 보특가라상(補特伽羅想) · 의생상(意生想) · 마납바상(摩納婆想) · 작자상(作者想) · 수자상(受者想)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구마라집所以者何?我相即是非相,人相、眾生相、壽者相即是非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아상은 곧 모양이 아니고, 인상 · 중생상 · 수자상도 곧 모양이 아닙니다.
현장所以者何?世尊!諸我想即是非想,諸有情想、命者想、士夫想、補特伽羅想、意生想、摩納婆想、作者想、受者想即是非想。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모든 아상은 곧 생각이 아니고, 모든 유정상 · 명자상 · 사부상 · 보특가라상 · 의생상 · 마납바상 · 작자상 · 수자상도 곧 생각이 아닙니다.
구마라집何以故?離一切諸相,則名諸佛。」
왜 그렇겠습니까? 모든 모양을 떠나면 곧 모든 부처님이라 이름합니다."
현장何以故?諸佛世尊離一切想。」
왜 그렇겠습니까?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모든 생각을 떠나셨습니다."
풀이 9
① 수보리가 운 까닭을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몸과 목숨을 버려 얻는 복도 경을 지니고 설하는 것만 못함을 알고 이 법을 듣게 된 부처의 은혜가 깊음에 느꺼워서라고 한다. 동진 승조(僧肇)의 이름으로 전하는 『금강경주(金剛經註)』(X24n0454)는 '늦게 깨달음을 탄식하고, 아울러 아직 듣지 못했던 것을 슬퍼함(嗟我晚悟,兼悲未聞)'이라 한다.
가장 높은 수레(最上乘)와 가장 뛰어난 수레(最勝乘)에 나아가는 이들을 위한다는 말이 현장 역에서는 여기 수보리의 찬탄에 들어 있다. 구마라집 역에서는 비슷한 말이 15분에 부처님의 말로 나온다.
③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이 경에 따라 닦아 나 · 남 · 중생 · 목숨이라는 네 모양(四相)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모양이 아님'이고, 모양이 아님이 곧 실상(實相)이라 한다. 그래서 '실상을 낸다'를 뒤의 '이 실상이란 곧 모양이 아니다'와 잇는다. 『금강경해의』(X24n0459)는 맑은 행을 하더라도 더러움과 깨끗함의 두 모양을 보면 그것이 이미 때 묻은 마음이요, 마음에 얻는 바가 있으면 곧 실상이 아니라고 한다.
구마라집 역의 '실상(實相)을 낸다'가 현장 역에서는 '참되다는 생각(真實想)을 낸다'이다. 낳는 것이 모든 것의 참모습이 아니라, 듣는 이가 경을 참되다고 여기는 생각이다. 6분의 '실다운 생각(實想)을 낸다'와 같은 말이다. 다음 단위에서 '참되다는 생각을 여래는 생각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하는 것도 모양(相)이 아니라 이 생각(想)을 두고 하는 말이다.
④ 『금강경해의』(X24n0459)는 부처가 계실 때에도 믿지 못한 중생이 많았는데 왜 뒤의 오백 년만 드느냐고 묻는다. 부처가 계실 때는 의심이 나면 바로 여쭈어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가 떠난 뒤 오백 년은 차츰 말법(末法)에 이르러 성인에게서 멀고 말로 된 가르침만 남아, 의심을 물을 곳이 없다. 그때 이 경을 믿는 이가 더욱 드물다고 푼다. 『금강경주』(X24n0454)도 '도가 무너진 때(道敗時)'에 이 경을 믿는 것이 가장 기릴 만하다고 한다.
14.2
구마라집佛告須菩提:「如是,如是!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그렇다, 그렇다!
현장作是語已,爾時,世尊告具壽善現言:「如是!如是!
이 말을 마치자, 그때 세존께서 구수 선현에게 이르셨다. "그렇다, 그렇다!
구마라집若復有人得聞是經,不驚、不怖、不畏,當知是人甚為希有。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매우 드문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현장善現!若諸有情聞說如是甚深經典,不驚、不懼、無有怖畏,當知成就最勝希有。
선현아, 유정들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경전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움이 없다면, 가장 뛰어나고 드문 것을 이룬다고 알아야 한다.
구마라집何以故?須菩提!
왜 그런가? 수보리야,
현장何以故?善現!
왜 그런가? 선현아,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如來說最勝波羅蜜多,謂般若波羅蜜多。善現!如來所說最勝波羅蜜多,無量諸佛世尊所共宣說,故名最勝波羅蜜多。
여래는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最勝波羅蜜多)를 말하니,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이른다. 선현아, 여래가 말하는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는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함께 펴서 말씀하시므로,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라 부른다.
구마라집如來說第一波羅蜜,非第一波羅蜜,是名第一波羅蜜。
여래가 말하는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다. 이를 제일바라밀이라 부른다.
현장如來說最勝波羅蜜多即非波羅蜜多,是故如來說名最勝波羅蜜多。
여래가 말하는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는 곧 바라밀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라 이름하여 말한다.
현장「復次,善現!如來說忍辱波羅蜜多即非波羅蜜多,是故如來說名忍辱波羅蜜多。
또 선현아, 여래가 말하는 인욕바라밀다(忍辱波羅蜜多)는 곧 바라밀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인욕바라밀다라 이름하여 말한다.
풀이 6
⑤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疏)에 송나라 자선(子璿)이 기(記)를 단 『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X25n0491)의 기(記)는 놀람(驚) · 겁냄(怖) · 두려움(畏)을 셋으로 가른다. 놀람은 어리둥절하여 괴이하게 여기는 것, 겁냄은 나아갈지 물러설지 허둥대는 것, 두려움은 줄곧 무서워하는 것이다. 처음 서울 가는 큰길에 든 사람이 문득 놀라고,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며 오락가락하다가, 끝내 겁에 질려 길을 버리는 것에 견준다. 그동안 공(空)과 유(有)를 따로 듣고 말에 매여 있던 이가 공도 유도 아닌 이 경의 중도를 들으면 이렇게 놀라고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구마라집 역에 없는 대목이다. 여래가 말하는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最勝波羅蜜多)는 반야바라밀다를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함께 펴서 말씀하시기에 가장 뛰어나다고 이름한다고 한다. 구마라집 역의 '제일바라밀'이 무엇인지를 현장 역은 경 안에서 밝혀 둔 셈이다.
⑥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주석서가 갈린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이 희유한 법에 견줄 것이 없어 '제일'이라 한다고만 한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이 경이 드러내는 반야바라밀(般若度)을 가리킨다고 하고, 육바라밀 가운데 반야가 가장 뛰어나다는 『금강비(金剛鎞)』의 말을 끌어 온다. 청나라 적산취(迹刪鷲)의 『금강경직설(金剛經直說)』(X25n0496)은 열 바라밀을 늘어놓고, 여기서 '제일'은 첫째인 보시를 가리킨다고 한다.
⑦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을 인(忍), 헐뜯고 해치는 것을 욕(辱)이라 한다. 앞 13분에서 몸과 목숨을 버리는 보시는 생사의 괴로운 원인이라 했는데, 인욕도 몸과 목숨을 버리는 일이니 왜 괴로움의 원인이 되지 않느냐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주해』는 법에 내가 없음을 통달해 저 언덕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답한 대목으로 읽고, '인욕바라밀이 아니다'는 그 집착마저 보내는 말이라 한다. 『금강경주』(X24n0454)는 나와 남이 없으니 누가 해치고 누가 참겠느냐, 그래서 참음이 아니라고 한다.
교감 · 非第一波羅蜜이본 대조(대정장 교주 0750001, T08n0235 p0750b12): 「如來說第一波羅蜜,非第一波羅蜜」 — 明本은 「即非第一波羅蜜」. CBETA 금강경 주석서 경문도 「即非」 30종 · 「非」 6종(T33n1703 p0232c14 · X24n0456 p0458b16 등)으로 「即非」가 많다. 23분 「即非善法」은 표준본(조계종 표준 금강경, 2009)을 따라 「即」을 더했으나 이 자리는 표준본 한문도 저본과 같아 그대로 둔다. 뜻은 같다.
교감 · 如來說非忍辱波羅蜜이본 대조(주석서 경문 · 현장 역): 실질 이문 — 「如來說非忍辱波羅蜜」 뒤에 「是名忍辱波羅蜜」(이를 인욕바라밀이라 부른다)가 더 있는 판이 있다. 저본(T08n0235 p0750b13~14)에는 없고 대정장 교주에도 이 자리 이문이 없다. CBETA 금강경 주석서 경문을 세면 있는 것 22종(通理 『金剛新眼疏經偈合釋』 X25n0487 p0227c14 · 德清 『金剛經決疑』 X25n0474 p0064c01 등 — 모두 明 · 淸 때 엮은 것), 없는 것 19종(窺基 『金剛般若經贊述』 T33n1700 p0140c14 · 慧淨 『金剛經註疏』 X24n0456 p0458b23 · 道川 『金剛經註』 X24n0461 p0550a22 · 宗泐 · 如玘 『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 T33n1703 p0232c24 등). 孫念劬 『金剛經彙纂』(X25n0504 p0783a05)은 ‘秦譯及古本無是名句’, 徐發 『金剛經郢說』(X25n0488 p0283a05~08)은 ‘今本又有是名忍辱波羅蜜七字,會譯并趙刻俱無’라 하여 뒤에 더해진 구절로 본다. 현장 역(T07n0220 p0982c01)에는 「是故如來說名忍辱波羅蜜多」가 있다. 원문과 번역은 고려장 꼴(구절 없음)을 따랐다.
14.3
구마라집何以故?須菩提!如我昔為歌利王割截身體,
"왜 그런가?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을 베이고 잘렸을 때,
현장何以故?善現!我昔過去世曾為羯利王斷支節肉,
왜 그런가? 선현아, 내가 옛날 지난 세상에 갈리왕(羯利王)에게 팔다리 마디와 살을 잘렸을 때,
구마라집我於爾時,無我相、無人相、無眾生相、無壽者相。
나는 그때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이 없었고 수자상이 없었다.
현장我於爾時都無我想、或有情想、或命者想、或士夫想、或補特伽羅想、或意生想、或摩納婆想、或作者想、或受者想,
나는 그때 아상이나 유정상이나 명자상이나 사부상이나 보특가라상이나 의생상이나 마납바상이나 작자상이나 수자상이 전혀 없었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나는 그때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구마라집何以故?我於往昔節節支解時,若有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應生瞋恨。
왜 그런가? 내가 옛날 마디마디 몸이 찢길 때,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 있었다면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것이다.
현장何以故?善現!我於爾時若有我想,即於爾時應有恚想;我於爾時若有有情想、命者想、士夫想、補特伽羅想、意生想、摩納婆想、作者想、受者想,即於爾時應有恚想。
왜 그런가? 선현아, 내가 그때 아상이 있었다면, 그때 곧 성내는 생각(恚想)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 유정상 · 명자상 · 사부상 · 보특가라상 · 의생상 · 마납바상 · 작자상 · 수자상이 있었다면, 그때 곧 성내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구마라집須菩提!又念過去於五百世作忍辱仙人,
수보리야, 또 기억하건대 나는 지난날 오백 세상 동안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는데,
현장何以故?善現!我憶過去五百生中,曾為自號忍辱仙人,
왜 그런가? 선현아, 내가 기억하건대 지난 오백 생 동안 스스로 인욕선인이라 이름한 적이 있는데,
구마라집於爾所世,無我相、無人相、無眾生相、無壽者相。
그 여러 세상 동안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이 없었고 수자상이 없었다."
현장我於爾時都無我想、無有情想、無命者想、無士夫想、無補特伽羅想、無意生想、無摩納婆想、無作者想、無受者想,
나는 그때 아상이 전혀 없었고, 유정상 · 명자상 · 사부상 · 보특가라상 · 의생상 · 마납바상 · 작자상 · 수자상이 없었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我於爾時都無有想亦非無想。
나는 그때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풀이 6
갈리왕(羯利王)은 가리왕(歌利王)을 현장이 달리 옮긴 이름이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당나라 번역은 갈리라 했으니 소리가 조금 다를 뿐(唐譯羯利,梵音少異耳)'이라 적는다.
현장 역에만 있는 말이다. 앞 단위에서 아상(我想) 등 아홉 가지 생각이 없었다고 한 뒤, 생각이 전혀 없었으되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고 다시 말한다. 있음과 없음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 꼴로, 10분의 '빛깔에도 빛깔 아닌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와 같은 짜임이다. 오백 생의 인욕선인 대목에서도 되풀이된다.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亦非無想)'를 논서들은 저마다 풀었다. 무착(無著)의 『금강반야론(金剛般若論)』(T25n1510a, p0762c22)은 남이 해칠 때 나라는 생각이 없어 성내는 생각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인욕바라밀에 대해 '있다'는 생각도, 바라밀 아닌 것에 대해 '없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이라 한다. 세친(世親)이 풀고 의정(義淨)이 옮긴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론석(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釋)』(T25n1513, p0879a26)은 '생각 없음이 아니라 함은 생각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함께함을 드러낸다(此顯有想與悲心相應)'고 하여, 괴로움이 없을 뿐 아니라 가엾이 여김과 즐거움이 일어났다는 뜻으로 읽는다. 공덕시(功德施)의 『금강반야바라밀경파취착불괴가명론(金剛般若波羅蜜經破取著不壞假名論)』(T25n1515, p0891c13)은 나 · 남 · 성냄의 생각이 없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 일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생각 없음'은 아니라고 푼다.
에상(恚想)은 성내는 생각이다. 구마라집 역의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瞋恨)'을 현장은 앞의 아상(我想)과 같은 '상(想)' 자로 옮겨, 나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성내는 생각도 있었으리라는 짝을 맞춘다.
14.4
구마라집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모양을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야 한다.
현장是故,善現!菩薩摩訶薩遠離一切想,應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그러므로 선현아,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모든 생각을 멀리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야 한다.
구마라집不應住色生心,
빛깔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는 안 되고,
현장不住於色應生其心,
빛깔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내야 하며,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不住非色應生其心,
빛깔 아닌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내야 하며,
구마라집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소리 · 냄새 · 맛 · 감촉 ·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현장不住聲、香、味、觸、法應生其心,
소리 · 냄새 · 맛 · 감촉 · 법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내야 하며,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不住非聲、香、味、觸、法應生其心,
소리 · 냄새 · 맛 · 감촉 · 법 아닌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내야 하니,
구마라집應生無所住心。
머무는 데 없는 마음을 내야 한다.
현장都無所住應生其心。
어디에도 머무는 데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
현장何以故?善現!諸有所住則為非住。
왜 그런가? 선현아, 머무는 데가 있는 것은 모두 머묾이 아니다.
구마라집是故,佛說菩薩心不應住色布施。
그러므로 부처는 보살의 마음은 빛깔에 머물러 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현장是故如來說諸菩薩應無所住而行布施,不應住色、聲、香、味、觸、法而行布施。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보살이 머무는 데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하며, 빛깔 · 소리 · 냄새 · 맛 · 감촉 · 법에 머물러 보시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풀이 3
⑩ '머묾이 아니다(非住)'를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마음에 머무는 데가 없어야 보리(菩提)에 머물 수 있고 마음에 머무는 데가 있으면 부처의 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푼다. 『금강경해의』(X24n0459)는 열반에 머무는 것도 보살이 머물 곳이 아니라 한다. 열반에도 모든 법에도 어디에도 머물지 않아야 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10분의 '머무는 데 없이 그 마음을 내라'와 잇는다.
⑪ 여섯 경계 가운데 빛깔만, 여섯 바라밀 가운데 보시만 든 까닭을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빛깔이 여섯 경계(六塵)의 첫째이고 보시가 여섯 바라밀(六度)의 처음이기 때문이라 한다. 보살이 행하는 여섯 바라밀이 다 모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첫머리로 대신 말했다는 것이다.
14.5
구마라집「須菩提!菩薩為利益一切眾生,應如是布施。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렇게 보시해야 한다.
현장「復次,善現!菩薩摩訶薩為諸有情作義利故,應當如是棄捨布施。
또 선현아, 보살마하살은 모든 유정을 위해 이로움을 짓고자, 이렇게 버려 보시해야 한다.
구마라집如來說:『一切諸相,即是非相。』
여래는 '모든 모양은 곧 모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현장何以故?善現!諸有情想即是非想;
왜 그런가? 선현아, 모든 유정상은 곧 생각이 아니다.
구마라집又說:『一切眾生,則非眾生。』
또 '모든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현장一切有情,如來即說為非有情。
모든 유정을 여래는 곧 유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14.6
구마라집「須菩提!如來是真語者、實語者、如語者、不誑語者、不異語者。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이요, 실다운 말을 하는 이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이요,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이요, 다르게 말하지 않는 이다."
현장善現!如來是實語者、諦語者、如語者、不異語者。
선현아, 여래는 실다운 말을 하는 이요, 진실한 말을 하는 이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이요, 다르게 말하지 않는 이다.
풀이 1
⑫ 다섯 가지 말을 주석서마다 달리 짝짓는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참된 말(真語)은 부처의 보리를, 실다운 말(實語)은 소승의 법을, 있는 그대로의 말(如語)은 대승의 법을, 다르지 않은 말(不異語)은 수기의 일을 말한 것이고, 속이지 않는 말(不誑語)은 중생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한다. 『금강경해의』(X24n0459)는 참된 말은 유정이든 무정이든 모두 불성이 있다는 말, 실다운 말은 악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는 말, 있는 그대로의 말은 선법을 닦으면 반드시 즐거운 과보가 있다는 말, 속이지 않는 말은 반야바라밀법이 삼세의 부처를 낸다는 말이라 한다. 다르지 않은 말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좋은 여래의 말을 어떤 마군이나 외도도 넘어서거나 깨뜨릴 수 없다는 뜻이라 한다.
14.7
구마라집「須菩提!如來所得法,此法無實無虛。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법,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현장「復次,善現!如來現前等所證法、或所說法、或所思法,即於其中非諦非妄。
또 선현아, 여래가 눈앞에 평등하게 증득한 법이나 말한 법이나 사유한 법은, 그 안에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구마라집須菩提!若菩薩心住於法而行布施,如人入闇,則無所見;
수보리야,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를 행하면, 어둠에 들어간 사람과 같아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현장善現!譬如士夫入於闇室,都無所見,當知菩薩若墮於事,謂墮於事而行布施,亦復如是。
선현아, 비유하면 사부(士夫)가 어두운 방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보살이 일에 떨어진다면, 곧 일에 떨어져 보시를 행한다면, 또한 이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구마라집若菩薩心不住法而行布施,如人有目,日光明照,見種種色。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눈 있는 사람이 햇빛이 밝게 비칠 때 갖가지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
현장善現!譬如明眼士夫過夜曉已,日光出時見種種色,當知菩薩不墮於事,謂不墮事而行布施,亦復如是。
선현아, 비유하면 눈 밝은 사부가 밤이 지나 새벽이 되어 햇빛이 날 때 갖가지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 보살이 일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곧 일에 떨어지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면, 또한 이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풀이 5
⑬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여래가 증득한 법은 본래 말을 떠났으므로 '실다움이 없다'고 하고, 근기를 마주해 말함이 있으므로 '헛됨이 없다'고 한다. 『금강경해의』(X24n0459)는 법의 바탕이 공하고 고요하여 얻을 모양이 없으므로 '실다움이 없다'고 하고, 그 가운데 항하 모래만큼의 성품의 덕이 있어 써도 다함이 없으므로 '헛됨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 역은 '여래가 얻은 법'을 '여래가 눈앞에 평등하게 증득한 법이나 말한 법이나 사유한 법'으로 넓힌다. 그리고 그 안에 진실도 거짓도 없다(非諦非妄)고 한다. 증득한 법만이 아니라 말과 생각으로 나온 법까지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이다.
⑭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법에 머문다'를, 보시하면서 주는 이 · 받는 이 · 주는 물건의 세 바퀴(三輪)가 다 공함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읽는다. 그렇게 법에 머물면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이루지 못해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셋이 공함을 알면 마음에 머무는 데가 없어 보시바라밀을 이루니, 눈 있는 이가 햇빛 속에서 온갖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금강경해의』(X24n0459)도 세 바퀴의 바탕이 공함을 들고, 『화엄경(華嚴經)』에서 성문이 여래의 모임에서 법을 듣고도 눈먼 이 · 귀먹은 이 같았던 것은 법의 모양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말을 끌어 온다.
현장 역은 구마라집 역의 '마음이 법에 머물러'를 '일(事)에 떨어진다(墮於事)'고 옮긴다. 머묾(住) 대신 떨어짐(墮)을, 법(法) 대신 일(事)을 쓴 것이다. 비유도 앞에 두어, 어두운 방에 들어간 사부(士夫)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듯 일에 떨어져 보시하는 보살도 그렇다고 한다.
'일(事)'이 무엇인지를 논서는 보시로 받을 갚음 쪽으로 푼다. 무착(無著)의 『금강반야론(金剛般若論)』(T25n1510a, p0763a27)은 이 비유를 '갚음(果報)을 바라고 보시하면 곧 일에 집착해 베푼다(若為果報布施,便著於事而行捨施)'고 풀고, 그런 이는 보시로 얻는 즐거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줄 몰라 어둠에 든 사람이 갈 곳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한다. 당나라 규기(窺基)의 『금강반야론회석(金剛般若論會釋)』(T40n1816, p0753b05)은 이를 '앞날의 일에 집착한다(著未來事)'고 하여, 일을 보시로 얻을 뒷날의 열매로 읽는다. 현장 역은 4분의 '일에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不住於事應行布施)'에서도 같은 '일'을 쓴다.
14.8
구마라집「須菩提!當來之世,若有善男子、善女人,能於此經受持、讀誦,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어떤 선남자 ·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욀 수 있다면,
현장「復次,善現!若善男子或善女人於此法門受持、讀誦、究竟通利,及廣為他宣說、開示、如理作意,
또 선현아,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끝까지 통달하며, 남을 위해 널리 펴서 말하고 열어 보이고 이치대로 마음에 새긴다면,
구마라집則為如來以佛智慧悉知是人,悉見是人,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본다.
현장則為如來以其佛智悉知是人,則為如來以其佛眼悉見是人,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 이 사람을 다 알고, 여래는 부처의 눈으로 이 사람을 다 본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則為如來悉覺是人。
여래는 이 사람을 다 깨달아 안다.
구마라집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이들은 모두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이루게 된다."
현장如是有情一切當生無量福聚。
이러한 유정은 모두 한량없는 복의 무더기(福聚)를 낼 것이다."
해설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은 '모양을 떠난 적멸'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종경(宗鏡)이 짓고 명나라…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은 '모양을 떠난 적멸'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종경(宗鏡)이 짓고 명나라 각련(覺連)이 다시 엮은 『소석금강경과의회요주해(銷釋金剛經科儀會要註解)』(X24n0467)는 부처님이 모든 모양을 떠나 보리심을 내라고 하고, 이 경을 듣고 나 · 남 같은 네 모양을 떠나면 곧 모든 부처라 이름하여 적멸의 이치를 증득하므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푼다. 경에서 가장 긴 분이다. 수보리가 경을 듣고 울며 찬탄하는 대목, 부처님이 이를 인가하고 인욕선인이었던 지난 일을 드는 대목, 다시 머묾 없는 보시와 여래의 말이 참됨을 밝히는 대목으로 이어진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 분 뒤쪽을 세 의심을 끊는 대목으로 읽는다. 경을 지니고 설해도 괴로운 과보를 벗지 못하지 않느냐는 의심에는 인욕선인의 일로 답한다. 증득한 법이 말을 떠났다면 말로 된 경이 어떻게 원인이 되느냐는 의심에는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이'라고 답한다. 진여가 어디에나 있는데 왜 얻는 이와 못 얻는 이가 있느냐는 의심에는 어둠과 햇빛의 비유로 답한다.

13분까지는 경을 지니는 복을 보시와 견주어 보였다. 이 분은 수보리의 깨침을 앞세워, 그 복이 모양을 떠남에서 온다는 것을 밝힌다. 10분의 '머무는 데 없이 그 마음을 내라'가 여기서 '모든 모양을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라'로 다시 나온다.

차례 (32분)

이 분의 낱말 7
  1. 須菩提 수보리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알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선길(善吉) · 선현(善現) · 공생(空生)이라고도 옮긴다. 태어나던 날 집 안이 텅 비어 공생이라 했고, 그것이 뒷날 공을 깨칠 조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五眼 오안

    부처가 갖춘 다섯 가지 눈으로,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이다. 『금강경』에서 부처는 이 다섯 눈을 다 갖추었다고 했다.

  3. 如來 여래

    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진리에서 와서 진리대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풀며, 경전에서 부처님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도 쓴다. 『금강경』은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어서 여래라 한다고 말한다.

  4. 四相 사상

    『금강경』이 거듭 버리라고 하는 네 가지 생각의 모양이다.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 곧 '나' · '남' · '중생' · '목숨을 이어 가는 자'가 따로 있다고 붙드는 생각이다. 보살에게 이 넷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한다.

  5. 歌利王 가리왕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 나오는 왕으로,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 수행하던 부처님의 몸을 베어 끊었다고 한다. 『금강경』은 그때 부처님에게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 없었기에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일지 않았다고 말한다.

  6. 忍辱仙人 인욕선인

    『금강경(金剛經)』·『열반경(涅槃經)』 소재.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이 잘려도 성냄이 없던 부처의 전신이다.

  7.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처님이 이룬 깨달음을 옛 소리 그대로 옮긴 말이다. '위없이 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고도 옮긴다.

문단 8주석 14교감 2해설낱말 7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