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17분

끝내 나가 없다

究竟無我分 第十七

17.1
구마라집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云何應住?云何降伏其心?」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었으면,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현장爾時,具壽善現復白佛言:「世尊!諸有發趣菩薩乘者,應云何住?云何修行?云何攝伏其心?」
그때 구수(具壽) 선현(善現)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승(菩薩乘)에 나아가기로 마음을 낸 이들은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어떻게 닦아 행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 마음을 거두어 항복받아야 합니까?"
풀이 2
17.2
구마라집佛告須菩提:「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當生如是心:『我應滅度一切眾生。滅度一切眾生已,而無有一眾生實滅度者。』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선남자 · 선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이는 이런 마음을 내야 한다. '나는 모든 중생을 멸도(滅度)해야 한다. 모든 중생을 멸도하고 나서도, 실로 멸도된 중생은 하나도 없다.'
현장佛告善現:「諸有發趣菩薩乘者,應當發起如是之心:『我當皆令一切有情於無餘依妙涅槃界而般涅槃,雖度如是一切有情令滅度已,而無有情得滅度者。』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이르셨다. "보살승에 나아가기로 마음을 낸 이들은 이런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모든 유정(有情)을 다 남음 없는 묘한 열반의 세계(無餘依妙涅槃界)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게 하겠다. 이와 같이 모든 유정을 건져 멸도하게 하였으나, 멸도를 얻은 유정은 없다.'
구마라집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則非菩薩。
왜 그런가? 수보리야, 보살에게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다.
현장何以故?善現!若諸菩薩摩訶薩有情想轉,不應說名菩薩摩訶薩。所以者何?若諸菩薩摩訶薩不應說言有情想轉。如是命者想、士夫想、補特伽羅想、意生想、摩納婆想、作者想、受者想轉,當知亦爾。
왜 그런가? 선현아, 여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에게 유정상(有情想)이 일어나면 보살마하살이라 부를 수 없다. 까닭이 무엇인가? 보살마하살이라면 유정상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명자상(命者想) · 사부상(士夫想) · 보특가라상(補特伽羅想) · 의생상(意生想) · 마납바상(摩納婆想) · 작자상(作者想) · 수자상(受者想)이 일어나는 것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구마라집所以者何?須菩提!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현장何以故?善現!無有少法名為發趣菩薩乘者。」
왜 그런가? 선현아, 보살승에 나아가는 이라 이름할 법은 조금도 없다."
풀이 3
① 3분에서 한 '중생을 다 멸도하되 멸도된 중생이 없다'는 말을 다시 하는 까닭을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렇게 푼다. 앞은 망정을 깨뜨려 지혜를 드러낸 것(破情顯智)으로 아상 등 네 상의 거친 집착을 깼고, 여기서부터는 지혜마저 잊어 이치를 드러내어(忘智顯理) 네 상의 미세한 집착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은 '마음을 내는 법'마저 없다는 말로 끝난다.
교감 ·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이본 대조(대정장 교주 0751001 · 0751002, T08n0235 p0751a10~11 · a15~16):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 宋 · 元 · 明本은 「…三菩提心者」. 같은 분 「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도 宋 · 元 · 明本과 宮本이 「…心者」. CBETA 금강경 주석서 경문도 앞 자리 「心」 있음 32종 · 없음 1종, 뒤 자리 35종 · 3종으로 거의 모두 「心」이 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낸다’가 곧 그 마음을 내는 것이라 뜻은 같고, 우리말 ‘…의 마음을 낸 이’는 두 꼴에 다 맞는다. 27분의 같은 이문과 한 가지 — 저본대로 둔다.
17.3
구마라집「須菩提!於意云何?如來於然燈佛所,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然燈佛)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있느냐?"
현장佛告善現:「於汝意云何?如來昔於然燈如來、應、正等覺所,頗有少法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옛날 연등(然燈) 여래 · 응공(應) · 정등각(正等覺)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조그만 법이라도 있느냐?"
구마라집「不也,世尊!如我解佛所說義,佛於然燈佛所,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불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법은 없습니다."
현장作是語已,具壽善現白佛言:「世尊!如我解佛所說義者,如來昔於然燈如來、應、正等覺所,無有少法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말을 마치자,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여래께서 옛날 연등 여래 · 응공 · 정등각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신 조그만 법도 없습니다."
풀이 2
17.4
구마라집佛言:「如是,如是!須菩提!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실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은 없다.
현장說是語已,佛告具壽善現言:「如是!如是!善現!如來昔於然燈如來、應、正等覺所,無有少法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께서 구수 선현에게 이르셨다. "그렇다, 그렇다! 선현아, 여래가 옛날 연등 여래 · 응공 · 정등각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조그만 법도 없다.
구마라집須菩提!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然燈佛則不與我受記:『汝於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
수보리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있었다면, 연등불께서는 나에게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釋迦牟尼)라 불릴 것이다'라고 수기(受記)를 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현장何以故?善現!如來昔於然燈如來、應、正等覺所,若有少法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然燈如來、應、正等覺不應授我記言:『汝摩納婆於當來世名釋迦牟尼如來、應、正等覺。』
왜 그런가? 선현아, 여래가 옛날 연등 여래 · 응공 · 정등각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조그만 법이라도 있었다면, 연등 여래 · 응공 · 정등각께서는 나에게 '너 마납바(摩納婆)는 오는 세상에 석가모니 여래 · 응공 · 정등각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수기(授記)를 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구마라집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然燈佛與我受記,作是言:『汝於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없었기에, 연등불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불릴 것이다.'
현장善現!以如來無有少法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然燈如來、應、正等覺授我記言:『汝摩納婆於當來世名釋迦牟尼如來、應、正等覺。』
선현아,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조그만 법도 없었기에, 연등 여래 · 응공 · 정등각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며 말씀하셨다. '너 마납바는 오는 세상에 석가모니 여래 · 응공 · 정등각이라 불릴 것이다.'
구마라집何以故?如來者,即諸法如義。
왜 그런가? 여래란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如)는 뜻이다."
현장所以者何?善現!言如來者,即是真實真如增語;言如來者,即是無生法性增語;言如來者,即是永斷道路增語;言如來者,即是畢竟不生增語。
까닭이 무엇인가? 선현아, 여래라는 것은 곧 참된 진여(真如)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여래라는 것은 곧 남이 없는 법의 성품(無生法性)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여래라는 것은 곧 길을 영원히 끊음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여래라는 것은 곧 끝내 나지 않음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何以故?善現!若實無生即最勝義。
풀이 4
마납바(摩納婆)는 앞에서 아홉 상(想) 가운데 하나로 나온 말인데, 여기서는 연등 여래가 수기를 주며 석가모니의 전생 수행자를 부른 이름으로 쓰였다. 송나라 자선(子璿)의 기(記)(『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 X25n0491)는 이 수기 이야기를 들며, 운동(雲童) 또는 선혜(善慧)라 불린 수행자가 꽃을 바치고 머리털을 펴 진흙을 덮자 연등 여래가 '이 마나바(此摩那婆)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불릴 것이다'라고 수기했다고 적는다.
③ 여래(如來)의 '여(如)'를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진여(真如)로 보아 '거짓이 아닌 것을 진(真), 다르지 않은 것을 여(如)라 한다(不偽曰真、不異曰如)'고 하고, 이 진여의 바탕이 세 때를 꿰뚫고 시방에 뻗어 있어 공도 유도 아니고 변하지도 옮기지도 않음을 여래의 성품이라 한다. 동진 승조(僧肇)의 주로 전하는 『금강경주(金剛經註)』(X24n0454)는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여 이치에 어긋나거나 다름이 없음을 여라 하고, 여에 계합하여 앎이 끝까지 이른 것을 여래라 한다(諸法性空,理無乖異,謂之為如。會如解極,故名如來)'고 한다. 당 혜능(慧能)의 이름으로 전하는 『금강경해의(金剛經解義)』(X24n0459)는 모든 법을 빛깔 · 소리 · 냄새 · 맛 · 감촉 · 법의 여섯 경계로 보고, 그 가운데서 잘 분별하되 본바탕이 맑아 물들지도 변하지도 않는 것을 '모든 법이 여여한 뜻'이라 푼다.
증어(增語)는 어떤 것을 달리 일컫는 이름이라는 뜻이다. 구마라집이 '여래란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라 한마디로 한 것을, 현장은 여래라는 이름이 네 가지를 달리 부르는 말이라고 넷으로 편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도 여러 번역을 견주는 대목에서, 진(秦)나라 번역은 여래를 모든 법이 여여한 뜻이라 했는데 현장 역은 이렇게 넷으로 말한다고 이 차이를 든다.
현장에만 있는 한마디다. 앞의 넷 가운데 '남이 없음' · '끝내 나지 않음'을 받아, 실로 남이 없는 것이 곧 가장 뛰어난 뜻(最勝義)이라고 여래를 그렇게 부르는 까닭을 붙인다.
17.5
구마라집「若有人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고 말한다면,
현장「善現!若如是說如來、應、正等覺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當知此言為不真實。
선현아, 여래 · 응공 · 정등각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했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이 말은 참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所以者何?善現!由彼謗我起不實執。
구마라집須菩提!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실로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은 없다.
현장何以故?善現!無有少法,如來、應、正等覺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
왜 그런가? 선현아, 여래 · 응공 · 정등각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조그만 법도 없다.
구마라집須菩提!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於是中無實無虛,是故如來說:『一切法皆是佛法。』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 안에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이 다 불법이다'라고 말한다.
현장善現!如來現前等所證法,或所說法、或所思法,即於其中非諦非妄,是故如來說一切法皆是佛法。
선현아, 여래가 눈앞에 평등하게 증득한 법이나 말한 법이나 사유한 법은 그 안에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이 다 부처님의 법이라고 말한다.
구마라집須菩提!所言一切法者,即非一切法,是故名一切法。
수보리야, 모든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모든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라 부른다."
현장善現!一切法一切法者,如來說非一切法,是故如來說名一切法一切法。」
선현아, 모든 법, 모든 법이라는 것을 여래는 모든 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 모든 법이라 이름하여 말한다."
풀이 3
현장에만 있는 한마디다. 여래가 깨달음을 증득했다고 말하는 것이 왜 참되지 않은지 까닭을 붙여, 그런 말은 여래를 기리는 듯하지만 실은 여래를 헐뜯어 참되지 않은 집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④ 무실무허(無實無虛)를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여기서 '실다움이 없음은 함이 있는 모양(有為相)이 아니라는 것이요, 헛됨이 없음은 진여의 바탕이라는 것(無實者,非有為相也;無虛者,是真如體也)'으로 푼다. 같은 책이 14분의 같은 말은 '여래가 증득한 법은 본래 말을 떠났으므로 실이 없고(本離言說,故曰無實), 근기에 맞추어 설함이 있으므로 허가 없다'고 달리 풀었다.
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진여가 따로 있는 법이 아니라, 빛깔 등 모든 법이 성품과 모양을 떠난 그대로가 진여의 바탕이므로 '모든 법이 다 불법'이라 한다고 푼다. 또 진여의 바탕이 모든 법을 떠나지 않지만 그것을 붙잡아 집착할 수도 없으므로 '곧 모든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라 부른다'고 한다고 본다.
17.6
구마라집「須菩提!譬如人身長、大。」
"수보리야, 비유하면 사람의 몸이 길고 큰 것과 같다."
현장佛告善現:「譬如士夫具身大身。」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이르셨다. "비유하면 사부(士夫)가 몸을 갖추었는데 큰 몸인 것과 같다."
구마라집須菩提言:「世尊!如來說人身長、大,則為非大身,是名大身。」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길고 큰 것은 곧 큰 몸이 아닙니다. 이를 큰 몸이라 부릅니다."
현장具壽善現即白佛言:「世尊!如來所說士夫具身大身,如來說為非身,是故說名具身大身。」
구수 선현이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부가 몸을 갖추었는데 큰 몸이라는 것을 여래께서는 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몸을 갖춘 큰 몸이라 이름하여 말씀하십니다."
풀이 1
⑥ 사람의 몸이 길고 크다는 비유를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여래가 증득한 진여의 바탕이 모든 곳에 두루하니 '길고 크다' 할 만하지만 수보리가 길고 크다는 견해를 낼까 염려하여 비유로 물은 것이라 푼다. 그리고 『논(論)』을 끌어 '큰 몸에는 두 뜻이 있다. 하나는 모든 곳에 두루함이니 곧 법신이요, 둘은 공덕이 큼이니 곧 보신이다(大身有二義:一者、遍一切處即法身,二者、功德大即報身)'라 하고, 두 몸이 다 모든 모양을 떠났으므로 '아니다(非)'라 한다고 한다.
17.7
구마라집「須菩提!菩薩亦如是,若作是言『我當滅度無量眾生』,則不名菩薩。
"수보리야, 보살도 이와 같다. '나는 한량없는 중생을 멸도하겠다'고 말한다면, 보살이라 부르지 않는다.
현장佛言:「善現!如是,如是!若諸菩薩作如是言:『我當滅度無量有情。』是則不應說名菩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그렇다, 그렇다! 보살들이 '나는 한량없는 유정을 멸도하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부를 수 없다.
구마라집何以故?須菩提!實無有法名為菩薩。
왜 그런가? 수보리야, 실로 보살이라 이름할 법이 없다.
현장何以故?善現!頗有少法名菩薩不?」善現答言:「不也!世尊!無有少法名為菩薩。」
왜 그런가? 선현아, 보살이라 이름할 조그만 법이라도 있느냐?" 선현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라 이름할 조그만 법도 없습니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佛告善現:「有情有情者,如來說非有情故名有情,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이르셨다. "유정, 유정이라는 것을 여래는 유정이 아니라고 말하니, 그러므로 유정이라 부른다.
구마라집是故,佛說:『一切法無我、無人、無眾生、無壽者。』
그러므로 부처는 '모든 법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다'고 말한다.
현장是故如來說一切法無有有情、無有命者、無有士夫、無有補特伽羅等。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에 유정도 없고 명자도 없고 사부도 없고 보특가라 따위도 없다고 말한다.
구마라집須菩提!若菩薩作是言『我當莊嚴佛土』,是不名菩薩。
수보리야, 보살이 '나는 불국토를 장엄하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부르지 않는다.
현장善現!若諸菩薩作如是言:『我當成辦佛土功德莊嚴。』亦如是說。
선현아, 보살들이 '나는 불국토의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이루겠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한다.
구마라집何以故?如來說莊嚴佛土者,即非莊嚴,是名莊嚴。
왜 그런가?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다. 이를 장엄이라 부른다.
현장何以故?善現!佛土功德莊嚴佛土功德莊嚴者,如來說非莊嚴,是故如來說名佛土功德莊嚴佛土功德莊嚴。
왜 그런가? 선현아, 불국토의 공덕장엄, 불국토의 공덕장엄이라는 것을 여래는 장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불국토의 공덕장엄, 불국토의 공덕장엄이라 이름하여 말한다.
구마라집須菩提!若菩薩通達無我、法者,如來說名真是菩薩。
수보리야, 보살이 나 없는 법(無我法)을 꿰뚫어 알면, 여래는 이를 참된 보살이라 이름하여 말한다."
현장善現!若諸菩薩於無我法無我法深信解者,如來、應、正等覺說為菩薩菩薩。」
선현아, 보살들이 나 없는 법, 나 없는 법을 깊이 믿어 알면, 여래 · 응공 · 정등각은 보살, 보살이라 말한다."
풀이 4
⑦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법계가 온통 하나이고 몸과 국토가 평등하여 이룰 불도도 없는데 어찌 건질 중생이 있겠는가(法界混然、身土平等,尚無佛道可成,安有眾生可度)'라 하여, 중생을 건지겠다는 마음이나 국토를 장엄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견해이므로 보살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푼다.
⑧ 통달무아법(通達無我法)은 두 가지로 읽힌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와 『금강경해의』는 '나 없는 법(無我法)'을 한 덩어리로 읽는다. 『금강경해의』는 '모든 법의 모양에 막힘이 없음을 통달이라 하고, 법을 안다는 마음을 짓지 않음을 무아법이라 한다(於諸法相無所滯礙,是名通達,不作解法心,是名無我法)'고 푼다. 학술 번역은 이 읽기를 따랐다. 한편 송나라 선월(善月)의 『금강경회해(金剛經會解)』(X24n0462)가 끌어온 무착(無著)의 논은 '사람과 법의 두 가지 무아(人、法二種無我)'로 읽고, 중생을 '내가 이룬다'고 하면 사람에 대한 나의 집착(人我取), '내가 국토를 장엄한다'고 하면 법에 대한 나의 집착(法我取)이라 짝짓는다. 명나라 원현(元賢)의 『금강경약소(金剛經略疏)』(X25n0482)도 '무아에는 둘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무아, 둘은 법의 무아다(無我有二:一人無我,二法無我)'라 한다. CBETA의 끊어 읽기 「無我、法」은 이 둘째 읽기를 따른 꼴이다.
현장은 구마라집의 '꿰뚫어 앎(通達)' 자리에 '깊이 믿어 앎(深信解)'을 두고, '나 없는 법, 나 없는 법'이라 거듭 부른다. 무아법(無我法)을 한 덩어리로 거듭 일컫는 꼴이다.
교감 · 通達無我、法者△ 표점: 「通達無我、法者」 — CBETA 표점(頓號)을 그대로 실음(T08n0235 p0751b12). CBETA 新增校注 按: 이 頓號는 두 가지 無我, 곧 人無我와 法無我를 나타낸다. 窺基 『金剛般若經贊述』(T33n1700 p0147b09~10)도 ‘達我、法空’으로 둘을 들지만, 『金剛經解義』(X24n0459 p0528c13~15)는 「無我法」을 한 말로 푼다. 이 역주는 「無我法」을 한 말(‘나 없는 법’)로 새겼다(두 풀이는 이 분 자리 주석에).
해설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은 '끝내 나가 없다'는 뜻이다. 이 분은 2분에서 수보리가 한 물음, 곧 어떻게…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은 '끝내 나가 없다'는 뜻이다. 이 분은 2분에서 수보리가 한 물음, 곧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느냐를 같은 말로 다시 묻는 데서 시작한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묻는 말은 같으나 그 뜻은 다르다(問辭雖同,其意則別)'고 한다. 처음 물음은 머물고 항복받는 법을 물은 것이고, 이번 물음은 '내가 머물고 내가 항복받는다'는 분별이 남아 참된 증득을 가로막으므로 다시 물은 것이라는 풀이다.

명나라 덕청(德清)의 『금강경결의(金剛經決疑)』(X25n0474)는 여기서 경을 둘로 가른다. 앞의 반 권(已前半卷)은 범부의 견해에서 일어난 오온(五蘊) · 몸의 모양으로서의 나를 깨뜨린 것이라 네 상이 다 거칠고, 이 아래는 이미 반야를 깨친 보살에게 남은 '증득하는 지혜'라는 나, 곧 미세한 나와 법의 두 집착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은 보시를 다시 말하지 않고 '나는 모든 중생을 멸도해야 한다'처럼 '나'라는 글자를 앞세운다고 본다(故此經中標出一我字為首).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이 분 안에서 네 의심을 차례로 끊는다고 본다. 머물고 항복받는 데 나를 둔다는 의심(斷安住、降伏存我疑), 부처의 인행 때에는 보살이 있었다는 의심(斷佛因是有菩薩疑 — 연등불의 수기), 인이 없으면 불법도 없다는 의심(斷無因則無佛法疑 — 여래는 모든 법이 여여한 뜻), 사람이 없으면 누가 중생을 건지고 국토를 장엄하느냐는 의심(斷無人度生嚴土疑)이다. 분은 나 없는 법을 꿰뚫어 아는 이가 참된 보살이라는 말로 맺는다.

차례 (32분)

이 분의 낱말 5
  1. 須菩提 수보리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알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선길(善吉) · 선현(善現) · 공생(空生)이라고도 옮긴다. 태어나던 날 집 안이 텅 비어 공생이라 했고, 그것이 뒷날 공을 깨칠 조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처님이 이룬 깨달음을 옛 소리 그대로 옮긴 말이다. '위없이 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고도 옮긴다.

  3. 四相 사상

    『금강경』이 거듭 버리라고 하는 네 가지 생각의 모양이다.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 곧 '나' · '남' · '중생' · '목숨을 이어 가는 자'가 따로 있다고 붙드는 생각이다. 보살에게 이 넷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한다.

  4. 如來 여래

    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진리에서 와서 진리대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풀며, 경전에서 부처님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도 쓴다. 『금강경』은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어서 여래라 한다고 말한다.

  5. 燃燈佛 연등불

    아득한 옛적에 세상에 나온 부처님으로, 정광불(定光佛)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전생에 수행자였을 때 이 부처님에게서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전한다.

문단 7주석 8교감 2해설낱말 5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