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용어 · 공안
開田說大義
개전설대의
풀이
백장산의 스님이 대중에게 '나를 위해 밭을 일구면 큰 뜻을 일러 주겠다' 했다. 밭일을 마친 대중이 큰 뜻을 청하자, 스님은 말없이 두 손을 펴 보였다. 『경덕전등록』은 이를 백장유정(百丈惟政)의 일로 싣는다.
학술 풀이
'汝與我開田了,我為汝說大義'라 하고, 대중이 밭을 일군 뒤 大義를 청하자 두 손을 펴 보였다는 문답. 『景德傳燈錄』 권9는 洪州 百丈山 惟政의 章에 싣고, 夾注에서 이 기연을 근거로 그를 百丈懷海의 法嗣 涅槃和尚(碑에는 法正)으로 보았다(T51n2076_p0268b26). 『五燈會元』 권4도 '百丈山涅槃和尚'의 일로 싣고, 『林間錄』을 끌어 百丈 제2대 法正의 일이라 한다(X80n1565_p0091a22). DILA는 '百丈開田' 공안을 百丈惟政(馬祖道一의 法嗣로 둠)의 기연으로 든다(A003974).
실린 곳
백운수단 어록 1편
백운수단 광록 2편
관련 항목
이 글을 가리키는 글
- 百丈惟政 백장유정 — 백장유정(百丈惟政)은 당나라 선승으로, 홍주(洪州) 백장산에 머물렀다. 『열반경』을 잘 강해서 '열반 화상'이라 불렸다. 대중에게 밭을 일구게 한 뒤 큰 뜻을 묻자 두 손을 펴 보인 일로 알려졌다. 같은 산에 살았던 백장회해와는 다른 사람이다.
- 百丈懷海 백장회해 —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백장산에 선원을 열고 선원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처음 세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났다. 제자로 황벽(黃檗)과 위산(溈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