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64편

경룡학(耿龍學)에게 보낸 편지 끝에 붙인 글

與耿龍學書批

64.1
한문妙喜示來教,見矻矻於此,意況甚濃,真不忘悲願也。
번역묘희(妙喜)가 보내오신 글을 보여 주어, 이 일에 부지런히 힘쓰심을 보았습니다. 뜻이 매우 깊으시니, 참으로 자비의 서원(悲願)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而以宗正眼照破義路,情解透見肝膽,何明眼如此?
종문의 바른 눈(正眼)으로 뜻길(義路)과 알음알이(情解)를 비추어 깨뜨리시고, 간담(肝膽)까지 꿰뚫어 보셨습니다. 어찌 이토록 눈이 밝으십니까.
正宗久寂寥,後昆習窠臼、守箕裘,轉相鈍致,舉世莫覺其非,大家隨語生解,祖道或幾乎息矣。
바른 종지가 오래도록 쓸쓸하였습니다. 뒷사람들은 낡은 틀(窠臼)을 익히고 물려받은 가업(箕裘)만 지키며, 갈수록 서로를 굼뜨게 만들었습니다. 온 세상이 그 그릇됨을 깨닫지 못하고, 다들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냈습니다. 조사의 도가 거의 끊어질 지경이었습니다.
不有超卓頴悟之士,何以規正哉?此皆正念,乃真外護也。
뛰어나고 밝게 깨친 선비가 없다면, 무엇으로 이를 바로잡겠습니까. 이것이 다 바른 생각(正念)이니, 참된 외호(外護)입니다.
쉽게 읽기묘희가 보내오신 편지를 보여 주어 살펴보았습니다. 이 일에 부지런히 힘쓰는 뜻과 마음이 아주 무르익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중생을 건지려는 큰 서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종문의 바른 안목으로 뜻을 더듬어 따지는 길과 분별하는 알음알이를 비추어 깨뜨리셨습니다. 속마음까지 환히 꿰뚫어 보셨습니다. 어찌 이토록 눈이 밝으실 수 있습니까. 바른 가르침이 오래도록 쓸쓸하였습니다. 뒷사람들은 낡은 틀을 익히고 물려받은 가업만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갈수록 서로를 둔하게 만들었습니다. 온 세상이 그 그릇됨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다들 말만 따라가며 알음알이를 냈습니다. 그리하여 조사의 도가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뛰어나게 밝게 깨달은 사람이 없다면 무엇으로 이를 바로잡겠습니까. 이 모두가 바른 생각이니, 곧 참된 외호입니다.
풀이 6
大慧宗杲 대혜종고'妙喜示來教'의 妙喜는 大慧宗杲의 號. 같은 글의 '杲佛日'(諱 杲 + 師號 佛日)도 그다.
箕裘 기구'習窠臼'와 이어져, 家業을 잇는다는 箕裘의 본뜻을 뒤집어 祖師의 죽은 格式만 따르는 것을 낮추어 말하였다.
外護 외호大慧를 바르게 알아보고 뒷받침하는 耿龍學의 正念을 참된 外護로 인정한 말이다.
64.2
한문時節擾擾,山居領眾亦未可保全,尚未有可乘之便爲轉身之許爾。
번역시절이 어수선하여, 산에 살며 대중을 거느리는 일도 온전히 지켜 내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몸을 돌릴 만한 틈을 탈 형편도 못 됩니다.
杲佛日一夏遣參徒踏逐山後古雲門高頂,欲誅茆隱遁,其志甚可尚。
대혜 종고(杲佛日)가 한여름 동안 참선하는 무리를 보내어, 산 뒤편 옛 운문(雲門)의 높은 봉우리를 밟아 찾게 하였습니다. 띠풀을 베고 숨어 살려는 것이니, 그 뜻이 참으로 가상합니다.
今令謙去,山叟爲書數語及疏頭,亦與輟長財成之,可取一觀也。渠欲奉鋤,正在高裁也。克勤啟上。
이제 겸(謙) 상좌를 보냅니다. 이 늙은이가 몇 마디 글과 소두(疏頭)를 써 주고, 살림에서 남는 재물을 덜어 그 일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한번 보아 주십시오. 그가 호미를 들고자 하는 일은, 오직 고명하신 재량(高裁)에 달려 있습니다. 극근(克勤)이 올립니다.
쉽게 읽기시절이 어수선합니다. 산에 머물며 대중을 이끄는 일도 온전히 지켜내리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몸을 돌릴 만한 여유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대혜 종고가 한여름 동안 참선하는 무리를 보냈습니다. 산 뒤편 옛 운문의 높은 봉우리를 밟아 찾게 한 것입니다. 띠풀을 베어 숨어 살려는 뜻이니, 참으로 갸륵합니다. 이제 겸 상좌를 보냅니다. 이 늙은이가 몇 마디 글과 권선하는 글을 써 주었습니다. 또 살림에서 남는 재물을 덜어 그 일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한번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가 호미를 들고 밭 갈며 살려는 일은 바로 고명하신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극근이 올립니다.
풀이 8
圜悟克勤 원오극근'克勤啟上'은 서간 말미에 法諱로 자칭하며 올리는 결어이다.
疏頭 소두大慧(杲佛日)가 古雲門 높은 곳에 띠집을 짓고 숨어 지내려는 일을 위해 圜悟가 써 준 勸緣疏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一夏遣參徒踏逐…古雲門高頂'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오역. 책 번역('대중을 떠나 이 산 저 산')은 遣(보내다)을 '떠나다'로 옮기고 參徒(참선 무리)를 누락해, 大慧 자신이 유행하는 것으로 주어를 잘못 잡았다. 원문은 大慧가 參徒를 보내어 밟아 찾게 한 것이며 내 번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古雲門高頂'을 두고, 자체역은 雲門을 지명(雲門山)으로 보아 '옛 운문의 높은 봉우리'로 옮기고, 책은 雲門文偃과 결부하여 '운문 스님이 살던 산 정상'으로 옮긴다. 雲門은 韶州의 지명이면서 동시에 운문 문언이 주석한 옛 자취가 서린 곳이라, 두 독해가 사실상 같은 산을 가리키되 강조점만 갈린다.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亦與輟長財成之'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오역. 책 번역('길이 재물이 되게 하였으니')은 輟(덜다)·長財(여분 재물)를 오독해 '길이+재물'로 풀고 成之(그 일을 이룸)를 놓쳤다. 원문은 여분 재물을 덜어 그 일(은둔처)을 이루어 줌이며 내 번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正在高裁也'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오역. 책 번역('농사 잘 짓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은 高裁(상대의 高明한 재량을 높인 경어)를 앞 구 奉鋤(농사)에 끌어붙여 오독했다. 원문은 그 일의 성사가 高公의 재량에 달렸다는 상투 경어이며 내 번역이 옳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2
  1. 箕裘 기구

    키와 갖옷이라는 말이다. 예기 학기편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짓기를 배우고, 훌륭한 활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들기를 배운다'에서 나와,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음을 비유한다.

  2. 鈍置 둔치

    사람을 굼뜨고 어리석게 만든다, 곧 사람을 골탕 먹이고 욕보인다는 선가의 말이다. 운문 스님의 '사람을 몹시 둔하게 만든다(둔치살인)'처럼 쓰이며, 벽암록과 원오 스님의 글에 자주 나온다.

  3. 情解 정해

    감정과 생각에 기대어 짐작으로 아는 것, 곧 알음알이를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헤아림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하여 늘 깨뜨릴 것으로 삼는다.

  4. 外護 외호

    출가 수행자를 바깥에서 보살피고 지켜 주는 재가의 후원자, 곧 시주를 이른다.

  5. 時節擾擾 시절요요

    어수선한 시세다. 정강(靖康) 이후 금(金)의 침입과 건염(建炎)·소흥(紹興) 연간의 전란을 배경으로 한다. 원오가 촉(蜀)(소각(昭覺))으로 돌아간 만년의 정황과 부합한다.

  6. 大慧宗杲 대혜종고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1089~1163)으로, 원오극근(圜悟克勤)의 법을 이었다. 호는 묘희이고, 대혜는 황제에게 받은 호,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화두(話頭)를 붙들고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크게 일으켰다.

  7. 古雲門高頂 고운문고정

    산 뒤편의 옛 '운문(雲門)' 봉우리다. 대혜가 참선 무리를 보내 찾게 한 은둔 예정지로, 띠집을 얽어 은거하려던 자리다.

  8. 誅茆 주묘

    띠풀(茅)을 베어 암자를 지음이다. '誅茆隱遁'은 초막을 얽어 숨어 사는 것이다. 묘(茆)는 모(茅)의 이체자다.

  9. 疏頭 소두

    시주를 모으는 취지를 적은 글(소문)의 첫머리, 또는 그런 권선문을 이른다.

  10. 長財 장재

    살림(常住)에 남는 여분의 재물이다. '輟長財成之'는 여유 재물을 덜어 그 일을 이루어 줌이다.

  11. 奉鋤 봉서

    호미를 받들어 밭을 갊이다. 은둔지에서의 궁경(躬耕)(몸소 농사) 생활을 뜻한다.

  12.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13. 窠臼 과구

    새 둥지와 절구의 우묵한 자리라는 뜻으로, 굳어 버린 틀이나 판에 박힌 격식을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틀에 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틀에 갇히지 않음을 '무과구(無窠臼)'라 한다.

  14. 法脈 법맥

    스승에게서 제자로 법이 이어 내려온 줄기를 이른다. 원오 극근 스님의 법맥은 양기 방회 → 백운 수단 → 오조 법연 → 원오 극근 → 대혜 종고로 이어지는 임제종 양기파이다.

  15. 耿龍學 경용학

    수신인이다. 용도각학사(龍圖閣學士)(약칭 용학(龍學))를 지낸 사대부 耿延禧로 비정된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재가 법제자이자 외호(外護)(후원자)다. '용학(龍學)'은 관명(龍圖閣學士)의 약칭이지 인명이 아니다.

  16. 悲願 비원

    중생을 건지려는 대비(大悲)의 서원이다. '불망비원(不忘悲願)'은 대혜가 그 서원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칭찬이다.

  17. 宗正眼·正眼 종정안·정안

    정법안장(正法眼藏)의 바른 안목이다. 종문(宗門)의 참된 견처를 가리킨다.

  18. 義路 의로

    언어·논리로 뜻을 더듬어 가는 지해의 길이다. 아래 정해(情解)와 짝하여, 선문이 끊어야 할 분별의 길로 배격된다.

  19. 祖道 조도

    달마(達磨) 이래 조사(祖師)가 전한 도다. '祖道或幾乎息矣'는 조사의 도가 거의 끊어질 지경이라는 위기의식이다.

  20. 謙 겸

    원오 스님이 원오심요의 「여경룡학서비」에서 몇 마디 글과 시주를 권하는 글(소두)을 써 주어 경룡학에게 보낸 승려이다.

  21. 高裁 고재

    상대의 고명(高明)한 재량·판단을 높인 경어다. '정재고재야(正在高裁也)'는 그 일의 성사가 경공(耿公)의 재량에 달렸다는 상투 경어다.

  22. 窠臼·窠窟 과구·과굴

    새 둥지나 짐승 굴, 절구 홈처럼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틀을 이른다. 선가에서는 굳어진 격식이나 견해에 갇힌 것을 꼬집는 말로 쓰며, 벽암록에 '낡은 굴을 벗어나지 못했다', '눈 밝은 이는 틀이 없다' 같은 쓰임이 거듭 나온다.

문단 2국역본 대조 4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