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68편

촉 태수 소중호(蘇仲虎)에게 드리는 글

寄蜀守蘇仲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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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發機,發此機也 / 喪卻目前機
책의 과의역. 機는 여기서 機用·기봉(작용의 기틀)이다. 책은 '방편'(發機)과 '눈앞의 일'(目前機)로 옮겨 의미를 좁히거나 흐렸다. 나의 '기틀'이 더 정확하며, 다만 심대한 오역은 아니고 경미하다.
68.1
한문大法本平,常在利根,精敏寬通,不作聦明,了之爲易入。
번역큰 법(大法)은 본래 평등하여, 언제나 예리한 근기(利根)에 있습니다. 정밀하고 민첩하며 너그럽고 트여서, 잔재주로 총명을 부리지 않으면, 이를 깨달아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每患知見太多,遂汩此源,轉窮轉遠,莫能透徹。
늘 알음알이가 너무 많은 것이 병입니다. 그것이 마침내 이 근원을 흐려 놓습니다. 그래서 파고들수록 더 멀어져, 꿰뚫어 통할 수가 없습니다.
若一切平心,心亦了不可得,泯然自盡,則本性圓明混成,不假造作,截流深證,無過與不及處,乃造天真機要,所謂著手心頭便判是也。
만약 온갖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 마음마저 끝내 얻을 수 없어 자취 없이 저절로 다하면, 본성(本性)이 원만하고 밝게 어우러져 이루어집니다. 억지로 지어낼 것이 없습니다. 흐름을 끊고 깊이 깨달아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데에 이르러야, 비로소 천진(天眞)한 기틀의 요체에 나아갑니다. 이른바 ‘손을 마음 머리에 대자마자 곧 판가름 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日用之間,常令成現,豈不泰定哉?
날마다 쓰는 가운데 늘 이것이 드러나 있게 하면, 어찌 크게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쉽게 읽기큰 법은 본래 평등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리한 근기를 지닌 사람 안에 있습니다. 마음이 촘촘하고 재빠르며 넓고 트여서 잔꾀로 똑똑한 체하지 않으면, 이 법에 깨달아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것저것 따지는 알음알이가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 그것이 이 맑은 근원을 흐려 놓습니다. 그래서 파고들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고, 끝내 훤히 꿰뚫지 못합니다. 하지만 온갖 것을 고요한 마음으로 마주하고, 그 마음마저 끝내 붙잡을 수 없어 저절로 스러지면, 본성이 원만하고 밝게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억지로 지어내 꾸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흐름을 끊고 깊이 깨달아 얻으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자리에 이릅니다. 이것이 바로 꾸밈없는 본래 그대로의 핵심 기틀입니다. 옛말에 ‘손을 마음자리에 대자마자 곧 판가름 난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자리입니다. 날마다 살아가는 가운데 늘 이 자리가 눈앞에 그대로 드러나게 하면, 어찌 크게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풀이 2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大法本平,常在利根…不作聦明,了之爲易入
양립이독. 자체역은 4자 대구(大法本平/常在利根/精敏寬通/不作聦明/了之爲易入)로 끊어 平을 '평등'으로, 常在利根을 '늘 예리한 근기에 있음'으로, 不作聦明·了之爲易入을 '잔재주로 총명을 부리지 않으면 이를 깨달아 들기 쉽다'로 읽는다. 책은 '本平常'으로 붙이고 在利根精敏寬通으로 이어 '총명으로 了之함을 쉬운 입문으로 삼지 말라'로 읽는다. 平常心이 선종 상용어인 점에서 책 분절도 근거가 없지 않으나, 뒤의 每患知見太多와의 정합 및 4자 운율로 보면 자체역 분절이 한층 자연스럽다. 어느 쪽도 오류가 아니고 결정적 전거로 한쪽을 확정할 수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둔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若一切平心
양립이독(경미). 자체역은 '평온한 마음', 책은 '평상한 마음(平常心)'으로 읽는다. 一切平心의 平心은 '온갖 것에 마음을 고르게·평온히 함'으로도, 平常心의 축약으로도 읽을 수 있어 앞의 平 해석과 연동된 선택차일 뿐이다.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68.2
한문古人悟心,悟此心也;發機,發此機也。自可萬世不移,只守閑閑地,超然獨得,更無對待。若有對待,則成兩立,便有彼我得失,莫能腳蹋實地,更進一步。
번역옛사람이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이 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기틀을 일으켰다는 것은 이 기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니 만세토록 옮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가하고 한가한 자리를 지켜, 초연히 홀로 얻어서, 다시는 맞서는 짝이 없습니다. 맞서는 짝이 있으면 곧 둘이 마주 서게 됩니다. 그러면 이내 남과 나, 얻음과 잃음이 생겨, 실다운 땅(實地)을 밟고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쉽게 읽기옛사람이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기틀을 일으켰다’는 것도 바로 이 기틀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 자리를 얻으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저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리를 지켜, 홀로 우뚝하게 얻어, 다시는 무엇과도 상대해 견주지 않습니다. 만약 무엇을 마주 세워 견주면, 곧 둘이 마주 서게 됩니다. 그러면 이내 저것과 나, 얻음과 잃음이 갈립니다. 그렇게 되면 참된 자리를 밟고 서더라도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莫能腳蹋實地更進一步
책의 누락·간략. 책은 '참된 경지를 밟을 수 없다'로 옮겨 更進一步(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감)를 반영하지 않았다. 나의 '실지를 밟고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없다'가 완전하다.
68.3
한문一法不立,然後怗妥,明見本來人,去卻胸中物,喪卻目前機,脫體安穩,永離退轉,得無所畏方便,可以拯濟羣靈,政須長久相續無間乃善。
번역한 법도 세우지 않은 뒤라야 편안히 자리 잡습니다. 본래인(本來人)을 밝게 보고, 가슴속의 물건을 없애 버리고, 눈앞의 기틀마저 놓아 버립니다. 그러면 온몸이 통째로 편안해져, 길이 물러남을 떠나고, 두려움 없는 방편(方便)을 얻습니다. 이로써 뭇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오래도록 이어져 끊어짐이 없어야 비로소 좋습니다.
쉽게 읽기한 가지 법도 세우지 않은 뒤에라야 마음이 편안히 자리를 잡습니다. 그제야 본래인, 곧 본래 그 사람을 환히 봅니다. 가슴속에 얹힌 응어리를 없애 버리고, 눈앞의 기틀마저 벗어 버립니다. 그러면 온몸이 툭 트여 편안해집니다. 그리하여 영영 뒤로 물러남이 없고, 두려울 것 없는 방편을 얻습니다. 이 힘으로 뭇 중생을 건져 구제합니다. 다만 이 일은 오래도록 끊임없이 이어져야 비로소 참됩니다.
풀이 2
교감 · 政須長久'政須長久'의 '政'은 '正'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正須, 모름지기).
교감 · 胸中'胸中'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76a05). 이체이며 뜻이 같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2
  1. 大法本平 대법본평

    대법(大法)(불법의 근본 진리)은 본래 평등하다. 평(平)은 평등을 뜻한다. 근기 차별 없이 본래 갖춰져 있다는 돈문(頓門)의 전제이다. '상재리근(常在利根)'과 이어져 대법(大法)이 예리한 근기 속에 상주함을 말한다.

  2. 圓明混成 원명혼성

    본성이 원만하고 명료하게 저절로 이루어짐을 뜻한다. '혼성(混成)'은 노자(老子) 25장 '유물혼성(有物混成),선천지생(先天地生)'을 차용하여 조작(造作)(지어냄)을 빌리지 않음을 강조한다.

  3. 截流深證 절류심증

    흐름을 끊고 깊이 깨닫는다는 말이다. 쉼 없이 흘러가는 망념의 흐름을 단번에 끊고 곧장 깊은 깨달음에 들어감을 이른다. 운문 스님의 세 구절 가운데 '모든 흐름을 끊는 구절'과 뜻이 통한다(벽암록 제14칙).

  4. 天真機要 천진기요

    조작 없는 본래 그대로(天真)의 핵심 기틀이다. 천진(天真)은 천진불(天真佛)·본지풍광(本地風光) 계열의 말이다. 조작(造作)을 여읜 현성(現成)의 자리이다.

  5. 著手心頭便判 저수심두편판

    '손을 마음머리에 대자마자 곧 판가름 난다'는 뜻이다. 즉각 현전하는 깨달음의 직하승당(直下承當)을 가리키며, 속담처럼 굳어진 선어(禪語)로 '소위(所謂)~시야(是也)' 형식으로 인용된다.

  6. 泰定 태정

    크게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음을 이른다. 『장자』의 '마음이 크게 안정된 이는 하늘의 빛을 낸다'는 말에서 왔다.

  7. 悟心 오심

    마음을 깨달음이다. 옛사람이 깨친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한마음(일심, 一心)이라는 뜻으로 흔히 쓴다.

  8. 發機 발기

    기틀(機)을 일으킴, 곧 깨친 마음이 작용으로 드러남이다.

  9. 一法不立 일법불립

    한 법도 세우지 않음이다. 육조(六祖)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반야(般若) 무소득(無所得)과 통하는 차전(遮詮)이다. 그런 뒤라야 '첩타(怗妥)'(안정)하여 본래인(本來人)을 밝게 본다.

  10. 本來人 본래인

    본래면목(本來面目),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참사람이다. 임제(臨濟) '무위진인(無位真人)'·동산(洞山) 계열의 선어(禪語)이다. 명견본래인(明見本來人)은 본래인을 밝게 봄을 뜻한다.

  11. 喪卻目前機 상각목전기

    눈앞의 작용·기틀(目前機)마저 놓아버림이다. 앞의 '거각(去卻)[안(眼)]중물(中物)'과 대구(對句)를 이루어 안(眼)(눈)과 목(目)(눈앞)을 함께 비워 탈체안온(脫體安穩)에 이른다.

  12. 退轉 퇴전

    avaivartika(불퇴(不退))의 부정으로 물러남이다. '영리퇴전(永離退轉)'은 불퇴전(不退轉)(아비발치(阿鞞跋致))의 성취이다.

  13. 得無所畏方便 득무소외방편

    두려움 없는(abhaya) 방편을 얻음이다. 부처의 사무소외(四無所畏)에서 온 화타(化他) 능력으로, 이로써 군령(羣靈)(뭇 중생)을 증제(拯濟)(구제)한다.

  14.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15. 知見 지견

    보고 아는 것, 곧 지식과 견해다. 경전에서는 ‘부처의 지견’처럼 바른 앎을 뜻하기도 한다. 선문에서는 흔히 분별로 세운 알음알이를 가리켜, 깨달음을 가로막는 병으로 경계한다.

  16. 羣靈 군령

    뭇 신령한 것, 곧 모든 중생을 이른다. 부처나 조사와 맞세워 범부 중생을 가리킬 때가 많다. '군령을 건진다'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17. 蘇仲虎 소중호

    이 서신(寄蜀守蘇仲虎)의 수신인이다. '촉수(蜀守)'로서 촉(蜀)(성도부(成都府) 관할)의 지방장관을 지낸 사대부 거사이다. 원오가 편지로 심요(心要)(선(禪)의 요체)를 설한 재가 대상이다.

  18. 蜀守 촉수

    촉(蜀)(현 사천(四川)) 지방의 태수(太守)·지부(知府) 격 지방장관 직함이다. 원오 자신도 촉(蜀) 출신이어서 동향 배경이 있다.

  19. 利根 이근

    예리한 근기(tīkṣṇendriya)이다. 둔근(鈍根)의 반대이다.

  20. 對待 대대

    상대적·이원적 대립이다. 대대(對待)가 있으면 양립(兩立)이 되어 피아(彼我)·득실(得失)이 생기고 실지(實地)(각답실지(腳蹋實地))를 밟아 경진일보(更進一步) 하지 못한다. 초연독득(超然獨得)·경무대대(更無對待)를 지향한다.

  21. 本來人·喪卻目前機 본래인·상각목전기

    '본래인'은 누구나 본디 갖추고 있는 참사람, 곧 본래의 자기를 이른다. '눈앞의 기틀을 잃는다'는 것은 눈앞에서 재고 헤아리던 마음의 움직임이 몽땅 떨어져 나감을 말한다. 원오가 오조 법연 스님 아래에서 깨치고 '가슴속 물건을 없애고 눈앞의 기틀을 다 잃었다'고 하자 오조가 '이 사람이 사무쳤다'고 인정한 일이 전한다(속전등록 권28).

  22. 寄蜀守蘇仲虎 기촉수소중호

    寄蜀守蘇仲虎

이 편의 풀이 1건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發機,發此機也 / 喪卻目前機
책의 과의역. 機는 여기서 機用·기봉(작용의 기틀)이다. 책은 '방편'(發機)과 '눈앞의 일'(目前機)로 옮겨 의미를 좁히거나 흐렸다. 나의 '기틀'이 더 정확하며, 다만 심대한 오역은 아니고 경미하다.

문단 3국역본 대조 4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