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오조법연 · 卷上 6
흥화에 가서 상당 — 법안의 시를 들다
到興化上堂
풀이 1
해설흥화(興化)에서 행한 상당이다. 첫 문답의 '사면(四面)'은 법연이 머물던 사면산(四面山), 곧 선사…
흥화(興化)에서 행한 상당이다. 첫 문답의 '사면(四面)'은 법연이 머물던 사면산(四面山), 곧 선사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떠나기 전'을 물으니 "방 안에 앉아 있었다"고, '떠난 뒤'를 물으니 "스님을 죽도록 내달리게 한다"고 답하여, 오고 감·머묾과 떠남의 분별을 넘어선 자리를 평상한 말로 되돌린다. 이어 법안(法眼) 문익의 송을 들어, 종소리와 뿔피리를 '고요히 듣고' 흰 구름을 '한가로이 마주하는' 정경을 소개한 뒤, 그 들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고 그 마주함은 단순한 빛깔이 아니라고 하여 성색(聲色)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성색을 떠나지 않는 소식을 짚는다. 맺음 게송 "골짜기 속엔 구름 없어 별천지가 따로 있고… 신선의 집안은 겨울 여름을 논할 줄 모른다"는 시간과 분별을 벗어난 도인의 경계를 무릉도원의 이미지에 실어 그린 것이다.
이 단의 낱말 4
- 興化寺 흥화사
흥화(興化)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다. 당나라 때 위주(魏州)의 흥화사에는 임제의 제자 흥화존장이 머물렀고, 북송 때 회남 일대에도 같은 이름의 절이 여럿 있었다. 오조법연이 찾아가 상당한 흥화가 어느 고을의 절인지는 어록에 밝혀 있지 않다.
- 四面山 사면산
서주(舒州)에 있던 산이다. 오조법연이 처음 주지가 되어 개당한 곳으로, 그 무렵 법연은 자신을 '사면'이라 부르곤 했다. 운문종의 법수(法秀) 등 여러 선승도 이 산에서 법을 폈다.
- 法眼文益 법안문익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이다. 오대 때의 선승으로 지장(地藏) 스님 계침의 법을 이었다. 금릉(金陵)의 보은원·청량원에 머물며 크게 교화했고, 법안종의 시조가 되었다. 죽은 뒤 대법안 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 五祖法演 오조법연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이다.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으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사면산·백운산을 거쳐 기주(蘄州) 오조산에 머물러 오조라 불린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스승이다.
저본
大正藏 『法演禪師語錄』 3卷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다른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대교본: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0~22. 이 어록의 편자: 參學才良編.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