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오조법연 · 卷上 19

상당 — 동산의 「기름 없는 종이 심지」

上堂 · 舉僧問洞山

19.1
한문上堂,舉:「僧問洞山:『如何是善知識眼?』山云:『紙撚無油。』」
번역상당하여 옛일을 들어 보였다. 어떤 스님이 동산(洞山)에게 물었다. “무엇이 선지식(善知識)의 눈입니까?” 동산이 답했다. “기름 없는 종이 심지(紙撚無油)다.”
쉽게 읽기상당하여 옛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승려가 동산 스님에게 물었다. “선지식의 눈은 어떤 것입니까?” 동산 스님이 답했다. “기름 없는 종이 심지다.”
풀이 1
19.2
한문師云:「洞山老漢不是無,只是太儉。忽有人問四面:『如何是善知識眼?』只向伊道:『瞎。』何故?且要相稱。」
번역선사가 말했다. “동산 노인이 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너무 인색했을 뿐이다. 혹 누가 사면에게 ‘무엇이 선지식의 눈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눈멀었다(瞎)!’ 하고 말하겠다. 어째서인가? 우선 서로 걸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乃云:「紙撚無油也大奇,不堪拈掇有誰知,回身却憶來時路,月下騰騰信脚歸。」
이어 말했다. “‘기름 없는 종이 심지’라니, 참으로 기이하다. 집어 들 수도 없으니 누가 알겠는가. 몸을 돌려 도리어 올 때의 길을 떠올리고, 달 아래 느긋이 발길 가는 대로 돌아간다.”
쉽게 읽기스님이 말했다. “동산 노인이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너무 아꼈을 뿐이다. 누가 이 사면산의 나에게 ‘선지식의 눈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눈멀었다!’ 하고 말하겠다. 어째서인가? 묻는 이와 답하는 이가 서로 격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말했다. “‘기름 없는 종이 심지’라니 참으로 기이하다. 집어 들어 보일 수도 없으니 누가 알겠는가. 몸을 돌려 올 때의 길을 떠올리고는, 달빛 아래 느긋느긋 발길 닿는 대로 돌아간다.”
해설'무엇이 선지식의 눈이냐'는 물음에 동산(洞山)이 '기름 없는 종이 심지(紙撚無油)'라 답한 공안을…

'무엇이 선지식의 눈이냐'는 물음에 동산(洞山)이 '기름 없는 종이 심지(紙撚無油)'라 답한 공안을 든다. 기름이 없으니 불이 붙지 않는 심지—겉보기엔 쓸모없어 보이는 것으로, 밝게 비추는 안목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리킨 답이다. 법연은 동산이 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인색했다고 짐짓 평하고, 자기라면 그냥 '눈멀었다(瞎)!'고 답하겠다며 '서로 걸맞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는 묻는 자와 답하는 자가 같은 격에서 만나야 함을 뜻한다. 끝의 게송 '몸을 돌려 올 때의 길을 떠올리며 달 아래 발길 가는 대로 믿고 돌아간다'는, 헤아림을 놓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무심한 경지를 담아낸다.

卷上 차례 (108단)

이 단의 낱말 3
  1. 洞山良价 동산양개

    당나라 선승(807~869)으로, 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을 이었고 조동종(曹洞宗)을 연 사람으로 받든다. 균주(筠州) 동산에서 크게 가르쳐 동산이라 불린다. 죽은 뒤 오본대사(悟本大師)라는 시호를 받아 오본이라고도 부른다. 조산(曹山)이 그의 제자다. 운문의 제자 동산수초(洞山守初)와는 다른 사람이다.

  2. 善知識 선지식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스승이나 벗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흔히 학인을 깨우쳐 주는 눈 밝은 스승을 가리킨다.

  3. 五祖法演 오조법연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이다.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으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사면산·백운산을 거쳐 기주(蘄州) 오조산에 머물러 오조라 불린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스승이다.

서주백운산해회연화상초주사면산어록 舒州白雲山海會演和尚初住四面山語錄주석 1해설낱말 3저본 大正藏 『法演禪師語錄』 3卷

저본

大正藏 『法演禪師語錄』 3卷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다른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대교본: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0~22. 이 어록의 편자: 參學才良編.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