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4편

천상인(泉上人)에게 주는 글

示泉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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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한문參問要見性悟理,直下忘情絕照,胷襟蕩然,如癡似兀,
번역참문(參問)하여 성품을 보고 이치를 깨치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情)을 잊고 비춤(照)마저 끊어라. 가슴속이 텅 비어, 어리석은 듯 멍한 듯해야 한다.
不較得失,不爭勝劣,凡有順違,悉皆截斷,令不相續,
얻고 잃음을 견주지 말고, 나음과 못함을 다투지 말라. 무릇 순하고 거슬리는 일이 있거든 모두 끊어, 서로 이어지지 않게 하라.
悠久自然到無爲無事處。纔有毫髮要無事,早是事生也。
오래오래 하면 저절로 함이 없고 일이 없는(無爲無事) 자리에 이른다. 털끝만큼이라도 일 없기를 바라면, 벌써 일이 생긴 것이다.
쉽게 읽기참문으로 성품을 보고 이치를 깨치려 하는가. 그렇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정을 잊어라. 비추어 보는 마음마저 끊어라. 가슴속을 텅 비워, 어리석은 듯 멍한 듯 있어라. 얻고 잃음을 견주지 말라. 나음과 못함을 다투지 말라. 마음에 드는 일이든 거슬리는 일이든, 모두 끊어 버려 이어지지 않게 하라. 이렇게 오래오래 이어 가면, 저절로 무위·무사의 자리에 이른다. 털끝만큼이라도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벌써 일이 생긴 것이다.
풀이 2
無爲無事 무위무사'纔有毫髮要無事,早是事生也' — 無事를 목표로 삼는 한 생각이 곧 事가 된다는 말로, 無爲無事를 다시 붙잡는 병을 막는다.
44.2
한문一波纔動眾波隨,豈有了期?它時死生到來,腳忙手亂,只爲不脫灑。但以此爲確實,自然閙市裏亦靜如水,豈憂己事不辦耶?
번역한 물결이 막 일면 뭇 물결이 따른다. 어찌 끝날 날이 있겠는가. 훗날 생사가 닥쳐오면 발은 바쁘고 손은 어지러울 것이다. 다만 훌훌 벗어나지(脫灑) 못한 탓이다. 다만 이것을 확실한 바탕으로 삼아라. 그러면 저절로 시끄러운 저잣거리 속에서도 물처럼 고요하다. 어찌 제 일을 마치지 못할까 근심하겠는가.
쉽게 읽기한 물결이 겨우 일면 뭇 물결이 뒤따른다. 이러니 어느 세월에 끝나겠는가. 훗날 생사가 닥쳐오면, 발은 바쁘고 손은 어지러워 허둥대고 만다. 오직 훌훌 벗어나 시원히 놓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다만 이 무사를 확실한 바탕으로 삼아라. 그러면 시끄러운 저잣거리 속에서도 물처럼 고요하다. 그러니 어찌 제 일을 마치지 못할까 근심하겠는가.
44.3
한문纔有是非,紛然失心。只這一句,驚動多少人作計較。若當頭坐斷,透出威音王那邊。若隨此語轉,特地紛然,應自回光返照始得。
번역막 옳고 그름이 생기면, 어지러이 마음을 잃는다. 다만 이 한 구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여 헤아리고 따지게 하는가. 첫머리에서 바로 앉아 끊으면, 위음왕(威音王) 저편으로 꿰뚫고 나간다. 이 말을 따라 굴러가면, 유난히 어지러워질 뿐이다. 마땅히 스스로 빛을 돌이켜 되비추어야(回光返照) 비로소 된다.
쉽게 읽기겨우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 마음은 어지러이 흩어진다. 이 한 구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그들은 이 말을 붙들고 이리저리 헤아리고 따진다. 만약 첫머리에서 딱 앉아 끊어 버린다면, 위음왕 저편을 꿰뚫고 나온다. 그러나 이 말을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니면, 유난히 어지러워질 뿐이다. 마땅히 스스로 빛을 돌이켜 되비추어야 비로소 된다.
풀이 2
回光返照 회광반조'纔有是非,紛然失心'은 『信心銘』의 구로 洞山 등이 거듭 들었다(『景德傳燈錄』 권27). 그 말을 따라 計較하지(隨此語轉) 말고 回光返照하라는 맥락이다.
44.4
한문如來禪,祖師禪,豈有兩種?未免媕含,各分皁白,特地乖張,事理機鋒,一時坐斷,是打淨潔毬子。還知著實諦當處麼?放下看取。
번역여래선(如來禪)과 조사선(祖師禪)이 어찌 두 가지이겠는가. 그런데도 둘을 뒤섞어 합치거나 제각기 흑백을 가르기를 면치 못한다. 유난히 어긋난 짓이다. 사(事)와 이(理), 기봉(機鋒)을 한꺼번에 앉아 끊으면, 이것은 깨끗하고 매끄러운 공을 치는 것이다. 착실하고 참되게 딱 들어맞는 자리를 알겠는가. 내려놓고 살펴보라.
쉽게 읽기여래선과 조사선이 어찌 두 가지이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둘을 뒤섞어 얼버무린다. 또는 제각기 흑백을 가른다. 이는 유난히 어긋나 벌어진 짓이다. 일과 이치, 기봉을 한꺼번에 앉아 끊어 버린다면, 이는 티 없이 매끄러운 공을 치는 격이다. 착실하고 참되게 딱 들어맞는 그 자리를, 그래도 알겠는가. 내려놓고 잘 살펴보라.
풀이 4
如來禪·祖師禪·豈有兩種 여래선·조사선·기유량종원오는 이를 뒤집어 '如來禪,祖師禪,豈有兩種'이라 하여 二禪이 一如임을 세웠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未免婬合
책 과의역 → 출판본은 '어리석음을 면치 못하여'로 옮겨 婬合(뒤섞어 합함)의 뜻을 놓쳤다. 내 번역 '뒤섞어 합하거나'가 고증(억지로 혼합함)과 부합해 더 정확하다. 다만 婬合 자체는 판독이 미확정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事理機鋒一時坐斷'—‘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 출판본은 機鋒을 事理의 수식어로 묶어 '사리의 기봉을'로 한 항으로 읽었고, 자체역은 事理와 機鋒을 병렬 두 항으로 읽었다. 事·理의 二見과 機鋒의 작용을 단번에 끊는다는 문맥 고증이 병렬 독해를 근거상 우세하게 하나, 이는 燈錄·語錄류의 결정적 전거가 아니라 정황 고증이고 事理機鋒을 하나의 복합구로 보는 구문도 성립하여 두 독해가 양립한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17
  1. 參問 참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 도를 묻고, 그 물음을 스스로 깊이 파고드는 일이다.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참구(參究)하는 공부를 아울러 이른다.

  2. 無爲無事 무위무사

    억지로 짓는 일 없는 무위(無爲)와 따로 일삼는 일 없는 무사(無事)를 함께 이른다. 분별과 애씀이 다 쉰 평상한 경지다. 임제(臨濟)는 일 없는 이가 귀한 사람이라 하였다.

  3. 一波纔動眾波隨 일파재동중파수

    물결 하나가 일자마자 뭇 물결이 뒤따라 인다는 말로, 한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짐을 빗댄다. 선자 덕성 스님의 노래 '천 자 낚싯줄을 곧장 드리우니, 물결 하나 일자 만 물결이 따른다'에서 왔다(오등회원 권5). 원오도 어록에서 이 구절을 여러 번 썼다.

  4. 威音王那邊 위음왕나변

    위음왕 부처보다 더 저편이라는 말이다. 위음왕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서 아득한 옛날 맨 처음 나신 부처로 나온다. 선가에서는 '위음왕 이전', '위음 저편'이라 하여 분별이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키며, 원오도 어록에서 즐겨 썼다.

  5. 回光返照 회광반조

    밖으로 내달리던 마음의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되비춘다는 말이다. 남의 말이나 바깥 경계를 좇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선 공부의 요긴한 가르침이다. 임제(臨濟)의 말에 보인다.

  6. 如來禪·祖師禪·豈有兩種 여래선·조사선·기유량종

    '여래선과 조사선이 어찌 두 가지이겠는가'라는 말이다. 여래선과 조사선을 가르는 말은 앙산 스님이 아우 향엄 스님의 게송을 두고 '여래선은 아우가 알았다 하겠으나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고 한 문답에서 비롯하였다(경덕전등록 권11, 오등회원 권9).

  7. 事理機鋒·一時坐斷 사리기봉·일시좌단

    사(事)·이(理)의 이견(二見)과 기봉(機鋒)의 작용을 단번에 끊음이다(좌단(坐斷)=앉은 채 끊어버림). 곧 아래 '타정결구자(打淨潔毬子)'로 이어진다.

  8. 淨潔毬子 정결구자

    '티끌 없는 매끈한 공'이다. 잡을 데 없이 말끔하기만 한 공견(空見)·자기만족적 완공(頑空) 비유이다.

  9. 著實諦當處 저실제당처

    착실하고 참되게 딱 들어맞는 자리이다. '제당(諦當)'은 참되고 정확히 계합함이다. 말미의 '방하간취(放下看取)(내려놓고 살펴보라)'가 이 자리를 가리키는 직지이다.

  10. 威音王 위음왕

    『법화경』에 나오는 아득한 옛 부처,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다. 같은 이름의 부처 가운데 맨 처음 부처다. 선어록에서는 '위음왕 이전'이라 하여 시간과 분별이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11. 師承 사승

    스승에게서 법을 이어받는 일, 또는 그렇게 이어 온 스승과 제자의 계보를 이른다. 선종에서는 스스로 깨쳤더라도 눈 밝은 스승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12. 泉上人 천상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천상인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승려이다. '상인'은 덕을 갖춘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고, '천'은 그 스님의 법명 가운데 한 글자로 보인다. 원오는 그에게 일 없음과 돌이켜 비추는 공부를 일러 주었다.

  13. 忘情絕照 망정절조

    분별의 정식(情識)(정(情))을 잊고 대상을 관조하는 작용(照)마저 끊음이다. 원오 심요(心要)에 반복되는 공부 표어로, 아래 '무위무사(無爲無事)'의 전제이다.

  14. 脫灑 탈쇄

    얽매임을 벗어나 시원하고 명쾌함이다(쇄락(灑落)·쇄탈(灑脫)). 생사도래(生死到來)에 수망각난(手忙腳亂)하는 원인을 '불탈쇄(不脫灑)'로 지목한다.

  15. 如來禪·祖師禪 여래선·조사선

    앙산혜적(仰山慧寂)이 향엄지한(香嚴智閑)을 감변(勘辨)·인가(印可)한 고사에서 유래한 선풍 구분이다(景德傳燈錄). 원오는 본래 둘이 아님(豈有兩種)을 세우고, 억지로 뒤섞거나 각각 나누는 견해를 '특지괴장(特地乖張)'으로 배척하였다.

  16. 事理機鋒 사리기봉

    事·理의 二見과 機鋒의 작용을 단번에 끊음이다(坐斷=앉은 채 끊어버림). 곧 아래 '打淨潔毬子'로 이어진다.

  17. 如來禪 여래선

    본디 『능가경』이 나눈 네 가지 선 가운데 가장 높은 선을 이르는 말이다. 선종에서는 앙산혜적이 사제 향엄의 게송을 듣고 '여래선은 알았으나 조사선은 꿈에도 못 보았다'고 한 뒤로, 경전의 가르침을 따라 깨닫는 선을 가리켜 조사선(祖師禪)과 짝지어 흔히 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