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18편

고선인(杲禪人)에게 주는 글

示杲禪人 住杭州徑山

영상으로 보기 →

18.1
한문杲衲子根性猛利,負笈海上,徧訪宗匠,受知於舊相無盡公,深器重之。
번역고(杲) 납자는 타고난 바탕이 날카롭고 굳세다. 책 상자를 지고 바닷가를 돌며 종장(宗匠)들을 두루 찾아뵈었다. 옛 재상 무진공(無盡公)에게 인정을 받았는데, 무진공은 그를 큰 그릇으로 여겨 깊이 아꼈다.
負俊邁之氣,不肯碌碌小了,標誠相從,一言投機,頓脫向來羈鞅。
뛰어나고 활달한 기개를 지녀, 녹록하게 작은 데 머물려 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나를 따르더니, 한마디 말에 기틀이 딱 맞아떨어져(投機) 지난날의 굴레와 고삐를 단번에 벗어났다.
雖未倒底領略,要是昂藏,不受人抑勒快漢。
아직 밑바닥까지 다 알아채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컨대 기상이 높고 당당하여(昂藏), 남에게 눌리지 않는 시원한 사내(快漢)다.
쉽게 읽기고(杲) 납자는 타고난 바탕이 날카롭고 굳세었다. 책 상자를 짊어지고 바닷가를 돌며 이름난 스승들을 두루 찾아 배웠다. 옛 재상 무진공 장상영이 그를 알아보고 큰 그릇으로 여겨 소중히 대하였다. 그는 뛰어나고 활달한 기개를 지녀, 그저 그런 하찮은 자리에는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나를 따르더니, 한마디 말에 마음이 딱 통하여 지난날 자신을 얽매던 굴레와 고삐를 단번에 벗어났다. 아직 밑바닥까지 철저히 뚫지는 못하였으나, 기상이 높고 당당하여 남에게 눌리지 않는 시원스러운 사내다.
풀이 3
杲衲子·杲禪人 고납자·고선인'雖未倒底領略'으로 보아 大慧가 아직 徹悟하기 전에 받은 法語로 본다(추정). 大慧는 宣和 7년(1125) 4월 汴京 天寧寺에 이르러 圜悟 회하에 들었다(『大慧普覺禪師年譜』, J01nA042_p0796c09). 題下의 '住杭州徑山'은 大慧가 紹興 7년(1137) 徑山에 머문 뒤의 이름을 편찬자가 덧붙인 것이다(같은 책, J01nA042_p0800c05).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負笈海上
책의 과의역이다. 책은 敎를 첨자해 '敎海上'으로 은유했으나 저본엔 敎가 없고, 고증은 海上을 강남·연해 유방(구도행각)의 지역어로 보아 '바닷가를 다니며 참방'한 내 번역이 부합한다.
18.2
한문原其所自,蓋由傅公殿撰發渠本因,遂冒嚴凝蹔之咸平來告行,且乞法語。予因示之:
번역그 내력을 따져 보면, 부공(傅公) 전찬(殿撰)이 그의 본래 인연(本因)을 열어 일깨워 준 데서 비롯되었다. 마침내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잠시 함평(咸平)에 왔다. 그러고는 찾아와 떠남을 알리고, 법어(法語)를 청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이렇게 일러 준다.
쉽게 읽기그 내력을 따져 보면, 전찬 벼슬을 지낸 부공이 그의 본래 인연을 열어 일깨워 준 데서 비롯되었다. 마침내 그는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함평까지 잠시 찾아왔다. 그러고는 떠나겠다고 인사하며, 나에게 법어 한마디를 청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일러 준다.
풀이 2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傅公殿撰
책의 오역이다. 책은 傅公을 張商英(무진공)과 동일인으로 보고 관명 殿撰(集英殿修撰)을 흘렸으나, 고증상 傅公殿撰은 無盡公과 별인인 傅氏 관료거사이므로 '부공 전찬'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發渠本因
. 本因은 선적 문맥에서 本來因緣·宿緣을 가리키고 發은 그것을 열어 발현시킴이다. 傅公이 大慧의 출세 계기이자 숙연을 열어준 후원자라는 고증이 '본래 인연을 열어 발현'(자체역)을 지지하며, 책의 '發=발탁, 本因=최초 원인'은 本因의 표준 용법에서 벗어난 무리한 분절이다. → 책 독해가 어긋나고 자체역이 옳다.
18.3
한문衲子當痛以死生爲事,務消知見解礙,徹證佛祖所傳付大因緣,
번역납자는 마땅히 삶과 죽음을 절실한 제 일로 삼아야 한다. 지견(知見)과 알음알이의 걸림을 없애기에 힘쓰고, 부처와 조사가 전해 맡긴 큰 인연(大因緣)을 사무치게 깨달아야 한다.
勿好名聞,退步就實,竢行解道德充實,愈潛遁而愈不可匿,諸聖天龍將推出人爾。
이름이 알려지기를 좋아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 실다운 데로 나아가라. 행(行)과 앎(解)과 도덕(道德)이 충실해지기를 기다리면, 숨어 달아날수록 더 감출 수 없게 된다. 모든 성인과 천룡(天龍)이 장차 그를 사람들 앞으로 밀어낼 것이다.
況以歲月淹練琢磨,待如鐘在扣、如谷應聲、如精金出,萬煅鑪冶,萬世不易,
하물며 세월을 두고 오래 단련하고 갈고닦는다면 어떻겠는가. 그 기다림은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는 종과 같고, 소리에 메아리치는 골짜기와 같고, 만 번 화로에 달구어 나온 순금과 같다. 만세토록 바뀌지 않는다.
萬年一念,向上巴鼻在掌握中,草偃風行,豈不綽綽然有餘裕哉?
만 년이 곧 한 생각(一念)이다. 향상(向上)의 근본 요체(巴鼻)가 손안에 있다.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눕듯(草偃風行) 하니, 어찌 넉넉하고 여유롭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납자라면 마땅히 삶과 죽음을 절실한 제 일로 삼아야 한다. 알음알이와 잘못된 견해가 앞을 가로막지 않도록 힘써 걷어 내라. 부처와 조사가 전해 물려준 큰 인연을 속속들이 깨쳐 얻어야 한다.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 참된 자리로 나아가라. 닦음과 앎과 덕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면, 숨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성인과 천룡이 그를 사람들 앞으로 밀어낼 것이다. 하물며 오랜 세월을 두고 갈고닦는다면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종이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고, 골짜기가 소리에 되울리는 것 같으며, 만 번 달군 화로에서 나온 순금 같아,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만년이 곧 한 생각이요, 향상의 급소가 손안에 들어온다. 풀이 바람에 눕듯 가르침이 두루 퍼지니, 어찌 넉넉하고 여유롭지 않겠는가.
풀이 6
巴鼻 파비'向上巴鼻'는 『碧巖錄』 普照 序(建炎 2년, 1128)의 '頌出衲僧向上巴鼻'(T48n2003_p0139a07)와 같은 말로, 向上의 요처를 손에 쥐었다는 뜻이다.
向上 향상'向上巴鼻在掌握中' — 巴鼻는 소의 코뚜레, 곧 붙잡을 要處. 오랜 단련 끝에 向上의 요처를 제 손에 쥔다는 뜻.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篤行解道德充實
원문'篤行解道德充實'(저본 · CBETA '竢行解道德充實') → ‘이 역주의 번역을 고침’. 책은 篤行·解·道·德을 병렬로 '충실'에 걸어 읽었고, 자체역은 부록본 '篤'을 따라 篤行/解道/德充實(독실히 행하고 도를 알아 덕이 충실)로 분절했었다. 저본 '竢'(기다리다)대로 行·解·道德을 병렬로 읽어 '행(行)과 앎(解)과 도덕(道德)이 충실해지기를 기다리면'으로 고쳤다(교감 정리 — _gamgam_cleanup_report.md). 병렬 분절은 책의 읽기가 옳았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向上巴鼻
. 巴鼻는 碧巖錄의 沒巴鼻·有巴鼻 등 병렬 용례에서 '붙잡을 근거·요체(handle)'를 뜻한다. 따라서 자체역 '향상(向上)의 근본 요체(巴鼻)'가 語錄 용법에 부합하고, 책의 '향상의 본분소식'은 뜻은 통하나 巴鼻의 축자적 의미를 흐린 느슨한 의역이다. → 자체역이 옳다.
18.4
한문仍持此紙似傅翁,相與作證履踐,貴長久不變耶。
번역이 종이를 가지고 가서 부옹(傅翁)에게 보이고, 서로 더불어 증표로 삼으라. 이렇게 몸소 행하는 데에는 오래도록 변치 않음이 귀하다.
쉽게 읽기그러니 이 종이를 부공 노인에게 보여, 서로 증표로 삼으라. 이렇게 몸소 행하고 실천하는 일에서는, 오래도록 변치 않음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긴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傅翁
저본은 傅翁(부옹)이다. 같은 편 앞의 '傅公殿撰'과 한 사람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추정). 책이 이를 張商英으로 특정한 것은 근거를 찾지 못해 따르지 않는다. 似를 '보이다'(示)로 읽은 것은 책과 같다. (옛 판정은 부록본 전사 傳翁을 두고 쓴 것이라 2026-10-23 고쳐 씀)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2
  1. 負笈海上 부급해상

    책 상자를 지고 사방을 편력함(구도행각). '해상(海上)'은 강남·연해 지역의 유방을 이른다.

  2. 羈靮 기적

    굴레(羈)와 고삐(靮). 지견·정식(情識)의 속박 비유. '돈탈향래기적(頓脫向來羈靮)'은 지난날의 얽매임을 단박에 벗음이다.

  3. 昂藏 앙장

    키가 크고 기상이 당당한 모양. 남에게 굽히지 않는 풍모이다.

  4. 快漢 쾌한

    시원스럽고 결단력 있는 사내. 선록(禪錄)의 인물 품평(品評) 상용어이다.

  5. 消知見解礙 소지견해애

    알음알이(知見)와 이해가 짓는 장애(解礙)를 녹여 없앰. 원오·대혜 계열의 핵심 훈어이다.

  6. 退步就實 퇴보취실

    한 걸음 물러나 실지(실지(實地): 실참·실오)로 나아감. 명문을 좇지 말라는 '물호명문(勿好名聞)'과 짝이다.

  7. 如鐘在扣·如谷應聲 여종재구·여곡응성

    종이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고 골짜기가 소리에 메아리치듯 한다는 말이다. 부르면 곧 알맞게 응하는 모습을 그린다. 원오는 벽암록에서 '종이 두드림을 기다리고 골짜기가 소리를 받듯, 크고 작음에 따라 응한다'고 풀었다(벽암록 제12칙).

  8. 精金出萬煅鑪冶 정금출만단로야

    만 번 단련한 화로에서 나온 순금(純金). 오랜 탁마로 만세불역(萬世不易)의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다.

  9. 巴鼻 파비

    붙잡을 데, 곧 요긴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이다. 소의 코를 꿰어 끌듯 꽉 쥘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왔다. '납승의 파비'는 수행자가 꼭 붙들어야 할 핵심을 가리킨다.

  10. 草偃風行 초언풍행

    논어(論語) 안연(顏淵)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소인지덕초(小人之德草),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에서 유래한다. 교화가 저절로 두루 미침의 비유이다.

  11. 綽綽然有餘裕 작작연유여유

    넉넉하여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맹자 공손추 하편의 '어찌 넉넉하여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에서 왔다. 원오는 큰 그릇의 사람이 일을 막힘없이 다루는 모습을 그릴 때 이 말을 자주 끌어 쓴다.

  12. 大因緣 대인연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중생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나온 큰 까닭을 이른다. 선에서는 스스로 깨쳐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큰일을 가리킨다.

  13. 投機 투기

    스승과 배우는 이의 기틀(機)이 딱 맞아떨어져 마음이 통하고 깨달음이 열림을 이른다. 이때 깨친 마음을 읊어 바치는 게송을 투기게(投機偈)라 한다.

  14. 向上 향상

    위로 향한다는 말로, 부처와 조사의 자리마저 넘어선 그 위의 궁극을 이른다. 말과 단계가 끊어진 자리라 '향상일로'라고도 한다. 방편으로 내려오는 향하(向下)와 짝을 이룬다.

  15. 杲衲子·杲禪人 고납자·고선인

    대혜종고(1089~1163)이다. 원오극근의 으뜸가는 제자로 임제종 양기파에 속하며, 뒤에 경산에 머물며 화두를 붙들고 참구하는 간화선을 크게 일으켰다. 원오가 원오심요의 「시고선인」을 지어 그에게 주었다.

  16. 無盡公 무진공

    장상영(張商英)(1044–1122), 자 천각(天覺), 호 무진거사(無盡居士). 휘종조(徽宗朝) 우복사(右僕射)를 지낸 재상. 담당문준(湛堂文準) 입적 후 대혜(大慧)가 찾아가 인가·후원을 받았다. 곧 '수지어구상무진공(受知於舊相無盡公)'의 실인물이다.

  17. 舊相 구상

    예전의 재상. 파직·치사한 뒤의 장상영(張商英)을 가리킨다. 그는 1121년 졸이므로 대혜(大慧)와의 교유는 그 이전이다.

  18. 傅公殿撰 부공전찬

    전찬(殿撰)(집영전수찬(集英殿修撰))을 지낸 부씨(傅氏) 관료 거사. 대혜(大慧)의 본인(본인(本因): 출세의 계기·숙연)을 열어준 초기 후원자로 보이나 구체 생평은 미상이다(추정).

  19. 殿撰 전찬

    집영전수찬(集英殿修撰)의 약칭. 문신에게 주던 첩직(貼職)(관직(館職)·명예직)이다.

  20. 咸平 함평

    개봉부(開封府) 소속 현명(縣名)(현 하남(河南) 통허(通許) 일대), 수도 인근. 대혜(大慧)가 혹한을 무릅쓰고 잠시 다녀온 곳이다.

  21. 嚴凝 엄응

    매서운 추위. 예기(禮記) 향음주의(鄕飮酒義) '천지엄응지기(天地嚴凝之氣)'에서 온 어휘로 겨울의 혹한을 이른다.

  22. 傅翁 부옹

    원오가 『원오심요』 「시고선인(示杲禪人)」 끝에서 이 글을 보여 주라고 한 사람으로, 같은 글 앞에서 대혜의 인연을 열어 준 이로 든 부공 전찬(傅公殿撰)이다. '사부옹(似傅翁)'의 '사(似)'는 송나라 때 입말로 '보이다 · 주다'의 뜻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6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