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오조법연 · 卷中 167
설날 아침 상당 — 위음왕 이전에도 이러했다
歲朝上堂 · 威音王已前也恁麼
풀이 2
풀이 3
해설설날 아침 상당으로,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과 이후, 삼세제불, 서천 28조·동토 6조, 지난 세월과…
설날 아침 상당으로,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과 이후, 삼세제불, 서천 28조·동토 6조, 지난 세월과 올 세월이 모두 "이러하다(恁麼)"고 반복하여 시간을 초월해 변함없는 그 자리를 드러낸다. 누군가 불러도 부르지 않아도 앉아서 백 년이 지나도 "다만 이러할 뿐"이라 하여 그 여여함을 못박는다. 뒤에는 설날 세시(歲時)의 정경과 절기 인사를 얹고, 억류된 소무(蘇武)와 항복한 이릉(李陵)의 고사를 끌어와 세태를 비추며, "인의는 가난한 곳에서 끊어지고 세정은 부잣집으로 치우친다"는 세간 인정에 대한 냉정한 관찰로 맺는다.
이 단의 낱말 5
- 威音王 위음왕
『법화경』에 나오는 아득한 옛 부처,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다. 같은 이름의 부처 가운데 맨 처음 부처다. 선어록에서는 '위음왕 이전'이라 하여 시간과 분별이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 四七二三 사칠이삼
넷에 일곱을 곱한 스물여덟과, 둘에 셋을 곱한 여섯을 말한다. 인도의 스물여덟 조사와 중국의 여섯 조사, 곧 마음 법을 이어 온 선종의 역대 조사를 이른다. 달마(達磨)는 인도의 스물여덟째이자 중국의 첫째 조사다.
- 首座 수좌
선원 대중 가운데 맨 윗자리에서 대중을 이끄는 소임이다. 승당 앞줄의 첫 자리에 앉아 제일좌(第一座)라고도 하고, 옛날의 상좌(上座)에 해당한다. 때로 주지를 대신해 자리를 나누어 법을 설하였다.
- 蘇武 소무
한나라 무제 때의 신하다. 사신으로 흉노에 갔다가 붙잡혀 항복하라는 요구를 끝내 물리쳤다. 북쪽 바닷가로 쫓겨나 양을 치며 오랜 세월 갖은 고초를 견딘 끝에 한나라로 돌아왔다. 절개를 굽히지 않은 사람의 본보기로 일컬어진다.
- 李陵 이릉
한나라 무제 때의 장수다. 적은 군사로 흉노의 대군과 싸우다 힘이 다해 항복하였고, 그 뒤 흉노 땅에서 여생을 마쳤다. 흉노에 붙잡혀 있던 벗 소무와 얽힌 이야기가 전하며, 선문에서는 절개를 지킨 소무와 늘 짝지어 든다.
저본
大正藏 『法演禪師語錄』 3卷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다른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대교본: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0~22.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