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26분

법신은 모양이 아니다

法身非相分 第二十六

26.1
구마라집「須菩提!於意云何?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 여래를 살펴볼 수 있느냐?"
현장佛告善現:「於汝意云何?可以諸相具足觀如來不?」
부처님께서 선현(善現)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모양을 갖춘 것(諸相具足)으로 여래를 살펴볼 수 있느냐?"
구마라집須菩提言:「如是,如是!以三十二相觀如來。」

현장 역에 없음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善現答言:「如我解佛所說義者,不應以諸相具足觀於如來。」
선현이 대답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모든 모양을 갖춘 것으로 여래를 살펴보아서는 안 됩니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佛言:「善現!善哉!善哉!如是!如是!如汝所說。不應以諸相具足觀於如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렇다, 그렇다! 네가 말한 대로다. 모든 모양을 갖춘 것으로 여래를 살펴보아서는 안 된다.
풀이 5
① 5분 · 13분 · 20분에서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답한 수보리가 여기서는 '그렇다'고 답한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 물음을 응신의 상호에서 법신을 살펴볼 수 있느냐는 뜻으로 읽고, 수보리가 상호는 법신에서 흘러나온 것이니 상호를 보면 법신을 본다고 여겨 그렇게 답했다고 푼다(應身相好從法身流出). 그래서 이 분의 의심 이름도 '모양으로 견주어 참 부처를 앎(以相比知真佛)'이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수보리의 앞뒤 견해가 다른 것을 그대로 옮긴 구마라집 역이 옳다고 본다(本疏以秦本為是).
현장 역에서는 선현이 처음부터 '모든 모양을 갖춘 것으로 여래를 살펴보아서는 안 된다'고 답하고, 부처가 '훌륭하다'며 받는다. 명나라 증봉의(曾鳳儀)의 『금강경종통(金剛經宗通)』(X25n0471)는 구마라집 역 수보리의 '그렇습니다'가 앞의 답과 어긋난다 하고, 현장 역이 이를 뺀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적는다(不知唐譯省之為是).
26.2
구마라집佛言:「須菩提!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轉輪聖王則是如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살펴본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곧 여래일 것이다."
현장善現!若以諸相具足觀如來者,轉輪聖王應是如來,
선현아, 모든 모양을 갖춘 것으로 여래를 살펴본다면, 전륜성왕도 여래여야 할 것이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是故不應以諸相具足觀於如來,如是應以諸相非相觀於如來。」
그러므로 모든 모양을 갖춘 것으로 여래를 살펴보아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으로써 여래를 살펴보아야 한다."
구마라집須菩提白佛言:「世尊!如我解佛所說義,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살펴보아서는 안 됩니다."

현장 역에 없음

풀이 2
현장 역에만 있는 맺음이다. 모양을 갖춘 것으로 보지 말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으로써 여래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볼 길을 일러 준다. 구마라집 역 5분의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본다(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와 같은 말이다.
26.3
구마라집爾時,世尊而說偈言: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현장爾時,世尊而說頌曰: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구마라집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빛깔로 나를 보거나 소리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다."
현장 「諸以色觀我, 以音聲尋我, 彼生履邪斷, 不能當見我。
"빛깔로 나를 살펴보거나 소리로 나를 찾는 이들은 삿된 끊음(邪斷)을 밟는 것이니 나를 볼 수 없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 應觀佛法性, 即導師法身; 法性非所識, 故彼不能了。」
부처의 법성(法性)을 보아야 하니 곧 이끄는 스승의 법신(法身)이다 법성은 알음알이로 알 바가 아니니 그러므로 그들은 깨달아 알 수 없다."
풀이 3
③ 삿된 길(邪道)이라 한 까닭을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법신의 바탕은 본래 소리와 빛깔을 떠나지 않지만, 범부가 듣고 보는 데 떨어지므로 삿된 길을 가는 것(法身之體固不離於聲色,但凡夫墮於聞、見)'이라 푼다. 소리와 빛깔 자체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거기에 매여 찾는 것을 나무란다는 읽기다.
현장 역의 '삿된 끊음을 밟는다(履邪斷)'는 구마라집 역 '삿된 길을 간다(行邪道)'의 자리다. 당나라 규기(窺基)의 『금강반야론회석(金剛般若論會釋)』(T40n1816, p0776b12)은 '당나라 번역은 履邪斷이라 했으니, 길(道) · 끊음(斷) · 고요함(靜) 셋은 다 선정(定)의 다른 이름'이라 한다(唐本云履邪斷,道、斷、靜三皆是定之異名耳). 무착(無著)의 『금강반야론(金剛般若論)』(T25n1510a, p0765a22)이 이 구절을 '삿된 고요함을 행한다(行邪靜)'로 들고 '선정을 고요함이라 한다(定名為靜)'고 푼 것을 따른 풀이로, 빛깔과 소리의 모양을 붙들고 부처를 보려는 것은 삿된 선정을 닦는 일이라는 뜻이 된다. 『회석』은 법신을 '끊음'으로, 지혜로 그것을 몸소 증득함을 '밟음'으로 보아, 변화한 몸을 법신으로 여기는 것을 '삿된 끊음을 밟음'이라 하는 풀이도 들지만, 앞의 풀이가 논에 맞는다고 한다.
현장 역 게송의 뒤 넉 줄이다. 부처를 보려면 그 법성(法性)을 보아야 하고 법성이 곧 이끄는 스승(導師)의 법신인데, 법성은 알음알이(識)로 알 대상이 아니므로 빛깔과 소리로 찾는 이들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명나라 증봉의(曾鳳儀)의 『금강경종통(金剛經宗通)』(X25n0471)는 구마라집 역의 넉 줄은 빛깔과 소리로 찾는 '나'를 떠난 것일 뿐이고 현장 역의 뒤 넉 줄은 앎과 봄을 떠난 법신을 말하니, 둘을 합쳐 보아야 뜻이 갖추어진다고 한다(合而觀之,其義始足).
해설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은 '법신은 모양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은 '법신은 모양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 분을 스물둘째 '모양으로 견주어 참 부처를 알 수 있다는 의심을 끊음(斷以相比知真佛疑)'으로 두고, 20분의 '몸과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에서 이어진다고 본다. 수보리가 한 번 '그렇다'고 답했다가 전륜성왕의 반문을 듣고 '볼 수 없다'로 돌아서는 문답 끝에, 세존이 게송으로 맺는다.

이 게송은 넉 줄이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다른 번역들의 게송이 여덟 줄인데 구마라집 역은 앞 넉 줄만 두었다고 적고, 앞 넉 줄은 뒤집어 드러내고(反顯) 뒤 넉 줄은 바로 밝히는데(正明) 구마라집은 뒤집어 드러낸 것으로 뜻이 넉넉히 밝다고 보아 뒤를 줄였다고 푼다(什師以反顯足明,故略後義).

차례 (32분)

이 분의 낱말 4
  1. 須菩提 수보리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알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선길(善吉) · 선현(善現) · 공생(空生)이라고도 옮긴다. 태어나던 날 집 안이 텅 비어 공생이라 했고, 그것이 뒷날 공을 깨칠 조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三十二相 삼십이상

    부처님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몸에 갖추어져 있다는 서른두 가지 뛰어난 모양이다. 『금강경』은 이 모양으로 여래를 보려 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한다.

  3. 如來 여래

    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진리에서 와서 진리대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풀며, 경전에서 부처님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도 쓴다. 『금강경』은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어서 여래라 한다고 말한다.

  4. 轉輪聖王 전륜성왕

    윤보(輪寶)라는 수레바퀴를 굴려 온 세상을 바른 법으로 다스린다는 이상의 임금이다. 부처님처럼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춘다고 한다.

문단 3주석 3해설낱말 4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