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용어 · 인물
香林澄遠
향림징원
DILA는 생년 없음(雍熙 4년 987 입적). 풀이 글의 908은 『碧巖錄』 '八十歲方遷化'로 셈한 것
풀이
향림징원(香林澄遠, ?~987)이다.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으로, 운문(雲門)을 열여덟 해 동안 시자로 모시다 깨쳐 그 법을 이었다. 촉(蜀) 땅 청성산 향림원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날 때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한 말이 이름났다.
학술 풀이
香林澄遠(?~987). 漢州 綿竹 사람, 俗姓 上官. 雲門文偃의 侍者로 18년을 지낸 끝에 깨쳐 그 法嗣가 되었다(『碧巖錄』 제17칙 評唱). 처음 西川 導江縣 迎祥寺 天王院(당시 '水精宮'이라 함)에 머물고 뒤에 益州 青城 香林院에 머물렀다. 입적 때 '老僧四十年方打成一片'이라 하였다(『五燈會元』 권15). 『佛祖歷代通載』 권18은 雍熙 4년(丁亥, 987) 示寂으로, 『碧巖錄』은 八十歲 遷化로 적는다. 그 법은 智門光祚를 거쳐 雪竇重顯으로 이어졌다. 전기: 『景德傳燈錄』 권22(T51, no. 2076)·『五燈會元』 권15(X80, no. 1565).
실린 곳
원오심요 5편
관련 항목
- 雲門文偃 운문문언인물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바깥 참고
- DILA 인명 규범 A009463 — 생몰 · 다른 설 · 출전
이 글을 가리키는 글
- 湧泉景欣 용천경흔 — 태주(台州) 용천의 경흔(景欣) 선사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석상경저(石霜慶諸)의 가르침을 받고 용천의 암자에 머물렀다. 원오의 법어에는 향림(香林)과 나란히, 사십 년을 닦고도 아직 마음이 달아나곤 했다는 사람으로 나온다.
- 雲門文偃 운문문언 —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 祖師西來意 조사서래의 —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와서 전한 참뜻, 곧 선의 근본을 묻는다. 선문답에서 가장 흔한 물음으로, 조주(趙州)의 '뜰 앞의 잣나무' 답이 이름났다.
- 走作 주작 — 마음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경계를 따라 밖으로 달아나 흩어지는 것을 이른다.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고 틈이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
- 智門光祚 지문광조 — 송나라 운문종의 선승으로, 향림징원(香林澄遠)의 법을 이었다. 수주(隨州) 쌍천(雙泉)에 머물다 지문(智門)으로 옮겼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이 그의 법을 이었다.
- 打成一片 타성일편 — 여럿이 한 덩어리로 뭉쳐 틈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세상일과 불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를 이른다.
- 溈山靈祐 위산영우 — 위산영우(溈山靈祐, 771~853)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위산에 머물며 제자 앙산(仰山)과 함께 위앙종을 열었다. 시호는 대원(大圓) 선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