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용어 · 인물
藥山惟儼
약산유엄
입적 해가 갈린다 — 唐伸 비명 大和 2년(828) 12월 6일 · 84세(양력 환산 746~829, DILA) / 『景德傳燈錄』 권14 大和 8년(834) · 84세(751~834) / 『宋高僧傳』 大和 2년 · 70세
풀이
약산유엄(藥山惟儼, 746~829)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석두(石頭) 스님의 법을 이었고, 마조(馬祖)에게도 배웠다. 예주(澧州) 약산에 머물렀다. 석두가 '무엇을 하느냐' 묻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한 문답이 유명하다. 그 법은 조동종으로 이어졌다.
학술 풀이
藥山惟儼(746~829). 絳州 韓氏. 石頭希遷의 法嗣로, 馬祖道一 회하에도 머물렀다(『五燈會元』 권5 '辭祖返石頭'). 澧州 藥山에 주석, 문하 雲巖曇晟→洞山良价로 曹洞宗이 이어진다. 생몰은 唐伸 撰 碑銘 '大和二年十二月六日' 입적, 壽 84(양력으로 옮겨 746~829, DILA)에 따른다. 石頭와의 '一切不爲' 문답, 李翺와의 '雲在靑天水在缾' 문답이 유명하다. 諡 弘道大師.
실린 곳
원오심요 5편
백운수단 광록 1편
오조법연 어록 3편
관련 항목
바깥 참고
- DILA 인명 규범 A010510 — 생몰 · 다른 설 · 출전
이 글을 가리키는 글
- 李翱 이고 — 당나라 문인 이고(李翱)이며, 습지(習之)는 그의 자(字)이다. 한유(韓愈)의 문인으로 이름난 문장가였다. 낭주자사로 있을 때 약산(藥山)에게 도를 물었다. '구름은 하늘에, 물은 병에'라는 답을 듣고 게송을 지어 바쳤다.
- 石頭希遷 석두희천 —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 船子德誠 선자덕성
- 瞬目揚眉 순목양미 — 눈을 깜박이고 눈썹을 치켜올린다는 말이다. 선승이 말 대신 몸짓으로 뜻을 보이던 방편을 이른다. 마조(馬祖)가 약산(藥山)에게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이게 한다'고 한 문답으로 널리 알려졌다.
- 一物不爲 일물불위 — '한 물건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무심·무위(無爲)의 경지를 이른다. 석두(石頭)와 약산(藥山)의 문답에서 '한가히 앉아 있으면 그것도 하는 것이다'—'하지 않는다는 그것은 무엇인가'—'천 성인도 알지 못한다(천성역불식, 千聖亦不識)'로 이어진다.…
- 從來共住不知名 종래공주불지명 — 석두(石頭)가 앉아 있는 약산(藥山)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약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것은 천 명의 성인도 모른다고 답하였다. 석두가 이를 기려 지은 게송의 첫 구가 '예로부터 함께 살아도 이름을 모른다'이다. 늘 함께하면서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본래…
- 夾山善會 협산선회 — 협산선회(夾山善會, 805~88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뱃사공 노릇을 하던 선자덕성(船子德誠)의 법을 이었다. 스승의 노에 맞아 물에 빠졌다가 크게 깨친 일로 이름났다. 그가 머문 예주(澧州) 협산의 절도 '협산'이라 부르며, 뒷날 원오가 이곳에서 『벽암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