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3분

대승의 바른 종지

大乘正宗分 第三

3.1
구마라집佛告須菩提:「諸菩薩摩訶薩應如是降伏其心: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여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현장佛言:「善現!諸有發趣菩薩乘者,應當發起如是之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善現)아, 보살승(菩薩乘)에 나아가기로 마음을 낸 이들은 이런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구마라집『所有一切眾生之類,若卵生、若胎生、若濕生、若化生,若有色、若無色,若有想、若無想、若非有想非無想,
'있는 모든 중생의 무리, 곧 알에서 나는 것(卵生)이든 태에서 나는 것(胎生)이든 습기에서 나는 것(濕生)이든 변화하여 나는 것(化生)이든, 형체 있는 것이든 형체 없는 것이든, 생각 있는 것이든 생각 없는 것이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든,
현장『所有諸有情,有情攝所攝;若卵生、若胎生、若濕生、若化生,若有色、若無色,若有想、若無想,若非有想非無想,
'있는 모든 유정(有情), 유정의 무리에 드는 모든 것, 곧 알에서 나는 것이든 태에서 나는 것이든 습기에서 나는 것이든 변화하여 나는 것이든, 형체 있는 것이든 형체 없는 것이든, 생각 있는 것이든 생각 없는 것이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든,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乃至有情界施設所施設。
나아가 유정의 세계라고 세워 일컫는 모든 것까지,
구마라집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내가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멸도(滅度)하겠다.'
현장如是一切,我當皆令於無餘依妙涅槃界而般涅槃,
구마라집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眾生,實無眾生得滅度者。
이렇게 한량없고 셀 수 없고 끝없는 중생을 멸도하지만,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없다."
현장雖度如是無量有情令滅度已,而無有情得滅度者。』
이렇게 한량없는 유정을 건져 멸도하게 하였으나, 멸도를 얻은 유정은 없다.'
풀이 8
① 수보리는 어떻게 머무는가와 어떻게 항복받는가를 함께 물었는데, 부처님은 항복받는 법만 답하신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허망한 마음을 항복받으면 반드시 대승에 편안히 머물게 되므로 '항복을 들면 머묾이 그 안에 든다(舉降伏則攝安住)'고 푼다. 당 혜능(慧能)의 이름으로 전하는 『금강경해의(金剛經解義)』(X24n0459)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을 나누어, 앞생각과 뒷생각이 맑음을 보살, 번뇌 속에서도 마음이 늘 맑아 생각마다 물러서지 않음을 마하살이라 한다.
구마라집 역에서 부처님의 대답은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로 시작하지만, 현장 역은 '이런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로 시작한다. 그래서 뒤따르는 '모든 유정을 다 열반에 들게 하겠다'는 서원이 현장 역에서는 일으킬 마음의 내용이 되고, 구마라집 역에서는 마음을 항복받는 법이 된다.
② 알 · 태 · 습기 · 변화로 나는 넷과 형체 · 생각의 있고 없음에 따른 다섯을 합해 아홉 무리(九類)라 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이를 삼계(三界)의 중생으로 읽는다. 사람과 짐승은 네 가지 남을 다 갖추고, 하늘 · 지옥 · 중음(中陰)은 변화하여 나며, 귀신은 태와 변화 둘로 나는데 모두 욕계(欲界)에 든다. 형체 있는 것은 색계(色界)의 하늘, 형체 없는 것은 무색계(無色界)의 하늘, 생각 있는 것은 식처천(識處天), 생각 없는 것은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것은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다. 『금강경해의』는 같은 아홉을 마음의 모습으로 읽는다. 알에서 나는 것은 미혹한 성품, 태에서 나는 것은 익힌 버릇의 성품, 습기에서 나는 것은 삿됨을 따르는 성품, 변화하여 나는 것은 치우친 견해의 성품이고, 생각 없는 것은 앉아서 망념만 없애려다 나무나 돌처럼 되어 버린 이라는 식이다.
유정(有情)은 구마라집이 '중생'이라 한 것을 현장이 옮긴 말로, 마음(情)을 지닌 것을 뜻한다. 현장은 '유정이라는 이름에 거두어지는 모든 것(有情攝所攝)'을 덧붙이고, 아홉 무리를 든 뒤에도 '유정의 세계라고 세워 일컫는 모든 것(有情界施設所施設)'까지 넣어, 건질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 없음을 거듭 다진다.
구마라집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현장은 '남은 의지처가 없는 묘한 열반의 세계(無餘依妙涅槃界)'라 옮겼다. 의지처(依)는 번뇌를 끊고도 아직 남아 의지하는 몸을 말하니, 그것마저 남지 않은 열반이라는 뜻이다. 반열반(般涅槃)은 열반에 온전히 드는 것이다.
③ 끝없는 중생을 건지고도 건진 중생이 없다는 말을 두고,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疏)와 송나라 자선(子璿)의 기(記)를 엮은 『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X25n0491)의 소는 다섯 까닭을 든다. 중생은 성품이 공하고, 나와 한 몸이며, 본래 고요하고, 생각이 없으면 중생도 없으며, 한 법계에는 나와 남이 없다는 것이다. 기는 이 다섯이 대운(大雲)의 글이라 하고, 건질 중생이 있다고 보면 지쳐서 늘 건지지 못한다고 푼다. 『금강경해의』는 미혹한 이가 자기 성품을 깨치면 부처는 자기 모양을 보지 않으니 어찌 중생을 건넌 적이 있겠느냐 하고, 망심이 머물 곳이 없으면 곧 보리라 생사와 열반이 본래 평등하다고 한다.
3.2
구마라집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即非菩薩。
"왜 그런가? 수보리야, 보살에게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다."
현장何以故?善現!若諸菩薩摩訶薩有情想轉,不應說名菩薩摩訶薩。所以者何?善現!若諸菩薩摩訶薩不應說言有情想轉。如是命者想、士夫想、補特伽羅想、意生想、摩納婆想、作者想、受者想轉,當知亦爾。
왜 그런가? 선현아, 여러 보살마하살에게 유정상(有情想)이 일어나면 보살마하살이라 부를 수 없다. 까닭이 무엇인가? 선현아, 보살마하살이라면 유정상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명자상(命者想) · 사부상(士夫想) · 보특가라상(補特伽羅想) · 의생상(意生想) · 마납바상(摩納婆想) · 작자상(作者想) · 수자상(受者想)이 일어나는 것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何以故?善現!無有少法名為發趣菩薩乘者。
풀이 4
구마라집의 네 모양(四相) 자리에 현장은 '유정상(有情想)'을 먼저 들고, 명자상(命者想) · 사부상(士夫想) · 보특가라상(補特伽羅想) · 의생상(意生想) · 마납바상(摩納婆想) · 작자상(作者想) · 수자상(受者想)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로 덧붙인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구마라집은 넷을, 현장은 여덟을 말하지만 '상(相)은 곧 생각된 것(所想)'이어서 넷과 여덟은 펴고 합한 차이일 뿐이라고 본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도 '상(想)은 곧 상(相)'이라 한다. 보특가라(補特伽羅)는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疏)와 송나라 자선(子璿)의 기(記)를 엮은 『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X25n0491)의 기가 '자꾸 여러 갈래에 태어남을 취하는 자(數取趣)', 곧 사람이라 풀어 네 모양의 '인(人)'에 맞춘 말이다.
마납바(摩納婆)는 소리 옮김이다. 당나라 혜림(慧琳)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T54n2128, p0353b23)는 『대반야경』 권577 「능단금강분」의 이 말에 '번역한 대당 삼장은 이를 유동(儒童)이라 한다(譯主大唐三藏云此曰儒童)'고 적는다. 혜림은 선무외(善無畏)가 옮긴 『대비로자나경(大毘盧遮那經)』과 일행(一行)이 함께 낸 의기(義記)를 들어, 몸과 마음 안에 가장 뛰어난 신묘한 나(神我)가 있다고 하는 외도의 말로 옮겨야 한다는 견해도 함께 싣고, 두 번역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이 맺음말은 현장 역 3분에만 있다. 보살승에 나아가는 이라는 것조차 이름할 법이 따로 없다는 말로, 구마라집 역에서는 17분의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낸다 할 법이 없다(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 '실로 보살이라 이름할 법이 없다(實無有法名為菩薩)'에 가까운 말이 나온다.
해설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은 '대승의 바른 종지'라는 뜻이다. 2분의 물음에 부처님이 처음으로 답하시는…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은 '대승의 바른 종지'라는 뜻이다. 2분의 물음에 부처님이 처음으로 답하시는 분으로, 송나라 종경(宗鏡)이 짓고 명나라 각련(覺連)이 거듭 모은 『소석금강경과의회요주해(銷釋金剛經科儀會要註解)』(X24n0467)는 '아홉 무리의 중생을 다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을 이 경의 종지로 삼으므로' 대승정종이라 한다고 푼다. 대답은 두 겹이다.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건지겠다고 마음먹되, 건지고 나서도 건진 중생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중생을 건졌다는 생각이 남으면 곧 나와 남의 모양에 걸린 것이므로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 대목을 자씨(慈氏), 곧 미륵(彌勒)의 게송 '넓고 크며 첫째이고 한결같으며, 그 마음이 뒤바뀌지 않는다(廣大第一常,其心不顛倒)'에 맞추어 네 마음으로 나눈다. 모든 중생의 무리를 품는 것은 넓고 큰 마음,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겠다는 것은 첫째가는 마음,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이 없다고 아는 것은 한결같은 마음, 네 모양이 없는 것은 뒤바뀌지 않은 마음이다. 반야의 지혜로 성품이 공함을 비추어 본래 네 모양이 없음을 아는 것이 곧 그 마음을 항복받는 일이라는 것이다.

차례 (32분)

이 분의 낱말 3
  1. 須菩提 수보리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알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선길(善吉) · 선현(善現) · 공생(空生)이라고도 옮긴다. 태어나던 날 집 안이 텅 비어 공생이라 했고, 그것이 뒷날 공을 깨칠 조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無餘涅槃 무여열반

    번뇌뿐 아니라 이 몸까지 남김없이 다한 열반이다. 몸이 남아 있는 동안의 열반(유여열반 有餘涅槃)과 짝을 이룬다. 『금강경』은 보살이 모든 중생을 무여열반에 들게 하되 실은 멸도를 얻은 중생이 없다고 한다.

  3. 四相 사상

    『금강경』이 거듭 버리라고 하는 네 가지 생각의 모양이다.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 곧 '나' · '남' · '중생' · '목숨을 이어 가는 자'가 따로 있다고 붙드는 생각이다. 보살에게 이 넷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한다.

문단 2주석 4해설낱말 3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