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금강경 · 29분
위의가 고요하다
威儀寂靜分 第二十九
29
구마라집「須菩提!若有人言『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是人不解我所說義。
현장「復次,善現!若有說言如來若去、若來、若住、若坐、若臥,是人不解我所說義。
"또 선현(善現)아, '여래께서는 가시기도 하고 오시기도 하며, 머무시기도 하고 앉으시기도 하고 누우시기도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알지 못한다.
왜 그런가? 여래란 어디서 오는 데도 없고 어디로 가는 데도 없으므로 여래라 부른다."
현장何以故?善現!言如來者即是真實、真如增語,都無所去、無所從來,故名如來、應、正等覺。
왜 그런가? 선현아, 여래라는 것은 곧 진실과 진여(真如)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어디로 가는 데도 없고 어디서 오는 데도 없으므로, 여래 · 응공(應) · 정등각(正等覺)이라 부른다."
풀이 3
須菩提 수보리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알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선길(善吉) · 선현(善現) · 공생(空生)이라고도 옮긴다. 태어나던 날 집 안이 텅 비어 공생이라 했고, 그것이 뒷날 공을 깨칠 조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如來 여래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진리에서 와서 진리대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풀며, 경전에서 부처님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도 쓴다. 『금강경』은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어서 여래라 한다고 말한다.
①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오고 가고 앉고 눕는 것은 여래의 응신이고 오고 감이 없는 것은 법신이라 하여(有來、去、坐、臥者,乃如來應身也;無來、無去者,法身也), 응신의 작용은 움직임을 보이나 법신의 바탕은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고 푼다. 여래(如來)라는 이름을 '오는 데도 가는 데도 없음'으로 풀이하는 대목이다.
해설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은 '위의가 고요하다'라는 뜻이다. 위의(威儀)는 가고 오고 머물고 앉고 눕는…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은 '위의가 고요하다'라는 뜻이다. 위의(威儀)는 가고 오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몸가짐이다. 송나라 도천(道川)의 송을 엮은 『금강경주(金剛經註)』(X24n0461)는 분 머리에 '가고 오고 앉고 누움이 여여하지 않음이 없다(去來坐臥,無不如如)'고 적는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 분을 스물넷째 '화신이 나타나 복을 받느냐는 의심을 끊음(斷化身出現受福疑)'으로 둔다. 앞 분에서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래가 오가고 앉고 누우며 중생의 공양을 받아 그들이 복을 얻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의심이다. 1분에서 부처가 성에 들어가 밥을 빌고 돌아와 앉던 그 몸가짐을 경 끝머리에서 다시 비추는 셈이다.
이 분의 낱말 2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