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1분

법회가 열린 인연

法會因由分 第一

1.1
구마라집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
현장如是我聞: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誓多林給孤獨園,與大苾芻眾千二百五十人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박가범(薄伽梵)께서 실라벌(室羅筏)의 서다림(誓多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 머무셨다. 큰 필추(苾芻) 대중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계셨다.
풀이 6
①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뜻으로, 경 첫머리에 두는 정형구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나'를 부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아난(阿難)으로 풀고, 부처가 열반에 들 무렵 아난이 모든 경 앞에 무슨 말을 둘지 묻자 '여시아문' 등의 말을 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든다.
② 대비구중(大比丘眾)은 두 가지로 읽힌다. 바이디야(P. L. Vaidya)가 교정한 범본(『Mahāyāna-sūtra-saṃgraha』 1, 1961)은 이 대목을 mahatā bhikṣusaṃghena, 곧 '큰 비구 무리와 함께'로 적어 '크다(大)'가 무리에 걸린다. 이 역주의 번역 '큰 비구 대중'은 이 읽기를 따랐다. 주석서들은 '크다'를 비구에 걸어 덕을 말한 것으로 푼다. 당 혜능(慧能)의 이름으로 전하는 『금강경해의(金剛經解義)』(X24n0459)는 '큰 아라한이기 때문(是大阿羅漢故)'이라 하고, 청나라 서발(徐發)의 『금강경영설(金剛經郢說)』(X25n0488)은 '덕이 높고 수행을 닦은 이를 일컫는 말(德高行修之稱)'이라 한다.
③ 천이백오십 명은 늘 부처를 따르던 제자 무리의 수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처음 제도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 세 가섭(迦葉) 형제와 그 무리 1,000명, 사리불(舍利弗) · 목건련(目犍連)과 그 무리 각 100명, 장자의 아들 야사(耶舍)와 그 무리 50명을 들고, 합하면 1,255명이지만 경은 큰 수만 들어 다섯을 줄였다고 푼다. 이들은 본래 다른 길을 닦다가 부처를 만나 깨치고 그 은혜를 잊지 못해 늘 곁을 따랐다고 한다. 같은 범본에는 비구 대중에 이어 '많은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과 함께(saṃbahulaiś ca bodhisattvair mahāsattvaiḥ)'라는 말이 더 있으나, 구마라집 역과 현장 역(T07n0220)에는 없다.
현장은 구마라집이 뜻으로 옮기거나 옛 소리로 적은 이름을 새로 소리 옮김했다. 박가범(薄伽梵)은 구마라집의 '부처님(佛)' 자리에 오는 말로, 현장은 곧이어 같은 분을 '세존(世尊)'이라고도 부른다. 실라벌(室羅筏)은 사위(舍衛)다.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사위를 새 번역에서 '실라벌실저(室羅筏悉底)'라 한다고 적는다. 서다림(誓多林)은 기수(祇樹), 곧 기타(祇陀) 태자의 숲이고, 필추(苾芻)는 비구(比丘)를 달리 옮긴 말이다.
1.2
구마라집爾時,世尊食時,著衣持鉢,入舍衛大城乞食。
그때 세존께서는 밥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드셨다. 사위의 큰 성으로 들어가 밥을 비셨다.
현장爾時,世尊於日初分,整理裳服執持衣鉢,入室羅筏大城乞食。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나절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사와 발우를 드셨다. 실라벌의 큰 성으로 들어가 밥을 비셨다.
구마라집於其城中,次第乞已,還至本處。
그 성 안에서 차례로 빌기를 마치시고,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셨다.
현장時,薄伽梵於其城中行乞食已出還本處,
그때 박가범께서는 그 성 안에서 밥을 다 비시고 나와,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셨다.
구마라집飯食訖,收衣鉢,洗足已,敷座而坐。
밥을 다 드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셨다.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현장飯食訖,收衣鉢洗足已,於食後時,敷如常座結跏趺坐,端身正願住對面念。
밥을 다 드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셨다. 밥 드신 뒤에 늘 하시던 대로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맺고 앉으셨다. 몸을 곧게 하고 서원을 바로 하여, 마주한 생각(對面念)에 머무셨다.

구마라집 역에 없음

현장時,諸苾芻來詣佛所,到已頂禮世尊雙足,右遶三匝退坐一面,具壽善現亦於如是眾會中坐。
그때 여러 필추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이르러서는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구수(具壽) 선현(善現)도 이 모임 가운데 앉아 있었다.
풀이 4
구마라집의 '밥때(食時)'를 현장은 '하루의 첫 몫(日初分)'이라 했다.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疏)와 송나라 자선(子璿)의 기(記)를 엮은 『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X25n0491)의 소는 밥을 빈 때를 진시(辰時)로 보아 '하루의 첫 몫이라 빌기 쉽고 나와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한다. 기는 하루 밤낮 열두 때를 네 몫으로 나누면 첫 몫이 인 · 묘 · 진시(寅卯辰)이고 진시는 그 끝자락이라 풀고, 현장 역이 '하루의 첫 몫'이라 한 것도 이때가 빌기 좋은 때임을 보인다고 한다.
④ 차제걸(次第乞)은 집을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 밥을 빈다는 말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T33n1703)는 이를 '부처의 마음이 평등하여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않는다(佛心平等,不擇貧富)'고 푼다.
이 구절은 현장 역에만 있다. 『금강경소기과회』의 소는 이 말을 들어 부처님이 설법에 앞서 선정에 드셨음을 밝힌다. 기는 '바른 서원(正願)'을 바른 생각(正念)으로 보거나, 나누어 말하면 '마주한 생각에 머물고자 바라는 것'이라 한다. '마주한 생각(對面念)'은 거울이 얼굴을 마주하면 얼굴이 절로 드러나듯, 생각이 이치를 마주해 머물면 이치가 절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푼다.
필추들이 와서 예배하고 물러나 앉는 이 대목은 현장 역에만 있어, 2분에서 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앞일을 미리 보여 준다. 구수(具壽)는 구마라집의 '장로(長老)' 자리에 쓰는 말이다. 『금강경소기과회』의 소는 '구수의 수(壽)는 목숨'이라 하고 기는 이를 나이 많음을 나타낸 말로 풀며, 『금강신안소경게합석』은 구수가 '법랍이 높음만 드러낸다(唯顯臘尊)'고 한다. 선현(善現)은 수보리(須菩提)를 뜻으로 옮긴 이름이다. 소는 수보리를 선길(善吉) · 선현 · 공생(空生) 세 가지로 옮긴다 하고, 태어날 때 집이 비어 공(空)을 깨칠 좋은 조짐이 나타났다고 전한다.
해설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은 '법회가 열린 까닭'이라는 뜻이다. 32분의 이름은 경 본문에 없는 것으로,…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은 '법회가 열린 까닭'이라는 뜻이다. 32분의 이름은 경 본문에 없는 것으로,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도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세웠다고 서로 전한다'고만 적는다. 이 분은 두 대목이다. 앞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계셨다'는 어느 경에나 붙는 통서(通序)로, 누가 듣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였는지를 밝혀 이 말씀을 믿을 만하게 하므로 증신서(證信序)라고도 한다. 뒤의 밥을 빌고 돌아와 공양하고 발을 씻고 앉기까지는 이 경에만 있는 별서(別序)로, 설법을 일으키는 발기서(發起序)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부처가 모습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설하려고 먼저 걸식으로 그것을 드러냈다고 보고, 청나라 통리(通理)의 『금강신안소경게합석(金剛新眼疏經偈合釋)』(X25n0487)은 이 오가고 먹고 앉는 일이 말없이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는가'를 보여 다음 2분 수보리(須菩提)의 물음을 끌어낸다고 푼다. 신통이나 광명 없이 하루 한 끼의 일로 경을 여는 셈이다.

차례 (32분)

이 분의 낱말 2
  1. 舍衛國 사위국

    부처님이 살던 때 인도 중부 교살라국(憍薩羅國)의 서울이던 큰 성, 또는 그 성을 중심으로 한 나라를 이른다. 파사닉왕(波斯匿王)이 다스렸고, 성 밖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 부처님이 오래 머물며 많은 경을 설했다. 『금강경』도 이곳에서 설한 것으로 시작한다.

  2. 祇園 기원

    기원정사(祇園精舍), 곧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준말이다.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부자 급고독 장자가 기타 태자의 숲을 사서 부처님께 바친 절로, 부처님이 오래 머물며 많은 경을 설했다.

문단 2주석 4해설낱말 2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