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6분

바른 믿음은 드물다

正信希有分 第六

6.1
구마라집須菩提白佛言:「世尊!頗有眾生,得聞如是言說章句,生實信不?」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말씀과 글귀를 듣고 참된 믿음을 내는 중생이 있겠습니까?"
현장說是語已,具壽善現復白佛言:「世尊!頗有有情於當來世,後時、後分、後五百歲,正法將滅時分轉時,聞說如是色經典句生實想不?」
이 말을 마치자, 구수(具壽) 선현(善現)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는 세상, 뒷날 · 뒤의 때 · 뒤의 오백 년, 바른 법이 사라지려 할 때가 바뀌어 올 적에, 이러한 경전의 글귀를 듣고 참되다는 생각(實想)을 낼 유정(有情)이 있겠습니까?"
풀이 3
① 참된 믿음(實信)을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疏)와 송나라 자선(子璿)의 기(記)를 엮은 『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X25n0491)의 소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모든 법을 믿지 않음이 곧 반야를 믿는 것(於一切法不信是信般若)'으로 푼다. 기는 이를 맑은 눈이 허공의 꽃을 보지 않는 것에 견주어, 허깨비 같은 모양을 있다고 믿지 않아야 반야를 믿는 것이라 한다.
구마라집 역에서 '여래가 멸한 뒤 뒤의 오백 년'은 부처님의 대답에 처음 나오지만, 현장 역에서는 선현이 물을 때부터 '오는 세상, 바른 법이 사라지려 할 때'를 못박아 묻는다. 부처님도 그 물음을 그대로 되받아 물리치신 뒤 같은 때를 들어 답하신다. 믿음도 '참된 믿음(實信)'이 아니라 '참되다는 생각(實想)'으로 적는다.
6.2
구마라집佛告須菩提:「莫作是說。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마라.
현장佛告善現:「勿作是說:『頗有有情於當來世,後時、後分、後五百歲,正法將滅時分轉時,聞說如是色經典句生實想不?』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이르셨다. "'오는 세상, 뒷날 · 뒤의 때 · 뒤의 오백 년, 바른 법이 사라지려 할 때가 바뀌어 올 적에, 이러한 경전의 글귀를 듣고 참되다는 생각을 낼 유정이 있겠습니까?' 하는 그런 말을 하지 마라.
구마라집如來滅後後五百歲,有持戒修福者,
현장然復,善現!有菩薩摩訶薩於當來世,後時、後分、後五百歲,正法將滅時分轉時,具足尸羅、具德、具慧。
그러나 선현아, 오는 세상, 뒷날 · 뒤의 때 · 뒤의 오백 년, 바른 법이 사라지려 할 때가 바뀌어 올 적에도, 계(尸羅)를 갖추고 덕을 갖추고 지혜를 갖춘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있다.
구마라집於此章句能生信心,以此為實,
이 글귀에 믿는 마음을 내고, 이것을 참되다고 여길 것이다.

현장 역에 없음

구마라집當知是人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세 · 네 · 다섯 부처님께만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다.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계신 곳에서 온갖 선근을 심었다.
현장「復次,善現!彼菩薩摩訶薩非於一佛所承事供養,非於一佛所種諸善根。然復,善現!彼菩薩摩訶薩於其非一、百、千佛所承事供養,於其非一、百、千佛所種諸善根,
또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은 한 부처님 계신 곳에서만 받들어 섬기고 공양한 것이 아니며, 한 부처님 계신 곳에서만 온갖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은 하나가 아닌 백 · 천 부처님 계신 곳에서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였고, 하나가 아닌 백 · 천 부처님 계신 곳에서 온갖 선근을 심었기에,
구마라집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
이 글귀를 듣고 나아가 한 생각에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는 이라면,
현장乃能聞說如是色經典句,當得一淨信心。
이러한 경전의 글귀를 듣고 한 깨끗한 믿음의 마음(一淨信心)을 얻을 것이다.
구마라집須菩提!如來悉知悉見是諸眾生得如是無量福德。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은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것을 다 알고 다 본다.
현장善現!如來以其佛智悉已知彼,如來以其佛眼悉已見彼。善現!如來悉已覺彼。一切有情當生無量無數福聚,當攝無量無數福聚。
선현아,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 그들을 이미 다 알고, 여래는 부처의 눈으로 그들을 이미 다 본다. 선현아, 여래는 그들을 이미 다 깨달아 안다. 그 모든 유정은 한량없고 셀 수 없는 복의 무더기를 내고, 한량없고 셀 수 없는 복의 무더기를 거둘 것이다.
구마라집何以故?是諸眾生無復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
왜 그런가? 이 모든 중생에게는 다시는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이 없다."
현장何以故?善現!彼菩薩摩訶薩無我想轉,無有情想、無命者想、無士夫想、無補特伽羅想、無意生想、無摩納婆想、無作者想、無受者想轉。
왜 그런가?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에게는 아상(我想)이 일어나지 않고, 유정상(有情想) · 명자상(命者想) · 사부상(士夫想) · 보특가라상(補特伽羅想) · 의생상(意生想) · 마납바상(摩納婆想) · 작자상(作者想) · 수자상(受者想)도 일어나지 않는다.
풀이 7
② 뒤의 오백 년(後五百歲)을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와 『금강경소기과회』의 소는 『대집경(大集經)』의 다섯 오백 년으로 푼다. 부처님 멸도 뒤 처음 오백 년은 해탈이, 둘째는 선정이, 셋째는 많이 들음이, 넷째는 탑과 절 짓기가, 다섯째는 다툼이 굳건하다(牢固)는 것이고,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뒤의 오백 년'을 그 마지막 오백 년이라 한다. 기는 다툼의 시대에도 계와 덕을 갖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 경의 뜻이라 하고, 다섯 굳건함은 그때 많이 성한 것을 말할 뿐 서로 통한다고 덧붙인다.
③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계를 지님을 계(戒), 복을 닦음을 정(定), 믿음을 냄을 혜(慧)에 맞추어, 세 배움(三學)을 갖춘 이라야 참된 믿음을 낸다고 푼다. 『금강경소기과회』의 소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음을 계와 정으로 본다. 당 혜능(慧能)의 이름으로 전하는 『금강경해의(金剛經解義)』(X24n0459)는 여기의 계를 '대승의 모양 없는 계(大乘無相戒)'로 읽어, 모든 모양을 함부로 취하지 않고 생사의 업을 짓지 않으며 늘 마음이 비어 고요한 것이라 한다.
구마라집 역의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이'를 현장 역은 '계(尸羅)를 갖추고 덕을 갖추고 지혜를 갖춘 보살마하살'이라 한다. 시라(尸羅)는 계(戒)의 음역이다. 셋을 나란히 든 것은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疏)와 송나라 자선(子璿)의 기(記)를 엮은 『금강경소기과회(金剛經疏記科會)』(X25n0491)의 기가 끄는 미륵(彌勒)의 게송 '세 덕을 갖춘 참 보살(實菩薩三德備)'과 맞물리고, 기는 그 세 덕을 계 · 정 · 혜 세 배움(三學)이라 푼다. 믿음을 낼 이를 현장 역은 처음부터 보살마하살이라 부른다.
구마라집의 '다 알고 다 본다(悉知悉見)'를 현장 역은 '부처의 지혜(佛智)로 다 알고, 부처의 눈(佛眼)으로 다 본다'로 풀어 적고, '다 깨달아 안다(悉已覺)'를 하나 더 둔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도 구마라집의 이 구절을 '부처의 지혜와 부처의 눈이 알고 보지 않음이 없다(佛智、佛眼無不知見)'고 푼다.
6.3
구마라집「無法相,亦無非法相。
현장善現!彼菩薩摩訶薩無法想轉、無非法想轉,無想轉亦無非想轉。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에게는 법이라는 생각(法想)도 일어나지 않고 법 아니라는 생각(非法想)도 일어나지 않으며,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생각 아닌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마라집何以故?是諸眾生若心取相,則為著我、人、眾生、壽者。
왜 그런가? 이 모든 중생이 마음에 모양을 취하면, 곧 나 · 남 · 중생 · 수자(壽者)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현장 역에 없음

풀이 2
④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앞의 네 모양이 없음을 중생이 공함(生空), 법이라는 모양 · 법 아니라는 모양이 없음을 법이 공함(法空)으로 나누어, 이 사람이 두 공을 다 갖추었기에 복이 한량없다고 푼다. 『금강경해의』는 '법이라는 모양이 없음'을 이름과 모양을 떠나 문자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법 아니라는 모양도 없음'을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 읽는다. 법이 없다고 하면 법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현장 역은 법이라는 생각 · 법 아니라는 생각에 이어 '생각(想)도, 생각 아닌 것(非想)도 일어나지 않는다'를 더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구마라집의 '법이라는 모양도 없고 법 아니라는 모양도 없다'를 법공(法空)으로 풀면서, 다른 번역에는 '無相亦非無相'이 더 있다고 적는다. 그리고 법공 쪽이 두 구절뿐인 것은 '옮긴 이가 줄였기 때문'이라는 옛 소(疏)의 말을 끈다.
6.4
구마라집「若取法相,即著我、人、眾生、壽者。
"법이라는 모양을 취하면 곧 나 · 남 · 중생 · 수자에 집착한다.
현장所以者何?善現!若菩薩摩訶薩有法想轉,彼即應有我執、有情執、命者執、補特伽羅等執。
까닭이 무엇인가? 선현아, 보살마하살에게 법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에게는 곧 나에 대한 집착(我執) · 유정에 대한 집착 · 명자에 대한 집착 · 보특가라 따위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된다.
구마라집何以故?若取非法相,即著我、人、眾生、壽者。
왜 그런가? 법 아니라는 모양을 취하면 곧 나 · 남 · 중생 · 수자에 집착한다.
현장若有非法想轉,彼亦應有我執、有情執、命者執、補特伽羅等執。
법 아니라는 생각이 일어나도, 그에게는 또한 나에 대한 집착 · 유정에 대한 집착 · 명자에 대한 집착 · 보특가라 따위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된다.
구마라집是故不應取法,不應取非法。
그러므로 법을 취해서도 안 되고, 법 아닌 것을 취해서도 안 된다.
현장何以故?善現!不應取法,不應取非法,
왜 그런가? 선현아, 법을 취해서도 안 되고 법 아닌 것을 취해서도 안 된다.
구마라집以是義故,如來常說:『汝等比丘,知我說法,如筏喻者,
이런 뜻에서 여래는 늘 말한다. '너희 비구들아, 내 설법이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알아라.
구마라집法尚應捨,何況非法。』
현장諸有智者法尚應斷,何況非法!」
지혜 있는 이들은 법도 끊어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느냐!"
풀이 2
⑤ 뗏목의 비유를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논(論)을 끌어 '강을 건너려면 먼저 뗏목을 잡고, 저 언덕에 이르면 버리고 간다'로 풀고, 『대지도론(大智度論)』이 『벌유경(筏喻經)』을 끌어 '착한 법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착하지 않은 법이랴'라 한 것을 든다. 법과 법 아님이 무엇이냐는 갈린다.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가 끄는 옛 소(疏)는 오온(五蘊)이 공함을 법(약), 오온의 모양을 법 아님(병)이라 하여 병이 나으면 약도 버린다고 하고, 『금강경해의』는 법을 반야바라밀의 법, 법 아님을 하늘에 나는 따위의 법이라 한다. 『금강경소기과회』의 소는 버림이 집착하지 않음일 뿐 '다 내버림이 아니다(非全棄)'라고 못박는다.
구마라집 역은 '여래는 늘 말한다'고 하고 비구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끌지만, 현장 역은 '숨은 뜻으로(密意) 뗏목의 비유라는 법문을 말한다'고 한다. 뗏목의 비유가 겉말 그대로가 아니라 속뜻을 담아 한 가르침이라는 점을 밝혀 둔 것이다. 이어지는 말도 '지혜 있는 이들은 법도 끊어야(斷) 한다'로, 놓아야 할 이를 지혜 있는 이로 못박는다.
해설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은 '바른 믿음은 드물다'는 뜻이다. 송나라 종경(宗鏡)이 짓고 명나라…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은 '바른 믿음은 드물다'는 뜻이다. 송나라 종경(宗鏡)이 짓고 명나라 각련(覺連)이 거듭 모은 『소석금강경과의회요주해(銷釋金剛經科儀會要註解)』(X24n0467)는 여래가 멸한 뒤 뒤의 오백 년에 이 경을 믿어 알고 받아 지니는 이를 드물다(希有)고 한 것이라 푼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T33n1703)는 이 분을 둘째 의심, 곧 '원인과 결과가 다 깊어 믿을 이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끊음(斷因果俱深無信疑)'으로 본다. 4분의 머묾 없는 보시는 원인이 깊고 5분의 모양 없이 부처를 봄은 결과가 깊으니, 뒷세상의 둔한 중생이 믿지 못하리라는 수보리의 걱정에 부처님이 답하시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 하시고, 오랜 세월 수많은 부처님께 선근을 심은 이는 한 생각에라도 깨끗한 믿음을 낸다고 하신다. 그 믿음이 왜 큰 복이 되는지는 네 모양도, 법이라는 모양도, 법 아니라는 모양도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신다. 그리고 법에도 법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뗏목의 비유로 맺으신다.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을 놓듯, 믿고 의지한 가르침마저 붙들지 말라는 것이다.

차례 (32분)

이 분의 낱말 4
  1. 須菩提 수보리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알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선길(善吉) · 선현(善現) · 공생(空生)이라고도 옮긴다. 태어나던 날 집 안이 텅 비어 공생이라 했고, 그것이 뒷날 공을 깨칠 조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如來 여래

    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진리에서 와서 진리대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풀며, 경전에서 부처님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도 쓴다. 『금강경』은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어서 여래라 한다고 말한다.

  3. 福德 복덕

    좋은 일을 하여 쌓는 복과 그 힘이다. 『금강경』은 복덕이 많다고 하면서도 그 복덕은 복덕의 성품이 아니라고 하고, 보살은 지은 복덕을 탐내어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

  4. 四相 사상

    『금강경』이 거듭 버리라고 하는 네 가지 생각의 모양이다.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眾生相) · 수자상(壽者相), 곧 '나' · '남' · '중생' · '목숨을 이어 가는 자'가 따로 있다고 붙드는 생각이다. 보살에게 이 넷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한다.

문단 4주석 5해설낱말 4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

저본

大正藏 『金剛般若波羅蜜經』 1卷(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譯)의 CBETA 전자판을 저본으로 글자와 표점을 따르고, 《조계종 표준 금강경》(2009)이 더한 8곳 18자를 넣었습니다. 더한 곳과 다른 판의 글자는 교감에 남겼습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