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금강경 · 앞머리

해제 解題

어떤 경인가

『금강경(金剛經)』의 온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다. 반야(般若), 곧 지혜를 설하는 반야경 갈래의 한 경이다. 한 권, 한자 오천여 자의 짧은 경이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서 밥을 빌어 드시고 자리에 앉으시자, 수보리(須菩提)가 일어나 여쭌다.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경 전체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부처님께서는 모양에 머물지 말라고 거듭 이르신다. 보시도, 부처의 몸도, 깨달음도 붙잡을 모양이 없다. 그래서 10분의 "머무는 데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는 말이 이 경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이름의 금강(金剛)은 가장 단단한 것을 가리킨다. 청나라 부원(溥畹)의 『금강경심인소(金剛經心印疏)』는 금강에 단단함 · 날카로움 · 밝음의 세 뜻이 있다고 풀고, 이를 지혜에 빗댄다. 옮긴 이에 따라 이름도 조금씩 다르다. 수나라 달마급다(達磨笈多)는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金剛能斷般若波羅蜜經)』, 당나라 의정(義淨)은 『불설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佛說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이라 하여 '능히 끊는다(能斷)'는 말을 더했다.

이 경은 홀로 선 경이면서 큰 경의 한 대목이기도 하다. 당나라 현장(玄奘)이 옮긴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600권은 반야경을 한데 모은 것이다. 당나라 종밀(宗密)은 금강경을 풀면서, 이 600권이 네 곳에서 열여섯 번 모여 설한 것이고 그 아홉째 모임 제577권이 바로 이 경이라고 적었다. 현장 역에서 이 대목의 이름은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이다.

구마라집과 여러 번역

우리가 읽는 『금강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옮긴 것이다. 구마라집은 서역 구자(龜茲) 사람이다. 344년에 나서 413년에 입적했다고도 하고, 350년에 나서 409년에 입적했다고도 한다. 홍시(弘始) 3년(401) 섣달에 요진(姚秦), 곧 후진(後秦)의 서울 장안(長安)에 와서 나라의 스승으로 대접받았다. 그 뒤 많은 경과 논을 옮겼다. 『묘법연화경』 · 『유마경』 · 『아미타경』도 그의 번역이다. 금강경을 옮긴 해는 기록마다 다르다. 종밀은 홍시 4년(402)에 장안 초당사(草堂寺)에서 옮겼다고 하고, 뒷날의 주석서에는 3년이나 5년이라 한 것도 있다.

금강경은 여러 번 한문으로 옮겨졌다. 종밀은 '앞뒤로 여섯 번 옮겼다'고 적었다. 구마라집 다음으로 북위(北魏)의 보리유지(菩提流支), 진(陳)나라의 진제(真諦), 수나라 대업(大業) 연간의 달마급다, 당나라의 현장과 의정이 저마다 옮겼다. 대장경에는 보리유지 역이 두 판으로 실려 있다. 현장의 것은 따로 낸 경이 아니라 『대반야바라밀다경』의 한 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것은 구마라집 역이다. 종밀도 지금 전하는 것은 구마라집이 옮긴 것이라고 했다.

이 역주는 구마라집 역을 읽으면서 대목마다 현장 역을 곁에 둔다. 두 번역은 결이 다르다. 구마라집 역은 한자 오천백여 자이고, 현장 역은 팔천이백여 자다. 구마라집이 소리대로 옮긴 수보리를 현장은 뜻으로 옮겨 선현(善現)이라 부른다. 구마라집 역에서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 네 가지로 나오는 것이 현장 역에서는 여덟 가지, 아홉 가지 생각(想)으로 늘어난다. 26분의 게송은 구마라집 역에서 넉 구절이지만, 현장 역에는 넉 구절이 더 있다. 둘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말씀이 어떻게 달리 옮겨졌는지, 어느 대목이 한쪽에만 있는지가 드러난다.

32분과 덧붙은 대목

경 본문에는 분(分)의 나눔이 없다.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에서 응화비진분(應化非真分)까지 서른두 분의 나눔과 이름은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소명태자 당대의 기록은 찾지 못했다. 명나라 종륵(宗泐) · 여기(如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金剛般若波羅蜜經註解)』도 '소명태자가 세웠다고 서로 전한다'고만 적는다. 이 책은 32분이 번역본에 없던 것이고 천친(天親) 등이 지은 논(論)의 마디와도 달라 경의 뜻을 잘게 부순다며 따르지 않았다. 그래도 32분은 오래도록 널리 쓰였다. 분 이름을 단 주석서 열여덟 판을 맞대어 보니 분의 경계가 모두 같았다. 이 역주도 이 나눔을 따른다.

21분 끝의 "그때 혜명(慧命)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에서 "이를 중생이라 부른다"까지 62자는 뒤에 들어온 대목이다. 원나라 서행선(徐行善)의 『금강소과석(金剛疏科釋)』은 이 대목이 구마라집 역에는 없고 보리유지 역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보리유지 역에 같은 대목이 있다. 혜능(慧能)의 이름으로 전하는 『금강경해의(金剛經解義)』 등은 당나라 영유(靈幽) 법사가 장경(長慶) 2년(822)에 이 62자를 더했다고 적는다. 이 역주는 저본대로 이 대목을 본문에 두고, 내력은 21분 해설에 자세히 적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금강경은 널리 읽혀 왔다. 종밀 · 혜능 · 부대사(傅大士) · 야보 도천(冶父道川) · 종경(宗鏡) 다섯 사람의 풀이를 한데 엮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가 오래 읽혔고, 조선 초 함허 득통(涵虛得通)이 여기에 설의(說誼)를 붙였다. 강원(講院)에서는 사교과(四敎科)의 한 과목으로 배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종헌에서 『금강경』과 전등법어(傳燈法語)를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삼는다. 2009년에는 조계종 교육원이 《조계종 표준 금강경》을 펴냈다. 이 역주의 본문도 그 한문본을 따라 여덟 곳에 열여덟 자를 보탰다(일러두기).

금강경 대문 · 차례 1분부터 읽기